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83화 (183/272)

제183화. 해골왕의 육신 (5)

아이작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새끼가 나를 해골왕의 수하로 착각한 거냐?

[한 대 때릴까요?]

위스퍼의 말과 함께, 아이작의 옆자리에서 샤브나크가 나타났다. 모욕스러운 말에 도저히 참지 못하고 나온 듯했다.

“모가지를 따겠습니다!”

분노한 샤브나크의 손가락이 우득거렸다.

아이작은 그런 둘을 말렸다.

“어음, 기다려봐.”

아이작은 골이 아픈 듯 이마를 짚으며 흑천사를 보았다.

“그러니까 왜… 나를 해골왕의 수하라고?”

“십사육마가 말해줬습니다. 해골왕이… 아니, 해골왕께서 아끼시는 직속 부하가 있는데, 지금은 신성제국에 있다고.”

아이작은 또륵 눈알을 굴렸다.

아니. 그거 아마 샤브나크일 텐데.

‘아니면 설마 제국 안에 스파이가 있다는 건가?’

그러나 흑천사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면서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신성제국을 파멸시키려 하시는 거군요?”

아… 어. 음. 그런 걸로 해둘까.

흑천사는 다시 넙죽 머리를 박았다.

“어르신께 충성하겠습니다! 그 위대한 초석을 돕겠습니다!”

그러자 샤브나크가 헛소리 말라는 듯 살의를 뿜어냈다.

“닥쳐라. 마법사들의 세 치 혀를 믿을 거 같나?”

아이작은 가볍게 웃었다.

“목적이 뭔데?”

“다른 건 없습니다! 해골왕과 연이 있으면, 마도제국의 복귀도 가능하겠죠. 하지만 그걸 떠나서 흑마법사에겐 그 무엇과도 비교가 안 되는 영광입니다!”

뭐, 그건 맞지.

마법사들 사이에서 해골왕의 존재는 대체 불가한 신화의 영역이니까.

‘당장 내가 마도제국 황자한테 받아달라고 해도 받아주겠지만.’

물론 뭐든 공짜로 퍼줄 기세의 샤블리스와 달리, 히베리우스는 묘하게 기브앤테이크가 확실하고 치밀한 황자였다. 그게 마법사 종특이긴 하다만, 그놈은 특히 더 까다롭지.

[그냥 주인님의 정체를 알고 모르고 차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좋다.

“너, 십사육마와 연이 있는 거 아닌가?”

“가끔 나타나서 거래를 트고 있을 뿐입니다.”

“흐음. 이름은 뭐지?”

“그… 란쉬라고…….”

그 이름에 아이작의 눈빛이 바뀌었다.

예전에 황실에서 자이언트 스켈레톤이 소환되었을 때였다. 그때 붙잡은 소환자가 이렇게 말했지.

-스켈레톤으로 황제를 죽이면, 해골왕을 처리 못 한 에슈아에 책임이 갈 거라고… ‘란쉬’란 놈이!’

-<흑천사>랑 같이 있던 놈인데. 스켈레톤을 조종할 때 쓰라고 마도구를 빌려줬어!

“너, 일전에 헬라 황실의 누군가랑 손잡고, 헬라 황제를 죽이려고 했지? 에슈아랑 샤블리스를 끌어내리려고.“

“…헉! 그 일을 알고 계시다니, 영광입니다!”

이젠 하다 하다 별것도 아닌 걸로 영광이라고 하는군. 뭐, 이놈이 왜 황실을 노렸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황제가 죽으면 신성제국은 큰 혼란에 빠지고, 샤블리스는 에슈아의 편을 들고 있으니 잘됐다 싶었겠지.

“네놈이 왜 에슈아에 원한을 품었는지는 알겠어. 뭐, 나라도 억울했겠지. 납치한 적도 없는 애 때문에 추격당하고 황궁 마법사 자리에서 잘리면.”

흑천사는 큭, 감동한 듯 더욱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어르신께서 해골왕의 수하란 걸 알았다면 그런 짓은 안 했을 텐데. 용서를……!”

“됐고. 그 란쉬란 놈의 목적은 뭐지?”

“제가 아는 건, 신성드래곤 수장을 끌어내려고 한다는 것 정도입니다.”

아이작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신성드래곤 수자앙?

[주인님의 육신을 가지고 있다는 녀석이죠?]

그럼 설마 신성제국에 위험이 닥치면 신성드래곤 수장이 모습을 드러낼 거라 생각해서, 해골왕 소환에 황제 암살 시도를?

뭐, 거기까진 이해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네.

“신성드래곤이 왜 해골왕의 육신을 가지고 있는 거지?”

“그게. 신성드래곤 수장이 집착하며 해골왕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추적 때문인지 해골왕과 관련된 건 죄 쓸어모으고 있다고…….”

…아앙??

나???

신성드래곤이 왜 날 찾아?

아이작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위스퍼는 큭큭큭 웃었다.

