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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99화 (199/272)

제199화. 제국의 주인 (1)

기사의 외침에 모두가 놀란 듯 창밖을 보았다.

기사, 귀족들, 사제들. 그 누구할 것 없이 모두가 통유리로 된 창가로 향했다.

“세상에……!”

눈을 씻고 봐도 날아오고 있는 건 드래곤이었다. 그게 점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지, 진짜 드래곤이잖아!”

드래곤은 곧 황궁에까지 도달했다.

거대한 바람에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에서 아름다운 물체가 황궁의 발코니에 붙었을 때,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넋을 잃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인간이 개미로 느껴질 만큼 거대한 짐승, 아니 짐승이란 말조차 무엄하게 느껴질 정도로 성스럽고 위대한 모습이었다.

거의 모든 드래곤을 소유했다는 마도제국이 그렇게나 탐낼 만한 모습이었다.

“신성드래곤……!”

제국에 신성드래곤이 마지막으로 나타났던 건 약 20년 전.

아직 젖먹이였던 샤블리스가 납치될 뻔한 일로 전대 드래곤이 크게 다치고, 은퇴했을 때다.

그 이후로는 그 누구도 본 사람이 없었다. 추기경들조차도 말이다.

하지만 문헌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조차 단번에 신성드래곤이라고 알 만한 모습. 누가 저 모습을 보고 감히 의심이나 할 수 있겠는가.

‘진짜 신성드래곤이다.’

황태자와 황녀도 말문을 잇지 못했다.

물론 남매가 바라보고 있는 건 드래곤이 아니었다. 드래곤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떠오르고 있는 태양을 등지고, 아이작이 우뚝 서 있었다. 드래곤의 머리 위에서 팔짱을 낀 채, 당당한 모습으로.

자. 정말로 데려왔지? 내가 널 황위에 올려준다고 했잖아. 그렇게 보란 듯이 웃으며.

그래서 샤블리스는 아이작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일출의 빛을 받아 후광마저 느껴지는 듯한 그 모습이, 그에게는 마치 신의 강림보다 더한 것으로 느껴졌기에.

그때였다.

“오래들 기다리셨겠네.”

“!”

탁!

마침내 아이작이 발코니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모두의 놀란 시선을 받으며 황궁 안으로 들어왔다.

“아, 아이작 공자.”

“아이작 공자가 돌아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환호를 했다. 아이작이 잘못되었을까 봐 걱정했던 할아버지 일라이와 벤야민도 급히 달려왔다.

“아이작!”

난생처음 보는 드래곤의 모습에 흥분한 사람들, 진짜 드래곤일 리 없다며 하늘을 확인하려는 사람들.

온갖 사람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지만, 아이작은 대답 대신 황태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거기엔 얼어 붙어 있는 귀족들과 교황이 있었다.

그 모습에, 아이작은 일부러 황실이 떠나가라 크게 외쳤다.

“전하. 전하께서 계약하신 드래곤을 데려왔습니다! 결계의 보수를 위해 제게 맡기셨던 녀석입니다!”

“……!”

그 말의 위력은 몹시 강력했다. 귀족들은 충격을 받은 듯 크게 술렁거렸다.

“저, 정말 계약을 하신 상태였던 건가!”

“…심지어 아이작 공자에게 드래곤을 맡기고 계셨었다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중립파 귀족들은 바로 항의했다.

“교황청의 말과는 다르지 않소!”

“말 좀 해보시오! 황태자 전하께서 계약을 못 할 거라고 하지 않았소!”

그들의 항의에 귀족파들과 교황청 사제들은 크게 당황했다. 오히려 그들이 이 상황에 대해 묻고 싶다는 얼굴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오? 왜 신성드래곤이……!”

“그걸 왜 내게 물으시오…! 교황청이 그리 말했는데!”

귀족파가 술렁거리자, 황제파 가신들이 바로 공격했다.

“그렇게 전하를 무시하셨으니, 어디 대답을 좀 해보셨으면 좋겠군요.”

“어떤 증거가 있었기에 전하를 몰아갔는지.”

