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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78화 (178/272)

제178화. 양심이란 게 있습니까? (4)

교황청의 사신으로 나온 성직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늘 위에 날아가는 짐승!

저건 어딜 봐도 드래곤인데?

“아니, 저게 왜 저깄어! 드래곤은 황실만 탈 수 있는 거잖아!”

“성직자가 저걸 어떻게 타?!”

그들은 여러 의미로 멘붕이 올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은 신성제국에서도 몹시 귀중하고 고결한 생명체였다. 대륙에서 그들을 다룰 수 있는 건 마도제국의 마법사들과 헬라 황족 정도였다.

“황실 사람이 아니면 허락이 안 될 텐데……!”

“설마 황태자 전하께서 내주신 거야?”

“말도 안 돼……!”

“그보다 졸라 빨라! 으악!”

천리마들의 속도도 최고급이지만, 평범한 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무려 한나절이나 먼저 뛰어나온 그들을 단 몇 분 만에 따라잡았다. 아이작이 푸헤헤헤헤 웃을 수밖에 없다.

“니들이 그래봐야 사족보행이지! 니들은 5일 동안 엉금엉금 기어서 와라! 난 율리우스에서 점심 먹을 테니까!”

“아니… 크악!”

아이작은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면서 그들을 슝, 지나쳤다.

그뿐이 아니었다. 드래곤이 한 번 더 기합을 내자, 마력의 기운이 방출되면서 속도가 더 올라갔다.

펑!

터지는 듯한 마력의 풍압에 천리마들이 쓸려나가듯 쓰러졌다.

“으아악!”

“악!”

말에서 넘어진 성직자들은 이미 점이 된 드래곤만 멍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정작 드래곤을 타고 있는 이들은 희비가 갈리고 있었지만.

“으아와아우어아! 이러언마르은못들었어우어어!”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에 레아는 좋아했고, 슈리는 울기 직전이었다.

“소으도으가빠으다느마른드러찌만이거머야! (속도가 빠르단 말은 들었지만, 이거 뭐야)!”

슈리는 드래곤의 속력을 조절하는 아이작에게 한 소리 했다.

“이 새끼! 속도 좀 줄이게 해! 미친 거 아냐? 왜 이렇게 날뛰는데!”

그러자 그들을 태운 드래곤이 불같이 화를 냈다.

[속도는 내지도 않았는데, 무슨!]

드래곤은 한 번 더 속도를 올렸다.

펑!

“으아악!”

슈리의 돌고래 같은 비명에 아이작은 큭큭큭 웃었다.

“속도가 참 맘에 드는구나!”

신수 중엔 천리마가 제일이지만, 이것과 비교하면 달팽이 수준이다.

[제일 다행인 건 이놈이 드래곤이 아니란 거죠?]

‘그래.’

아이작은 자신을 태우고 가는 드래곤을 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이놈은 정확히 말하면 언더 드래곤. ‘아룡(亞龍)’이다.

그게 뭐냐면, 드래곤들을 모시는 하위 종족 같은 거다. 와이번이나 날개 달린 리자드맨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드래곤들하고는 완전히 다른 애들이었다.

‘그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라고 보면 되겠네.’

그런 만큼 능력적인 부분이나, 비행 속도나, 진짜 드래곤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생각 이상인데?’

“진짜 드래곤이었으면 더 빨랐을 텐데, 아쉽다!”

레아는 기수인 아이작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꺄르르 웃고 있었다. 반면 슈리는 울부짖었다.

레아는 아이작에게 말했다.

“진짜 드래곤이 아니라 아이작이 많이 아쉬웠겠다.”

“나? 왜?”

“드래곤 이야기 할 때마다 움찔했던 거 보면, 좋아했던 거 아냐?”

“!”

그걸 어떻게 다 알아차릴 수 있나 싶지만, 성녀들은 원래 눈썰미가 변태 개코 수준이니까, 뭐.

“나 드래곤은 별로야.”

그 말에 슈리가 놀란 토끼 눈을 했다.

“뭐야, 싫은 쪽이었어? 너도 무서워하는 게 있었냐?”

“뭐래. 내가 드래곤을 무서워할 리가…….”

아. 무서운 건 맞군.

드래곤들한테 수배당한 상태니.

‘해골왕인 걸 들키면 끝장이지.’

그런 의미에선 이 드래곤이 아룡이라 다행이었다.

‘진짜 드래곤이면 몰라도, 아룡 놈이면 내 영혼까지 파악할 수 있을 리 없지.’

그 표정을 뭐라고 생각한 건지, 슈리가 낄낄 비웃었다.

“뭐냐. 드래곤한테 물리기라도 했냐?”

