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8화. 이게 내 방식이야 (1)
“아이자아악!!”
아이작이 육신을 삼키자, 모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은 자신이 뭘 본 것이냐는 듯 핏기가 사라졌다. 동시에 기겁한 그들이 아이작에게 우르르 몰려왔다.
“뱉어라아아아!”
“아이작, 이 무슨!”
“퉤! 퉤에에에에!”
멜리사, 레아, 릴라이. 모두가 아이작에게 달라붙어 육신을 뱉게 하려고 했다.
멘붕에 빠진 그들은 급히 물건을 찾았다.
“설사약! 약을 가져와라! 전에 먹였던 거!”
“그거 안 통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무리 애타게 등을 어루만지고 얼굴을 부여잡아도, 이미 해골왕의 뼈는 목구멍으로 넘어간 뒤였다.
심지어 상황은 끝났다는 듯, 아이작은 스윽 시선을 피했다. 게다가 입맛까지 쩝쩝 다셨다.
절망한 에슈아 일가는 동공 지진을 일으키면서 아이작을 보았다. 그들은 초조한 얼굴로 아이작을 살폈다.
아이작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래, 놀랐겠지. 졸라 놀랐을 거야.
애가 해골왕의 뼈를 또 삼켰으니, 안 놀라고 배겨?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아이작의 몸을 더듬었다.
“아, 아이작! 모, 몸은 괜찮은 거냐?”
“뉑. 괜찮습니다.”
몸이 괜찮은 걸 확인했으니, 다음은 이렇게 묻겠지.
“아이작…! 그걸 왜 먹었느냐!”
그래그래, 이 질문을 안 할 리가 없지.
젖먹이 때라면 몰라도, 16살이 그걸 먹는다는 게 상식적인 일은 아니니까.
“아이작?”
“아. 음.”
머리를 굴리는 아이작은 데굴데굴 눈알을 굴렸다. 그러고는 최대한 불쌍한 척 연기를 했다.
“실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해골왕의 육신을 보니까 이상한 목소리가 자꾸 ‘먹어라, 먹어라.’ 하고 머릿속에 울렸어요.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나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먹고 있었어요.”
위스퍼는 기가 찬 듯했다.
[주인님…. 입에 침이나 바르고 구라를…….]
그러나 에슈아 일가는 그 말에 몹시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해골왕이 아이작의 정신을 조종하기 시작한 건가!!’
그들은 모두 얼어붙었다.
그도 그럴 게, 아이작은 젖먹이 때 해골왕의 육신을 먹었다. 지금이야 대견하게도 그 힘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언제 폭주해서 아이작을 집어삼킬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악한 마력이 기어이 아이작을 조종하기 시작하다니!
‘해골왕의 힘이 더욱 강해지고 있는 건가!’
안 그래도 늘 조마조마하게 아이작을 보고 있던 그들로서는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난 만큼 해골왕이 점점 힘을 회복할 거라는 건 알았지만……!’
특히 해골왕을 쫓고 있던 릴라이, 해골왕와 맞싸웠던 멜리사는 멘붕에 빠진 듯했다.
자신들이 해골왕을 잡지 않은 것 때문에, 에슈아의 아이가 또다시 이런 저주를……!
물론 위스퍼는 다른 의미로 걱정했지만 말이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배 안 갈리겠어요?]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아이작이 공포에 질린 표정을 연기하며 멜리사를 보았다.
“헉. 가모님. 제 배… 가르실 건가요?”
“응?”
아이작의 말에 멜리사는 크게 움찔했다. 다름 아닌 청의 가주와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라이! 들어봐라! 아이작은 도대체 왜 날 피하는 거지?
-왜긴 왜야…. 아무리 나라도 배를 가르겠다고 하면 피해…….
-?!
안 그래도 그 말 때문에 조심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동시에 아이작이 스윽, 황금봉을 검으로 변화시켰다. 그러더니 순교하려는 수도승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제 목에 검을 겨누었다.
“해골왕의 육신은 에슈아한테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었죠? 제가 해골왕의 꾐에 넘어가 또 먹어버리는 우를 범했습니다. 그 소중한 물건, 이 목숨 줄을 끊어 꺼내드릴게요!”
“아이자아악! 잘못했다! 괜찮아, 너만 무사하면 괜찮으니까!”
“그마안!”
