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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75화 (175/272)

제175화. 양심이란 게 있습니까? (1)

해골왕의 육신?

아이작과 슈리는 당황스러운 듯 사신을 보았다. 특히 아이작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게 왜 다른 왕국에서 나타나?’

해골왕의 육신은 신성드래곤이 가지고 있는게 아니었나?

‘그거랑은 다른 건가?’

가짜일 가능성도 있으니, 아이작은 확실하게 묻기로 했다.

“그거, 정말 해골왕의 육신이야? 어떤 부위인데?”

슈리는 말투 좀 고치라며 아이작을 보았지만, 사신은 손을 꽉 쥐면서 답했다.

“그게, 부위까진 마기가 너무 사악해서 알 수가 없습니다. 마족과 드래곤들이 나타났고, 마도제국에서 온 사람들이 물건을 확인하고는 넘기라고 하고 있지만…….”

아이작은 큭 웃었다.

‘드래곤과 마도제국에서 이미 끝났군.’

[진짜 주인님의 육신인가 보군요?]

그래. 그럴 것이다.

특히 마도제국은 여러 드래곤들과 함께하는 나라였다. 그리고 그 마법에 미쳐 있는 놈들이 해골왕의 육신도 아닌데 탐할 리가 없었다. 성녀 보물고에 있던 해골왕 육신도 무지하게 탐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놈들이 직접 방문해서 내놓으라고 하고 있다면, 빼박 진짜지.’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지점은 있었다.

“왜 나한테 의뢰하는 거지? 마도제국에 넘기면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뜯어낼 수 있을 텐데? 막말로 왕국은 꿈도 못 꾸는 금액을 제시했을 텐데.”

“아이작.”

슈리가 눈치를 줬지만, 사신은 손을 꽉 쥐었다.

“다른 나라에 넘기면 자칫 대륙의 전쟁 도구가 될 수 있으니까요.”

뭐, 그건 그렇지.

이미 존재만으로 거대 산림을 날려버리는 해골왕의 육신은, 이미 최강의 병기였다.

여러 나라에서 아마 눈을 번득이고 있을 걸.

슈리가 질색하듯 말했다.

“그럼 교황청에 맡기셔도 되었을 텐데요. 이놈한테 맡기기엔 솔직히…….”

“야. 낌슈리. 내가 뭐 어때서? 이 인성 훌륭한 내가 왜?”

“너 이 새끼… 양심이 있으면…….”

“교황청보단 아이작 님을 더 믿을 수 있어서요.”

슈리는 살아오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듯이 보았다.

“…왜죠?”

“야. 그 혐오하는 눈빛 뭐냐? 위대한 사람이 될 사람은 다 알아보는 거지!”

“그게… 사실은 저희 막내 왕자님께서 ‘아이작 님만큼은 믿을 수 있다.’라고 하시면서… 아이작 님을 추천하셨습니다.”

이번엔 자뻑하던 아이작조차 당황했다.

…왕자가? 왜? 나를?

슈리는 미심쩍은 듯 아이작을 보았다.

“…너… 율리우스의 왕자와 면식이 있었던가?”

“…아니. 잘 모르겠는데.”

“…여행 중에 율리우스의 왕자의 금품이라도 소매치기한 건 아니고……?”

“아니거든?”

거짓말이 아니고, 진짜 모르겠다.

그러자 사신이 둘의 눈치를 살폈다.

“그…실은 16년 전, 성녀 보물고의 돌잡이에서 뵌 적이 있으시다고…….”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비명에 가까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젖먹이 시절. 성녀 보물고에 우르르 왔던 성자 후보 중에서 왕자 놈이 있었지!

-솔직히 성력은 자신 있지만, 제가 성자가 될 가능성은 없는 것 같고요. 성자님과 해골왕의 육신을 찾으러 왔습니다.

-백금발은 헬라 시조님들의 상징이죠? 수천 년 동안 교황가에서도 나오지 못한 색이라던데! 위대하신 시조들의 색을 가진 분이 나왔으면 성자는 이미 정해진 게 아닌가요? 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직접적인 증거인데!

-저한테도 투명 성법을 걸어주신 건가요? 구해주신 거군요!

-감사합니다. 마족과의 전투는 익숙하지 않은 저를 위해…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왕께도 잘 전달해드리겠… 허억!

아이작은 천장을 보았다.

그래…. 분명 그런 놈이 있었던 것 같다.

[주인님이 반지로 성력을 쪽쪽 빨아먹고 죽인 왕자 말이죠?]

…아니. 죽이진 않았어.

-뜌야뜌야야야(니가 이 중에서 제일 성력이 많았거든)!!