[신성 드래곤들한테도 지명수배당하신 거 아닙니까?]

아닌데? 신성드래곤은 안 건드렸던 거 같은데??

…아마도?

……아니, 그랬으면.

‘왜지? 왜 날 노리는 거지?’

그것도 수장급이?

“신성드래곤이면 신성제국의 수호룡이니까요. 주인님을 증오해도 이상하진 않긴 합니다.”

[글쎄요. 그냥 주인님도 모르는 사이 깽판을 치신 거 아닙니까아? 커헉!]

뭐, 아무튼 그런 거라면 오히려 잘됐다.

‘그쪽이 날 찾고 있다면, 불러내는 방법은 쉽지.’

녀석만 찾아내면, 녀석이 가지고 있다는 해골왕의 육신도 빼앗아올 수 있다.

‘이 작은 조각 하나만으로도 8계위 아룡을 없앴으니.’

아이작은 크흐흐 웃으면서 이번에 얻은 해골왕 육신을 보았다.

사실 몇 년간 마법 수련에 집중하기도 했지만, 아룡을 쉽게 죽일 수 있었던 건 이 육신 덕분도 있었다.

‘10계위 마법은 이미 머릿속에 있지만, 마력이 아직 안 되니까.’

하지만 해골왕의 육신을 이용하면 상위 마법도 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바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컸다. 물론 대신 몸의 일부이기에 위력은 좀 떨어지고, 흡수를 안 시키면 소모품이 되긴 하지만.

‘크흐흐. 지금도 이 정도인데, 나머지를 더 가지게 되면 얼마나 강해질지.’

바로 그때였다.

쾅!!

“아이작!”

벽을 뚫고 레아와 슈리가 들이닥쳤다.

“아이작, 괜찮니?”

“아이작! 괜찮… 컥, 뭐야! 샤브가 왜 여기에 있어?!”

샤브나크를 보고 얼굴을 붉힌 슈리와 달리, 레아는 아이작이 흑천사와 단둘이 된 것이 몹시 걱정된 모양이었다.

아이작의 몸 상태를 확인한 레아는 바로 눈을 부릅떴다. 아이작의 옷에 묻은 아룡의 핏자국 때문인 듯했다. 그것만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한 것이다.

“이, 같잖은.”

살의 어린 목소리와 함께, 레아의 검이 뽑혔다.

스릉!

레아는 바로 흑천사에게 다가갔다.

“비천한 떠돌이 마법사가 감히 5대 가문의 소가주를 건드려? 그 죄는 무거울 것이다.”

“아…니!”

무릎을 꿇고 있던 흑천사는 당황한 듯, 경계하는 눈빛으로 성녀를 보았다.

그러자 아이작이 방긋 웃으면서 레아를 말렸다.

“아, 죽이진 마.”

“뭐?”

“걔, 이제 내 부하야.”

“뭐??”

부하라니?

반면 아이작의 말에 흑천사는 감동한 듯 아이작을 보았다.

“역시 주인님!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해골왕의 수하라시는 것도 비밀로 하고, 신성제국을 멸망시키시려는 위대한 뜻을 기리고, 그 초석에 도움이……

철컥.

…응?

이상한 소리에 흑천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뭔가 차가운 금속 같은 게 팔목에…….

그리고 흑천사의 팔에 수갑을 채운 아이작이 큭큭 웃었다.

“못된 부하는 황궁에 넘겨야지.”

…예?

“이 새끼, 포상금이 얼마였더라? 이거 네임드라서 엄청 짭짤할 텐데?”

아이작이 히죽 초승달 눈으로 웃었다. 그 모습에 흑천사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주인님?

어……?

이거 연기시죠? 그쵸?

곧 샤브나크가 흑천사를 끌고 나가려 할 때, 레아도 바깥으로 나가자고 했다.

“해골왕의 육신도 얻었으니까, 어서 돌아가자.”

“그래. 그걸 교황청에 제출하면 너도 승급할 수 있을 거다.”

“응, 그 전에 율리우스국에서 좀 빼먹고.”

그런데 그때였다.

번쩍!

“아이작!”

“!”

갑자기 아이작의 손에서 수상한 빛이 났다.

아니, 정확히는 아이작이 들고 있던 해골왕의 육신에서 나는 빛이었다. 바로 해골왕의 육신을 봉인하고 있던 마석에서.

레아도, 슈리도 놀랐다.

“마석에서 빛나는 거 맞지?!”

“마석에 뭔가 장치가 되어 있던 건가?”

동시에 아이작이 승급을 위해 제출해야 하는 해골왕의 육신이 갑자기 붕 떠올랐다.

“아! 해골왕의 육신이!”

“안 돼! 아이작 이 새끼, 승급해야 해!”

누구보다 슈리가 가장 다급하게 쫓는 그 순간, 마석이 빛을 내며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큭!”

