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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82화 (182/272)

제182화. 해골왕의 육신 (4)

흑천사는 몸을 떨었다.

“허억……!”

아이작의 눈이 변해 있었다.

인간의 눈이 섬뜩한 빛을 내며 마족처럼 변했다. 마치 성운을 담은 듯한 홍옥의 눈에서, 포식자의 동공이 보이는 듯했다.

그 마안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흑천사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그러는 동시에 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지?’

8계위 마법사이기에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저건 일개 마안이 아니다.

물론 인간들 중에서도 마안을 가진 이들은 가끔 있었다. 마치 특수 능력처럼 말이다.

하지만 저건 ‘그딴 것’들과는 결이 다르다. 순수하게 마의 정점. 깨달음의 정점에 선자의 것으로, 영혼이 뿜어내는 영혼의 눈이다.

그래, 눈빛만으로 모든 것을 지배했다고 하는 해골왕의 안광처럼……!

그러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뭔데 이 어린 애송이가 이런 압박감을 풍기는 거지?’

동시에 흑천사는 아차 싶었다.

‘해골왕의 육신을 먹더니, 그 힘이라도 쓰게 된 건가?’

순혈 마법사인 그의 눈썹이 치켜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건방진 놈!’

제까짓 게 진짜 마법사랑 같은 줄 알아?!

흑천사는 아이작의 손을 뿌리치고 다른 마법을 발동했다.

‘흡혈이 안 되면… 그래. 다른 속성 마법을 쓰면 그만!’

8계위 마법사를 우습게 보면 안 되지!

그가 손으로 바닥을 찍어 내렸다.

팡!

그러자 아이작이 밟고 있는 땅이 점토처럼 변하며 치솟아 올랐다. 마치 창살과 같았다.

‘그래, 에슈아는 전통적으로 마(魔)에 강하지.’

다른 신앙보다 흑마법에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흑마법이 아닌, 드래곤의 자연계 마법이라면 결과가 다를 것이다.

그래, 당연히 그럴 것이었는데.

파스스스.

“……?!”

‘허, 허물어졌어?!’

창살로 변한 흙은 아이작을 뚫지도 못하고 재가 되었다. 마치 대지가 아이작을 두려워해 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흑천사는 더욱 기겁할 수밖에 없다.

‘땅의 원소가 두려워하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된다!

자연이 저놈을 두려워한다니,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작은 씨익 웃었다.

그 순간, 흑천사는 비명을 질렀다.

스스스스.

흑천사의 주변이 한순간에 메말라가기 시작했다.

날아가는 벌레도, 바닥도, 천장도, 벽도. 생물이 아닌 것들조차 힘을 빼앗기듯 바스스 재가 되었다.

심지어 공기까지 희박해지고 있었다. 주변의 대기까지 그 힘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숨쉬기조차 힘들어진 흑천사는 공포에 떨었다.

‘뭐지? 이 능력은?’

흡혈과 비슷… 아니! 흡혈과는 전혀 다르다. 단순히 생물의 피와 생기를 뽑아내는 흡혈과는 차원이 달랐다.

‘모든 게 빨려나간다.’

영혼이! 아니, 생명 자체가!

고작 생물이 아닌, 세상 모든 존재를 죽음으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생명이 살 권리조차 빼앗는 무자비한 갈취!

<마력 착취>.

아이작의 미소와 함께, 흑천사는 자신의 목을 붙잡았다.

“헉… 꺼헉, 꺽…! 꺽!”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생기와 마력이 빠져나가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너무 고통스럽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끄억… 꺽… 으아악!”

곧 흑천사의 몸이 완전히 말라비틀어지면서 쓰러졌다. 미이라보다도 못한 흉측한 모습으로 쓰러진 그 모습에, 아이작이 손을 얹었다.

<혈기 주입>.

스스슥.

“커헉!”

미이라 상태였던 흑천사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빼앗았던 생기를 돌려준 것이다.

흑천사는 숨을 헐떡이며 아이작을 보았다.

설마 숨이 끊기기 전에 살려준 건가?

“감… 감사… 끄어헣!”

아이작이 입꼬리를 올리자, 또다시 흑천사가 생명과 마력을 빨아냈다.

