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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97화 (197/272)

제197화. 신성드래곤……? (2)

뭐?

혼약?

아이작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지금 뭘 들었냐?’

잘못 들은 건가? 성자로 환생했더니, 드디어 귀가 맛탱이가 간 건가?

하지만 사피엔의 말에, 옆에서 심상치 않은 마기가 느껴졌다.

“혼약?”

샤브나크였다.

“혼야아아악?”

아무래도 잘못 들은 건 아닌 모양이군.

샤브나크는 지금 본인이 뭘 들은 거냐는 듯 눈이 돌아가 있었다. 그래서 좀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샤브나크는 1등 충신이었다.

평소 감정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녀석이라 사고도 안 치는… 얌마! 너 왜 폭주하고 있어!

“감히 신성드래곤 따위가 어느 분한테.”

샤브? 진마라서 네 마력이 넘쳐난다는 건 알겠는데, 마기는 누르지 않으련? 반룡이 지금 거품을 물고 쓰러지려고 한단다.

“주인님, 저 시건방진 도룡뇽을 죽여도 됩니까?”

아니, 안 된다.

장갑 벗지 마! 손도 우득거리지 말고!

반면 아이작은 당황하고 있었다.

아니. 그도 그럴 게, 혼약이라니!

뭔 소리인가 이건!

반면 화를 내는 둘의 반응을 뭐라 생각한 건지, 반룡은 얼굴을 짚고 있었다.

“사제들에게 이 무슨……!”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얼굴이다.

아니나 다를까, 반룡이 황급히 대처했다.

“방금 말은 수장님께서 해골왕을 죽인다는 걸 잘못 말씀하신 거다! 그러니…….”

“혼약할 거다!!”

“수자아앙님!!!”

반룡이 머리를 쥐어뜯자, 아이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 반응을 보니, 이제 부정할 수도 없겠군. 그러니 아이작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신성드래곤이 해골왕한테 혼약이라고?’

미친. 무슨 성직자가 마왕한테 시집가고 싶단 말을 하고 앉았어?

“…농담이지?”

“농다암?”

눈을 희번덕거리며 뜬 사피엔은, 어째서인지 굉장히 불쾌해했다.

“내 말이 농담으로 보이나?”

“…….”

아이작은 대답 대신 슬쩍 반룡을 보았다. 설명 좀 해 보라는 째려봄에, 반룡은 머리를 벽에 박았다.

“뭐… 사피엔 님은 역대급 천재지만, 좀 특이한 분이시지…….”

“내가 뭐?”

“아니, 사실이잖습니까!”

사피엔은 신성드래곤, 아니 모든 드래곤 일족을 통틀어 최연소 수장이었지만, 좀 기묘한 구석이 있었다.

재능과 성적은 압도적으로 우수해 헤츨링 때 이미 로드급들을 뛰어넘었으나, 유희도 싫어하고, 나가는 것도 싫어하고, 보석 대신 이상한 걸 수집하고, 심지어 흑마법에 관심을 가지고, 그녀를 질투하는 다른 드래곤들을 때려눕혔다.

-실력은 압도적인 천재이나, 취미가 좀 이상한 듯하오.

오죽하면 어른들이 헤츨링이던 사피엔에게 이렇게 말했겠는가.

-사피엔! 자꾸 말 안 들으면 사악하고 더러운 해골왕한테 시집보낸다!

-해골왕이 얼마나 저질스러운지 모르지?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사피엔은 해골왕이 정말 병신인 줄 알았다. 그래, 해골왕을 실물로 보기 전까진!

그리고 때는 사피엔이 아직 어린 헤츨링이던 시절!

-크악! 해골왕이 침입해왔다!

-실버 놈들도 전부 당했어!

-이 잔인무도한 놈!

친척과 집안 어른들이 해골왕에게 우르르 쓸려나갔지만, 기이하게도 사피엔은 압도적인 힘의 해골왕에게 한눈에 반하게 됐다.

그래서 그 뒤로는 해골왕에게 시집보내겠다는 말을 들으면-

-너무 좋아! 보내줘!

그때의 인상이 어찌나 깊었는지, 헤츨링이던 그녀는 열심히 해골왕에 대한 마음을 키웠다.

하지만 헤츨링들은 무리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갇혀서 귀하게 길러지는 법. 인내심을 갈고 갈아 겨우 성룡이 되어 해골왕을 직접 보러 갈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만세! 더러운 해골왕이 신들에게 봉인당했다!

-그 저주스러운 놈! 드디어 해치웠어!

이 빌어먹을?!

애석하게도 사피엔이 막 성룡이 되었을 때, 해골왕은 벌레에 봉인당해버렸다. 그게 겨우 150년 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피엔은 사제들은 보기만 해도 치가 떨린다는 듯 몸을 떨었다.

“그 개 같은 신 놈들. 감히 누굴 봉인해? 해골왕을?”