‘아니. 새끼 드래곤들한테 사기 쳐서 마력핵을 뜯어갔지.’

“아아 괜찮아, 괜찮아. 드래곤은 콧대가 높아서 인간 앞에 안 나타나.”

‘아니. 해골왕이 여기 있는 거 알면 드래곤 헤츨링부터 드래곤 수장까지 버선발로 뛰쳐나올걸.’

“신성드래곤은 그 정도로 난폭하지 않으니 걱정 마라.”

‘아니. 걔들 졸라 난폭해.’

그리고 솔직히 하도 드래곤을 등쳐먹어서, 사실상 모든 드래곤한테 수배당했어…….

‘아마 해골왕이 여기에 있는 거 알면, 견원지간인 그놈들이 동맹을 맺는, 사상 초유의 귀한 꼴을 보게 될걸?’

[어휴, 왜 그러셨습니까.]

‘닥쳐라. 너는 내가 만들어내기 전이라 모르겠지만, 스켈레톤 땐 그게 생존 방법이었다!’

하여간 치사한 놈들이다.

그거 쬐금 새 발의 피만큼 뜯어갔다고, 어? 마력핵도 졸라 큰 금수저들이 지랄, 지랄! 너무한 거 아냐? 하여간 있는 놈들이 더한다니까!

하지만 다행이면서도 의외긴 했었다. 아룡을 빌려주면서도 미안해하던 샤블리스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진짜 드래곤을 빌려주고 싶었지만.

-아뇨. 진짜 드래곤이면 제가 곤란해서요. 저 진짜로 죽음.

샤블리스는 그 말을 ‘황실만 다룰 수 있는 귀한 신성드래곤이 부담스럽다’고 알아먹은 모양이었지만.

-신성드래곤은 지금 황실을 거부하고 있다. 계약자한테조차 모습을 안 보이지.

뭐, 알고는 있었다.

신성제국 결계가 약해지고 있는 것도 그 탓이었고 말이다. 교황이 계속 황실을 탄압할 수 있는 원흉이기도 했다.

-아무튼 더 좋은 걸 못 줘서 미안하군.

‘아뇨 전하. 드래곤이었으면 저 끌려갔어요. 흐흐…….’

애초에 아룡도 대단한 것이었다.

초대 황제와의 서약 때문에 신성드래곤 종족이 헬라를 지켜주고 있는 거지, 사실 역대 황제 중에서도 드래곤을 직접 다룰 수 있는 자는 드물었다.

[그래도 묘하네요. 황실은 나름 본인들 후손들 아닌가요. 뭐, 수천 년이나 지났으면 피가 많이 흐려져 황족이라 해도 인간이겠지만요.]

나도 거기까진 모른다.

신성드래곤이 파업한 이유가 있겠지만, 알 게 뭐임?

“드래곤들이 원래 그래. 그 오만한 것들이 인간 제국의 수호가 성에나 차겠냐? 그 성격 더러운 새끼들.”

그 말에 아룡이 굉장히 불쾌해했다.

[감히이! 어르신들을 입에 막 담다니! 이런 불경한 놈들 같으니라고!]

“아니, 욕을 한 건 아이작인데요……”

[황실의 명이 아니었으면 천한 인간들 따위, 태워주지도 않았다! 심지어 비행 사유가 해골왕의 육시이인? 하필 그 빌어먹을 해골왕이라고?]

아이작은 움찔하고, 슈리는 놀란 듯이 보았다.

“해골왕이 왜요?”

해골왕의 이름에 아룡은 발작하듯 몸을 비틀었다.

[이름도 꺼내지 마라!]

“아악! 진정! 진정!”

아룡은 입에서 불을 뿜어낼 기세였다.

[개 같은 해골왕! 귀중한 헤츨링분들과 순진무구하신 성룡분들에게 사기를 치고! 고혈을 뽑아먹고, 도망치고!]

“…….”

팔짱을 끼고 있는 아이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참다못해 어르신들이 따지러 갔건만! 그 버러지 같은 뼈다귀 놈이 장로님을 날려버리고!]

‘아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세우니까 그랬던 거고.’

[결국 장로님의 마력핵을 훔쳐 가는 바람에 지금도 수백 년째 잠들어 계시다!]

아이작은 먼 산을 보았다.

아… 그거 어디에 뒀더라?

하늘의 구름 개수를 세는 아이작과 달리, 슈리는 불같이 화를 냈다.

“와! 미친, 해골왕! 진짜 천하의 썅놈이네!”

아이작은 스윽 슈리를 째려보았다.

빠각!

“으악! 왜 때려!”

“그냥.”

그렇게 얼마나 날아왔을까.

“율리우스다!”

