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6화. 신성드래곤……? (1)
마치 금안의 흑표범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마법사치고는 암살자나 검사에 가까운 복장이었다.
목을 감싸는 활동성 있는 민소매 옷에, 다리는 타이즈로 감싸고 있다.
그리고 비단 마냥 찰랑거리는 긴 머리카락…….
뭐지?
왜 신성드래곤이 흑발이야?
아이작은 제 눈을 의심했다.
옆에 있는 샤브나크조차 매우 드물게 동공 지진을 일으키고 있었다.
“신성드래곤이 암흑 속성이었습니까……?”
저건 뭔 이단 새끼냐는 눈빛이다.
응, 그래. 솔직히 말하면 나도 당황스럽구나.
아니 뭐, 검은 머리를 보고 이단이니 뭐니 하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자신도 검은 머리였던 만큼, 오히려 반가우면 반가웠지, 싫어할 리가 있나. 문제가 있다면, 저게 신성드래곤이란 거지!
‘뭐지?’
아니, 자신이 기분 나쁜 게 아니라, 애초에 저놈들이 저런 걸 용납할 리 없단 의미다.
‘마족을 벌레 취급하는 놈들이??’
신성드래곤은 마족과 결을 달리 하는 놈들이었다.
실제로 마족을 같은 마법의 종족이라고 인정조차 하기 싫어하는… 아니, 마족 존재 자체를 경멸했다.
‘괜히 신성제국의 수호룡인 게 아니지.’
그런 놈들이 절대 검은색을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다. 괜히 샤블리스가 교황에게 저격을 당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흑발??
결국 아이작은 힐끗 반룡을 볼 수밖에 없었다. 저게 정말 신성드래곤의 수장이냐는 눈빛.
‘속이면 뒤진다?’
하지만 반룡은 이마를 짚었다. 마치 이런 반응일 줄 알았다는 얼굴이다.
“그런 표정 하지 마라…. 수장님이 맞으시니…….”
“……?????”
맞다고?!
“그래, 신성드래곤 수장, 사피엔 님이시다…….”
…시벌, 진짜 수장이라고?!
그러나 정작 팔짱을 끼고 있는 사피엔은 몹시 불쾌한 얼굴이었다.
“아론, 이놈들이 왜 여기에 있지?”
“그… 그게.”
“일이 생겨서 약속 시간보다 먼저 왔어.”
끼어든 건 아이작이었다.
“열두 시간 빨리 온 것뿐이잖아. 그 정돈 괜찮지 않나?”
그러나 사피엔은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열두 시간? 무슨 소리지? 약속은 일주일 뒤였을 텐데.”
반룡은 어쩔 줄 모르며 수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용서하십쇼. 실은 수장님의 그림자무사를 보내려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수장님께는 인간들이 약속을 파투 냈다고 하려고 했습니다.
뭐? 일주이일??
아이작도 스윽 분노하듯 반룡을 보았다.
새끼가, 그딴 수작을 부리려 했어?
양쪽의 험악한 시선에, 반룡은 자기도 어쩔 수 없단 얼굴이었다.
“그 머리로 사제들과 만나게 할 순 없었습니다……!”
아, 납득.
아이작은 하늘을 보았다.
‘흑발의 신성드래곤이라니. 완전 이단이지. 부하들이 몸을 날려 막으려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런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
“뭔 문제야? 머리 색을 못 바꾸는 것도 아닌데.”
뭐가 어째?! 못 바꾸는 게 아냐?
반룡은 마찬가지라는 듯 얼굴을 짚었다.
“수장님께 머리 색을 바꿔달라고 해도 안 바꿔주실 거잖습니까!”
“당연하지. 어떻게 만든 머리 색인데.”
“수장님!”
아이작은 기가 찼다.
뭔데? 신성드래곤이 왜 저리 흑발을 선호하는 건데?
아니, 그보다 ‘어떻게 만든 머리 색’이라니…….
“설마… 일부러 그 머리를?”
“뭐가 문제지?”
문제 많거든요?!