…눼?

“그리고 그딴 신들을 따르는 신성제국 놈들도 똑같다! 신성제국 망해… 아니, 그냥 뒤져!”

아이작은 먼 산을 보았다.

신과 성직자를 증오하는 신성드래곤이라니.

이단 새끼냐?

[오오, 그래서 황실에 안 나타났던 거군요? 신성제국 황실, 망할 만하네요!]

아이작의 눈은 더더욱 아득해졌다.

…시발. 알고 보니 이거 원흉이 나 때문인 거냐? 진짜 그런 거야?!

떨리는 동공은 멈출 생각을 안 했다. 샤블리스가 괴로워하던 걸 떠올리니, 땀은 삐질삐질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피엔은 험악하게 눈을 부릅떴다.

“지금도 신계에 쳐들어가 다 박살 내려는 걸 참는 중이다. 신들 주제에 해골왕을 벌레 따위에 봉인하다니.”

“하…하하.”

그보다 그 봉인된 놈, 여기 있는데?

아이작은 찔리는 마음을 숨기며 확인했다.

“그럼 신성제국에 모습을 안 드러낸 건, 해골왕이 봉인당한 원한이냐?”

그러자 사피엔이 헛웃음을 흘렸다.

“뭐, 괘씸함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그 이유는 아니다.”

“엉?”

“황실과 계약한 전대 신성드래곤이 죽었지.”

아이작은 바로 누군지 알았다.

[전대면 황제가 계약한 드래곤이겠군요?]

그래. 신성드래곤은 황제와 계약하니까.

정확히는 신성드래곤과 계약한 황실 사람이 황제가 되는 것이지만.

“황제의 신성드래곤은 18년 전에… 황태자가 어릴 때 죽었다 들었는데…….”

“그 드래곤은 나의 삼촌이다.”

“!”

아이작은 놀란 듯 사피엔을 보았다.

“부모를 잃은 나를 대신 키워주신 고마운 분이지. 황실을 지키다가 불구가 되셨지만.”

“그럼 그 삼촌이 불구가 되어서 황실에 원한을……?”

그러자 사피엔이 코웃음을 쳤다.

“그것도 열 받지만, 인간을 위해 스스로 다쳤는데 그걸로 뭐라 하겠나. 바보같이 팔불출처럼 지 계약자 자랑만 하던 삼촌이니까. 그건 그러려니 한다.”

“그럼 왜…….”

“삼촌이 죽어갈 때, 황실에 서신을 보냈다. 치료를 부탁한다고. 전처럼 황실을 돕지는 못할 몸이지만, 그간 황실에 바친 충정과 의리를 보아 부탁한다고.”

“!”

사피엔은 증오스럽다는 듯 눈을 번뜩였다.

“계약자라면 충분히 치료해줄 수 있는 상처였다. 하지만 답신은 오지 않았지. 황실도 안 오고. 결국 삼촌은 끝까지 황제가 올 거라 믿다가 돌아가셨다. 개죽음이었지.”

그런 일이 있었다고?

“아무리 그래도 답신도 안 온 건 이상해서 장례까지 치른 후 찾아갔지. 계약자라면 드래곤을 그리워할 것 같아서 유해와 소식도 전해줄 겸. 하지만 거기서 알게 된 건, 황실이 오지 않은 진짜 이유였다. 그 이유가 뭔지 아나?”

“뭐였지?”

그녀는 역겹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역병이 돌 때라, 어린 황태자한테 해를 끼칠 수 있기에 외출하지 못하겠다는 이유였다.”

“뭐라고?”

“이미 불구가 된 드래곤 따위, 더 이상 가치가 없으니 신경 쓸 필요도 없었던 거야. 결국 계약자보다 지 핏줄이 중요하다는 거겠지.”

하지만 사피엔은 그걸로 끝이 아니라고 했다.

“기가 차서 황실에게 삼촌의 물건이라도 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또 그거에는 답신이 오더군?”

“뭐라고 왔는데?”

“황실의 물품이라서 돌려줄 수 없다고. 그래놓고, 지금 계약을 논해? 그딴 이기적인 것들을 지켜줘야 할 이유가 있나?”

위스퍼는 바로 질색했다.

[와…. 알고 보니 황실 이놈들, 진짜 개새끼들인데요? 소환 못 하는 것도 그냥 자업자득 아닙니까?]

‘뭐, 그 서신을 보낸 게 진짜 황실이라면 말이지.’

[예?]

아이작은 가증스럽다는 듯 웃었다.

‘황실이 바보도 아니고. 본인들이 한 짓이 있는데, 왜 소환이 안 될까 고민할 리 없잖아.’