-캬캬캬캬, 주인님. 왕자 주제에 성력이 엄청 많군요!

…아.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성력을 뽑아내긴 했네.

슈리도 먼 산을 보았다.

“아… 생각난다. 네가 젖먹이였을 때 보물고에서 만났지.”

슈리는 어릴 때의 일이 생생했다.

그래. 성력의 흐름을 눈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왕자가 흡혈당하는 꼴을 봤었지.

‘아이고…. 그 왕자가…….’

하지만 그 상황을 아는 건지, 사신은 아이작을 존경하듯 보았다.

“왕자님께서 아이작 님이라면 믿을 수 있는 분이라고……!”

아이작은 푸헿 웃었다.

“캬, 기억나고 말고. 율리우스의 둘도 없는 귀하신 분이시니까, 그때 함정으로부터 열심히 구해드렸지.”

“…….”

아이작을 보는 슈리의 표정이 볼만했다.

너 이 새끼… 안 찔리냐?

“그때 잘 지켜드린 보람이 있군그래.”

얌마. 양심이란 거, 존재해??

그러나 아이작은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듯 사신을 보았다.

“좋아. 그럼 이번에도 왕자님을 지켜드리기 위해 율리우스 왕국으로 가주지.”

…양심 안 찔리냐고!!

* * *

그래. 율리우스 왕국의 왕자가 부르는데 흔쾌히 가야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몸이 있다잖아? 가서 내 육신을 얻고, 최대한 뜯어내야지.

솔직히 완전 개꿀인 의뢰라고 생각했는데-

“출국 금지이이?”

아이작은 뜻밖의 소식에 샤브나크를 보았다.

일단 의뢰를 받고 다른 나라에 가는 만큼, 교황청에 이를 알리고 출국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교황청에 갔던 샤브나크가 더욱더 뜻밖의 답변을 들고 왔다.

“교황이 막았다고? 율리우스에 가는 걸?”

“예.”

“왜?”

“직접 확인해 주십시오.”

샤브나크가 교황청의 인장이 찍힌 공문서를 내밀었다.

그걸 본 아이작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율리우스 왕국은 현재 특수한 지리적 요건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복잡한 상황입니다. 청의 후계자의 안전을 위해서 방문을 엄금합니다.

-또한 해골왕의 육신을 또 섭취할 수도 있으니, 해골왕 육신과 관련된 의뢰는 엄금합니다.

이 새끼들 봐라? 뒤지려고 환장했나?

슈리는 말은 된다면서 이마를 짚었다.

“율리우스의 옆 나라는 다른 제국의 속국이니까. 5대 공작가쯤 되면 군사를 배치하러 오는 거라고 발작한다는 거겠지.”

거대 제국의 공작가쯤 되면, 어지간한 왕국을 웃도는 병력을 동원할 수 있다. 5대 신앙의 가문이라면 말 다했고 말이다.

그리고 공작은 아니지만, 소가주인 아이작이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군사적 불안을 야기하고 납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는 얼어 죽을?

“이거 완전 개소리잖아! 온갖 핑계를 대서 에슈아를 방해하려는 걸로밖에 안 보이는데? 그리고 뭘 또 먹네, 마네야! 내가 젖먹이야?!”

“…안 먹을 거냐?”

[안 드실 겁니까?]

아니. 먹을 건데.

슈리도 빡친 듯 말했다. 아이작의 몸 걱정은 무슨.

“아이작 대신에 다른 가문을 보낸다고? 아주 작정했네. 율리우스와 에슈아가 친해지는 걸 막고, 공만 싹 빼돌릴 생각인 거야. 해골왕의 육신이면 성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만한 공이니까.”

신입 건도 그렇고. 교황이 노골적으로 에슈아를 견제하기 시작한 건 알았지만,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율리우스에서는 특별한 물건이 나온다. 이번 일로 교섭권을 얻으면 무조건 에슈아에 이득인데.’

하지만 출국 금지 명령이 내려진 이상, 나갈 방법이 없다.

“5대 가문의 성직자인 이상, 율리우스에 갈 수가 없으니…….”

“왜 못 가?”

“뭐?”

아이작은 큭 웃었다.

* * *

‘교황이 내린 출국 금지?’

그딴 거 알 게 뭐냐.

“이쪽은 황실의 특사로 가면 그만이거든?”

그거면 교황의 명령도 무시하고 나갈 수 있거든?

하물며 무려 황실의 사신으로 간다는데, 교황이 감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슈리는 그 말을 듣고는 ‘와…이 새끼. 잔머리 굴리는 것 보라’며 감탄했지만, 아이작은 코웃음을 쳤다.