그러자 귀족들이 기가 찬 듯 외쳤다.

“저게 진짜 신성드래곤일 리 없지 않소! 적당히 비슷한 환영을……!”

바로 그때였다.

쾅!!

신성드래곤이 거칠게 포효했다. 그와 함께 천공이 쩌엉 울리면서, 거대한 지진과 돌풍이 일어났다.

“으아아악!’

“크악!’

인근의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곧바로 바람에 휩쓸렸다.

쨍그랑! 쾅! 우드득!

“으악, 살려줘!”

단순한 포효만으로도 폭탄이 떨어진 것 위압이었다.

겨우 지진과 흔들림이 멈췄을 때, 정신을 차린 중립파 귀족들이 기가 찬 듯 외쳤다.

“이게 환상이오?! 환상이냐고!”

“이렇게 사실적인 환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제발 꼭 좀 보고 싶구려!”

“크윽……!”

귀족파는 이를 악물었다. 황제의 가신들은 그간 맺힌 한을 풀 듯 3황자 루카스를 노려보았다. 황태자로도 모자라 황녀까지 공격한 루카스가 밉지 않다면 거짓일 것이다.

“특히 루카스 황자께서는 하셔야 할 말씀이 아주 많으실 것입니다!”

“……!”

저격을 당한 3황자는 흠칫 놀랐다.

애초에 황태자와 황녀의 폐위를 몰아간 그였다. 제국민을 기만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려면 어디 신성드래곤을 데려와보라고.

그런데 그게 나타나 버렸으니……!

결국 루카스는 멱살을 잡을 듯, 아이작에게 다가갔다.

“아이작 에슈아, 네 이놈! 어디서 귀족들의 눈을 속이려 드느냐! 이제 보니 마도제국에서 비슷한 놈으로 데려왔구나!”

“!”

“그래! 마도제국엔 드래곤이 많으니까! 비슷한 골드족으로 데려온 거야! 어디서 그딴 눈속임으로 교황 성하의 눈을 속이려고……!”

바로 그때였다.

“허억?!”

아이작의 멱살을 잡을 기세였던 3황자가 허공에 번쩍 들어올려졌다.

“어어?”

마치 부유 마법에 걸린 듯, 발코니로 훽 끌려가듯 하늘로 올라갔다.

“루카스 황자님!”

3황자가 멈춘 곳은 바로 신성드래곤의 앞이었다. 사피엔은 찔러 죽일 듯 3황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더러운 황실 놈이. 지금 누구를 골드족 따위와 비교하나? 죽고 싶나?]

“흐악, 흐아악!”

신성드래곤과 얼굴을 마주한 3황자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동시에 허공으로 끌려갔던 3황자가 포탄을 쏘듯, 황궁으로 내던져졌다.

쾅!!

“루, 루카스 황자님!”

하늘에서 사정없이 내던진 3황자의 생사가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그 광경에 귀족파는 본인들도 똑같이 될까, 몸을 떨면서 말했다.

“…저, 저게 신성드래곤이라는 것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겠소!”

“하지만 검은 머리는 저주의 상징이오. 신의 대리자이며 위대한 신의 상징인 드래곤이 따를 리가…….”

“맞소! 더러운 흑발은 추방해야 맞지!”

그런데 그때였다.

[검은 머리가 뭐 어쨌다고?]

“!”

허공에서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사피엔의 모습이 변했다. 백금색의 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드래곤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곧 절세 미녀의 인간 모습으로 변한 그녀가 발코니에 착지했다. 그 비단처럼 흩날리는 고운 흑단 빛에, 귀족들이 입을 떡 벌렸다.

“흐, 흑발?!’

“신성드래곤이??”

말은 안 하지만, 황태자조차 내심 놀라고 있었다. 흑발에 금색 눈. 마치 자신과 같은 모습이 아닌가.

제국에서 가장 신성한 존재일 그들이 어째서.

“어, 어떻게… 신성드래곤이 마의 색을……!”

귀족들의 충격에 사피엔은 가증스럽다는 듯 팔짱을 끼었다.

