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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90화 (190/272)

제190화. 이게 내 방식이야 (3)

아이작이 스윽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곧 그가 허리춤에서 뽑아 든 건 황금딸랑이!

그 당당한 행동에, 에슈아 일가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아이작! 안 된다!’

‘딸랑이는 안 돼!’

물론 이젠 딸랑이가 아니지만, 에슈아 일가에겐 여전히 딸랑이로 인식되고 있는 흉포한 무기다.

‘저 딸랑이에 날아간 놈들이 몇 명인가!’

‘신입들이 전부 그거에 쳐맞고 날아갔거늘!’

천하의 콩깍지 팔불출인 릴라이까지 불안에 떨고 있으면 말을 다 한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슈리가 다급히 아이작의 팔을 잡았다. 그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붕붕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안 돼. 새끼야. 안 돼! 황족한테만큼은 안 돼! 황족한테 손대는 순간 진짜 끝이야!’

그 눈빛에, 아이작은 한심하다는 듯 슈리를 보았다.

‘야. 나도 생각이 없진 않아.’

‘그럼 그건 왜 뽑는데?!’

‘아. 이건 습관이라.’

진짜로?

‘걱정 마. 황자를 상대로 심하게 할 생각 없다.’

아이작은 황금봉을 들고 제 어깨를 툭툭 쳤다.

그 모습에 슈리와 릴라이는 안도를…….

“애새끼처럼 머리 색깔로 징징댈 거면, 엄마 젖이나 더 빨고 와야지.”

아이자악!!

차라리 딸랑이로 후려갈겨라!!

아이작의 말에 3황자는 제 귀를 의심하듯 아이작을 보았고, 형과 숙부는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도대체 엄마가 애를 어떻게 키운 거야? 아, 유모가 키워서 싸가지가 없나?”

아이자아악! 쟤 어머니가 황후님이시다!

“아. 죄송. 이거 혼잣말임.”

그게 무슨 혼잣말이야! 다 들리잖아!

그러나 아이작은 한심하단 얼굴로 루카스 황자를 보며 비웃었다.

“뭐? 제국의 영광이라는 금발? 지는 머리에 금을 그렇게 처덕처덕 처발라서 뭐 일을 잘하기라도 하나, 돈이 나오길 하나, 제국민을 생각하기라도 하나. 형에 비해 뛰어난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네. 할 줄 아는 거라곤 교황가 치마폭에 숨는 거 아니었나?”

“…너! 감히!”

루카스 황자가 눈을 부릅뜨자, 아이작이 밉살맞게 웃었다.

“아. 참고로 이거 황자님 얘기가 아니고, 내 앞에 있는 어느 덜떨어진 새끼 이야기니까 오해는 마시고. 설마 본인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만큼 자뻑이 심하진 않으시겠죠? 루카스 황자님?”

아니, 자뻑이 아니라 어딜 봐도 루카스 이야기잖아!!!

“이름은 말 안 했거든요?”

아이자악! 주어가 없다고 다 되는 게 아니란다!!

그런 숙부의 눈빛에, 아이작은 능청스레 슈리를 가리켰다.

“참고로 난 우리 집 금발 애를 욕한 거니까.”

슈리는 눈물을 머금었다.

이 미친 새끼야! 난 금발이 아니다!!

그러나 루카스는 이미 충분히 치욕스러운 듯 얼굴이 붉게 변해있었다. 입술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옴짝달싹 꿈틀거렸고, 치욕으로 굳은 얼굴은 필시 이성과 감성이 싸우고 있는 얼굴이다.

아마 한 번도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니, 황자가 이런 말을 들어봤으면 그건 그거대로 큰일인 상황이지.

마침내 루카스는 주먹을 삼키며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공자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겠군.”

오, 그래도 제 딴엔 황자라고 이성을 유지했군?

“형님하고 어울리더니, 사고 수순이 비슷해졌어.”

그리고 이쪽도 주먹 대신 말로 패길 택한 듯하고?

루카스 황자는 똑같이 돌려주려는 듯, 아이작을 도발하듯 웃었다.

“저 남매랑 같이 있으면 공자도 머리 색이 검은색으로 변할걸? 그래도 좋은가?”