드넓은 평원을 지나 해안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갈매기들과 수출을 맡는 거대한 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헬라와 비교하면 화려함이나, 부유함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충분히 수준이 높아 보이는 국가였다.

율리우스 수도의 사람들은 아룡의 모습에 흠칫 놀라면서, 아이작 일행을 왕성으로 안내했다.

왕성에 들어서자 바로 왕궁 사람들이 얼어붙은 얼굴로 뛰쳐 나왔다.

“헬라 황실의 특사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저희가 먼저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설마 이리 빨리 오실 것이라곤 상상도 못 해서……!”

슈리는 공작가 사람답게 격식 있고 왕궁 예절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모습으로 답했다.

“그부분은 신경쓰지 마십…….”

“응 괜찮음. 뭐, 니들도 알았겠어? 설마 한나절 만에 여기에 올지?”

아이자아악!!

슈리는 얼어붙었지만, 레아는 푸훗 웃었다.

아이작은 휘휘 손을 흔들었다.

“됐으니까, 빨리 해골왕의 육신이나 보여줘. 아 밥도 먹으러 왔으니까 점심도 좀 주고. 니들도 아직 점심 먹기 전이지? 나 여기 해산물이 먹고 싶은데. 비싸다며?”

야이씨! 누구야!

누가 이 새끼를 청의 가주로 올린다고 했어!

슈리는 속이 끓었지만, 레아는 또 웃었다.

그렇게 왕궁 사람들이 황급히 식사를 준비하려 할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작 님! 슈리 님!”

“!”

척 봐도 귀한 신분으로 보이는 놈이 그들에게 달려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평안히 지냈습니까?”

슈리 또래의 남자였다. 그는 아이작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15년이나 흘렀으니 많이 자라셨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나 장성하신 모습이라니, 정말 놀랍습니다!”

“…누구시더라?”

슈리는 이마를 짚었다.

자식이 그나마 눈치를 보긴 봤는지, 존대를 써 준 것에 매우, 몹시 안도하고 감사했다.

“접니다! 15년 전, 성물 보물고에서 뵈었던 율리우스의 막내 왕자! 파리스 율리우스요!”

아! 이번에 뜯어내려던 놈!

아이작은 얼른 악수를 했다.

“아아! 파리스 님! 제가 구해드린 왕자님을 못 알아 뵐 리가 있습니까! 역시 제가 구해드린 분답게 척 보고 알았습니다! 역시 제가 구해드린 분!”

슈리는 아이작을 경멸하듯 보았다.

거짓말쟁이…. 못 알아봤으면서.

그보다 구해주긴 뭘 구해줘? 피를 쪽쪽 빨아 먹었으면서?

그러나 파리스는 몹시 감사하다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헬라 황실에서 아이작 님을 특사로 보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 소가주가 되신 것도 들었습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

“응. 인사는 일단 됐구요. 그보다 해골왕 육신은?”

“아……”

해골왕의 육신 이야기에 왕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순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아이작 일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니면 해골왕의 육신이 폭주를 했다든가…….”

“아, 실은 그게…….”

바로 그때였다.

“아, 또 경쟁자들이 나타난 겁니까?”

“이번엔 그 신성제국 헬라에서까지 오다니, 역시 물건이 물건인지라 엄청나군요.”

“!”

세 명쯤 되는 사람이 나타났다.

파리스 왕자는 난처한 기색으로 그들을 보았다. 왜 그런가 했지만, 금방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헬라도 해골왕의 육신을 가지러 온 겁니까?”

“곤란한데요, 그건 이미 우리가 가져가기로 해서.”

“무슨 소리입니까. 그건 우리 겁니다.”

뭔데 이놈들은?

“아무래도 목적이 같은 사람들인가 보네.”

레아의 말에 아이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이것들이 내 육신을 탐내고 있는 거여?

하지만 그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이러시면 곤란한데요. 파리스 왕자님. 설마 헬라의 사제까지 부르시다니.”

“!”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남자가 나타났다.

‘마법사?’

틀림없었다. 그것도 흑마법사다.

“그건 제가 가져가기로 했을 텐데요.”

파리스 왕자는 특히 그 남자를 보며 굉장히 곤란해했다.

“<흑천사>님…….”

흑천사?

아이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 어디서 들어온 이름인데?

[흠, 8계위쯤 되는 마법사 같은데요?]

위스퍼가 상대를 분석하고 있을 때, 흑천사가 말했다.

“저는 해골왕께서 아끼시던 심복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주군의 몸을 가져갈 자격이 있고요.”

슈리와 레아가 움찔했다.

“해골왕의 심복이라고?”

만만치 않은 상대다.

하지만 정작 아이작의 얼굴은 볼만했다.

…아?

누군데.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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