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화. 신성드래곤 (1)
아이작은 가증스럽다는 듯 3황자를 보았다. 푸흡 웃는 입꼬리는 덤이었다.
‘하다 하다 지금 신성드래곤으로 시비를 터는 건가?’
뭐, 이해는 한다.
신성드래곤이 어떤 존재인가. 황실의 칼이며 제국의 방패이며, 나라의 보물이었다.
오직 황제만이 신성드래곤과 계약하여 제국의 결계를 생성하고, 드래곤을 부릴 수 있었다.
뭐, 그런 만큼 신성드래곤과의 계약은커녕 소환도 못 하는 샤블리스가 우습게 보이는 거겠지만-
‘어쩌냐아아? 이미 걔네 나한테 있거든?’
[에이, 구라 치지 마십시오. 주인님한테 신성드래곤이 어딨습니까?]
‘뭐래. 곧 갖게 될 예정이니까 내 거 맞음.’
이미 신성드래곤을 낚을 미끼도 있고 말이다.
‘신성드래곤을 낚아서 샤블리스에게 쥐여줘야지. 크흐흐흐.’
아무래도 교황은 지 입맛에 맞는 황제를 고르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내 나라의 황제는 내가 만든다.’
하물며 신성드래곤이 황실에 귀속되면, 드래곤의 우수한 능력을 꿀꺽할 수 있다.
‘푸힣. 드래곤의 능력이 얼마나 탐스러운데.’
늘 손아귀에 두고 싶었지만, 드래곤들한테는 안타깝게도 지명 수배를 당한 처지라, 직접 연을 맺는 건 불가능하거든!
하지만 황실과 연을 맺어 드래곤을 얻게 되면?
‘그래, 드래곤만 있으면! 그 머릿수 많은 신들도 족칠 수 있어!’
드래곤들은 신들의 중요한 동맹이었다. 그러니 그 동맹을 깨버리고, 그들의 힘을 이용해 신들을 쳐낸다.
하물며 로드급 드래곤?
‘이미 마왕급이지.’
어쨌든 드래곤들은 신들을 무찌르는 데 아-주 중요한 패란 의미다.
그런 의미로 교황의 충견아. 너는 안 된다. 너는 내 계획에 도움이 되는 놈이 아냐.
그리고 솔직히 마음에 안 든다. 지들 밥그릇을 위해 어린 녀석들을 낙인찍어서 공격 대상으로 만드는 게.
아니나 다를까, 아이작은 3황자를 보며 웃었다.
“뭐, 황태자 전하를 폐위시킬 수 있음 해 보시든가요?”
아이작의 여유로운 웃음에, 루카스 황자는 되레 당황한 눈치였다.
‘뭐야. 뭔데 저리 자신만만해?’
귀족들 사이에서 샤블리스를 지지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나마 샤블리스가 인망이 없진 않은지 그의 충신들이 있긴 하지만, 이미 과반수 이상이 3황자와 교황파였다.
그리고 그 충신들조차도 샤블리스와 함께 운을 다할 것을 각오하고 있다. 모두가 다음 황제는 루카스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작 에슈아는 도대체 뭘 보고 저러는 건데?
아이작은 큭큭 웃었다.
“그러는 루카스 황자님은 어떻게 황제가 되시게요?”
“!”
생각이라도 읽은 건가? 루카스는 화들짝 놀랐지만, 아이작은 섬뜩한 눈으로 루카스에게 다가갔다.
“신성드래곤과 계약을 해야만 황제 될 자격을 얻는데, 그 계약은 어떻게 하시게? 아아아! 혹시 교황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신성드래곤과 계약시켜달라고 치맛자락 잡고 조를려고?”
당황하던 루카스의 눈에서 불꽃이 튀겼다.
“황족한테 이 무례한!”
그는 치욕스러운 얼굴로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나는 분명히 에슈아한테 경고했다. 샤블리스와 함께 있으면 멸문당할 거라고!”
“루카스 황자님!”
루카스는 이를 갈면서 황제궁에서 나갔다. 아이작은 그 씩씩거리는 뒷모습을 보며, 샤블리스를 향해 큭큭 웃었다.
“이걸로 전하를 막던 개새끼는 치웠습니다. 이제 천천히 부친을 뵈러 가시지요. 약을 전해주시려고 한 게 아니었습니까?”