모두가 아이작을 말렸다. 멜리사도 아주 일순, 배를 갈라서 꺼내야겠단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쑥 들어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침입자는 해결되었습니까?!”
“해골왕의 육신은 무사합니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교황청 사제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내부에서 폭음이 끊기자 들어온 것이었다.
그들은 제일 먼저 해골왕의 육신을 찾았다.
“해골왕의 육신은 지켜내셨나요?”
“당연하지, 에슈아인데!”
그 말에, 에슈아 일가는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 쿵 얼어붙었다.
젠자아앙, 그러고 보니 해골왕의 육신은 교황청의 공물로 넘어간 상태였지!
근데 그게 지금 우리 집 애의 뱃속에 들어가버린 거지? 그렇지? 이거 잘못하면 진짜 우리 애 배가 갈라지게 생겼지?
그들의 눈빛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교황청 사제들은 몹시 기대하듯 에슈아 일가를 보았다.
“해골왕의 육신은?”
“아, 아니 그게.”
“그게?”
사제들이 눈을 반짝이자, 에슈아 일가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어딘가를 보았다.
그건 다름 아닌 가짜 해골왕의 육신. 솔직히 멜리사가 냄새 때문에 가짜라고 했기에 자신들도 눈치챈 거지, 사실 진짜와 구분이 전혀 안 간다.
솔직히 에슈아에게도 구분이 안 갈 정도면, 신성제국에서 알 방법은 없다.
교황청도 저걸 실제로 사용한다기보단, 그저 자리를 채우는 과시용으로 쓰려고 하는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평소라면 청의 교리상, 아이작이 교황청에 문책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았겠지만…….
그들은 결심한 듯,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래서… 에슈아 사람들이 가짜를 교황청에 넘겼다고?”
“네.”
“…율리우스에서 구해온 뼈는 황실에 가져오기 전에 교황청에 넘겼고?”
“눼.”
“지금은 그게 그대 배 속에 있는 거고?”
“눼에.”
“그럼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거고?”
“…….”
황태자의 말에 꼬박꼬박 답하던 아이작이 침묵했다. 아무리 아이작이 포탄으로도 못 뚫는 철면피여도, 이쯤 되면 약간 민망한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이작은 슬그머니 자기 팔 소매를 걷었다.
“제 뼈라도 보실래요……?”
“…….”
뼈는커녕 통통한 팔뚝에, 황태자는 곧 해탈한 듯 한숨을 쉬었다.
“나는 또 공자한테 이용당하고 버려졌군.”
아이작은 화들짝 놀랐다.
아니이! 뭔 말을 그리 심하게 하냐아! 황태자야?! 나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거든?
설마 거기서 멜리사가 냄새로 눈치챌 줄 누가 알았겠어!
어?
“맞습니다, 전하! 아이작을 나무라지 말아주십시오!”
함께 황태자궁에 온 릴라이는, 자신들을 벌해달라는 듯, 고개를 숙였다.
“이 모두 더러운 해골왕의 꾐 때문입니다!”
릴라이는 몹시 슬퍼했지만, 슈리는 먼 산만 보았다. 그는 확신했다.
‘숙부님. 이 자식, 분명 일부러 먹은 걸 겁니다.’
아주 간사한 녀석이었다. 목숨이 위험하단 걸 알면서도 먹은 거겠지.
솔직히 젖먹이 때도 일부러 먹었다는 것을 거의 확신하고 있다. 뭐, 누구에게도 말할 생각은 없지만.
하지만 아이작이 황태자에게 육신을 먹은 것에 대해 말해준 건, 다 의도된 거였다.
‘이 손가락에 대해 물을 테니까.’
아이작은 장갑을 낀 손을 까닥거렸다.
‘또 뼈로 변했군.’
새끼손가락 끝이 아주 조금 뼈로 변해 있었다.
천천히 흡수한 게 아니라 한꺼번에 먹은 탓에, 또 성력보다 마력에 일순 치우친 모양이다.
특별한 ‘눈’을 가진 황태자는 장갑을 껴도 손의 상태를 눈치챌 것이고 말이다.
물론 지금은 청의 여신과 연결이 된 시점이라, 이까짓 것 적당히 힘을 뜯어내면 하루 만에 돌아온다.
문제는 이걸 본 집안사람들이었는데…….
