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화. 신성드래곤……? (3)
뭐가 어째에에에에?
사피엔의 표정에 아이작은 계획대로라는 듯 웃었다.
그래.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이놈을 신성제국으로 끌고 갈 수 없지.
힘을 써서 끌고 가면 안 되냐고?
척 보면 척이었다.
정면으로 부딪치면 대충 목숨을 부지하는 게 힘들어진다. 아직 자신은 전성기에 비하면 조막만 한 힘밖에 없으니까.
그렇다고 샤브나크를 맞붙이면 오히려 맞수이기에 3일은 더 지나갈 거고.
그러면 뭐 어쩌겠나.
‘상대가 솔깃할 말로 꼬셔야지?’
아니나 다를까, 상대가 바로 반응했다.
“황실 나부랭이 놈이 감히 해골왕을 숨기고 몰래 만나?”
반응하다 못해 제대로 걸렸다.
위스퍼는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이러셔도 됩니까? 이거 사기 아닙니까?]
왜 사기야. 내가 무슨 틀린 말을 했다고.
황태자가 남들 몰래 덕질하는 것도 맞고, 해골왕인 나를 만나는 것도 맞지.
[그렇긴 한데… 이거, 수습 가능하십니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일단 저놈을 신성제국에 끌고 가야 뭐라도 가능하지 않겠어?
뭐, 이걸로 안 움직이면 좀 위험해지겠지만…….
“당장 황태자에게 안내해라.”
좋아 걸렸어!!!
아이작이 속으로 흐흐 웃자, 반룡이 까무러쳤다.
“아니, 수장님! 안 됩니다! 저희 원수들의 나라에 가시겠다니요! 삼촌분의 일을 잊으신 겁니까!”
그러나 사피엔은 두 눈을 희번덕거렸다.
“닥쳐라! 그 버러지 같은 황가 놈이 해골왕을 숨기고 혼자서만 쏙 보고 있다잖냐! 삼촌은 나중에 저승에서 만나면 이야기하겠다!”
“수장니임!”
푸흐흐흐. 좋아, 아주 좋다.
이거면 교황 놈도 벙찌겠지?
“내가 직접 신성제국에 가서 황태자를 봐야겠다.”
캬아아! 귀족들도 입을 떡 벌릴 게 보이네. 황실도 나한테 반할 게 보여! 캬, 역시 나!
“황태자를 죽이고 해골왕을 되찾아오겠다.”
[저기요? 뭔가 다른 문제가 생겼는데요???]
‘뭐어… 괜찮다. 텔레포트로 가도 시간은 걸려.’
그때까지만 설득하면 됐다.
‘반룡이랑 올 때도 시간이 꽤 걸렸잖아.’
[뭐, 한참 돌아오긴 했죠.]
대륙에는 마법을 방해하는 요소, 자기장으로 마법을 쓸 수 없는 땅 등 다양한 곳이 있었다. 그런 곳들을 고려하면서 가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초고속으로 달려도 한나절.
그러니 그사이 황실에도 미리 언질을 해 두면 그만… 엉?
아이작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누군가가 아이작을 번쩍 안은 것이다.
“어??”
동시에 눈앞에 황금색의 포탈이 열렸다.
‘왓? 게이트?’
사피엔이 아이작을 안은 채로 게이트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거면 직통으로 갈 수 있으니 텔레포트보다 더 단축되겠지.”
왓 더??
[게이트면 더 안정성 높은 최상위 이동 마법 아닙니까?]
역시 수장급이라 급이 다르네, 시발!! 거기가 얼마나 먼데, 몇 초 만에 게이트를 만들어내냐!
역시 망할 금수저들!
“이거면 단번에 신성제국의 황실까지 갈 수 있다.”
아니! 단번에 안 가도 되니까!
“인간이 정신을 잃을 염려도 없고.”
아니! 그딴 배려 안 해줘도 되니까!
“인간에게는 눈 깜짝할 사이일 거다.”
젠장! 황실에 언질할 시간도 없겠네!
그때, 반룡이 게이트 앞을 가로막았다.
“수장님!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아니, 반룡뿐이 아니었다. 그사이 동족을 소환한 건지, 못 보던 금발 무리들이 나타났다.
“맞습니다! 가시면 안 됩니다.”
방해꾼들이 우르르 나타났지만, 사피엔은 고운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비켜라. 방해하면 죽인다.”
“안 됩니다! 저희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쾅!
사피엔의 손짓에, 무리들이 모두 모래 속에 파묻혔다.
“흙 넣어줬으니 간다.”