목적을 달성했다는 말에, 샤블리스는 멍하게 아이작을 보았다. 처음부터 그걸 위해서였나.
황녀 역시 몹시 고마워했다. 동시에 걱정스러운 듯 아이작을 살폈다.
“감사드리지만, 정녕 괜찮으시겠습니까? 루카스 황자를 건든다는 건, 곧 교황을 공격한다는 의미입니다. 에슈아에도 피해가 갈 텐데요.”
“상관없습니다. 우리 할아버지였으면 쟤, 뼈도 못 추렸어요.”
“!”
암. 그렇지. 에슈아 유일의 양심인에 착한디착한 나였으니까 이 정도로 끝났지.
[저기요? 주인님? 양심 어디?]
저 새끼 할부지한테 걸렸으면 진짜 죽었을지도 모른다.
[3황자 일부러 돌려보내신 거잖아요? 교황 성미 긁으려고요?]
푸흐흐흐. 당연하지! 이쪽이 이리 움직였으니 교황 놈도 움직이겠지.
분명 교황의 성물도 이쪽이 가지고 있는데, 괜히 가만히 있어서 불쾌하던 참이었다.
‘교황의 속셈이 뭔지 살펴볼 기회다.’
하지만 그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샤블리스가 한숨을 쉬었다.
“황실모독죄에 대해선 내가 처리해주지. 뭐, 그렇게까지 안 해도 아마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설마 저쪽도 최고신 카드를 내세울 줄은 몰랐을 테지.”
무려 최고신의 계시라는데, 황후나 교황이 뭐라고 할 수 있겠어? 어떤 의미론 최강의 카드인셈이다.
하지만 아이작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뭐, 이번 건은 그렇다 쳐도 3황자요. 저 새끼 뭔데 황태자한테 저리 당당합니까? 뭐, 신성드래곤이랑 이미 계약하기라도 했답니까?”
“글쎄. 저 녀석도 황족의 피를 가졌으니 곧 계약을 하겠지.”
“외람되오나, 전하는 이미 계약을 하셨죠?”
쿵!
아이작의 스스럼없는 질문에, 모두의 심장이 떨어졌다. 릴라이와 슈리, 심지어 사용인들까지 입을 떡 벌렸다
그들은 어째서인지 모두 새하얗게 질려 황태자를 보았다. 아이작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작, 이 바보! 왜 하필 금기를!’
‘샤블리스 전하의 계약 건은 금구 사항이다!’
실제로 아이작의 말에, 샤블리스의 얼굴색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거기 있는 모두가 목이 달아날 것처럼 숨을 죽였고, 슈리가 미쳤냐는 듯 떨리는 손으로 아이작을 붙잡았다.
그도 그럴 게, 샤블리스는 9살의 최연소 나이에 신성드래곤과 계약을 했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신성드래곤은 한 번도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다들 거짓말로 계약했다고 한 게 아니냐고 수군거렸다.
-호호, 애초에 그 나이에 계약이 가능할 리 없었죠.
-예. 계약식에도 황실법에 따라 황제와 황태자만 참여했으니, 외부에선 알 길이 없고요.
-황제 폐하께서 검은 머리를 황태자로 올리려고 거짓말을 하신 거라니까요?
-그럼 제국민을 상대로 황실이 대사기를 쳤단 겁니까?
황실의 권위가 떨어진 것은 당연했다.
샤블리스가 쓰러질 정도로 신성드래곤을 불러도, 하물며 제국의 결계가 무너져도 신성드래곤은 절대 나타나지 않았다.
-역시 거짓말이라니까.
아무도 샤블리스의 계약 사실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전하는 계약을 하셨는데, 신성드래곤이 모습을 안 드러내는 것뿐이잖아요?”
조금의 악의도 없는 말에, 샤블리스는 뜻밖이라는 듯 쳐다보았다. 얼어붙었던 금색 눈이 조금 녹았다.
“…그대는 내가 계약했다는 걸 믿는 건가?”
“…당연하죠?”
샤블리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황실 기록에 남아있는 계약식을 말하는 거라면…….”
“아뇨. 전 문헌은 신뢰 안 하는데요.”
“!”
그딴 걸 신뢰할 거 같냐?
