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95화 (195/272)

제195화. 신성드래곤 (5)

“예하!”

“예하,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귀족들은 난리가 나서 교황을 쫓았다. 심지어 금의 추기경조차도 들은 적 없는 이야기인 듯했다.

“왜 그런 조건을 들어주셨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황위 계승의 승인권은 너무 크다. 지금까지 어떻게 황실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교황의 그 권한으로 지금까지 입맛에 맞는 황태자를 황위에 올리고, 숱한 황자들이 자신들의 눈치를 보도록 만들었다.

아무리 본인이 잘해서 황태자가 임명될지언정 결국 교황의 승인이 없으면 황제가 될 수 없었으니까.

괜히 오랜 세월, 그 많은 황자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교황청과 교황에게 굴복해온 것이 아니다.

“그 권한을 내려놓으시면 황실이 교황청의 눈치를 볼 리가 없습니다.”

그러자 교황이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괜찮다. 어차피 신성드래곤은 못 데려온다.”

“!”

교황은 가볍게 조소를 지었다. 그는 처음부터 이길 싸움이라는 걸 알고 그런 조건을 건 것이었다.

“신성드래곤은 만나는 것부터 난제지.”

하지만 측근들은 불안한 기색이었다.

“외람되오나, 아이작 에슈아가 이틀이면 데려올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허세라고 하기엔 너무 구체적인 날짜입니다.”

“짐작 가는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럼 정말 황태자가 신성드래곤을 데리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교황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그건 허풍이다. 귀족들을 동요시키려는 계략이야.”

“그러면 존재하지도 않는 드래곤을 이틀 만에 데려오겠다고 한 겁니까?”

교황은 톡톡 의자의 손잡이를 쳤다.

“최근, 신성드래곤이 율리우스 왕국에 상인 행세를 하며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었다.”

“!”

그들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바로 눈치챘다. 율리우스면, 황실의 아룡을 타면 반나절 거리다.

“그럼 그 드래곤을 데려오겠다는…….”

“어차피 못 데려온다. 그 드래곤은 이미 그 나라를 떠났어.”

교황은 큭 웃었다.

그 웃음에 금의 추기경은 바로 뭔가를 떠올린 듯했다. 안 그래도 얼마 전 교황이 이상한 명령을 한다 싶었더니.

“그래서 율리우스에 금의 사제들을 우르르 보내셨던 거군요.”

“그래, 신성드래곤은 황실과 사제들의 냄새를 맡기만 해도 귀신같이 사라지는 놈들이다.”

“하긴, 신성드래곤은 헬라 황실과 사제들을 극도로 혐오하고 싫어하는 놈들이니까요.”

괜히 수십 년 동안 그들의 흔적도 찾지 못한 것이 아니다.

마치 상어가 피 냄새를 맡듯, 놈들도 약간의 기운만으로 자리를 떴다. 특히 사제라면 학을 떼기에 말문, 아니 함께 있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단 것이었다.

그런데 뭐? 아이작 에슈아가 신성드래곤을 데리고 있어? 결계를 보수 중이야?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새빨간 거짓말이지.

“그래서 거짓말을 바로 눈치채시고 그런 내기를 하신 거군요.”

“눈에 잡힐 듯한 희망에 목숨을 거는 놈들의 모습이 상상 가지 않느냐?”

희망에 목숨을 건다는 건 샤블리스를 말하는 것일까.

“그놈은 절대 황제가 될 수 없다. 내가 그렇게 만들지 않아.”

이 나라의 황제는 자신이 만든다. 감히 자신에게 거역하는 놈 따위를 올릴 것 같은가?

“신성드래곤은 절대 놈들의 편을 들지 않는다.”

이 내기는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었다. 그러니 오히려 잘된 셈이었다.

“에슈아도 함께 처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

교황은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기어오르는 청과 아이작이 몹시 거슬리던 그였다.

“철없는 손주를 둬서 일라이만 불쌍해지게 됐군. 기껏 후계를 정해 꿈에 부풀어 있었을 텐데, 귀한 후계를 잃게 생겼으니.”

하지만 그 무렵.

“야. 멍텅구리. 안내해.”

“커헉!”

연회장에서 나온 아이작은 대뜸 반룡을 걷어찼다. 아이작으로 변해 있던 반룡은 이게 뭔 짓이냐는 듯 항의했다.

“안내라니, 무슨 안내!”

“몰라서 물어? 니들 수장한테 안내하라고.”

“왜! 오늘 자정에 근교에서 만나게 해 준다고 했잖아!”

아이작은 귀를 후볐다.

“아아아 이제 그럴 시간 없어졌어. 됐으니까 직접 머리채 잡고 끌고 온다. 그러니 수장네 집으로 안내해.”

“뭐라고?!”

반룡은 그게 말이나 되냐는 듯 눈을 부릅떴다.

“수장님과 만나게 해 드리는 것만으로도 분에 넘치는 줄 알아라! 감히 어디서 직접 그분을 뵈러 가려는… 커헑!”

아이작은 닥치라는 듯 반룡을 짓밟았다.