-아이작이 저주받았다!
-해골왕의 저주가 기어이 아이작에게까지!
숙부들과 기사들이 충격에 발칵 뒤집혔다. 내색하진 않지만, 할아버지도 내심 충격을 받은 듯했다.
심지어 이런 말까지 했다.
-…해골왕 이 새끼, 가만 안 두겠다.
아니, 할부지. 그 새끼가 바로 나니까, 9계위 성법 쓰려고 하지 말고. 집 무너지니까 제발.
심지어 노비들도 눈이 뒤집혔다.
-당장 해골왕 토벌단을 꾸리겠습니다! 가주님! 명령을!
-아니, 그거, 아니…….
-죽여 팰 놈!!!! 감히 아이작 도련님을!!
-아니… 내 말 좀, 새끼들아!
그리고 현재.
해골왕이 에슈아의 소가주까지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순간, 에슈아는 어느 때보다도 열의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훈련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 처음 봤다.
솔직히 이 새끼들이 비전을 흡수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덕분에 비전을 습득할 정도로 실력이 빠르게 올라와서, 아이작에겐 큰 이득이었다.
그러나 릴라이는 깊게 탄식했다. 자신들 대에서 끝나야 할 저주가 아이작에게까지 덮쳤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저희는 지난 시간 동안 해골왕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작은 눈을 데굴 굴렸다.
‘왜 나는 못 찾을 줄 알지?’
동시에 황태자가 힐끗 아이작을 보았지만, 그 이유를 아는 듯했다.
“에슈아가 못 찾을 정도면, 필시 드래곤의 힘이 개입되어 있겠지.”
그래, 드래곤이 가짜 해골왕을 숨겨주고 있는 것이다. 어느 종족이 숨겨주고 있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아이작도 사실 그래서 좀 골치 아파하는 중이다.
‘에슈아에 걸린 저주도 풀어야 하니.’
곧 릴라이가 사실 이것이 본론이라는 듯, 황태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에슈아가 자존심을 버리고 해골왕을 포기할 수도 있지만, 저주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상황입니다. 황실과 계약한 신성드래곤라면 해골왕을 찾아낼 수 있을 테니, 무례를 무릅쓰고 전하께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미안하군, 나로는 도울 수 없을 것 같다.”
“?!”
신성드래곤 이야기에 황태자의 표정이 내색하진 않아도 몹시 안 좋아졌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하지만 선약이 있어서 먼저 실례하지.”
“!”
“아. 황실 특사의 대가품이었던 해골왕의 육신이라면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안 했고, 공자한테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건 익숙하니…. 휴우.”
아이작은 흠칫 놀랐다.
아니이이! 이용한 건 맞지만, 안 버렸다니까?
하지만 황태자는 말은 그렇게 해도 기대를 많이 하긴 했는지, 나가면서 벽에 쿵 부딪쳤다.
“전하!”
그럴 때 충격으로 황태자의 몸에서 뭔가가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그 물건의 정체에, 위스퍼가 깜짝 놀랐다.
[엇? 주인님, 저거!]
아이작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황태자가 순식간에 회수해서 남들은 못 본 모양이지만, 아이작은 분명 똑똑히 봤다. 황태자한테서 떨어진 물건은, 다름 아닌 엄지손가락만 한 미니 스켈레톤…….
…뭐? 스켈레톤?!
[저거 주인님이 예전에 황궁 호수에 버렸던…그 녀석 아닙니까?]
달각. 달각. 달각.
자이언트 스켈레톤은 움직이진 못했지만, 주인을 만나서 몹시 반가운 듯, 낑낑댔다.
[주이인니임!]
하, 자식. 아직 살아 있었…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연못에 던져놨던 게 왜 저기 있어??
아이작은 급히 손을 뻗었다.
“저기요, 전하! 그거!”
황태자는 미니 스켈레톤을 슥슥 소중히 닦아서 스윽 품에 숨겼다.
“아니, 그거……!”
“그대도 날 안 보여줬으니, 쌤쌤이다.”
뭐?! 아니 내 부하! 왜 훔쳐 가!
황태자는 스켈레톤을 뺏길세라, 두두두 속도를 높여 사라졌다.
아니, 내 부하, 내놓으라고!
[주인님이 버리신 거잖습니까.]
아니거든! 깜빡한 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