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81화 (181/272)

제181화. 해골왕의 육신 (3)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작이 손을 대는 순간, 검은 마력이 슬금슬금 도로 들어갔다.

광견처럼 발광하던 해골왕의 마력이 잘못했다는 듯 줄어든 것이다. 마치 언제 이빨을 드러냈냐는 듯, 깨갱 이빨을 감추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지켜보던 이들은 동공이 떨릴 수밖에 없다.

…뭐지?

‘저게 왜?!’

‘달라진 것이라곤, 아이작이 성력을 뿜어내고 있는 것뿐인데?’

동시에 슈리나 레아, 왕궁 사람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서, 설마 아이작한테 굴복하고 있는 건가?’

‘그 해골왕의 마력이?’

‘말이 돼?!’

본래라면 마석에 손을 대려는 순간, 해골왕의 마력이 폭주하며 공주를 고깃덩어리로 만들었을 텐데!

‘저걸, 억누르고 있어!’

마치 버릇없는 새끼 짐승을 잡아 누르듯!

압도적인 힘으로!

그뿐이 아니었다.

아이작의 손끝이 빛났다. 그와 함께 마석이 공주의 몸에서 분리되어서…….

뭐?! 분리됐다고?!

‘잠깐, 뭐야 저게!’

‘힘으로 뜯어내는 게 아니잖아!’

마치 자연스럽게 주인을 찾아가듯, 마석이 아이작의 손에 이끌려 나오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공주의 살점에는 닿지도 않게 해서 나오고 있어……!’

그 충격적인 광경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보통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사제나 마법사들은 다르다.

부름에 달려온 왕실 사제도 충격을 받은 듯했다.

‘서, 설마 성력의 힘만으로 끌어내고 있는 건가?’

물론 이론적으론 가능했다.

마력과 성력은 서로를 싫어하니, 그 도망가려 하는 성질을 이용할 수 있었다. 마치 기름과 물을 분리하듯, 성력을 들이밀어 마력을 꺼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실제로 가능하다고?

‘엄청난 컨트롤이 필요한데?’

‘3품 사제가 아니었나?’

반면 아이작은 푸훕 웃었다.

성력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냥 의지대로 뽑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염동력으로 살살 들어 꺼내듯이 말이다.

물론 마석은 척추 부근에 있었다.

신경계를 건드리지 않으려면 세밀하게 뽑아야 해서 집중을 좀 해야 하지만, 마왕에겐 식은 죽 먹기지.

육신은 마치 주인을 기다린 듯했다.

하지만 그 광경에 당황하던 흑천사는 비웃음을 터트렸다.

‘허어, 역시 5대 신앙은 5대 신앙인가. 명문가답게 실력은 있는 모양이다만.’

하지만 뽑아내면 어쩔 건데?

‘그걸 뽑아내면 공주는 죽는다. 이미 내 술식과 연결되어 있다고.’

제 무덤을 팠구나, 에슈ㅇ…….

“오, 오라버니! 해골왕의 육신이 빠져나갔어요!”

“셀레네, 괜찮으냐?!”

“네! 오라버니, 아무렇지도 않아요!”

…멀쩡하다고?!!

여유롭던 흑천사의 동공이 흔들렸다.

‘잠깐, 이럴 리가 없는데?!’

그 당혹스러운 표정에 아이작 같잖다는 듯 웃었다.

‘저 새끼, 왜 그리 발작하나 했더니. 이미 공주의 몸에 뭔 짓거리를 해놨었구만?’

공주와 잠깐 닿은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공주의 몸에는 마법 술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분명 소환과 계약 술식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작을 서포트하던 위스퍼가 분노했다.

[저 건방진 놈이! 주인님의 육신을 이용해서, 상위 존재와 계약을 맺을 생각을 해?!]

위스퍼의 외침에 어디에선가 샤브나크의 살벌한 오라가 느껴지는 듯했다.

[저놈의 몸을 갈아, 마수의 밥으로 처리하겠습니다앍! 감히이!]

아서라. 마수들도 저런 놈은 싫어한다.

하지만 위스퍼의 말은 맞았다.

‘해골왕의 육신 정도면 상위 존재들도 탐을 내는 물건이지.’

드래곤은 물론, 인계가 아닌 곳의 생물도 불러낼 수 있을 것이었다. 설령 소환자의 능력이 좀 딸리더라도, 미끼를 물고 친히 모습을 드러내시겠지.