실제로 아이작은 황제에게 전대 신성드래곤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었다. 신성드래곤이 소환 안 되는 이유에 있어서 중요한 참고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제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

-전대 드래곤은 짐 대신 다친 후, 은퇴했다. 황실에서 끝까지 돌보고 싶었지만, 신성드래곤의 둥지로 돌아가고 싶어 해서 우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돌아갔지. 폐쇄적인 이들이라 그 뒤로 만나지도 못했고, 별세 소식만 전달받았다.

[그러면…….]

‘뭐, 자세한 건 양쪽 말을 들어봐야겠지만, 중간에 누군가가 서신을 빼돌리고 이간질을 한 거다.’

[누가요?]

‘누구겠냐. 황실이 힘을 잃길 바라는 쪽이지.’

[설마…….]

‘높은 확률로 교황일 거다.’

[헐!]

동시에 아이작은 교황의 태도도 납득이 갔다.

‘어쩐지 교황 새끼. 신성드래곤을 못 데려올 거라고 묘하게 자신만만한 기색이더라니.’

이런 공작을 펼쳐놨으니 그리 자신만만하지.

하지만 사피엔은 옛날이야기는 됐다는 듯 머리를 쓸어넘겼다.

“아무튼, 황실 놈들은 이제 중요하지 않아. 너, 해골왕이랑 무슨 사이냐.”

끙. 이렇게 나오기인가.

그러나 사피엔은 아이작이 안고 있는 애기 스켈레톤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이 아이도 그렇다! 해골왕을 불러내려고 스켈레톤 소환 마법을 쓸 때마다 이놈이 나타나고!”

[…저 주인님. 왜 데자뷔가 느껴지죠? 황태자 궁에서도 이런 일 있지 않았나요?]

…허, 허허. 이 녀석도 해골왕을 불러내려고 생쇼 했었냐? 그보다 왜 그딴 소환진에 이 녀석이 소환되는데?

그러자 애기 스켈레톤은 해맑게 외쳤다.

[소환되면 주인님 만날 줄 알았어!]

아이작은 납득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청의 펜타곤에서도 스켈레톤을 소환해서 만난 거였지.

그래서일까. 이 녀석은 자신을 만나기 위해 스켈레톤 소환진만 떴다 하면, 닥치는 대로 뛰어가 일부러 소환당한 모양이었다.

“너… 그러다가 진짜 소멸당한다.”

누가 소환할 줄 알고.

“아무튼 매번 보던 낯익은 녀석이라, 성직자들 시험에 소환된 걸 내가 구해서 데리고 와 키우고 있었는데!”

…여기 있던 게 그래서였냐?

“해골왕에게밖에 반응을 안 하던 녀석인데!”

얘, 진짜 제정신 아니구나. 마족을 키우다니.

그러나 아이작을 보는 사피엔은 진지했다.

“내가 왜 해골왕의 육신을 율리우스의 인간 공주에게 넣었다고 보나.”

“!”

사실 아이작의 유인용이었다. 해골왕과 연관이 있어 보이는 아이였으니까.

물론 자신이 육신을 넣었다기보단, 도둑이 그 육신 조각을 들고 튀다가 생긴 헤프닝이었지만. 마침 잘 됐다, 싶었다.

만약 해골왕의 힘을 지니고 있으면 공주를 안 죽이고 꺼낼 것이고, 다른 놈이라면 공주를 죽였을 테니까.

그러니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 정체가 뭐냐?”

아이작은 머리를 긁었다.

‘이거, 골치 아프군.’

이 정도면 단순히 보석으로 꼬드길 수 있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해서 뒷사정 따윈 궁금하지도 않았다.

아이작에겐 일단 3일 내로 이놈을 데려가는 게 더 중요했다. 폐위는 물론, 자신의 신분과 직위까지 걸려 있었으니 말이다.

신성드래곤과 황실의 관계? 오해? 알까 보냐? 그딴 건 일단 멱살 잡고 끌고 간 뒤의 문제다.

‘뭐, 상황이 이런 만큼 쉽게 데려갈 수 없다는 게 문제지만.’

어쩌지?

‘그냥 해골왕인 걸 밝혀?’

해골왕의 말이면 따라오려나?

‘아냐아냐아냐. 혼약이라잖냐.’

말하면, 다른 의미로 좀 곤란해질 것 같다. 상대를 완전히 믿을 수도 없고.

결국 아이작은 한숨을 쉬었다.

‘할 수 없지.’

“사피엔이라고 했나? 너는 나를 따라서 신성제국에 가야만 해.”

그러자 반룡은 눈을 부릅떴고, 사피엔은 같잖다는 듯 살기를 뿜어냈다.

“내 말을 뭘로 들었나?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신성제국 땅을 밟는 일은 없을 거라니까?”

그러자 아이작이 심각한 얼굴로 사기를 쳤다.

“실은 황태자가 해골왕을 데리고 있어.”

그 말에 사피엔이 움찔했다.

…뭐?

“비밀인데, 해골왕을 숨겨놓고 몰래 만나고 있나 봐.”

뭐가 어째에에에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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