“인간 버러지들이. 잠깐 안 온 사이에 제국에 이상한 풍습이 돌고 있나 보구나.”

“예…예?”

“니들이 그렇게 따르는 신들 중에 흑발이 있는데. 뭔 지랄인지.”

…뭐, 뭐라고?!

“흑발은 오히려 보기 드문 축복의 색이라 할 수 있다.”

뭐가 어째???

귀족들은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술렁거렸다.

“흑발이 축복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당황한 교황청 사제들은 말이 되냐는 듯 외쳤다.

“거짓입니다. 마의 상징이 어찌!”

“장난하시오? 그럼 신성드래곤이 거짓말을 한단 말이오? 신의 대리인이?”

“…그, 그…건!”

그 동요에 아이작은 푸흡 웃었다.

뭐, 사피엔의 말은 자신도 신경 쓰이긴 하지만, 지금 아이작에겐 아무 의미 없었다.

중요한 건 저게 모두가 인정하는 신성드래곤이고, 샤블리스의 계약자라는 거지.

아니나 다를까.

“저기요. 은근슬쩍 본제에서 넘어갈 생각 마시고요.”

“!”

아이작이 커흠, 기침을 했다. 그러곤 눈치를 주듯, 방긋 웃었다.

“전하.”

아이작의 눈치에 샤블리스는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이 상황이 혼란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난데없이 신성드래곤을 자기가 데리고 있다고 하질 않나, 그걸 데리고 오겠다고 하질 않나.

그런 주제에 갑자기 사라지질 않나, 다른 나라로 도망친 줄 알았는데 기대도 안 한 신성드래곤을 데려오기까지.

도대체 무슨 수로 20년 간 도망쳐다니던 드래곤을 데리고 온 건지. 묻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쾅!

“!”

샤블리스가 검집에 든 검으로 바닥을 찍어내렸다.

그 모습에 귀족들이 흠칫 놀랐다.

공기가 한순간에 달라졌다. 그냥 위협해도 무서운데, 소드마스터인 샤블리스가 검을 드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아니나 다를까, 샤블리스는 귀족들의 목을 날려버릴 기세로 노려보았다.

“계약의 증거를 보여줬으니, 이제 됐나?”

“……!!!”

샤블리스의 얼음과 같은 말에, 귀족들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황태자의 눈은 원래도 흑표범과 같은 눈이었지만, 묘하게 발톱을 숨기고 위축되어 있던 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촉새 같은 입으로 지금껏 황제 폐하와 나를 기만하니 즐거웠나?”

“저, 전하 그것이……!!”

금색의 눈이 살의의 발톱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교황을 따르던 자들로서는 황태자가 승기를 잡은 이 상황이 그리고 미래의 일이 무섭지 않을 리 없었다.

“너희는 감히 나와 황실을 능멸하고, 폐위를 입에 담았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진실을 말하는 소가주의 신분 강등을 들먹였다.”

그 소가주가 누구를 말하는 건지 그들이 모를 리 없다.

아이작이 입꼬리가 귓가까지 찢어졌다. 상황이 역전되었음을 깨달은 그들은 바들바들 떨었다.

“저, 전하……!!”

“이는 황실에 대한 명백한 도전으로 보겠다. 한 사람도 그냥 넘어가는 법은 없을 것이다.”

“!!”

갑작스러운 피바람 예고에, 귀족파들의 심장이 무너져내렸다.

교황청 사제들은 내심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피바람이 그나마 저 선에서 그칠지도 모르겠다.’

‘그래, 주도한 건 귀족파지. 우리가 뭐라고 했나?’

‘교황청은 피해간다…….’

그런데 그때, 아이작이 푸헤헤헤 웃으며 얄밉게 끼어들었다.

“아뇨아뇨, 전하. 하나 더 있죠.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놈이 한 분 더 있어요.”

“!”

아이작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듯, 슬쩍 나가려던 교황을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약속대로 신성드래곤을 데려와 증명했으니, 이제 내기의 대가를 이행하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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