그 정도의 물건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었다면, 공주는 계약의 재물로 소비되었겠지. 본인은 하나도 손해 보지 않고, 타인을 이용하는 치졸한 계략이었다.

어쨌거나 그 계획은 실패했다.

해골왕의 육신은 아이작의 손에 들어갔으니까.

그리고.

꾹!

아이작이 공주의 등을 살짝 눌렀다.

그러자 공주의 몸에 있던 술식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아이작이 마력으로 술식을 제거한 것이다.

쨍강!

결국 아이작이 해골왕의 육신을 가져가자, 흑천사가 발광했다.

“당장 그걸 내놔!”

칼 같은 외침과 함께 흑천사의 등 뒤에 마법진이 생겨났다. 거기에서 암흑 물질의 창들이 선단을 드러냈다.

날카로운 암흑 물질이 아이작을 향해 날아가자, 슈리는 깜짝 놀랐다.

‘마법 주문도 없이?’

역시 괜히 유명한 놈이 아니었다.

“아이작! 위험……!”

그러나 그 슈리는 말문을 잇지 못했다.

팡!

아이작을 향해 날아가던 창이 빛의 방패에 튕겨 나간 것이다. 검으로 쳐내려던 레아도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슈리는 자신이 뭘 본 거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튀, 튕겨냈어? 저걸?”

그는 이게 말이 되냐는 듯이 아이작을 보았다.

아이작의 앞에 펼쳐진 푸른 날개 형태의 방패는 틀림없는 방어 성법!

“너 방어 성법은 0점 아니었냐?! 2품 사제 시험에서도 분명……!”

아이작은 뭔소리냐는 듯 귀를 후볐다.

“걱정 마. 나, 내 몸 지키는 건 개잘해.”

“이 편식쟁이야!”

“에효, 뭐 어쩌겠냐. 방어 성법은 다른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이타심이 전제인데. 나는 그게 안 되는 걸?”

슈리는 뒷목을 잡았다. 왜 0점인가 했더니, 뭐 저딴 이기적인 놈이……?!

슈리는 가슴을 쳤다.

“이 미친놈아, 네 몸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의 딱 반만! 남한테도 투자해!”

“무리임. 내 몸은 소중하니까 지키고 싶다는 맘이 생기는데. 다른 놈들은 완전 무리.”

…가주님. 정녕 저딴 놈이 가주가 돼도 괜찮은 게 맞습니까??

“아, 성직자들이 아니면 가능할지도.”

어디 가서 사제라고 하지도 마라! 개새끼!

슈리는 얼굴을 짚었다.

물론 나쁜 건 아니다.

‘뭐어… 방어는 금의 특기고, 청은 공격이 특기니까. 청의 교리상 방어는 자기 몸만 지킬 줄 알면 되긴 하다만… 잠깐, 또 그런 의미에선 너무나 청의 가주다운 건가??’

슈리는 다른 의미로 멘붕이 온 듯했다.

‘아니, 설령 청의 교리가 그래도 그렇지!’

하지만 아이작은 큭 웃었다.

“뭐, 최고의 공격은 곧 최고의 방어니까 상관없잖아?”

“뭐?”

“너희가 다치기 전에 내가 전부 처리하면 그만이니까.”

“!”

마치 아이작의 가치관이 드러난 듯한 말이었다. 동시에 아이작의 손짓과 함께 청의 비전이 터져나왔다.

번쩍!

아이작을 중심으로 반구 형태의 빛이 뻗어나갔다. 황홀한 빛의 힘과 함께, 흑천사가 신음을 흘렸다.

마족의 퇴마에 특화된 청의 비전이지만, 상대가 흑마법을 쓰는 마법사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마법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하나는 드래곤이 기원인 마법. 또 하나는 마족이 기원인 마법이었다.

물론 최근에는 많이 섞여 기원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그런데 대놓고 마족의 힘을 빌려오는 ‘흑마법사’?

이건 뭐, 말할 가치도 없다. 마를 격퇴하는 청의 비전으로 충분히 견제가 가능했다.

퍼엉!

“크악!!”

눈부시고 화려한 청의 빛이 흑천사의 마력을 흐트렸다.

그 모습에 왕궁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신들이 얼마나 무지한 발언을 했는지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낌슈리!”

아이작의 외침과 함께 슈리가 포박 성법을 읊었다. 푸른빛의 쇠사슬이 지면에서 솟아나며 흑천사를 옭아맸다.

