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9화. 해골왕의 육신 (1)
아이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해골왕의 심복?’
몰라. 누구야.
나 이런 애 몰라.
거짓말 안 하고 진짜 몰라.
아이작은 자신을 따라왔을 샤브나크를 텔레파시로 불렀다.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겠지.
‘혹시라도 내가 까먹은 부하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자신의 직속 심복이었던 샤브나크라면, 누구보다 부하들에 대해 잘 알겠지.
‘너 쟤 누군지 아냐?’
[죽여버리겠습니다.]
‘아니. 죽이진 말고.’
[죽여버리겠습니다아!!]
‘아무튼 너도 모르는 애란 말이지?’
[감히 주군의 심복을 사칭하다니. 반드시 죽여버리겠습니다아아앍!!]
‘어유. 말을 말자.’
어디서 지켜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샤브나크가 어떤 상태일지 상상이 갔다. 자신과 관련된 문제면 이성을 잃는 녀석이었으니까.
눈이 이글이글 불타올라서 저 흑천사란 놈을 살생부에 넣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무튼 샤브나크가 이런 반응이면 내가 기억 못 하는 누군가는 아닌 것 같고.’
하지만 정작 슈리와 레아는 ‘흑천사’라는 말에 심하게 경계했다.
“흑천사라면 아이작을 납치해 가려고 했던 마법사잖아……!”
“그래, 아이작이 젖먹이 때 납치하려 했다고 들었어! 가짜 유모한테 납치되었을 때였나?”
“맞아요. 아이작이 에슈아 저택에 오기 전에요! 성자 후보를 없앤다고!”
…아. 누군가 했더니. 그놈이었냐?
아이작은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성직자들이 멋대로 착각했던 사건이었다.
-이상하다 싶었는데요. 실은 공자님을 찾았던 곳에서 7계위 <흡혈> 마법이 사용된 흔적이 있었습니다.
-<흡혈>이라면 역시 흑천사일까요? 마도제국의 7계위 마법사요.
-하긴, 흡혈은 그 더러운 놈의 주특기죠.
-안 그래도 성자 탄생 예언은 다른 나라에도 알음알음 퍼져 있습니다. 분명 마도제국은 신성제국의 숙적이니, 공자님을 노린 거겠죠. 더러운 놈들.
-그럼 공자님은 유괴범에 이어 마도제국의 마법사까지 쫓아내신 거군요?
-세상에 폐하께 바로 고해야겠군. 신성제국의 숙적까지 쫓아내셨다니. 나라의 큰 보배가 되실 분이십니다.
그래, 분명 그놈이다.
[주인님이 쓴 <마력 흡수>를 <흡혈>로 착각해서 범인으로 몰린 놈 말이죠?]
어, 그렇긴 한데.
‘허허, 나 때문에 누명 쓴 놈을 실물로 보게 되네.’
그땐 그 마법사는 뭔 죄인가 싶었는데.
[아뇨! 주인님의 위대한 고유 마법을 고작 흡혈 마법 따위로 착각당하다니! 누명을 써도 싸죠!]
반면 왕자는 흑천사를 경계했다.
“아시겠지만… 저 마법사는 대륙에서 유명한 마법사 중 하나입니다. 마도제국이 소중하게 키우는 마법사죠.”
뭐, 한마디로 네임드란 의미다.
“해골왕의 육신을 실물로 보자마자 눈빛이 달라져서는… 두 달 전부터 이곳에 눌러앉았습니다.”
문제는 저놈이 착한 마법사가 아니란 것이다. 그 증거로 파리스 왕자는 아이작에게 속삭였다.
“저놈을 거스르면 율리우스가 공격받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백 프로 공격해서, 나라가 파멸해요……!”
“백 프로라고?”
레아가 말했다.
“나도 듣긴 했어. 저 마법사에 의해 망한 나라가 한두 개가 아니라고.”
파리스 왕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악명도 악명이지만… 무엇보다 해골왕의 육신을 보자마자 이곳에서 한 짓들을 생각하면…….”
왕자는 이를 악물었다.
갑자기 쳐들어온 저 마법사는 왕국의 산 하나를 <흡혈>로 바싹 말려버리고는 해골왕의 육신을 달라고 했다.
내놓지 않으면 다음 대상은 왕국에 있는 전원이라고.
