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9화. 이게 내 방식이야 (2)
‘도대체 왜 내 부하가 황태자한테 있는 거야?’
아이작은 끙, 미간을 짚었다.
‘물론 연못에 던져놓고 깜빡 잊고 있던 내 잘못도 있지만.’
[깜빡이 몇 년……?]
닥쳐.
하지만 자이언트 스켈레톤이 황태자의 손에 있다는 건, 황태자가 꺼내왔다는 건데.
‘신성제국에서 스켈레톤을 좋아하는 걸 좋게 볼 리 없으니 사용인을 시키진 않았을 거고.’
좋게만 안 볼 뿐이냐. 특히 교황이 있는 이 나라에서는 해골왕과 연결되어 있는 모든 것들이 이단인데?
그러니 직접 연못에서 꺼내왔을 텐데…….
‘황태자가 손수 연못에 들어가 물질을 하는 광경이라니.’
아이작은 어질어질했다. 방에 있던 어마어마한 컬렉션을 보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해골왕 빠돌이네.
그런 아이작의 표정을 뭐라 생각한 건지, 맞은 편에 있던 황녀가 말했다.
“오라버니 일은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
뜻밖의 말에 위스퍼가 큭큭 웃었다.
[황태자가 매몰차게 나가서 주인님이 기분이 상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네요.]
기분이 상해? 내가?
[큭큭. 황녀는 굉장히 고상하고 예의를 신경 써서 좋네요. 황후 때는 아오, 감히 주인님을 지 수족으로 삼으려던 고압적인 눈빛 때문에 어찌나 빡치던지. 캬, 이게 황실의 품위지.]
황실의 품위이이이?
아이작은 큭 웃었다.
뭐, 황녀가 황후와 비교하면 몹시 호감가는 사람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강박적인 모범생으로 보인다만.’
[예?]
‘뭐, 그만큼 황태자와 달리 해골왕을 몹시 싫어할 수도 있겠지.’
그런 아이작의 시선을 뭐라고 생각한 건지. 황녀 샤를로트는 조심스럽게 아이작을 보았다.
“아까 전 물건을 신경 쓰시는 거라면, 산책 중에 우연히 주우신 것입니다.”
황녀는 아이작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지만, 슈리나 릴라이나 귀가 밝았다. 못 듣는 척하지만,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아까의 물건? 그게 뭔데?
황녀는 아이작에게 속삭였다.
“그, 공자께서는 오라버니의 방을 보셨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오라버니를 싫어하지 말아주세요.”
…방?
슈리와 릴라이의 표정이 점점 이상해졌지만, 아이작은 먼 산을 보았다.
“아, 음. 어. 아아, 응. 아니. 눼. 그럴 수도 있죠.”
아니, 뭔데 아이작의 표정이 저래?
‘도대체 뭘 본 거냐, 아이작!’
하지만 아이작은 눈을 데굴 굴렸다.
황녀는 아이작이 해골왕을 좋아하는 황태자를 혐오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더 가관인 건 다음 말이었다.
“그, 오라버니가 그리되신 건 제가 불을 지핀 것이나 마찬가지니, 오라버니를 싫어하지 말아주세요.”
아니, 뭐냐니까?!
당황하는 릴라이와 슈리와 달리, 아이작은 더욱 먼 산을 보았다. 도대체 황녀가 어떻게 불을 지르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성제국의 황태자가 마왕 빠돌이가 되지?
“저래 보이셔도 오라버니는 아이작 공자님을 믿고 계십니다. 공자님이 교황이 되셨으면 좋겠다고 하세요.”
도대체 뭔데 황녀가 저렇게 오빠를 걱정할 정도인 거냐!
그러나 당황하는 에슈아 사람들과 달리, 아이작의 눈이 휙 돌아갔다.
교황이라고 하면, 설마?
“아이작 공자님이 교황이라면, 제국의 일부를 맡겨도 되겠다고 하셨어요.”