“그게 어쨌는데요?”

“…뭐?”

루카스는 제 귀를 의심했고, 이번엔 황태자와 황녀 모두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 그런 아이작의 반응에 루카스는 제대로 들었냐는 듯 되물었다.

“그러니까, 공자의 백금발이 검은색이 되는 거라니까?!”

“…그러니까, 그게 뭐요?”

이번엔 가족들조차 놀랐다. 슈리는 경악하며 아이작에게 말했다.

“너 검은 머리가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그러나 아이작은 기가 찰 뿐이었다.

‘한국인한테 검은 머리로 계속 지랄해도 타격 1도 없다고.’

애초에 세계 인구의 60%가 검은 머리고.

“검은 머리가 얼마나 예쁜 줄 모르나?”

아이작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경악했다. 지금 검은 머리가 예쁘다고 한 거야?

사용인들은 당황하며 술렁거렸지만, 특히 황태자와 황녀는 아이작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특히 아이작을 보는 황녀의 눈은 놀람에 떨리고 있었다. 검은 머리를 저렇게 말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은 루카스는 말문이 막힌 듯, 어버버거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설마 성직자가 이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한 탓이다.

‘검은색을 저주받았다며 가장 터부시하는 건 성직자들이 아닌가?’

더 경악스러운 건 아이작 본인은 신께 축복받은 백금발이면서 그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설마 성직자가 검은 머리를 옹호한 거냐? 어?”

아이작은 가증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 검은 머리보다 못난 루카스 황자님은 뭔데요. 검은 머리보다 못한 가축이신가? 교황한테 길러지는 충견? 아니, 똥개 새끼인가?”

아이작의 싸늘한 웃음이 떨어지기 무섭게, 루카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저놈이 5대 신앙이랍시고, 감히 황자에게 입을 놀리는 꼴을 봐라! 그것도 장차 이 제국의 주인이 될 사람에게 감히!

하지만 곧 얼굴을 붉히던 루카스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성녀 가문이 그 모양, 그 꼴이지.”

“!”

“원래 끼리끼리 논다더니, 다 똑같은 놈들이야. 왜 검은 머리 따위와 친하게 지내나 했더니. 이제 보니 에슈아도 저주받아서 그런 거였군?”

아이작의 눈썹이 꿈틀 치켜올라갔다.

허어, 그래도 황족이라고. 자기 처지를 스스로 깨닫도록 봐줬더니, 저 새끼 기어오르는 꼬락서니 봐라?

그러나 여전히 루카스는 혐오하듯 아이작을 보았다.

“하긴, 소가주가 이 모양이면 뭐. 수준이 빤해. 청이 망하는 건 시간문제지.”

그 비웃음에, 아이작은 한쪽 목을 잡고 고개를 까딱거렸다. 아. 애새끼가 기회를 줘도 알아처먹질 못하네.

우득. 우득.

역시 이런 놈은 말보다 매가 답이지. 곧 아이작이 딸랑이를 휘두르려고 했지만, 이게 웬걸.

‘응?’

딸랑이를 든 손이 허전했다.

어?

뭐지?

제 손을 보자, 딸랑이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손을 잼잼거리는 아이작이 눈을 끔뻑거렸다.

‘어…? 이거 어디?’

당황한 아이작이 시선을 돌렸다. 딸랑이는 낯익은 곳에 있었다.

‘쑥부야아!!’

딸랑이는 릴라이의 벨트에 꽂혀 있었다. 행여나 조카가 사고를 칠까, 소리 소문 없이 아이작의 딸랑이를 가져간 것이다.

그래. 거기서 끝나면 좋은데…….

스릉.

“!?”

아이작과 에슈아의 욕에 눈이 돌아간 릴라이가 검을 뽑아 들려고 했다.

푸른 눈이 빡돌은 듯 살의를 뿜고 있다. 늘 둥글둥글하던 선량한 눈매는 칼날처럼 변해있다. 암살 모드였다.

아이작은 드물게 입을 벌렸다.

‘야 이 미친놈아! 검은 안 돼!’