신성제국의 문헌 따위, 더러운 성직자들이 기록한 거잖아. 해골왕에 대해서도 온갖 것들을 부풀려서 기록해놨더만.
“저는 그냥 전하를 보면 압니다. 신성드래곤의 계약자시잖아요.”
모두가 놀란 듯 움찔했다.
특히 샤블리스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귀족들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는데.
그 눈빛에 아이작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뭐, 문헌을 볼 것도 없지.’
사실 아이작의 눈에는 정말로 보였다. 샤블리스의 심장에 새겨진 계약의 문장이 말이다. 마력으로 새겨진 것이라 다른 놈들은 몰라도, 해골왕 정도쯤 되면 자연스럽게 보였다.
‘저건 드래곤과 계약한 증거다. 내가 괜히 황태자한테 잘해준 줄 아나?’
그러나 샤블리스는 조금 떨리는 기색으로 아이작을 보았다.
“귀족 중에 나를 사심 없이 믿어준 건 그대밖에 없는 것 같군.”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다른 놈들은 눈이 븅딱이네요. 진짜도 못 알아보는 장님이요.”
“!”
아이작은 큭 웃었다.
‘이 녀석이 신성드래곤을 못 부리면 곤란한 건 이쪽이라고.’
“아무튼 전하. 계약된 용이 안 나타나는 거잖아요? 이유는 아십니까?”
초대 황제의 반려는 신성드래곤이었다. 즉 황실은 신성드래곤의 후손이고, 샤블리스 역시 그 핏줄이란 의미였다.
계약도 제대로 되어 있는데, 후손의 앞에 안 나타날 이유는 없을 텐데.
그러나 샤블리스는 어째서인지 자조적으로 웃었다.
“글쎄. 그들이 보기에도 내가 저주받았다고 생각하나 보지. 계약자한테 얼굴 한번 안 보여줄 만큼.”
“!”
굉장히 상처받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보면 알 것도 같았다. 그간 어떤 굴욕과 모멸감, 멸시를 받으며 살아왔는지.
“황녀를 도와줘서 고맙다.”
샤블리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뜨자, 황녀가 아이작의 손을 붙잡았다.
“안 그래도 그 건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
“오라버니를 조금만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황녀 샤를로트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사실 검은 머리도 그렇습니다. 오라버니는 절 위해 금발을 포기하신 것이나 다름 없으세요.”
“그게 무슨?”
“전 대륙을 뒤져 위대한 마법사에게 마법약을 받아왔습니다. 검은 머리를 금발로 물들이는 약이었는데, 재료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약이라 딱 한 명한테만 쓸 수 있었어요.”
아이작은 바로 뭔지 알겠다는 듯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 약을 썼나 보군. 그거라면 이해 간다. 구하기 어렵지.’
세상에 단 한 방울밖에 없는 재료였다.
“황위를 생각하면 당연히 오라버니가 쓰시는 게 맞는데, 제 처우를 생각하시며 제게 아낌 없이 써주셨습니다.”
본인의 약점을 지울 수 있는 기회를 여동생에게 양보한 것이다.
그리고 샤블리스는 여동생에게 양보한 걸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설령 본인의 목숨을 없애서 신성드래곤을 불러내려고 했던 일까지 있었더라도.
샤를로트는 아이작에게 부탁했다.
“신성드래곤은 멜리사 성녀님의 핏줄은 공격할 수 없다 들었습니다.”
“!”
“신성드래곤이 없어서 황실이 위태로운 건 둘째 치고, 결계까지 위태로워져서 애꿎은 제국민들까지 죽는 일이 생겼습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요. 아이작 공자께서 위치만 파악해주시면, 저희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싸워서 계약 이행을 부탁할 생각입니다.”
그 말에 아이작이 큭 웃었다.
“아뇨, 저하. 그리 안 하셔도 됩니다.”
“네?”
말 안해도 어차피 신성드래곤은 머리를 끌고 잡아올 생각이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지. 잡아둔 신성드래곤을 이용해서 수장 놈을 끌고 오면 그만.’
아이작의 미소에 샤를로트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 일을 해결해주시면 아이작 님께 무척 중요하고 필요한 걸 드리겠습니다. 정확히는 드릴 수 있게 되는 거겠지만.”
“예? 저한테요?”
돈인가?
“돈보다 중요한 겁니다. 아이작 님이 무척 좋아하실걸요?”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