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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77화 (177/272)

제177화. 양심이란 게 있습니까? (3)

“뭐?! 특사? 황태자 전하가?”

슈리는 깜짝 놀라 아이작을 보았다. 그는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너를 왜?

그런 슈리의 눈빛에, 아이작은 눈을 부릅떴다.

“뭐냐, 그 눈빛? ‘왜 너 같은 걸 특사로 임명하냐’는 듯한 눈빛인데?”

“아니…….”

아니, 그렇지 않은가.

평범한 사절도 아니고, 황실의 특사아?

황제의 대리라고 할 수 있는 그 엄청난 권한을, 이 새끼한테??

‘뭐지? 나라가 망할 징조인가?’

아냐…. 아무리 그래도 황태자 전하도 생각이 있으시겠지. 교황의 명령을 무시하고 출국할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니, 그냥 말뿐인…

“못 믿겠으면 직접 봐라.”

아이작이 스윽 내미는 황금 자수정 패에, 슈리는 굳었다.

황족만 쓸 수 있는 보라색. 그리고 그 위에 새겨진 드래곤과 사자.

그건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위대한 신성제국 황실의 상징, <로열 로드 크라운>.

“봤지? 황실 특사의 증표다.”

…진짜 이 나라가 망하려고 하나?!

슈리는 멘붕에 빠졌다. 공작가 사람인 그조차도 무서워, 감히 들지 못하는 패였다. 그 정도로 엄청난 물건이었다.

‘이 새끼한테 황제 대리권을 주시다니, 전하도 무슨 생각이신 거야!’

일부긴 해도 황실 기물과 보물고, 병력까지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인데!

‘이 새끼가 다 털어가게 생겼네!’

그보다 이거, 외교적으로 괜찮은 거 맞냐? 이자식, 전쟁 일으키는거 아냐?

아니. 그 이전의 문제다.

그 황태자한테, 이걸 뜯어내?

‘이 미친… 다른 성직자들은 모조리 거절하셨으면서. 아이작한테는 왜?’

이게 어느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냐면, 그래. 그러니까 이런 거다.

동맹을 맺으면 세계 최강이 될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부모 원수의 나라에게 안방을 내어준 셈이다.

그쪽으로는 침도 안 뱉는 원수에게!

아니, 안방만 주면 다행이지. 이거는 ‘이 나라를 잡아드십쇼’ 하고 통솔권까지 준 건데?

뭐지?

이 새끼, 도대체 뭘 하고 온 거지?

“참! 나 황녀 저하한테도 선물 받아왔다?”

심지어 누구한테, 뭘 받아?!

“황실의 물건에는 모두 신성드래곤의 마법이 걸려 있어서, 독 같은 것도 금방 알아차린다더라.”

…심지어 목숨을 지켜주는 물건을 선물 받아?!

아이작은 사랑스러운 듯 선물 박스에 얼굴을 비비며 푸헤헤헤 웃었다.

물론 사실 독 따위, 의미 없긴 하다. 사제인 아이작에게 들어올 독이라면 대부분은 신성독이라 오히려 아이작에게 이득이었으니까.

중요한 건 이게 신성드래곤의 마법이 걸려 있단 거지.

‘가치도 높고, 분석하면 드래곤의 마법을 내가 훔쳐갈 수도 있거든.’

반면 슈리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황녀는 누구한테나 상냥하고 예절이 바르지만, 그 누구보다 귀족들을 혐오하며 가시를 품은 사람인데!

“도대체 황실에다가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해골왕의 마법?”

…뭐, 인마?

“사랑은 위대하다?”

“빠돌이는 세상을 구한다?”

“빠돌이는 귀하다?”

아이작을 이해하기를 포기한 슈리는 한숨을 쉬었다.

이걸로 승단 가능성이 생겼다하더라도, 큰 문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호위는?”

“호위? 그딴 게 필요한가?”

“장난해?! 너 이게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다 생각하는 거야? 도적에 살수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닐 거야?!”

특사를 노리는 적은 일개 도적들이 아니었다. 제국의 첩보원이나 왕국 직속 특수부대들까지 움직일 수 있었다.

해골왕의 육신만 한 게 얽혀있으면 더욱 그렇지. 정말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아마 1미터를 걸어갈 때마다 적이 나타날걸?”

아이작은 뭔 개소리하냐는 듯 빤히 보았다.

“그럼 내 노비들을 데려가면 되잖아?”

슈리는 더욱 아득해진 눈빛으로 아이작을 보았다.

그… 양아치 놈들을 데리고 간다고?

아이작이 능력만 오지게 올린 터라, 인성은 개차반이 된 그놈들을?

“뭐가 문젠데?”

이새끼는 정말 문제를 모르는 건가?

“청의 소가주로서 청의 이미지는 제발 지켜줘!”

바로 그때였다.

“그거라면 내가 해결해주지.”

“!”

그들의 앞에 나타난 존재에 슈리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황후마마.”