“그건 해골왕의 마법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해골왕의 심복이라고 하니 전하와 형님들께서도 건네줘버리자고 했죠.”
아니라니까? 쟤 내 부하 아니라니까?
[죽여버리겠습니다앍!!]
분노한 샤브나크가 당장에라도 달려와 난리를 칠 것 같아, 아이작은 선수를 쳤다.
“그으래에? 심복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렇게나 내… 해골왕의 육신이 탐나셨어?”
흑천사는 그런 아이작을 경계했다.
“헬라의 사제입니까?”
그는 레아의 얼굴, 아이작의 옷차림을 보며 역겹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은발에 청안을 가진 절세가인에, 청색 물품. 틀림없는 성녀와 에슈아겠군요. 거기에 백금발… 설마 아이작 에슈아?”
“뭐야. 날 아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흑천사는 갑자기 미친 것처럼 크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아냐고? 널 아냐고? 크핫… 크하하하!!! 아냐고! 지금 아냐고! 크하하하!”
이 새끼가 미쳤나?
그러나 흑천사는 몹시 한이 맺힌 듯 아이작의 멱살을 잡으려고 했다. 레아가 바로 검을 뽑자, 흑천사가 물러섰다.
하지만 웃겨 죽겠다는 듯 웃음을 참진 못했다.
“내가 널 모른다고… 핫 크하하! 푸핳하하하!”
아니, 진짜로 슬슬 저 새끼 머리가 걱정되기 시작하는데.
“너야말로 날 모른다고 하지 마라!”
“아니, 미안. 진짜 모르는데.”
“네놈이 젖먹이일 때, 간 적도 없는 장소에서 내가 널 납치했다고 하고! 얼씬도 안 했던 신성제국에서 날 모함하고, 에슈아한테 쫓긴 걸 생각하면……!”
“엥? 에슈아? 거기서 우리집 이름이 왜 나오는데? 우린 무죄야.”
그러나 흑천사는 얼굴이 터질 것 처럼 외쳤다.
“모른다고는 하지 마라! 릴라이 에슈아가 미친 듯이 사람을 보내왔다! 그것도 16년 동안 끈질기게!”
…아이고. 숙부님.
이번엔 슈리도 이마를 짚었다.
청의 원한은 5대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5대가 뭐야?
‘80명의 성녀들이 모두 한결같이 해골왕을 죽어라 생각하고, 죽어가면서도 잊지를 못하셨다는데.’
인내와 절제가 기본 교리지만, 그게 교리인 이유는 분노와 증오와 집착을 평소에 제어하기 위해서란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 이유로 다들 청에게 원한을 사기 싫어한다.
워낙 착한 놈들이라 진짜 악인이 아니면 원한을 사지 않지만, 한 번 사면 그야말로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징글징글하다고. 릴라이 숙부가 눈이 뒤집혔으면 말 끝났지.
아니나 다를까, 흑천사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릴라이 에슈아…! 그 집착스럽다못해 저주스러운 은빛 범고래! 지 조카 때문에 화장실에 있을 때조차 암살자를 보내는 게 말이 돼?!”
“아… 쑥부님. 거기까지 하셨구나.”
얼굴은 형제들 중 제일 선하게 생겼지만, 괜히 또라이 범고래란 별명이 붙은게 아니다.
상대를 피말려서 처리한다는 제국 제일의 사냥꾼이었다.
‘또라이 청의 핏줄 어디 안가.’
흑천사는 그뿐이 아니라며 아이작을 보며 거품을 물었다.
“그거로도 모자라서 신성제국 황실한테 수배를 당해서! 결국 마도제국에서도 쫓겨났다!”
“엥? 마도제국에서는 왜? 신성제국에 해를 끼쳤다며 오히려 포상을 줬을 것 같은데?”
“내가 어찌 알아! 제국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갑자기 막내 황자 히베리우스가 해고를 했는데!”
낯익은 이름에 아이작은 더욱 먼산을 보았다.
아… 나 그거 내막이 어떻게 된 건지 알 것 같아.
알 거 같은데, 말하면 쟤, 더 열 받을 것 같아서 말 못 하겠어.
[마도제국 황자가 과거의 일을 알고, 누명을 씌워 내쫓은 거 아닙니까?]
조용히 해. 쟤 복장 터져 죽는다.