“새끼가. 직접 만나러 가 주는 걸 고맙게 여겨야지. 지금 당장 니 새끼 잡아서 황실로 가기 전에, 순순히 안내해.”

“흐억?!”

“반룡이라 샤블리스의 계약하고는 전혀 연관 없지만, 적당히 해체하면 쓸 만해지겠지.”

“으아악!”

아이작은 알아들었냐는 듯 눈을 번득였다.

“수장이 있는 곳까지 얼마나 걸려?”

“수장께서는… 굉장히 먼 곳에 계신다.”

“아, 얼마나 걸리냐고.”

반룡은 데구르르 눈알을 굴렸다.

“지금부터 날아가면 30일…….”

“뒤질래? 어디서 파충류 대가리 굴리냐? 날아가긴 뭘 날아가. 날개 찢기고 싶냐? 드래곤이면 드래곤답게 마법을 써.”

“크윽!”

반룡은 울먹였다.

아니, 무슨 사제가 이렇게 입이 험해?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작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텔레포트로 얼마나 걸리는데?”

텔레포트라고 해서 바로 수장 집까지 연결되는 건 아니다. 인계엔 여러 힘들이 얽히고 부딪치고 있어, 자칫 차원의 미아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중요한 장소일수록 가기 어렵게 하는 것이 방어의 기본. 직속 부하라고 하더라도 수장쯤 되는 놈의 본거지를 막 갈 수 있으면 안 되지. 이렇게 인질이 되면 단번에 본인들 본거지가 뚫리는 셈이니까.

뭐, 집주인이라면 직통 이동석이라도 가지고 있겠지만, 지금은 없으니까. 그랬기에 아이작은 이틀로 잡은 것이었다.

반룡은 눈을 데구르르르 굴렸다.

“으음…. 텔레포트라고 만능은 아니라, 한번에 최대 거리가 50km라서 15일 정도는 걸릴 것…….”

아이작의 눈이 험악해졌다.

“야, 장난해? 그건 제일 하급 텔레포트잖아.”

“?!”

“1000km짜리 써.”

“아, 아니.”

“2000km!”

“아, 아니. 그건 재료가 든다! 비싸!”

아이작은 가증스럽다는 듯 웃었다. 이 새끼가, 감히 해골왕 앞에서 마법으로 사기를 쳐?

“재료라고 해 봐야 하급 루비면 되잖아. 장난하냐?”

반룡은 당황한 듯 바들바들 떨었다.

뭐야, 뭔데 이 자식 마법 재료에 대해서 그렇게 구체적으로 아는 건데?!

“그리고 드래곤이 재료오? 옘병하고 앉았네! 대기에서 마력 뽑아 쓰는 놈들이, 개뿔이 재료!”

젠장! 어떻게 아는 거냐고!

“꼬리를 잘라버리기 전에 앞장서라.”

“크윽! 넵!”

* * *

‘젠장…! 결국 여기까지 오다니!’

모래 사막.

결국 상급 텔레포트로 수장의 거처까지 날아온 반룡은 땅을 쳤다. 그는 미치고 환장할 판이었다.

‘저 미친놈!’

아이작이 상급 텔레포트로 수장의 집까지 가자는 말에 당황하긴 했었지만, 한편으로 잘됐다 싶었던 반룡이었다.

그도 그럴 게, 상급 텔레포트?

‘감히 인간 놈이 그걸 견딜 수 있을 것 같냐?’

마법은 편리함에 비례해서 위험 부담이 커진다. 그리고 텔레포트도 상급으로 갈수록 차원과 차원의 압축률이 상당해서 부담이 커졌다.

드래곤들이면 몰라도 인간들은 한번에 500km짜리만 되어도 멀미로 의식을 잃고, 1000km 이상을 쓰면 정신이 버티지 못하고 거의 죽었다.

그래서 인간들은 텔레포트를 쓰더라도 50km 이하의 범위를 쓰거나, 천천히 텀을 두며 이동을 했다.

상급 마법사들이야 속도와 거리를 훨씬 넓히지만, 아무튼 몸에 무리가 간다.

그런데, 이놈은 뭔가!

‘일부러 죽이려고 쉬지도 않고 달려왔는데!’

그의 떨리는 동공이 아이작을 향했다. 반룡은 인간이 감히 상급 텔레포트를 입에 담느냐, 어디 혼쭐나 보라며 상급 텔레포트로 텀도 없이 펑펑펑 달려왔다.

그런데 왜 멀쩡한 건데?!

반룡이라서 자신도 힘든 거리를! 어떻게!

“드디어 도착했냐?”

도대체 어떻게 하품을 해?!

“에휴. 뭐, 좀 느리긴 하지만. 이 정도면 뭐, 됐다.”

이게 느리다고?!

그뿐이 아니었다.

“샤브, 괜찮냐?”

“주인님보다 느려서 굼벵이처럼 답답했던 것만 빼면 문제없습니다.”

왜 따라 온 여자도 멀쩡한 건데?!

