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73화 (173/272)

제173화. 저게 우리 대장이다 (1)

신성제국 헬라엔 기묘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대륙의 5대 신앙 중 하나. 청의 총본산에는 어리고 총명한 소가주가 있다고. 그리고 그 소가주의 능력이 어찌나 뛰어난지, 들어오는 사람은 상대가 누구든지 최고의 성직자로 만든다고…….

“으악! 살려줘!”

“빌어먹을! 이건 사기야!”

“사기 당했어얽!”

…아니, 실제로는 죽는 수준의 고문을 당하는 거지만.

실제로 아이작의 밑에서 신입 연수를 받게 된 견습들은 눈물, 콧물을 뽑아내고 있었다.

“아침에는 밥도 안 먹이고 벼랑에서 떨어트리질 않나, 점심에는 호수에 던지질 않나, 저녁에는 숲속에 던지질 않나!”

“이게 훈련이냐?!”

누군가의 불만에 동료들은 고개를 저었다.

“야…. 우리 돌격팀은 그나마 나은 거다. 개별 훈련받는 애들은 개인 방에 24시간 갇혀서 비명만 지르고 있어.”

“뭘 하는데……?”

“모르지…. 그저 아이작 님 살려달라는 비명만…….”

아이작을 못마땅해하던 놈들조차 아이작에게 ‘님’을 붙일 정도면, 도대체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여.

견습들은 몸을 오스스 떨었다.

그들이 내릴 결론은 하나밖에 없었다.

“탈출할까?”

“관둬라…. 이미 탈출한 애들, 신수 밥으로 던져졌다더라.”

“뭐?!”

“전원 되돌아오긴 했지만…….”

‘역시 여기만 한 곳이 없지?’라며 웃는 아이작은, 공포 그 자체였다고 한다.

물론 청을 고른 보람은 있었다.

실력은 다른 동기들에 비해 몇 년 치 이상 늘고 있고, 수당도 그만큼 챙겨주고 있긴 하지만…….

“이럴 거면 다음 임무 때 도망치는 게 낫지 않… 헉!”

훈련하던 그들은 흠칫 놀랐다. 아이작은 채찍을 휘두르며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수련 안 하고 또 떠드네?”

“아이작!”

“아직 움직일 여력이 있나 보지?”

결국 그들은 슈리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으아악! 슈리! 너밖에 없다! 우리 좀 살려줘!”

슈리는 먼 산을 보았다.

“…에슈아의 모든 신입 교육은 소가주의 권한이 되어버려서. 난 관여 못 해.”

“뭐라고?!”

“가주님조차 관여 못 한다. 그러니 힘내라…….”

“아악!”

슈리는 한숨을 쉬었다.

교황가에서는 지금도 교황가의 성물을 돌려달라고 협박하고 있지만, 아이작이 신입 교육이란 명목으로 잠수를 타버렸다.

‘뭐, 그래도 교황청 임무를 맡아야 하니까 거기서 마주하나 싶었지만…….’

“캬하하! 걱정 마라! 니들을 키우기 전까진 나도 어디 안 갈 테니까! 새끼들아! 고맙지!”

“안 돼! 제발 나가줘!”

오늘도 청의 저택에서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비명이 밤낮으로 울리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에슈아의 푸른 호수에 새로운 봄이 몇 번이나 찾아왔다.

* * *

새로운 꽃잎이 피고, 지고.

그렇게 에슈아의 호수 위에 꽃잎이 몇 번이나 떨어졌을까. 청이 부흥하기 시작했다는 진귀한 소문이 대륙 끝까지 도달했을 때.

한 남자가 초조한 얼굴로 에슈아 저택을 보고 있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들었어요? 몇 해전부터 에슈아 저택에 들어간 성직자들은 전부 시신으로 나오더래.

…시, 시신이라니??

-그뿐이 아니야! 청의 사제가… 도둑질을 하더래.

-아니… 강도질을 한다던데?

성직자가 강도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왕국에서 파견된 사신 아서는 몸을 떨고 있었다. 청에 의뢰를 하러 온 그는 아이작에 대해 뜻 밖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청의 소가주가 극악무도하대.

-이미 어떤 나라는 소가주한테 왕실 창고가 털렸다더라.

-?!

처…청 을 고르는 게 아니었나?

…이거 어디 마왕 가문 아냐?!

에슈아를 찾은 그는 불안감을 숨길 수가 없었다.

‘정말 에슈아의 소가주에게 의뢰를 해도 되는 건가?’

물론 멸문할거란 소문이 돌던 청은 놀라울 정도로 바뀌었다.

특히 몇 해 전은 충격이었지.

무려 엘리트인 교황청 졸업생 전원이 청에 들어갔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정말 놀라운 건 그 뒤였다.

첫 졸업생들이 전원 에슈아에 들어가고, 바로 그 다음해.