“황실에서 불명예로 쫓겨나 마탑에서도 추방당하고! 가족들도 날 무시하고! 애인한테도 버려지고! 하루아침에 일자리도 잃고! 머리도 빠지고!”
아… 이리 들으니 뭔가 미안해지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가?
“그래서, 해골왕의 수하라고 지껄이신 건?”
아이작의 냉정한 질문에 일순 이성을 잃었던 흑천사의 눈빛이 돌아왔다.
“말 그대로다. 주군의 육신을 찾으러 온 것이지. 해골왕께서 내게 그걸 반드시 찾아오라고 하셨다.”
“하이고오 해골왕이 찾아오라고오 하셨어어?”
아이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놈에게 미안한 마음이 해골왕의 머리카락만큼은 있었는데.
[그거… 미안한 마음이 아예 없다는 거 아닌가요?]
‘됐고, 이 새끼 그냥 죽여야겠는데?’
“아무튼, 네놈이라면 더더욱 용납할 수 없다. 그 창창한 나이에 이 자리에서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썩 꺼져라. 해골왕의 가호에 뒈지고 싶지 않으면.”
해골왕이란 말 한마디로 왕궁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파리스! 역시 신성제국 분들은 돌아가게 하셔라!”
“그래, 해골왕의 <흡혈> 마법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는 것이냐! 왕국민들의 목숨이 위험하다! 왜 저분의 심기를 거스를 분들을 불러서……!”
“왕자님……!”
흑천사는 왕실 사람들의 반응에 몹시 흡족해했다.
‘역시 해골왕의 이름이 잘 통한다니까.’
해골왕의 심복?
당연히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지만 운 좋게 상급인 ‘흡혈’ 마법을 익힌 후 모두가 흑천사를 두려워했다.
해골왕의 상징 마법 중 하나로 알려진 <흡혈>과 수하라고만 말하면 모두가 물러섰다.
이 대륙에서 해골왕의 이름이 얼마나 공포의 상징으로 각인 되어 있는지 알만하……
“풓큭푸큭.”
…뭐지 이새끼?
다들 공포에 질려있는데, 정작 아이작만큼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흡혈>?
<마력 흡수>를 그깟 저계위 마법과 비교를 하다니!
“푸큭, 그래! 무섭네, 졸라 무서워!”
흑천사는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이놈이? 정녕 미쳤나?
“네놈도 해골왕의 <흡혈> 마법으로 죽고 싶은 거냐?”
“푸크큭! 흐, 흡혈! 흡혈이래에에!! 아이고!”
“이놈이 그래도!”
흑천사의 눈에 살의가 맺혔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아이작을 미친 놈을 보듯 보았고, 슈리는 당황해서 속삭였다.
“얌마, 아이작! 괜찮은거냐! 잘못하면 마법사하고 충돌이 난다고!”
웃겨 죽으려고 하는 아이작이 눈물을 닦으며 속삭였다.
“갠춘해. 뭐 열 받으시겠지. 해골왕의 육신을 들고 튀려했는데, 우리가 먼저 와서 망했으니까.”
“뭐? 튀어?”
아이작의 가늘어지는 눈초리가 흑천사를 살폈다. 몸 군데군데 마법 술식의 흔적이 남아있다.
‘내 육신이 어떤 상태인지는 모르겠지만, 해골왕 육신을 빼돌리기 위한 술법이겠지. 그런데 아직 미완성이야.’
저놈은 파리스 왕자가 사신을 보낸 만큼, 신성제국에서 사제들이 들이닥칠 걸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서 본래는 신성제국 사제들이 도착하기 전에 육신을 들고 튈 생각이었겠지만, 하필 자신들이 하루 만에 도착해 버렸으니.
‘열 받을 수밖에 없지.’
아니나 다를까, 방해받은 흑천사가 얼굴을 굳히고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마력에 사람들이 흠칫 놀랐다.
그 마력은, 아이작에게 향하고 있었다.
“에슈아 놈이 해골왕의 <흡혈>도 모르는 건가?”
“아이작……!”
그제야 아이작은 우는 척을 했다.
“으엥 아이작, 느무느무 무서우니까, 흑천사님.”
“……!”
그는 언제 겁먹었냐는 듯 흑천사를 보았다.
“여기서 한번 보여주지? 그거?”
말투까지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