<마력 착취>.

또 다시 흑천사가 괴로워하며 매말라 쓰러지고.

<혈기 주입>.

“커헉!”

또다시 생기를 돌려줘서 원래대로 만들어주고.

<마력 착취>.

“아아악!!”

<혈기 주입>.

“허억!”

<마력 착취>.

“끄후악!”

<혈기 주입>…….

아이작은 그걸 수백 번을 반복했다.

그런 상황에서 흑천사는 정신이 완전히 날아가버렸다. 아니,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

결국 아이작의 손짓에, 흑천사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아이작에게 매달렸다.

“제발, 부탁이야, 죽여줘!! 아니, 그냥 제발 죽여주십시오!”

아이작은 귀엽다는 듯 섬뜩하게 웃었다.

“이제 좀 알 것 같나? 네 모든 걸 빼앗기는 느낌을?”

“으윽……!”

아이작은 공주의 몸에 걸려 있던 흑천사의 술법이 거슬린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흑천사의 뺨을 툭툭 쳤다.

“난 말이야. 꼬맹이들을 이용하는 놈들이 제일 짜증 나.”

성인도 안 된 성녀들이 해골왕 하나를 죽이겠다고 자폭하러 달려오는 걸 보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난다.

아이작은 푸핫, 조소를 흘렸다.

“왜 내가 싫어하는 짓을 골라서 해서 다치려 하지? 변태인가? 난 세상에서 마조들이 제일 이해가 안 되던데.”

흑천사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젠장, 저항을 할 수 없다.’

마력이 써지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뭔가가 짓누르듯이. 하지만 이마저도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는 듯, 아이작은 웃고 있다.

‘아니, 이건 가지고 노는 거지.’

“제, 제발. 자비를……!”

흑천사는 고개를 숙이면서도 분한 듯 이를 뿌드득 갈았다.

어떻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이 흡수가 <흡혈>과 비슷하지만, 비교조차 안 되는 상위 마법이란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지? 왜 에슈아의 사제가 이런 능력을 쓰는 거지?’

동시에 흑천사는 뭔가 눈치챈 듯, 화들짝 놀랐다.

‘…설마 해골왕의 육신을 먹어서? 그래서 그 힘을 다루고 있는 건가?’

그리고 저놈은 해골왕과 싸운 에슈아니까 해골왕의 마법서도 가지고 있는 거고?

흑천사는 헉, 그제야 더 큰 진실을 깨달은 듯 입을 벌렸다.

‘설마 에슈아는 해골왕을 상대하기 위해서, 이런 병기를 만들어낸 건가?! 그런 수까지 감행했다고?’

그 생각에 미쳤을 때, 흑천사는 놀라우면서도 오히려 살의를 뿜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해골왕은 마법사들의 우상!’

그 압도적인 힘에 세상의 반응은 보통 둘 중 하나였다.

-선망하든가, 공포에 질리든가.

그리고 흑천사는 달랐다.

선망하기에, 오히려 그래서 더 질투가 난다.

“그래, 분하지만 솔직히 네게 질투한다! 해골왕의 육신을 좀 먹었다고! 감히 해골왕의 힘을 쓸 생각을 해?”

“!”

흑천사는 이를 악물며 사역마를 소환하기로 했다. 자신의 힘으로는 안 되겠지만, 이놈은 다르겠지! 그는 아까부터 뭔가를 쓰고 있던 바닥을 짚었다.

번쩍!

아이작의 눈을 피해 제 피로 써내린 소환 주문이었다.

그 술식에 반응하듯, 흑천사의 그림자에서 거대한 짐승이 나타났다. 그건 다름 아닌 흑색을 머금은 아룡, 언더 드래곤!

흑천사가 분한 듯 외쳤다.

“애송이! 네 몸을 갈라주마! 네놈이 먹은 해골왕의 육신도 가져가겠다!”

동시에 소환된 아룡이 아이작에게 달려들었다.

[나한테 맡기고 쉬어라! 저놈은 내가 처리해주마!]

아이작은 큭 웃었다.

뭐, 8계위 마법사 정도면 뭘 소환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일부러 모르는 척 지켜보고 있긴 했지만.