교황의 핏줄답게 공격보단 방어나 구속 계열 성법. 그리고 세밀한 조종에 재능이 뛰어난 슈리였다.

흑천사를 단숨에 붙잡은 슈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잡긴 했는데. 너 설마 이거, 포상금 받으려고 하는 건 아니지?”

“푸헿!”

“아니지?”

“푸히흐헤헿!!!”

“…저 새끼한테 물은 내가 잘못이지.”

이에 붙잡힌 흑천사가 핏대를 세웠다.

“이 시건방진 꼬맹이들이!”

쾅!

“!”

일순, 흑천사의 몸에서 마력이 폭주하듯 터져나왔다.

위스퍼는 깜짝 놀랐다.

[이 힘은 십사육마의…! 설마 계약자일까요?]

아이작의 눈이 서늘해졌다.

마력의 폭주와 함께 왕궁에 균열이 일어나며 벽과 천장이 무너졌다.

“위험합니다!”

“왕자님! 공주님! 밖으로 피신을!”

“사제님들도 어서!”

왕궁 기사들이 새하얗게 질려 사람들을 인도했다. 레아는 아이작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지만, 흑천사가 씨익 웃었다.

흑천사의 손짓과 함께 천장에 금이 갔다. 동시에 레아를 막듯, 천장과 지면이 무너지면서 그녀와 아이작을 분리시켰다.

“아이작!”

왕궁 전체가 흑천사의 힘에 휘말려 뒤흔들리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왕궁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반면, 통로가 막혀 홀로 남은 아이작은 한숨을 쉬었다.

“일부러 길을 막았군?”

“해골왕의 육신을 가진 네놈을 순순히 보내줄 것 같으냐? 성녀를 떨어트려 놓았으니 도와줄 사람은 기대하지 마라.”

“에휴. 이러면 네놈이 손해일 텐데.”

“네놈이 손해라는 걸 잘못 말한 거겠지?”

그러자 아이작은 기묘하게 웃었다.

“너, 청의 비전이랑 상극이거든?”

흑천사는 큭 웃었다.

“비전 따위, 쓸 틈도 없을 거다!”

곧 흉악한 마력과 함께 흑천사가 외쳤다.

“네놈을 먼저 말려 죽이고, 왕궁 놈들도 곧 따라가게 해주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닥에 검붉은 마법진이 생겨났다.

<흡혈>.

낯익은 마법에, 아이작은 미간을 팔자로 모으며 실소를 흘렸다.

“하. 그렇게 쓰라고 할 땐 안 쓰더니, 지금에서야 쓰는 거야?”

마치 사철 같은 형태의 검붉은 힘이 아이작의 몸을 감쌌다. 그 모래 폭풍과 같은 힘에 둘러싸이면 순식간에 생기를 빼앗기고 미라가 되어 쓰러진다.

“해골왕의 마법으로 처리해주는 거다. 에슈아로서 영광인 줄 알아라!”

아이작이 실소를 흘렸다.

“같잖게.”

낮은 목소리와 함께, 아이작을 포위하던 사철이 쩌엉, 터져나갔다.

쾅!!

“어?”

검붉은 사철은 다시 뭉치는 법 없이 한순간에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 현상에 흑천사는 제 눈을 의심했다.

어?

저 현상은 틀림없는 ‘마법 무효화’였다.

그런데… 어? 뭐지?

‘저 녀석, 마법 무효화 성법을 썼던가?’

아니, 방금 그 어떤 술법도 쓰지 않았던 거 같은데?

응? 어?

아니, 잠깐만.

아무 술법도 쓰지 않았는데, 마법 무효화가 됐다고?

‘그게 말이 돼?’

곧 아이작이 흑천사에게 다가갔다.

그사이 흑천사는 다시 <흡혈> 마법을 쓰려고 했지만, 아예 발동 자체를 하지 않았다.

“뭐야. 왜 안 써져!”

“왜에?”

눈앞까지 온 아이작은 가증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흡혈> 마법은 마족이 관장하는 마법이지.”

“!”

“하지만 그 마족이 ‘내 부하’인데, 그보다 상위 객체한테 통할 리 없잖아?”

…뭐, 뭐라고? 잠깐, 뭐?

흑천사는 얼어붙었다.

곧 아이작의 손이 흑천사의 목을 움켜쥐었다.

“<흡혈>이 해골왕의 마법이라고 했나?”

“……!!”

“진짜가 뭔지 보여주지.”

아이작의 붉은 눈이, 마안(魔眼)처럼 빛을 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