“설마… 그 머리 때문에 신성제국에 모습을 안 드러냈다든가…….”
“그건 아니다. 그것과는 연관 없다.”
반룡의 즉답에 아이작은 미간을 좁혔다.
뭐, 그렇겠지. 다른 신성드래곤들은 멀쩡한 듯하니까.
그리고 혼자만 저러면 이단으로 찍힐 법도 한데, 사피엔은 신경도 안 쓰는 듯했다.
오히려 그녀는 머리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너, 해골왕이랑 무슨 사이냐고.”
아앙???
“뭔데 그 아이가 널 반기는 거냐고.”
그 말에 아이작은 슬쩍 애기 스켈레톤을 보았다.
[주인님! 주인님!]
뭐… 신성드래곤이라도 스켈레톤의 말까진 알아듣진 못하나 보군.
스켈레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건 동족이나 자신 그리고 덕질의 끝판왕을 달리는 샤블리스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해골왕이라고 말해줄 순 없지.
“네가 신성드래곤 수장이면, 샤블리스라고, 황태자와 계약한 놈이 누군지쯤은 알겠지? 그놈이 누군지 소개해줘.”
그러자 어째서인지 움찔하던 사피엔이 미간을 좁혔다.
“해골왕이랑 무슨 관계냐고.”
…뭐지? 이 집착?
아이작은 의아했지만, 곧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이쪽 용건이 먼저다. 대화와 거래는 빠를수록 좋지, 너희가 좋아할 것을 가져왔다.”
심지어 드래곤들이 환장할 만한 것들로만 들고 왔지.
아이작이 주머니의 보석을 보이자, 반룡의 눈이 완전히 돌아갔다.
“저, 저건?!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로드석?! 아아! 이거는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철혈석!!”
아이작은 예상대로라는 듯 큭큭 웃었다.
그래, 니들의 사고방식 따위 빤하…….
“보석 따위, 내겐 안 중요하다.”
뭐가 어째?! 드래곤이 보석을 싫어한다고???
놀라서 반룡을 보자, 심지어 반룡은 이미 해탈한 듯했다. 그 무엇으로도 저분을 못 꼬실 거라는 듯한 얼굴이다.
아이작은 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황태자와 계약한 신성드래곤을 소개해주면, 해골왕과의 관계를 말해주지.”
그러자 사피엔은 빡친 듯 답했다.
“그건 나다!”
뭐?
“수장님!!!”
반룡은 그걸 말씀하시면 어쩌냐는 듯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나 사피엔은 열 받은 듯 긴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헬라의 초대 황제와 신성드래곤 일족의 계약에 따라 지들이 멋대로 계약하긴 했지. 자, 나는 말해줬으니 너도 답을 해!”
하지만 정작 아이작은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샤블리스 이 자식. 일개 드래곤도 아니고, 무려 신성드래곤 수장이랑 계약한 거였어?!
시바, 그러니까 뭔 지랄을 해도 안 나오지!
샤블리스에게 붙어 있는 신성드래곤 이용해 먹으려 했더니, 하필 수장이 그 상대라니.
‘재능이 출중하다고 칭찬을 해야 하나.’
그냥 드래곤도 빡센데, 수장을 끌고 가야 한다니, 진짜 X 될 수도 있었다. 난이도가 갑자기 올라간다.
하지만 사피엔은 포기하지 않고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해골왕과 무슨 관계지?”
“무슨 관계긴! 해골왕의 마력이라도 느꼈나 본데. 해골왕의 뼈를 먹어서 그런 거니 신경 꺼라.”
그러자 사피엔은 헛웃음을 흘렸다.
“네가 아이작 에슈아란 건 약속을 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16년 전, 보물고에 있던 헤츨링이 네 이야기를 했으니.”
“!”
16년 전 보물고의 헤츨링이라면…….
-택해라. 너희는 여기서 보물을 고르고 시험을 종료하겠느냐. 아니면 3관에 도전하겠느냐?
-젖먹이. 왜 넌 무릎을 꿇지 않지?