접근을 거부하는 강한 바람에 슈리가 뒤로 밀려났다. 곧 해골왕의 육신이 마법진과 함께 사라지려고 했다.

위스퍼는 금방 그 정체를 알아냈다.

[드래곤의 마법입니다! 역소환이요!]

이를 눈치챈 아이작은 가증스럽다는 듯 웃었다.

허어. 신성드래곤이 저 육신을 공주의 몸에 넣어놨다더니. 설마 빼앗길 것 같으니까 도로 가져가겠다는 건가?

위스퍼는 분노했다.

[캬악! 어쩐지 마석에 더러운 신성드래곤의 힘이 걸려 있더라니!]

곧 샤브나크가 흑천사를 기절시키고, 육신을 가져오려고 했다. 다른 인간들은 몰라도, 샤브나크라면 충분히 가져올 수 있었다.

최상위 진마인 샤브나크가 순식간에 다가가자, 마법진은 갑자기 민감하게 반응하며 다른 마법을 만들어냈다.

‘소환?’

동시에 마법진 안에서 거대한 짐승 머리가 뻗어나왔다. 그 짐승의 머리에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드, 드래곤?!”

아룡의 머리 크기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 심지어 마력의 크기나 위압도 비교 자체가 안 됐다.

“저 은빛, 설마 신성드래곤?!”

확실했다. 집채만 한 머리가 마법진을 통해 빠져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캬아아악!

텅!

고작 머리만 나왔을 뿐이었지만, 그 위압에 모두가 숨이 막힌 듯했다.

아이작은 골치 아픈 듯 쯧, 혀를 찼다.

‘성룡(成龍)인가?’

물론 성룡치곤 좀 작다. 헤츨링에서 막 성룡이 된 놈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드래곤은 드래곤.

‘드래곤은 9계위 이상이다!’

와이번 같은 아류 용족인 아룡이면 몰라도, 진짜 용족인 드래곤들은 아이작도 골치가 좀 아팠다.

게다가 드래곤 종족 중에서도 상위인 신성드래곤이라면 더욱!

‘뭐, 아직 어린놈 같으니 그나마 해볼 만할지도.’

하지만 자신이나 샤브나크나, 레아나. 슈리가 있는 곳에서 대놓고 마법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인데.

[주인님, 빼앗기겠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레아의 눈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스윽.

“어?”

평소와 다른 기운으로 검을 세운 레아가 검을 휘둘렀다.

마치 달을 잘라내는 듯한 아름답고도 찬란한 빛이 드래곤의 목에 큰 흠집을 냈다.

촤악!!!

-캬아아악!!!

핏줄기가 분수처럼 치솟아 올랐다. 어떤 무기로도 뚫기 힘들다는 드래곤의 피부가 잘려나간 것이다.

공격을 받은 드래곤은 화가 난 듯 반격하려고 했지만, 곧 도로 소환진 너머로 돌아갔다. 정확히는 레아의 기세에 눌려서 쫓겨난 것이다.

마침내 드래곤이 사라지자, 마법진은 사라지고 해골왕의 육신도 바닥에 툭 떨어졌다.

“아……!”

레아는 떨어진 해골왕의 육신을 집어들었다. 마치 그녀의 검에서 은색의 달빛이 쏟아지는 듯했다.

“다행이다. 안 빼앗겨서.”

슈리도 아이작도 당황한 듯이 레아를 보고 있었다. 둘이 당황한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다.

‘이 힘은 어딜 봐도 8계위가 아닌데??’

9계위인 드래곤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건, 절대 8계위가 아니란 의미다.

그리고 그게 무슨 의미다?

“레아 너… 이미 9계위?”

에슈아의 여자가 9계위가 된다는 건, 성녀가 된다는 의미다. 에슈아에서는 대단히, 아니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하지만 다들 레아가 8계위라고 알고 있는데?

벤야민이나 할아버지조차도.

‘심지어 노엘 백부님도 그걸로 의기양양했는데.’

“누님! 도대체 언제부터……!”

레아는 대답 대신 아이작에게 물었다.

“아이작, 성녀를 없앨 거라고 했지?”

“엉.”

전과 변함없는 답에 레아는 몹시 기쁜 듯,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럼 됐어.”

“앙?”

“두 사람 다 오늘 본 건 비밀인 거다.”

“하지만, 누님……!”

“비밀인 거다.”

“헙, 옙.”

슈리가 쫄아서 고개를 숙이고, 아이작은 미간을 좁혔다.

상위 종족인 신성드래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니, 이거 상상 이상의 엄청난 패를 알게 되긴 했는데…….

“…성녀가 신성드래곤을 공격하다니, 이거 신성모독…….”

레아는 아이작의 손에 해골왕의 육신을 꼭 쥐어주며 웃었다.

“저쪽이 먼저 공격했는걸? 물건만 되찾아오면 장땡이지, 뭐.”

…역시 에슈아, 이 또라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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