황후는 최고신을 가진 아이작에게 미련이 남은 듯 했다.

“황실의 특사로 간다고 들었네. 어떻게 그 아이는 일만 벌이고 할 줄 아는게 없어. 특사에게 황실 기사도 안 붙여주다니.”

황태자를 깎아내리는 말이었지만, 아이작은 실소를 흘렸다.

‘샤블리스가 괜히 황실 병력을 안 붙여준 줄 아나?’

황태자는 머리가 몹시 좋았다. 황실 특사로서 가는데 황실 병력이 붙으면, ‘여기 귀한 몸이 있으니 꼭 털어가라!’ 하고 광고하는 꼴이 아닌가.

정체를 숨긴다고 해서 황실 기사들 특유의 엘리트 냄새와 움직임 버릇이 걷어질 리도 없고 말이다.

‘노련한 놈들은 단번에 알아차린다.’

무엇보다 황실 기사들은 성직자들을 감시했다.

그런 의미에서 샤블리스는 오히려 아이작을 배려해준 것이었다. 아이작이 직접 편한 가문의 사람을 골라 데리고 가라고.

뭐, 황후는 다른 모양이었지만.

“그 아이가 부족한 것이 많아. 부끄럽지만 그 아이는 교황 성하께도, 신께도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인지라. 청의 소가주가 그 아이와 어울려주니 감사할 따름이지.”

“……?”

아이작은 가증스러운 듯 큭 웃었다.

“그 말은 청의 소가주가 지금 보는 눈이 없다고 까시는 거죠?”

“?!”

아이작의 말에 모두가 기겁했지만, 아이작은 초승달 눈으로 웃었다.

‘황태자를 후려쳐서 끌어내리고 싶어하는 거겠지.’

황태자 샤블리스는 몹시 뛰어났다.

최연소 소드마스터에, 마법에, 드래곤과 계약하고, 하물며 국책 사업도 잘 이끌어, 게다가 천재로 보이지만 엄청난 노력가야…….

제 자식이 아닌 놈이 그 정도로 뛰어나면, 나라도 배가 아프겠네.

그래서 황태자가 권력을 잡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동시에 교황을 방해하면서 황태자와 친한 아이작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것이고.

이간질과 후려치기로 본인들의 가치를 올리려 하다니.

‘새끼들이 날 개무시해도 유분수지.’

“황후마마께서 그리 가볍게 말을 담으실 줄은 몰랐는데요.”

그러자 움찔한 황후는 못마땅한 조소를 지었다. 그리고 기사들 앞에서 아이작을 깎아내리듯 공격했다.

“소공작은 참 순진무구한 얼굴로 혀에 천박한 독을 품고 있소. 어디 마왕이 환생했나? 그래, 꼭 해골왕같군.”

슈리는 울컥 했다. 감히 해골왕 따위와 같다고 하다니!

이건 제국에서 엄청난 모독이었다! 특히 청의 사람에게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정작 아이작은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해골왕인데… 무슨 문제라도?’

전혀 미동도 없는 아이작을 본 황후가 되레 못마땅한 듯 사라지고, 황후의 기사들이 못마땅한 듯 아이작을 흘겨보고 있었다.

“황실에 특사로 가신다니, 저희가 호위로 붙겠습니다.”

이 새끼들은 뭐래?

아이작이 꺼지라는 듯 입을 열려고 했지만, 슈리가 눈치를 주었다.

“야. 저 사람 황실 제2기사단의 단장이야.”

그게 어쨌는데?

“아무리 소가주라도 함부로 건들 만한 신분이 아냐!”

…아. 한마디로 힘이 쎈 놈이다?

그들은 황태자와 아이작이 못마땅한 듯이 말했다.

“귀중한 황실 특사의 패를 소지하신 만큼, 믿을 수 있는 호위가 필요할 겁니다. 황실 기사단이 붙는 것이 남 보기에도 좋을 것이고요.”

아이작은 가증스러운 듯 노려보았다.

옘병하네. 척 보니 황후와 교황 쪽 사람이라 방해할 생각인 거면서.

“우리 가문 사람 데려갈 거니까, 니들은 빠져.”

그러자 기사단장이 피식 비웃음을 터트렸다.

“아, 청이요?”

“?”

“실례되는 말입니다만-”

실례되는 걸 알면 하지를 마.

“율리우스 왕국에 가는 데에는, 청의 기사들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후계자 앞에서 청을 까네?

“청은 퇴마에 특화된 신앙이고, 사람은 공격하지 않는 게 교리 아닙니까. 율리우스에 가는 동안 소가주께 붙을 적은 마족이 아니라 ‘인간’임을 알아두시길.”

표면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청은 그 강대한 힘을 인간을 위해서 써야지, 인간을 해하기 위해 휘두르지 말라 가르친다.

뭐, 맞는 말이지만…….

슈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청을 까는 거지. 마족이 없으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신앙이니, 너무 기어오르지 말라고.’

