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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85화 (185/272)

제185화. 잠깐, 뭘 하려고? (2)

아이작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교황청이었다. 슈리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뭐야. 왜 황궁이 아니라 여기로 오는 건데??”

“왜긴 왜야. 다시 가져오려고 온 거지.”

“뭐?! 장난해?”

왜 교황청에 다시 왔나 싶었더니!

“다시 가져와서, 샤블리스한테 보여주면 됨.”

아이작의 말에 슈리는 기가 찼다.

이미 한번 제출한 걸 다시 가져온다고? 심지어 해골왕의 육신을?

“그게 가능할 거 같아? 해골왕의 육신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잖아! 다른 그 무엇보다 엄중히 보관될걸?”

그러나 아이작은 흐흐흐흐 웃는 것이었다.

“안 되면 되게 해야지.”

…뭐, 인마?

그 웃음에 불길함을 넘어 공포를 느끼는 슈리였지만, 정작 레아는 아이작이 귀엽다며 꺄르르 웃을 뿐이었다.

“아이작이 저렇게 말한다면 반드시 가져오겠네.”

아니 누님?! 가져와도 문제거든요?!

‘저 자식이 평범한 짓을 할 리가 없는데.’

슈리는 그 걱정과 함께 아이작을 뒤따라갔다. 아이작이 교황청에 들어가자마자 여기저기에서 그를 알아보았다.

“어? 아이작 님!”

심지어 알아보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나며 인사까지 했다.

“아이작 님, 오셨습니까!”

“어찌 교황청에 또 이리 행차를!”

교황청의 사제들은 아이작을 몹시 반기는 것으로도 모자라, 거의 국빈 대하듯 굴었다.

“해골왕 육신을 가져와 주시다니! 대단한 영광입니다!”

“오냐.”

슈리는 소름끼친다는 듯이 교황청 사제들을 보았다. 저 방긋방긋 웃음 하며, 저절로 숙여지는 고개며, 공손한 손 위치하며….

정말 그 거만한 교황청 사제들이 맞냐?

교황청 사제들. 특히 교황청 본부에서 일하는 이들은 모든 성직자들을 관리하는 공무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좀 거만한 구석이 있었다.

‘뭐, 교황청 본부쯤 되면 콧대가 높을 만도 하지.’

아무리 5대 가문의 후계자라도 얄짤 없었다.

교황의 바로 밑인 추기경쯤 돼야 깍듯하게 대하는 편이니, 말 다했지.

그런데 그런 놈들이 아이작을 대하는 태도를 봐라…….

“아이작 사제님!”

심지어 새끼들이 ‘님’이라고 하네. 원래는 아이작 사제라고 부르는 게 보통인데.

하지만 콧대 높은 교황청 사제들은 눈을 초롱초롱 밝히며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습니까!”

“예! 미해결 임무 중에서도 그걸 가져오시는 분이 계시다니!”

“존경합니다! 역시 청!”

“신입들을 우르르 데려가실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혹시 이번에는 신입을 안 받으시나요? 꼭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저도!”

아무래도 아이작이 해골왕의 육신을 가져온게 어지간히도 기겁할 만한 일인 듯했다.

‘뭐, 해골왕과 연관된 일이라면 최고 등급 임무니까.’

그 육신을 가진 것만으로도 나라의 위상이 올라간다. 그만한 걸 교황청에 바친 것이었다.

“어디 그뿐이십니까?”

“흑천사를 잡아오다니!”

“그 흑천사를 쓰러트린 것으로도 모자라 잡아오기까지 하시다니!”

‘흑천사’는 신성제국의 원수나 다름없었다. 여러 나라를 멸망시키고, 신성제국마저 멸망시키려 하고 있기에 더욱 주의 깊게 쫓고 있었다.

하지만.

“S급 수배자에 도주의 귀재라 해서 어느 신앙도 못 잡고 있었는데!”

“예! 추적의 귀재인 적의 신앙도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교황청 사제들은 선망하듯이 아이작을 보았다.

“청은 마족뿐만 아니라 추격에도 귀재셨군요!”

그 반응에 아이작은 크흠, 기침했다.

‘뭐, 흑천사가 도망치지 않았던 건 다른 이유 때문이긴 하지만.’

아이작은 흑천사를 잡아왔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샤브나크에 의해 기절했다가 제국에서 깨어난 그에게, 아이작은 이렇게 말했지.

-잘 들어라. 사실 내가 널 잡은 것엔 이유가 있다.

-이상하다 싶었는데, 역시 깊은 뜻이 있으셨군요! 그럼……!

-그런 의미로 교황청의 감옥에 들어가라.

-예? 감옥? 테러가 아니라? 거기에 어떤 의미가……?

-네가 잡혀있는 것으로 신성제국이 멸망할 것이다.

-…예??