물론 황실의 특사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아이작에게는 이럴 때를 위한 인맥이 있다.

‘크, 우리 귀여운 요술보따리 형님.’

이번에도 황태자의 도움을 받아야겠…….

“황태자 전하께서 만남을 거절하셨습니다.”

…뭐가 어째?!

황태자를 만나러 온 아이작은 눈이 드물게 휘둥그레졌지만, 황태자의 시녀장은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전하께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아이작 공자하고는 할 말이 없다면서.”

쫓겨날 위기의 아이작은 미간을 짚었다.

젠장. 삐쳤다더니, 진짜 삐쳤네.

성인식 때의 일도 사과하러 올 겸 왔건만. 솔직히 황태자를 얕본 부분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해골왕의 빠돌이고, 자신을 해골왕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다루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이러면 쬐금 곤란한데.’

황태자를 꼬시지 못하면, 교황이 되어서도 이 나라를 먹지 못한다.

아직 정체는 안 밝혔지만, 설령 마법을 써도 묵인해줄 황제는 이놈밖에 없는데. 가장 이상적인 건 샤블리스가 황제, 자신이 교황이 되어 이 제국을 먹어 치우는 것이었다.

아이작은 끙, 골치 아픈 듯 시녀장을 보았다.

“그러면 서신이라도 전달을…….”

“뇌물은 주셔도 소용없다고 하셨습니다.”

인마! 이러기야?!

“뭘 보내셔도 안 읽으실 겁니다.”

빡치는데 그냥 x까고 이새끼 멱살 잡고 끌고와?

[갸악, 주인님! 신성드래곤 힘은 상대하기 힘듭니다! 평화로 해결해주세요!]

그런데 그때였다.

“제 서신이라면 받으실 테니 전해주세요.”

“!”

아이작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소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금발의 또래 소녀였다.

“아이작 공자님이시죠? 샤를로트 알렉프리크 헬라입니다.”

상냥하게 웃는 그녀가 누구인지 물을 것도 없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황녀 저하.”

샤블리스의 여동생으로, 이 제국의 유일한 황녀다. 황태자의 외견을 보고 대충 짐작은 했지만, 동생인 황녀는 몹시 총명해 보이고 아름다웠다.

‘마법사인가?’

그녀는 예전부터 아이작에게 관심이 있던 모양이었다.

황녀는 근처의 응접실로 가서 편지지를 부탁했다.

“예전에 제 호위 임무를 부탁드렸었는데, 이쪽의 사정으로 없던 일이 되어서 슬펐습니다. 그런데 오라버니께 어떤 말을 전해드릴까요?”

“아. 전하가 삐치셔서요. 얼굴 좀 뵙고 싶다고.”

그 말에 시녀에게 황실 전용 종이와 펜을 받은 황녀가 아이작에게 건넸다.

“제 편지는 읽으시겠지만, 과연 오라버니께서 공자의 얼굴까지 보려고 하실지…….”

성인식 때의 일로 어지간히도 화났다고 했다.

“하필 교황한테 좋지 않은 말을 들어서…….”

교황은 자신들 남매의 트라우마와 다름없었다.

솔직히 참고 있는 것뿐이지, 교황청 사제들을 깡그리 죽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광기를 숨기고 있었다.

아이작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황태자가 성직자들을 멀리하면 멀리했지, 화를 풀 것 같진 않다.

“성직자들이라면 그 누구도 접근하지 말라고 하셔서요. 아마 어떤 거래도 하지 못하실 거예요.”

그러자 뭔가를 쓰는 아이작이 큭큭큭 사악하게 웃었다.

“그거라면 걱정 마시길. 황녀 저하께서는 전달만 해주시면 됩니다. 아마 이거 한 방이면 될 거거든요.”

황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글귀일지는 몰라도, 그 오라버니가 문구 하나로 나타날 리가 없는데?

곧 편지를 전달했지만, 다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시녀장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봐야 어린 소가주의 쓸데없는 행동이라고.

그래, 그랬는데…

쿵쾅! 쿵쾅! 쿵쾅!

쿵! 쿵쾅! 쿵!

전력 질주해오는 발소리와 함께… 쿵!

아니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응접실의 문이 열렸다.

“?!”

벌컥!

황실 시종과 시녀장, 황녀가 깜짝 놀랐다.

달려서… 아니, 거의 날아온 듯한 황태자가 숨을 헐떡이며 응접실에 나타났다.

“저, 전하?!”

황녀는 놀란 듯 아이작을 보았다.

“도대체 무슨 서신 보내신 겁니까?”

아이작은 푸흐흐헿 웃었다.

“비밀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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