멘붕에 빠져 있는 반룡을 보며 아이작은 혀를 쯧쯧 찼다. 뭐어, 상급 텔레포트로 자신들을 엿먹일 생각이었던 모양이지만.

‘바보 놈. 해골왕이랑 진마한테 이깟 걸로 먹히겠냐?’

마법의 정점에 선 마왕과, 그 바로 밑인 최고위 마족 십사육마한테?

아무튼, 아이작은 다른 사람들은 그대로 두고 샤브나크만 데리고 왔다. 일단 때가 때인 만큼 느긋하게 올 여유는 없었다.

자신들이 아니면 상급 텔레포트를 견딜 수 있을 리도 없었고, 드래곤이 상대면 자칫 마법전, 즉 전면전으로 이어질지도 몰랐다. 게다가 샤브나크도 제힘을 드러낼 수 있는 쪽을 좋아했고.

내기가 걸린 만큼, 단숨에 해결 봐야 한다.

‘뭐, 혹시나 싶어서 레아한테 성물을 빌려오긴 했지만.’

신의 사냥꾼 기원을 가진 레아라면 드래곤도 죽일 수 있었다. 그녀가 힘을 담아준 물건이라면 드래곤 수장에게도 치명상을 입힐 순 있겠지.

‘뭐, 사냥이 목적이 아니니 거기까진 안 갔음 좋겠군.’

아무리 그래도 피투성이가 된 드래곤을 끌고 가면, 교황과 귀족들 앞에 내세우기가 좀 그렇지 않겠는가?

그렇게 아이작은 하얀 나무들 사이에 숨겨져 있는 입구로 들어갔다. 지하 미궁으로 이어지는 통로였는데, 계단이 몹시 길었다.

“뭔가 비밀 아지트 느낌이군. 진짜 여기냐?”

“그래…. 수장님의 비밀 장소인데, 이곳에 계시는 일이 더 많으시다.”

‘뭐, 거짓말 같진 않지만.’

계단으로 내려갈수록 반딧불 같은 빛의 정령들과 신성드래곤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느껴지는 기운이 상당한 걸 보니, 일개 드래곤은 아니다. 괜히 신성드래곤이라 불리는 게 아닌지, 아주 성스러운 기운이었다.

마력의 기운이 강한 다른 드래곤들에 비해서 마와 어둠을 싫어하고, 평화를 사랑한다는 놈들 다웠다.

‘굳이 따지면 백의 신앙과 가까우려나?’

비슷한 걸 느낀 듯, 샤브나크가 골치 아프다며 칭얼거렸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면 전면전으로 갈 경우 거래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곤란하네요. 이러면 마족인 걸 들키면 끝장이겠는데요.]

위스퍼의 말에 아이작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마족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놈들답게 참 마기 없이 깨끗한…….

[주인님! 주인님이다!]

…엉?

신성드래곤의 둥지에서 있어서는 안 될 헛것이 보였다.

[주인님!]

엉???

어둠 속에서 시허연 물체가 도도도 달려왔다.

그래, 시허연 뼈다귀가…….

엉? 뼈다귀??!

아이작과 샤브나크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주인님!]

그들 앞에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애기 스켈레톤이었다.

그래, 예전에 청의 펜타곤 때 신성제국에 소환되었다가 아이작이 돌려보냈던, 그 애기 스켈레톤!

위스퍼조차 얼이 빠진 듯했다.

[마족이 왜 여기 있습니까?]

내 말이.

하지만 그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애기 스켈레톤은 반갑게 아이작에게 안겼다.

[주인님이 찾아오셨어! 오셨어!]

아이작은 얼이 빠진 듯, 애기 스켈레톤을 집어 들었다.

뭐지??

얘 진짜 스켈레톤인데?

왜 신성드래곤의 둥지에 얘가 있지? 그것도 관리가 잘 되어 있는데?

그런데 그때였다.

쿵!

“주인님!”

순간 차원이 다른 마력이 아이작과 샤브나크를 찍어 눌렀다. 헬라 근처에서 봤던 마법사들, 그리고 일개 용들과는 급이 전혀 다르다.

이 정도면 자신이 봐온 놈들 중에서도 최강급……!

“뭐냐. 너 뭔데 그 애가 반기는 거냐?”

“!!”

낯선 목소리가 아이작과 샤브나크의 뒤에서 들렸다.

둘은 흠칫 놀랐다.

자신은 둘째 치고, 샤브나크의 뒤를 잡았다고?

샤브나크도 일부러 제힘을 안 드러내긴 했지만,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의 강자였다. 이거, 처음부터 전력으로 부딪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주인님.”

상대의 살의에 샤브나크도 바로 경계했다.

거기에 서 있는 건 인간 모습의 절세 미녀였다. 그녀의 사나운 금빛 눈이 굉장히 불쾌한 듯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분명 저놈이 자신이 찾던 신성드래곤 수장일 것이었다. 압도적인 기운과 힘이 그걸 증명했다.

그래. 그런데…….

“네놈, 해골왕이랑 무슨 관계냐?”

…왜 흑발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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