-네게 자세히 말해줄 순 없지만, 아무튼 제국을 멸망시킬 중요한 수다.

-잡혀있는 것만으로요?

-그래. 그러니 얌전히 감옥에 있어라. 탈옥할 생각 말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구하러 가마.

-예! 주인님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흑천사는 얌전히 교황청 감옥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아이작은 커흠, 기침을 했다. 뭐, 놈의 초롱초롱한 눈을 떠올리면 좀 미안하다만, 알 바인가? 누가 속아 넘어가래?

‘나야 현상금 챙기고, 공적도 세웠으니 됐지.’

한 번에 무려 상급 공적을 두 개나 쌓은 것이었다. 교황청 사제들이 아이작을 귀빈 취급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교황청의 명성이 올라갈수록 다른 나라들이 몰려온다.’

교황청의 위상을 올려준 것으로도 모자라, 앞으로 더 올려줄 수 있는 사제를 접대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아무튼, 그 해골왕의 육신을 교황청에 기부해주 시다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간 청에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다들 대단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흑천사 때문에 황실이 무능하다고 말도 아니었거든요.”

“황실?”

아이작은 관심 있는 화제라는 투로 되물었다.

그러자 교황청 사제들은 기다렸다는 듯 황실, 아니 더 정확히는 황태자를 깎아내렸다.

“안 그래도 신성제국의 결계가 무너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 틈으로 침입자들이 늘고 있어요.”

“뭐, 이게 다 신성드래곤을 불러내지 못하는 황실 때문이지만요.”

“샤블리스 전하도 그래요. 그 역할을 이어받은 걸로 황태자의 자리를 약조 받으신 거잖습니까?”

“그런데 정작 신성드래곤을 불러내지 못하니, 제국의 결계가 이 모양 이 꼴이죠.”

“불러내지 못하는 이유가 뭐랍니까?”

“이유를 모른답니다.”

“뭐, 이해는 합니다. 저주받은 흑발 황태자한테 그 고결한 신성드래곤이 오고 싶어 하겠습니까?”

“풉. 이쯤 되면 황태자 자격이 없는 거 아닌가? 사실 그 역할 때문에 교황 성하께서 황태자 자리를 허락하신 건데.”

교황이 ‘허락’이라.

아이작의 눈이 거슬린다는 듯 찌푸려졌다. 지가 뭔데 황제도 아니면서 황태자 자리를 허락한다, 만다야?

그러나 교황청 사제들은 아이작에게 걱정 말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괜히 3황자께서 황위 후보이신 게 아닙니다.”

“그래?”

“예, 교황 성하께서도 이미 점찍으셨고요. 사실 저희한테도 친교황청파인 3황자가 좋죠.”

아니, 난 안 좋아. 새끼들아. 3황자가 황위에 오르면 교황가가 교황 자리를 연임할 거 아냐.

미쳤나?

하지만 뭐, 지금 중요한 건 그쪽이 아니지. 아이작은 본론을 확인하듯 떠보았다.

“크흠. 그래서 내 승급 건은?”

싸늘하게 황태자를 깎아내리던 사제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눈이 초롱초롱하게 바뀌었다.

“예! 바로 진행 중입니다! 증서는 이미 나왔고, 모레 정식으로 전달 드릴 예정입니다. 연락받으셨죠? 모레, 아이작 사제님의 공적을 인정하는 피로연과 함께…….”

아이작은 바로 그거라는 듯 말했다.

“크흠. 피로연은 됐으니까, 그 증서는 지금 받을 수 있을까?”

“예?”

“별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시끌벅적하게 해야 하나. 돈 낭비하기도 싫고, 좀 그래서.”

그 말에 교황청 사제들은 몹시 감격한 듯했다.

“오오오…! 역시 청!!”

아이작은 말을 이었다.

“그 피로연에 들어갈 돈은 교황청이 제국민을 위해 쓰든가, 불우한 이들을 돕는 데 쓰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교황청 사제들은 아예 울 기세였다.

“세상에! 다른 귀족들은 이보다 훨씬 작은 공적을 세운 것만으로도, 어떻게든 정식 수여식을 해달라고! 크고 화려하게 해달라고 그리 떼를 쓰는데!”

“그만한 공을 세우고도, 이 어찌! 검소하고, 겸손하고, 대단한가!”

“역시 청!”

교황청 사제들은 믿기지 않는 듯, 동시에 몹시 감동하여 아이작을 보았다.

“이 사실은 모두에게 알리겠습니다!”

“신입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그 광경에 레아는 푸웁, 웃었고, 팔짱을 낀 슈리는 기가 찬 듯 아이작을 보았다.

‘저… 사기꾼 새끼.’

그렇게 그들이 잠시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자, 교황청 사제가 헐레벌떡 물건을 가져왔다. 고급 금색 벨벳과, 끈으로 감싸진 두루마리였다.

“증서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걸로 정식 2품, 중급 사제십니다!”