성직자들은 물론, 사람들 모두 까무러쳤다고 한다.

왜냐고?

-후배들에게 청을 적극 추천한다!

-무조건 청으로 와라! 만족도 1000%다!

-성력도 최강! 능력도 무지하게 오른다!

-최강이 될 수 있어! 금 따위 X 까!

소가주 밑에 들어간 1기 신입생들이 후배들에게 적극 청을 추천하고 나선 것이다. 그것도 전원이!

당시 성직자들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전원이 추천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데?

-도대체 청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렇게 1기생 전원의 적극 추천과 홍보에, 다음 해 졸업생들 전원이 청에 들어갔다.

그러면 그다음 해는 어땠냐고? 이럴 수가. 그다음 해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고, 결과적으로 3년 연속 청이 신입들을 싹 쓸어갔다!

그래서 다른 신앙은 충격에 빠진 모양이었다. 한두 번은 그래,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세 번?!

심지어 앞서 들어간 1, 2기생들로부터 불만이 나올 법도 한데, 단 한 명도 불만이 없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3년 연속 청이 쓸어간다고??

-아니, 들어간 전원이 만족도 100%라고? 가능할 리가 없잖아!

결국 넷째 해엔 교황이 직접 나서 청이 신입을 받는 걸 막아버렸다.

-졸업생들이 한쪽으로 쏠리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균형을 위해 공평 분배의 원칙을 세우겠다.

물론 다들 비난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청이 5년 동안 신입을 받지 못할 땐 뭐 하고 있었냐는 것이다.

결국 그 반발에 해당 명령은 철회되었지만, 그때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청 말이야, 걔들 활동을 전혀 안 해.

-예?

-원래 신입들은 1, 2년 정도 총본산에서 집중 수련을 받거든? 그 이후로는 속세로 나와서 공을 세우고 활약을 한단 말야.

-그, 그런데요?

-그런데 아무도 안나와. 소가주도 모습을 안 드러내고.

-뭐, 마주치면 소가주한테 살해 당한단 말은 있더라.

사, 살해?!

소가주한테?

그런 소문에 아이작을 기다리는 아서가 바짝 긴장할 때였다.

“율리우스에서 오셨습니까?”

“!”

뒤에서 들린 남자의 목소리에, 아서는 화들짝 어깨를 떨었다.

그, 그래. 이 사람이 바로 그 극악무도하다는 소가주…!

하지만 곧 상대를 본 아서의 얼굴이 밝아졌다.

‘좋아! 멀쩡해! 생긴 건 아주 멀쩡해!’

약관 쯤 되어 보이는 잘생긴 남자였다. 키는 훤칠하고, 햇살에 반사되는 머리 색은 아름다운 백금발이었다. 고양이처럼 올라간 눈매는 까칠해 보이지만, 어딘가 선해 보이기도 했다.

하물며 그 옆에 있는 여인도 여인이다.

은발을 어깨에 늘어트린 긴 머리에, 온화해 보이는 총명한 눈빛은 너무 깊어 풍덩 빠질 것만 같았다.

정신이 아득해진다는 말이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이었나.

‘역시 에슈아! 전부 선남선녀만 있다더니… 그 말대로였군!’

남자가 말했다.

“율리우스 왕실에서 청에 의뢰를 하러 오셨죠?”

“아이작 님이십니까?!”

그러자 청년의 표정이 대놓고 썩었다.

“아닙니다.”

“!”

아서는 놀라며 청년을 다시 살폈다.

그러고 보니 머리색이 백금발이 아니고, 몹시 옅은 연갈색이다. 빛 때문에 착각한 모양이었다.

“슈리 에슈아입니다. 소가주가 부재중이라 제가 대신 맞이하게 된 점 양해해 주십시오. 마침 이 근방에 있다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왕국 사신은 수긍하면서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소가주께서는 어쩐 일로 그간 안 보이시고…….”

“아, 열심히 신입들을 단련시키고 계셨죠. 청의 이름에 맞는 인재를 길러야 하니까.”

왕국 사신은 크게 안도했다.

‘청의 이름’에 맞는 인재라니!

‘다행이다! 역시 멀쩡한 분이시구나……!’

“휴. 그럼 왕자를 패대기치고 왕실의 금고를 털었단 소문은 역시 거짓이겠군요……?”

그 말에 슈리는 어째서인지 움찔했다. 심지어 얼굴이 묘하게 굳었다.

“아… 음. 그게… 음.”

“예?”

슈리는 크흠 기침을 했다.

“실은 저도 그 녀석을 꽤 오랜만에 보는 거라 무척 기대가 되네요.”

“오오! 슈리 님께서 기대하실 정도면 역시……!”

“예. 기대됩니다. 얼마나 더 개가 됐을지.”

…예?