그 광경에 아이작은 멍하니 하늘을 보았다. 위스퍼도 놀랐다.
[와, 졸라 세네요.]
…응. 해골왕인 건 절대 밝히지 말자.
[그러게요. 주인님 몸이 남아나지 않으시겠는데요.]
하지만 혹시 모르니 이건 미리 말해둬야겠다.
“경고해두지만, 황태자를 죽이는 건 안 된다.”
사피엔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뭐?
“해골왕이 황태자를 몹시 아끼거든.”
뭐어어어어??
왜 이 말에 더 화를 내는지는 모르겠지만-
“해골왕이랑 혼약한다고 했으면, 이 말에는 따르는 게 좋을걸?”
“그럼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건가.”
“참, 불구도 안 돼.”
빠직!
[황태자… 만나자마자 멱살부터 잡히는 거 아닙니까?]
알 게 뭐여. 아무튼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거지, 뭐. 앉혀 놓으면 오해를 풀 수 있겠지.
사피엔은 바로 게이트로 들어갔다.
순간 공간이 접어지면서 시야가 확확 넘어갔다. 신성드래곤의 둥지부터 바다를 건너, 평지를 뛰어넘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신성 제국의 근처까지 왔을 때, 사피엔이 뜻밖의 말을 했다.
“사제.”
“엉?”
“신성제국의 결계를 신성드래곤 말고 다른 놈이 또 맡고 있나?”
“뭔 소리여?”
곧 사피엔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럼 이건 너희도 모르는 일이란 거군.”
“엉?”
두 사람의 몸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제국의 결계 쪽에서 이상한 술식이 발동되고 있는 탓이었다.
휘리릭!
그리고 결계는 신성 드래곤인 사피엔과 청의 후계자인 아이작을 빨아들였다.
* * *
그 무렵, 황궁.
황태자 샤블리스는 창밖만 보고 있었다.
황궁에 모여 있는 귀족들은 그런 그를 보며 술렁거렸다.
“벌써 이틀째입니다. 아이작 공자는 돌아올 기미도 보이지 않고요.”
정확히는 황태자의 몰락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황태자와 황녀의 감시도 함께였다.
아니나 다를까, 교황파는 뒤에서 살포시 웃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상당히 초조하신 것 같군요.”
“뭐, 돌아올 리 없는 신성드래곤을 기다리고 있으니, 쫄리시겠죠.”
“저희가 이렇게 지켜볼 건 생각도 못 했을 걸요.”
“도와줄 황제 폐하도 깨어나실 기미가 없으니 사실상 끝이죠. 폐위를 추진할 수 있습니다.”
교황은 묘하게 비틀린 입꼬리였다.
“아이작 에슈아. 그렇게 자신 있게 나갔으면서 신성제국 근처에 나타났다는 말조차 안 들리는군.”
황태자의 곁을 지켜주고 있는 청가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일라이는 쯧, 혀를 차면서 벤야민을 보았다.
“추적은 어찌 됐느냐.”
이미 레아와 릴라이를 아이작에게 몰래 붙였던 그였다. 하지만 벤야민은 가까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게… 실은 흔적도 없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합니다.”
일라이의 눈썹이 치켜올라 갔다.
“사라지다니?”
“텔레포트로 사라진 것까지는 추적했는데,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아이작의 기운이 신성제국 근처에서 소멸했습니다.”
“뭐라고?”
“하필 결계 근처라, 거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밖엔…….”
결계라고?
동시에 황태자에게도 기사들이 달려와 속삭였다. 개인적으로 보낸 조사단이었다. 다들 비슷한 소식을 가져왔다.
“아이작 공자에 대한 기척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더 이상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아무래도 성공하지 못할 것 같아서 숨은 거라고밖엔 생각할 수 없습니다만…….”
그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는 듯 교황은 웃음을 터트렸다.
“도망친 거겠죠.”
“!”
“이제 와서 신성드래곤을 데려올 자신이 없으니까, 결국 숨은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추적이 불가능할 리 없죠.”
귀족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숨다니……!”
“본인도 빈손으로 돌아오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을 알 터. 그리고 신성제국이 추적을 못 하는 곳은 대륙에서 딱 한 곳뿐입니다.”
“!”
모두가 떠오르는 한 장소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교황의 비꼬는 눈빛이 일라이를 향했다.
“마도제국 황자와 친했으니, 그쪽에라도 망명을 간 게 아닐까?”
“크윽……!”
“이걸로 청은 후계를 잃겠군.”
