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제국의 주인 (2)
아이작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교황청 사제들조차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저 망할 놈이이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저 자식이이!’
모두가 핏발이 선 눈으로 아이작을 보았지만, 정작 아이작은 어딜 감히 도망가냐는 듯 교황을 보았다.
“왜요. 데려올 수 없을 드래곤을 데려오셔서 당황하셨나?”
“!”
“그것도 아니면-”
아이작은 얄밉게 입꼬리를 올렸다.
“교황가가 수작을 부린 게 들킬까 봐 도망을 가시는 건가?”
뭐?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모두가 제 귀를 의심했다. 교황가가 수작을 부리다니?
“그게 무슨…….”
그들은 슬쩍 교황을 보았지만, 정작 교황은 말 없이 아이작을 노려볼 뿐이었다.
귀족들이 제정신이냐는 듯 다가왔다.
“수작이라니, 아이작 공자. 그게 무슨 소리요?”
“글쎄요. 피해자인 저보단 교황 성하께서 더 잘 아실 텐데요. 예? 안 그러세요? 제가 제국으로 못 돌아오게 수를 썼잖아요. 설령 신성드래곤을 데려와도 제국에 못 들어오게요. 내기에서 지도록 수를 쓰셨죠?”
아이작의 말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귀족들은 놀란 듯 교황을 보았다. 누구보다 아이작과 교황의 내기에 큰 영향을 받는 이들인 만큼,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소리십니까!”
그러나 교황은 당연하게도 시치미를 뗐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하지만 그런 위험한 일을 겪었다니, 마음이 아프다.”
그 말에 아이작은 가증스러운 듯 웃었다.
“그렇게 시치미 뗄 처지가 아니실 텐데요? 제가 어떻게 이곳에 돌아왔다고 보는 겁니까?”
“!”
사실 결계의 함정에 걸렸을 때, 아이작은 정말 X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특정한 사람을 다른 차원으로 날려버리는 함정이었는데, 꽤 상위 술법이라 지금의 아이작으론 차원의 미아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함께 휘말린… 아니, 빡친 드래곤은 매우 강했다.
-이 버러지 같은 황실 놈들이! 드래곤들이 없으니까 타락했나? 삼촌의 결계에 지금 뭔 짓을 해 둔 거지?
-황실은 아닐걸. 이거 금의 신이 기운이 섞여있어.
-뭐?
-잘못하면 너, 해골왕도 못 보고 평생 여기에 갇히게 될지도.
-장난하냐!
결국 빡친 드래곤이 함정을 뚫고 날아온 것이다.
본체로 변한 드래곤의 힘은 아이작의 상상을 초월했다. 뭐, 수장급이라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덕분에 내 힘을 아껴서, 다른 곳에 활용할 수 있어서 좋긴 했다만.’
어쨌거나 중요한 건 드래곤이 그 함정을 뚫고 나왔다는 거지.
아니나 다를까, 사피엔은 빡친 듯 교황을 노려보았다.
“그 신성드래곤의 결계엔 <아이작 에슈아>를 다른 시공으로 날려보내는 배척 술식이 걸려있었다. 분명 금의 신의 기운이었는데, 이를 어찌 설명할 거지?”
드래곤의 말에 귀족들이 술렁거렸다. 설마 하니 드래곤이 하는 말이 거짓일 리는 없고.
“그럼 정말 아이작 에슈아를 못 돌아오게 수작를……?”
그러나 교황은 뻔뻔했다.
“신성드래곤들은 황실밖에 모르는 놈들이다. 너희의 거짓말을 믿을 거 같은가? 황실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걸 모를 것 같으냐?”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피엔의 얼굴에 빠직 핏대가 섰다.
…지금 누가 황실을 위한다고?
사피엔이 폭발해서 황태자를 죽이려고 하자, 아이작이 재빨리 속삭였다.
“해골왕, 해골왕 얻어야지!”
아이작의 속삭임에 바들바들 떨던 사피엔이 가까스로 진정했다.
그 모습에 아이작은 ‘옳지, 그거다!’라는 듯 토닥였다.
좋아, 잘 참았어…. 이거면…….
“정말 계약한 게 맞다면 증거를 보여주게나.”
뭐가 어째?!
아이작의 고개가 휙 교황을 향해 돌아갔다.
교황은 미소를 지었다.
“신성드래곤은 계약한 정식 계약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예를 표할 수 있다고 한다.”