아이작은 계획대로라며 그 어느 때보다 입꼬리가 째졌다.
옳지, 그래! 좋아! 드디어 황실에 잘해준 보람이 드디어 생겼구나!!
[잘해주셨다기엔… 약속도 까먹고, 중요한 행사도 마구 생까신 것 같은데요.]
닥쳐!
아무튼 훌륭하다!
솔직히 제국 전부를 넘기는 게 아니라 일부를 맡긴다니 몹시 아쉽긴 하지만, 아직 그 정도의 친밀도는 아닌 거 같고. 더 살살 꼬셔주겠어!
“…단지 신성드래곤과 관련해서 아이작 님께 긴히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부탁?”
“실은…….”
바로 그때였다.
쾅! 쨍그랑!
“!”
샤블리스가 나간 방향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가 깨지는 소리에 모두가 크게 놀랐다.
“무슨 일이냐!”
황녀의 부름에 시녀가 눈치를 살폈다.
“그게, 3황자께서 폐하를 뵈려는 황태자 전하를 막아서…….”
“뭐?”
당황한 황녀가 급히 일어났다.
3황자라는 말에 얼굴색이 변한 건 릴라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예상이 간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밖으로 나간 그들이 움찔했다.
황궁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여 있는 시종들이 누군가를 말리지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다.
한쪽은 샤블리스고, 다른 한쪽은…….
“비켜라. 폐하를 뵈러 왔으니.”
“부황께서 편찮으신데, 어찌 제가 형님을 들여보낼 수 있겠습니까?”
[어이고, 저 싹수 없는 놈이 3황자입니까?]
위스퍼가 말한 건 16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저놈이 3황자 루카스군.’
황태자를 두고도 교황과 귀족파가 신나게 밀고 있는 황위 계승자 말이다.
[와, 황태자하고 나란히 있으니 진짜 대비되긴 하네요.]
그래, 샤블리스는 칠흑의 황자.
반면 그 빌어먹을 놈들이 밀고 있는 루카스 황자는 보란 듯이 반짝 반짝한 금발머리다. 진짜 그림으로 그린 듯 화려한, 황자 중의 황자였다.
어느 쪽이 신성제국의 황태자일 거 같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3황자를 꼽겠지. 그리고 당연히 원수에 가까운 놈들이 만났으니, 이 사달이 날 수밖에.
뭐, 원래도 개같은 사이인데 문제가 있다면…….
“폐하와 선약을 한 건 나다. 루카스. 선 넘지 마라.”
“폐하께서 부르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주받은 형님이 폐하께 무슨 짓을 할 줄 알고요?”
“……!”
샤블리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루카스 황자는 피식 웃었다.
“안 그래도 폐하께서 쓰러지신 게 형님이 무슨 저주를 걸어서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폐하와 대면을 시켜드릴 것 같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요?”
뭔가를 쥔 샤블리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약을 가지고 있군요?]
‘그래, 치료약인 것 같다.’
아무래도 선약이 있다고 한 건, 아버지의 병환을 살피려 한 것이었나?
심지어 약을 구해서 어렵게 선약을 잡아놓았는데, 그걸 동생 놈이 막고 있으니 꼭지가 돌 수밖에.
뭐, 감히 황태자에게 뻗대는 걸 보니 교황의 후광을 입고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군.
‘아니, 그 이전의 문제인가.’
아이작은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눈빛을 보았다. 내색은 안 하고 있지만, 차가운 눈빛만 보면 안다.
시종들이나, 시녀들 그리고 대신들은, 샤블리스를 불길하게 보고 있었다. 저건 또 왜 여길 찾아왔느냐는 눈빛.
‘황제가 쓰러진 게 황태자의 저주 때문이라는 소문이 도는 게 진짜긴 한가 보군.’
딱 봐도 어릴 때부터 어떤 취급을 받으며 자랐을지 훤하다.
아니나 다를까, 3황자는 아이작 일행을 발견하고는 방긋 웃었다.