그러자 아이작은 뭔 개소리냐는 듯 실소를 흘렸다.

“청이 왜 인간을 공격 못 해? 우리 노비들은 잘만…….”

“아아아악!”

슈리가 다급히 아이작을 말렸다. 다 좋으니까 우리, 그 양아치들은 거론하지 말자!

“저희가 성심성의껏 모실 테니…….”

바로 그때였다.

“그럴 필요 없어. 황실의 특사 호위는 내가 붙을 거니까.”

“!”

뜻밖의 인물에 모두가 놀랐다.

“레아 누님!”

기사단장의 뒤에 선 레아가 혐오하는 눈빛으로 서 있었다.

“성녀 정도면 호위로서 너희보다 우위라고 보는데.”

기사 단장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청은 사람을…….”

그 순간, 스릉 검이 뽑혀 나왔다. 검날이 기사단장의 목을 당장에라도 잘라버릴 듯, 서늘하게 겨누어졌다.

레아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사람을 공격할 수 있으면, 되는 거지?”

그녀의 살벌한 눈빛에 기사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람 목을 벨 수 있는지, 없는지. 지금 여기서 시험해볼까?”

“…허억!”

결국 기사 단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무례를 저질러서 죄송합니다.”

“알면 됐어.”

곧 기사들이 깊이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레아는 별 같지도 않은 것들이 발목을 잡는다며 다가왔다.

“어지간히도 네 발목을 잡으려는 적이 많구나, 아이작.”

“원래 눈에 띌수록 어쩔 수 없어. 그럼 호위는 레아가 하고. 낌슈리, 너도 와라.”

…난 왜…?

그런 표정에 아이작은 뭔 소리를 하냐는 듯 보았다.

“오랜만에 왕자랑 인사 나눠야지.”

…인사?

뜯어낼 준비로 자신만만한 얼굴인데?

“같이 가는 건 좋은데, 해골왕 육신은 빼앗길지도 모르겠다.”

“엉?”

“이미 교황청의 사신들이 천리마 받아서 떠났어. 저 기사들도 시간을 끌려고 일부러 우리 발목을 잡은 걸걸? 속도만 봐도…”

그러자 아이작은 그깟 걸로 되겠냐는 듯 웃었다.

“천리마? 그래봐야 발발 뛰는 강아지 놈들이지.”

…가, 강아지라니?

“너, 그게 어떤 신수인지 몰라서 그래?”

아이작은 대답 대신 푸헿 웃었다.

* * *

그 무렵 헬라를 벗어난 성직자들이 속력을 올리고 있었다.

“해골왕의 육신을 가져와라!”

“해골왕 육신을 에슈아에게 줄 것 같나?”

교황의 명을 받은 이들이 부리나케 움직이고 있었다.

“에슈아는 계속 해골왕을 못 잡은 상태여야만 한다.”

그들은 3년 내내 신입을 청에 뺏긴 것에 대한 원한을 품고 있었다. 이 이상 에슈아가 공을 쌓는 일을 두고 볼 것 같은가?

하다못해 아이작이 ‘미해결 임무’에 대해 교황청에 물어봤다는 소문도 퍼져 있었다.

‘보나 마나 승단 시험의 통과를 위해서겠지.’

그리고 해골왕의 육신을 아이작이 가져가면, 아이작은 승단 시험에 바로 통과될 것이다.

그건 막아야지.

‘아이작 에슈아의 승단을 막으면, 성자의 자리도 자연스럽게 우리 도련님이.’

‘아니, 우리 도련님이……!’

그렇기에 그들은 각자의 이득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교황께서 천리마도 내주셨다!”

신수라서 쉬었다 가야 하지만, 속도에서는 압도적인 신수였다.

“이 신수면 율리우스까지 5일만에 돌파할 수 있죠?”

해골왕의 육신을 계기로 율리우스도 먹고, 명예도 차지한다.

“율리우스에는 우리가 먼저 도착한다. 그놈들은 이제부터 뛰어와도 늦었어.”

“그래, 그러니……!”

그런데 그때였다.

“어……?”

천리마를 타고 나아가는 이들 머리 위로 큰 그림자가 생겼다.

고개를 든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저건……

“드, 드래곤?!”

크기는 조금 작고, 형태로 볼 때 아룡이지만, 틀림없는 드래곤이었다. 그리고 드래곤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짐승이다.

신수보다 속도에서도 압도적이고, 지형을 타지 않으며, 체력의 한계 없이 나아갈 수 있다.

“황태자 전하의 출정이신가?!”

“…아냐!”

그들은 거기에 올라타고 있는 사람을 보고 기겁했다.

“자… 잠깐! 저건!”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백금발의 머리카락.

그리고 저 머리를 가진 건……!

“아이작 에슈아?!”

아이작은 씨익 웃었다.

“푸하핳. 니들은 쉬엄쉬엄 5일에 걸쳐 기어 와라. 난 점심 먹으러 먼저 간다.”

어…어어??

잠깐!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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