황궁 내에서 유일하게 검의 휴대를 허락받은 자는 오직 황실기사단뿐. 거기에 더해 제국의 은빛 검이란 칭호를 받은 릴라이 정도가 다였다. 그 자격과 명예를 깨는 것만은 절대 안 된다.

아이작이 급히 슈리를 보았다.

‘낌슈리! 뭐 해! 숙부 놈 말려!’

그러나 슈리를 본 아이작은 기겁했다. 아이작을 욕해서인지, 슈리도 눈이 돌아가서 장갑… 아니 건틀렛을 끼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작으로서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다.

‘자식아! 그거 전투용 무기잖아!’

아이작을 모독한 걸 참을 수 없는지, 그들은 3황자를 죽이려고 했… 뭐?!

‘이 미친 새끼들! 지들이 더 눈 돌아갔어!’

아이작은 이마를 짚었다.

‘하아. 할 수 없지.’

여기서는 에슈아에서 유일하게 정상인인 자신이 해결하는 수밖에. 생각을 끝낸 아이작이 급히 하늘을 가리켰다.

“아아! 저기! 저기!”

“어?”

그곳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올라갈 때, 아이작이 먼저 주먹을 날렸다.

빠각!!!

“커헉!!”

아이작의 주먹이 시원하게 3황자의 얼굴을 갈겼다. 정통으로 얻어맞은 3황자가 멀리 날아갔다.

쾅!

“꺄악! 루카스 황자님!”

황태자와 황녀의 눈도 동그랗게 변했다.

사용인들이 새하얗게 질려 루카스 황자에게 달려갔다. 피를 흘린 루카스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면서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네놈! 본성을 드러냈구나! 감히 황족을 쳐?!”

“예엥? 뭐가여?”

“시치미 떼지 마라! 방금 주먹으로 내 얼굴을 날렸잖아! 황족 모독죄로 넘길 것이다!”

“그러시든가요.”

“뭐?!”

아이작은 푸훕 입을 가리며 초승달 눈으로 웃었다.

“최고신께서 그러셨거든요. 3황자께 마가 낀 것 같다고요.”

최고신의 이름에 루카스 황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 뭐? 최고신?”

“못 들으셨어요? 저랑 계약하신 ‘최고신’께서 말씀하셨다고요. 루카스 황자한테 마가 끼었다고!”

“!”

다른 신도 아닌 무려 최고신의 이름에, 사용인들도, 에슈아 사람도, 황태자와 황녀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필 최고신과 계약한 아이작의 말이니,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뜻밖의 말에 사용인들이 술렁거렸다.

“최고신이라니 진짜야?”

루카스 황자는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그 낯빛에 아이작은 히죽 웃었다.

그러게 누가 신의 계시로 승부하래?

하물며 최고신이면 교황가의 신이기도 하다. 하필 교황가의 신이 말했다는데, 지가 뭐 어쩌겠어?

그리고 황태자가 소문으로 곤란해하듯, 안 좋은 소문이 퍼져서 위기에 처하게 될 건 3황자다.

‘나도 적당히 할 생각이었는데.’

아이작은 마주한 주먹을 우득거렸다.

“아아, 루카스 황자께 마가 낀 것 같아서 정화가 더 필요할 것 같네요.”

“!”

우득. 우득.

아이작이 3황자의 얼굴을 부러트릴 듯 콱 움켜쥐었다.

“어디 보자. 머리를 핏빛으로 물들여볼까? 검은색이 저주의 의미면, 빨간색은 무슨 의미이려나? 어엉?”

아이작의 눈빛은 살벌했다. 멘붕이 온 3황자는 새하얗게 질려서는 아이작을 뿌리쳤다.

“신성드래곤의 축복도 못 받는 놈들이! 감히 최고신을 앞세워?!”

3황자는 아이작에게 맞을까, 급히 일어났다. 그러곤 저주를 읊었다.

“얼마나 멍청하면 신성드래곤도 소환 못 하는 황태자 편을 들어? 에슈아는 실수한 거다. 샤블리스의 폐위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어디 같이 멸망해봐라! 너희는 이미 찍혔어!”

그 말에 아이작이 씨익 웃었다.

어떡하지?

그 신성드래곤,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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