“세상에, 이게 누구십니까. 유명한 아이작 공자와 에슈아 분들이 아니십니까. 아, 이왕 이리된거, 저 성직자분들께 여쭤보면 되겠군요. 형님이 얼마나 저주받았는지, 폐하를 헤하려는 건 아닌지 검문을 맡기면 되겠어요.”
그는 친근하게 아이작에게 다가왔다.
“아이작 공자시죠?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곧 사라질 청을 돌보시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뭐, 인마?
“그래도 청에는 몹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키나 형님이 교황이 되실 때까지 제국의 이름을 드높여주고 계시니까요.”
아이작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싹수 없는 새끼 봐라아아? 교황 놈하고 어울리더니, 진짜 뵈는 게 없구나?
[확실한 건 이놈은 청을 없애려는 놈이란 거죠.]
뭐, 그렇긴 하지.
저놈은 5대 가문에서 청을 빼 버리고, 본인의 외가 가문을 올리고 싶어한다고 했나?
그리고 그 광경에 황녀가 눈을 부릅떴다.
“루카스 황자. 무례합니다. 무슨 권한으로 황태자를 가로막고, 에슈아를 농락하시오?”
황녀가 나무라자, 루카스는 감히 더러운 게 훈계를 하냐는 듯 얼굴을 굳혔다.
“쌍쌍으로 저주받은 것들이, 누구한테.”
“!”
쌍쌍으로 저주받았다는 말에, 릴라이와 슈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녀는 황태자와 달리 아무런 소문이 없는데?
그러나 루카스는 아이작에게 사근사근 친근하게 다가오며 말했다.
“우리 황녀님이 몹시 외모가 뛰어나시지만, 그거 아십니까? 황녀님의 원래 머리 색이 뭔지?”
“!!”
어째서인지 황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루카스 황자.”
반면 슈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녀의 머리 색은 황태자와 달리 금색이 아닌가.
곧 샤블리스가 루카스를 노려보았다.
“거기서 입을 더 열면 죽인다.”
“검은색이에요, 검은색! 남매가 쌍쌍으로 저주받았습니다. 마법으로 감추고 있을 뿐이지, 그 실체는 마녀라고요.”
릴라이와 슈리는 뜻밖의 사실에 당혹스러운 듯 했다.
아니, 황녀까지 머리색이 검은색이었다고?
여동생이 공격당하는 것에 눈이 뒤집힌 샤블리스가 오라를 뿜어내려 하자, 릴라이가 재빨리 팔을 잡아눌렀다.
“황제궁 앞에서는 안 되십니다.”
루카스도 그걸 아는지, 키득키득 웃었다.
“신성드래곤도 불러내지 못하는 황태자가 무슨 황태자의 자격이 있다고. 신성드래곤은 곧 제가 불러낼 것이고, 바로 그때가 형님의 폐위가 결정되는 날이겠죠.”
“……!”
“어때요, 아이작 공자. 황녀의 머리 색이 검은색이라니, 깨죠? 백금발을 가진 아이작 공자라면 더 이해를 하실 겁니다.”
파르르 떠는 황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릴라이와 슈리도 솔직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남자도 머리 색이 검은색이면 저주받은 취급을 받지만, 여자의 경우에는 훨씬 더 처우가 안 좋다. 마녀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하물며 황녀라면……
그런데 그때였다.
“그게 뭐?”
“예?”
“검은색이 뭐 어쨌는데?”
“!”
황녀는 깜짝 놀란 듯이 아이작을 보았다. 그러나 아이작은 빡친 듯 고개를 우득거렸다.
“머리 색이 일을 하는 데 문제가 되기를 하냐, 별 거지 같은 걸로 시간 뺏고 있어.”
잠깐. 아이작?
슈리와 릴라이는 심상치 않은 아이작의 기세에 땀을 삐질 흘렸다.
설마 딸랑이?
…안 돼. 안 돼! 잠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