스윽.

아이작이 처음으로 손을 들었다.

<시간 지배>.

쩌엉!

아이작의 손짓에 무섭게 날아오는 아룡의 몸이 허공에서 멈췄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하지만 정신은 그대로고 몸만 굳은 듯, 아룡은 허공에서 이를 갈았다.

아이작은 스윽 그들과 거리를 두었다.

“그러고 보니, 내게 질투한다고 했던가? 재밌는 소리를 하네.”

“…뭐?”

[…뭐라고?]

어째서인지 거리를 둔 아이작이 가증스럽다는 듯 웃었다.

“급이 맞아야 질투도 할 수 있는 거다.”

“!”

아이작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시간의 지배가 풀리고 허공에 멈춰 있던 아룡이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쾅!!

아룡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살점과 피가 방 곳곳에 분수처럼 튀겼다. 흑천사는 아룡의 피를 뒤집어 썼다.

방이 엉망이 될 걸 인지한 건지, 멀찍이 떨어진 아이작이 픽 웃었다.

“뭐, 블랙족 아룡을 사역마로 다루는 건 훌륭하다만.”

그때, 아룡이 피를 토하며 몸을 꿈틀거렸다.

[커헉, 쿨럭……!]

뼈가 드러나 거의 죽어가는 아룡은 경악하듯 아이작을 보고 있었다.

[이 힘…! 설마! 너는 드래곤 로드들께서 두려워하던……!]

‘해골왕!’

흑색 아룡은 차마 그 이름을 담지 못했다.

[손가락 하나로…! 일족을 멸망시키려 했던 극악무도한 놈……!]

아이작은 죽어가는 아룡에게 다가갔다.

“흑룡들이라면 기억하고 있지. 주제도 모르고 지나치게 기어올라서 청소를 좀 해줬었는데.”

[크윽……!!]

아룡은 이를 뿌득 갈았다.

해골왕에게 당한 건 본인들의 업보라면 업보였지만, 그 경악스러운 힘을 잊을 리 없다.

하지만 아이작은 마치 일부러 즉사시키지 않았다는 듯, 아룡에게 속삭였다.

“한 가지만 묻지. 공주의 몸에서 뽑아낸 해골왕의 육신에 ‘드래곤’의 힘이 남아있던데.”

[!]

“그 힘의 주인이, 혹시 너냐?”

아이작의 눈이 서늘해지자, 아룡은 착각 말라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딴 돌연변이 놈들과 착각하지 마라! 그건 원래 신성드래곤이 가지고 있던 육신의 일부였으니까!]

“오?”

[그 신성드래곤이 어째서인지 이 나라 공주의 몸에 넣은 거라고! 그래서 빼앗으러 온 것뿐이다!]

“아하. 그렇게 된 거였어?”

‘의외군.’

신성드래곤? 드래곤들은 전부 성질 더럽고 오만하지만, 드래곤들 중에선 그나마 인간 친화적인 놈들인데.

‘그런 놈이 왜? 인간의 몸에?’

뭐,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공주의 몸에 술식을 박아 넣은 것도 너지?”

[……!]

아이작의 웃음에 아룡의 눈이 떨렸다.

“나에 대해 눈치챈 놈을 살려둘 순 없지.”

[젠장…해골ㅇ……!]

“빠이.”

아이작이 주먹을 쥐자, 화염 폭발과 함께 아룡의 몸이 산산조각이 났다. 완전히 숨통을 끊어버린 것이다.

쾅!!!

동시에 살점에서 데굴데굴 꽤 큼직한 마력핵이 굴러나왔다.

아이작은 다음은 흑천사라며, 등을 돌렸다.

‘자, 이제 남은 건 저놈의 처리뿐…….’

그런데 몸을 돌린 아이작은 제 눈을 의심했다.

이를 갈고 있던 흑천사는 어디로 갔는지. 그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땅에 박고 있었다.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앙?

“그쪽이 진짜 해골왕의 수하이신 줄도 모르고!!”

…앙?

“해골왕의 부활을 위해, 친히 원수의 나라에 잠입하신 거군요?!”

…이 새끼, 뭐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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