아이작은 바로 두루마리를 풀어서 내용물을 확인했다. 아이작의 이름과 함께, 2품 사제로 승인한다는 교황청의 정식 인장이 있었다.

“이것만 있으면 1품, 그러니까 상급 사제 시험을 볼 자격이 있는 거지?”

1품 사제는 대주교와 추기경이 있는 초고위직의 자리였다.

엘리트 중 엘리트의 자리로, 나라의 수뇌부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시험도 굉장히 어려운 것으로 유명했다.

보통은 1품까지는 가지 못하고, 2품 주교로 평생을 지내는 일이 대다수다. 그야말로 선택받은 이들을 위한 최고의 자리. 동시에 가문, 교황의 자리를 잇기 위해선 필수적인 자리였다.

“잘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특히 아이작 님께서는 이번 공적이 너무 뛰어나셔서, 시험에서도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실 겁니다! 이미 시험 관리 부처에도 전달이 되었고요.”

아이작은 큭 웃었다.

“흠. 좋아.”

아이작은 증서를 빼앗아갈까, 슥 품속에 넣었다.

‘후. 그럼 시작해볼까.’

아이작은 씨익 웃었다.

그 웃음과 동시에, 교황의 탑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쾅!!!

“으아악!”

“헉! 무슨 일인가!”

황궁만큼이나 큰 부지의 교황청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비상! 비상!”

“공물을 보관하는 보관고에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뭣이?”

사제들이 급하게 성기사들을 동원하여 보관고 탑 쪽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인가 굳이 물어볼 것도 없었다.

“해골왕의 육신을 보관해둔 보관소에서 이상이 생긴 것 같습니다!”

“뭐라고?”

“폭주인가? 침입자인가?”

해골왕의 육신은 보관소에서도 최고 보안 등급의 귀중한 물건이었다.

사제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쪽이든 아이작 사제님이 가져와 주신 공물이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

“서둘러!”

아이작의 계획을 미리 들은 슈리는 기가 찰 수밖에 없다.

‘시작했구만.’

물론 자세한 건 듣지 못했다.

아이작이 한 말은 그저 ‘해골왕의 육신을 폭발시킬 거야.’라는 말뿐이었으니까.

‘혹시 몰라서 폭발 성법을 걸어뒀다니, 치밀하군.’

해골왕의 육신을 노리는 사람이 있으면 청의 사람으로서 막아야 하니 걸어뒀다고 했다. 물론 그건 아이작의 새빨간 거짓말이었지만.

그 증거로 아이작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제들을 보며 큭큭 웃었다.

‘단순한 폭발이 아니지.’

아니, 사실 폭발 따위 안 했다. 소동을 일으킨 건, 다름 아닌 ‘위스퍼’였던 것이다.

아이작은 원거리에서도 마력을 쪽쪽 뽑아먹으려고, 육신과 마력을 연결해둔 상태였다.

마력끼리 연결이 되어 있다? 그건 마력인 위스퍼가 언제든지 저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위스퍼가 난동을 부리는 건 일도 아니지.’

아니나 다를까.

위스퍼가 마력을 뿜어내 난동을 부리자마자, 보관소는 난리가 났다.

아마 사제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물건은 괜찮나 확인해보러 가겠지. 그럼 자연스럽게 보관소의 문이 열릴 것이고.

아이작은 그걸 노리면 된다.

하지만 그가 위스퍼를 보낸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애초에 문이 열리는 걸 기다린 게 아니었던 것이다.

육신을 되찾아가려면 그걸로는 부족하니까.

‘아마 올 거다.’

정말 해골왕을 찾고 있는 거라면, ‘진짜’ 해골왕의 마력이 느껴진 그 순간 오겠지.

‘그래, 신성드래곤 놈이.’

아이작의 교활한 눈빛과 함께 큰 폭음이 울려 퍼졌다.

콰앙!

“침입자입니다!”

“성별은 아직 불명! 분명 해골왕의 육신을 노리고 있습니다!”

“백금발의 사람입니다!”

상부층에서 전해져 오는 소식에, 아이작은 큭큭큭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왔구나! 짜식!’

아이작은 계획대로라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신성드래곤이 온다?

‘내 육신도 얻어내고, 교황청은 박살 내고. 샤블리스한테는 선물도 줄 수 있지.’

여기서 활약하면 해골왕의 남은 육신으로도 모자라, 교황청을 지켜냈다는 내 공은 덤!

‘푸히힣헿! 완벽해!’

아이작은 순수하게 놀란 듯 상부층으로 향했다.

“아이고오! 침입자아가아!”

“헉, 아이작 사제님. 도와주시는 겁니까?!”

“땅연하지이! 해골왕의 육신이 위험해에! 지켜야 해에!”

슈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아이작을 쳐다볼 뿐이다.

저거… 양심 어디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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