일라이는 대답 대신 교황을 노려보았다. 그는 교황을 굉장히 수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내기를 걸 때부터 이상했다.’
교황이 본인들의 권력의 상징인 황위 계승의 승인권을 내려놓을 리 없었다. 본인들의 근본이 흔들리는 일이니까.
‘뭔가 작업을 해 놓은 게 분명하다.’
바로 그때, 뭔가 들은 벤야민이 깜짝 놀라며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아버지. 아이작이 사라진 결계 쪽에서 이상이 있다는 보고입니다.”
“이상이라니?”
“그게, 시공의 흐름과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말 한마디에, 일라이는 짧게 탄식했다.
“설마 아이작이 거기에 빨려 들어갔다는 거냐?”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청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시공의 흐름이라니. 사제를 건들 리가 없는 그 결계가 왜?
그쯤 되자, 누군가가 웃음을 터트렸다.
바로 3황자였다. 그는 기세등등하게 황태자에게 다가갔다.
“이걸로 거짓말은 다 밝혀졌네요. 뭐, 신성드래곤을 그리 쉽게 데려올 수 있을 거였으면 교황청도 이 고생은 안 했죠.”
“!”
“그러니 어떡하죠, 형님? 이제 황위권을 넘겨주셔야겠는데요.”
“……!”
3황자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사실 그는 이미 들은 게 있었다.
‘아이작 에슈아는 어차피 못 온다. 아니,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실은 신성제국의 결계에 수작질을 해 두었다.
‘아이작 에슈아가 되돌아오는 순간, 결계가 놈을 인식해서 멀리 날려 보낸다고 했지. 그걸로 도망친 걸로 꾸민다고.’
처음부터 아이작이 임무를 완수하든 못하든, 돌아오는 것 자체를 못 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뭐, 운이 좋아 돌아올 때쯤이면 모든 일이 끝나 있을 것이었다. 자신은 황제가 될 거고, 돌아온 청의 후계자는 새로운 황제의 손에 쫓겨날 테니까.
물론 3황자에게는 아이작보다 더 거슬리는 존재가 있었다.
“뭐, 제국의 결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건, 거짓말을 한 게 형님뿐이 아니기 때문이죠.”
“전하뿐이 아니라니?”
“남매가 쌍쌍으로 저주받았으니까요.”
“남매?”
3황자의 뜻을 알아들은 귀족들이 술렁거렸다.
“황녀 저하를 말씀하시는 건가?”
샤블리스의 눈이 험악하게 올라갔다. 이 자식이, 지금 여기서 황녀까지 건드리려고 해?
“왜, 못 믿겠습니까? 그럼 황녀도 저주받았는지 아닌지 확인해보면 되겠네요.”
3황자가 귀족들에 손을 뻗었다. 자신의 의견에 호응하라는 것이었다. 귀족들은 순간적으로 판단을 마쳤다.
“황녀까지 그렇단 말이오?”
샤블리스의 눈이 험악해졌다.
“루카스!”
“왜 그러십니까? 아니라면 증거를, 신성드래곤을 보여주세요! 저주를 안 받았다면 당연히 계약을 하셨겠죠!”
갑자기 분위기가 변했다. 황태자의 폐위 논란이 번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황태자는 이를 악물었다. 사실 아이작이 도망쳤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긴 했다. 자신이라도 그랬을 테니까.
‘뭐, 끝까지 도와주려 했으니 됐다.’
검은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고 위로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에게는 황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 이전에, 본인들의 가문을 우선시할 의무가 있었다.
상황이 그렇다면 마도제국으로 가는 것도 현명한 판단…….
그런데 그때였다.
“저기 뭔가가 보입니다!”
“어…? 저게 뭐지?”
한 줄기 빛이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마치 황궁을 향해 쏘아지는 황금빛 화살 같은 모습.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짐승의 형태였다.
그걸 자세히 확인한 이들은 기겁하며 놀랐다. 이 세상에서 저 모습을 한 건, 오직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시, 신성드래곤입니다!!”
“뭐, 뭐라고?!”
기사들의 외침에 귀족파들은 물론, 교황도 드물게 당황한 기색이 되었다.
신성드래곤이라니?
“뭔가를 머리에 태우고 있습니다!”
뭐? 태워?
자존심 높은 드래곤들이 누군가를 머리에 올리다니? 계약한 황제가 아니면 절대로 태울 일이 없는데?
혹시 짐승이나, 새끼 드래곤을 태우고 있는 건가?
아니, 그게 아니었다.
“…타고 있는 건 아이작 에슈아입니다!”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