개라니? 개라니요?!

하지만 사신의 의문 어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슈리는 날아오는 새끼 고래의 전보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소가주가 어딨는지 파악이 됐군요. 따라오시죠.”

아니, 방금 개라고 했잖아! 똑바로 설명해줘!

“아… 뭐… 그리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번엔 다행히 손님께서 다치실 일 없을 장소거든요.”

다, 다쳐?

“전에는 소가주를 뵈러 갔다가 휘말려 안타깝게도 죽어버린 분도 계셔서.”

죽다니?!

청! 니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제대로 말해줘! 왕국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 * *

슈리를 따라온 사신은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소가주가 있다는 장소 때문이었다.

‘도, 도박장?’

뭐지? 왜 성직자가 이런 곳에 있는 거지?

도박은 절대 엄금이 아닌가?

사신은 동공이 떨리고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질이 안 좋아 보이는 장소였다. 주변 곳곳에 양아치들이 가득했고, 심지어 숨을 안 쉬는 것 같은 놈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일상이라는 듯, 슈리 일행이 들어오자 지갑을 노리는 눈빛들로 번득인다.

눈을 의심할 만한 건 장소뿐이 아니었다.

“아앙? 그래서 지금 우리가 잘못했단 거냐? 아아아앙?”

“아니, 그게 아니라……!”

“맞잖아. 지금 우리가 잘못했다고 우기는 거잖아!”

사신은 입을 떡 벌렸다. 도박장 직원의 멱살을 잡고 으름장을 내뱉고 있는 젊은 기사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 청의 기사들……!

틀림없었다.

‘저들은 청에 들어갔다는 신입들!’

허리띠의 장식을 보면 대충 기수가 짐작이 갔다. 그리고 고작 얼마 전까지 신입이었던게 맞나 싶을 정도로, 훤칠하다.

단련된 모습이며, 체격, 성력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고 든든할 정도로 훌륭하다.

하지만 협박하는 모습하며, 표정하며, 말투하며, 얼굴하며… 저건 그냥 건달, 양아치가 아닌가?!

‘정녕 저것이 청의 기사들이라고?!’

그… 신실한… 그러니까,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우직한… 기사도의 청?

껌을 씹는 그들은 확 배를 갈라 장기를 팔아버린다는 듯 직원들을 협박하고 있었다.

“좋은 말로 할 때 안내하라고! 여기 소가주께서 있다는 걸 다 알고 왔으니까!”

“아니면, 전부 내장이 꺼내져 봐야 열어줄 거냐? 아앙???”

“감히 누구를 납치해가서는, 확 그냥!”

그 말에 사신은 아차 싶었다.

그, 그래! 소가주께서 도박을 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었구나! 아마 뭔가 사고가 있었고, 저들은 주인을 찾으러 온 거였어!

그래!

청의 기사들도 주인의 안전에 눈깔이 뒤집혀서 그런 것뿐이야!

사신은 또 깊이 안도하며, 급히 슈리를 보았다.

“소가주님께선 괜찮으실까요? 무슨 위험이라도…….”

“아. 시벌놈. 이번 먹잇감은 여기냐.”

…예?

슈리의 싸늘한 욕설에 사신은 얼어붙었지만, 곧 슈리가 청의 기사들에게 다가갔다.

“니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소가주 데리고 곧장 집으로 오라고 했잖아!”

청의 기사들은 흠칫 놀랐다.

“헉, 슈리… 아니, 대리님! 그게, 소가주께서 이 구역에 볼일이 있다고 하셔서!”

“니들은! 그걸 또! 좋다고! 따라가!”

슈리는 기사들의 머리를 철썩철썩 내리치면서, 도박장의 귀빈실로 갔다. 사신은 불안한 듯이 슈리를 보았다.

“저, 저, 슈리님. 소가주께서는 정말 괜찮으신…….”

“아아. 걱정 마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청의 수장인걸요. 도박은 안 하고 있을 겁니다. 예… 도박은요.”

…뭐라고?

“저는 차라리 도박을 하길 바라지만.”

…저기요?? 그게 무슨?

그보다 왜 시선을 피하시죠?!

그와 동시에 귀빈실이 열렸다.

“아이ㅈ… 소가주님! 여기 계십니까!”

안에 펼쳐진 광경에 사신이 입만 뻐끔거리고 있을 때, 슈리가 백금발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쯤 해라!”

“엉?”

슈리의 외침에, 백금발의 남자가 뭐냐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사신은 깜짝 놀랐다.

16살쯤 되어 보일까. 훤칠한 키에 화려한 백금발에 이목구비.

신들의 축복을 받았다는 말이 딱 알맞은, 천상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그 잘생긴 얼굴과 다르게…….

“뭔데 방해야, 김슈리! 뒤지고 싶냐?”

입이 왜 저렇게 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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