-훌륭하군! 진정한 성자의 자세야! 넌 3관으로 가라! 너는 합격이다!
-이중에서 너만 유일한 합격이야! 세상에. 경사야, 경사로다. 이런 답은 초대 이후로 처음이다! 성자가 나타났어!
그래, 그놈이 있었지.
그 새끼, 생각해보니 신성드래곤이었지…….
아니나 다를까, 사피엔이 험악하게 아이작을 보았다.
“돌잡이 물건으로서가 아니라, 마력으로서 해골왕의 뼈를 노린 것 같다고 하더군. 심지어 십사육마를 처리했다고.”
그녀의 시선이 힐끗 샤브나크를 향했다. 아마 샤브나크의 정체를 눈치챈 듯했다. 마족을 봐서인지, 사피엔의 눈이 더욱 험악해졌다.
“애초에 율리우스에서도 그렇다. 네놈은 공주의 몸에서 해골왕의 뼈를 빼냈지만, 성력으로 뽑아낸 게 아냐.”
“!”
“네놈은 그걸 마력으로 조정해서 뽑아낸 것이다.”
하, 새끼. 누가 수장 아니랄까 봐. 그걸 눈치채네.
“너, 설마…….”
끄응, 정체를 들키나?
“해골왕의 아들이냐?”
…뭐, 인마?
아이작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사피엔을 보았다. 하지만 사피엔의 눈은 진지했다.
“그것도 아니면 숨겨진 십사육마냐?”
아이작은 기가 찬 듯 사피엔을 보았다.
이쯤 되니, 슬슬 이상해진다.
“그러는 넌 뭔데 해골왕한테 그리 집착하는데?”
“뭐?”
“걔가 너한테 피해 끼친 적 있음? 찾으면 뭘 할 건데?”
“그게 네놈한테 뭐가 중요하지?”
중요하지! 해골왕이 나니까!
하도 드래곤들한테 한 짓거리가 많아서… 지명 수배 건으로 날 족치려는지 아닌지 알아야 하니까!
하지만 뚫린 입이라고 그렇게 지껄일 순 없어서 아이작은 이렇게 답했다.
“궁금한 쪽이 먼저 꿇어야지. 정 알고 싶으면 신성제국 황실로 같이 가지? 그럼 알려줄게.”
그러나 사피엔은 기가 찬다는 듯 조소를 지었다.
“황실? 먼저 신성드래곤을 배신한 게 누구인데.”
뭐?
배신이라니, 무슨 소리지?
“황실이 니들을 배신을 했다고?”
사피엔은 살벌하게 마력을 끌어올리며 다가왔다.
“니들이 어떤 걸 가져오든, 이 내가 신성제국에 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신성제국에 해골왕이 있다면 갈래?”
“…해골왕이 신성제국에 있다고?”
사피엔이 움찔하자, 반룡이 비명을 지르면서 아이작의 입을 막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덜컥!
아이작이 뭔가를 밟았다.
그리고 뭘 밟은 건가 싶던 그때, 아이작은 숨겨진 공간으로 넘어갔다.
쾅! 데구르르!
“주군!”
낯선 공간에 빠진 아이작은 크윽, 뒤통수를 짚었다.
아무래도 비밀 통로로 빠진 모양이었다.
그래, 드래곤의 비밀의 방이면 보통 재물이 있기 마련이지. 그런 놈들이니까.
그래…. 그런 놈들…….
…응?
방을 둘러본 아이작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었다.
어…. 뭔가 가득하긴 한데, 이거 금이 아닌데.
금은커녕 시허연 뭔가가 가득…….
아니.
뭐지? 이거, 왜 데자뷔가??
[황태자의 방에서 이거랑 똑같은 걸 본 거 같은데요.]
아니, 그건 나도 알아, 새끼야.
그러나 한숨을 길게 내쉬며 내려오는 사피엔이 이마를 짚었다.
“뭐, 이걸 봤으니 말해주지.”
“……!”
“해골왕을 찾으면 뭘 할 거냐고?”
“!”
“혼약할 거다.”
…뭐, 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