사피엔의 얼굴이 다시 험악해졌다.
누구한테 고개를? 황실한테?
‘제국, 멸망시켜?’
폭주하려는 사피엔에게, 아이작이 다시 속삭였다.
‘해골왕! 해골왕이랑 혼약해야지!’
그 말에 사피엔은 또다시 파르르 떨면서 분노를 억눌렀다. 그러곤 할때는 제대로 한다는 듯, 황태자와 황녀를 향해 가볍게 예를 표했다.
그 모습에 아이작은 놀랐다.
오오, 좋다!
해골왕을 팔긴 했지만, 고맙게도 설마 이런 것까지 해 줄 줄이야! 그래, 그러니까 가슴에 한 손을 얹고, 고개를…….
까닥.
…지금 그게 숙인 거냐?
[한 0.1cm 움직인 것 같은데요?]
크, 아깝다. 쬐금만 더 티나게 해 주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었는지, 귀족들은 제 눈을 의심했다.
“세상에 아직 황제도 아니신데, 신성드래곤이 인사를?!”
“신성드래곤이 그 정도로 인정한 분이라는 건가?”
“진짜 계약한 드래곤이다!”
샤블리스는 눈을 크게 떴고, 교황도 내심 당황한 눈치였다.
교황은 신성드래곤이 절대로 황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기에, 더욱 그랬다.
그쯤 되자 아이작이 얄밉게 말했다.
“자, 이제 약속은 지키셔야죠? 분명 신성드래곤을 데려오면, 황위 계승의 승인권을 포기한다 했잖아요?”
교황은 눈을 찌푸렸다.
“처음부터 황실과 신성드래곤과의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면, 이 지경까지는 안 오지 않았겠나.”
그러자 아이작은 가증스럽다는 듯 눈썹을 치켜떴다.
어이고? 순순히 인정할 거란 생각은 안 했지만, 새끼가 말을 돌리네?
그러나 교황은 황실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신성드래곤을 데려왔다 한들, 저자가 제국과 황실을 위해줄지는 모르겠는데?”
“!”
그 증거로 그는 당당하게 사피엔을 보았다.
“자네도 그렇지 않나? 삼촌의 물건을 찾으러 황실에 찾아왔을 때, 황실의 변명에 이미 정나미가 떨어졌을 텐데.”
사피엔이 황실을 따를 리 없다는 걸 의식한 말이었지만, 정작 사피엔의 눈은 매우 싸늘하게 변했다.
“그걸 네놈이 어떻게 아나?”
“!”
“어떻게 알긴. 18년 전에 인간인 척하고 황궁에 왔겠지만, 그만한 기운을 풍기는 사람이 드래곤 말고 더 있겠나? 모르는 게 이상…….”
“그게 아니라. 삼촌인 걸 어찌 아냐고.”
“!”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정보를 네놈이 어찌 아냐는 의미다.”
“……!”
아이작도 뜻밖이라는 듯 사피엔을 보았다. 공개돤 사실이 아니었나?
사피엔은 교황을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내가 전대드래곤을 삼촌이란 걸 밝힌 건, 딱 한 번. 당시 황제의 시종이라고 했던 자에게 편지를 줄 때뿐이었다. 그 외에 인간 중에 내 얼굴을 본 사람은 없었어.”
“!”
“내 얼굴을 알고, 삼촌이라고 바로 알아챌 만한 건 그 시종뿐인데, 왜 교황이 황실의 시종인척을 한 거지?”
뭔가 깨달은 사피엔의 눈이 분노와 살의로 크게 물들었다.
“너, 편지를 황실에 전하긴 했나?”
그 말에 연회장이 크게 술렁거렸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편지라니?”
귀족들의 술렁거림에 교황은 상황이 좋지 않다고 여겼다. 신성드래곤이 황궁을 찾아온 건 사실이라, 당사자인 황제가 없는 지금 사피엔을 설득하기 좋은 화제였건만.
“헛소…….”
“뭐긴 뭐여. 황실과 신성드래곤의 사이를 이간질한 게 교황이라는 말이지.”
아이작의 말에, 귀족들이 경악한 듯 교황을 보았다.
“교황 성하께서? 왜 그런 짓을!”
교황은 못마땅한 듯 아이작을 힐끗 보았다. 그러곤 상황이 좋지 않음을 느끼고 황급히 대꾸했다.
“좋다. 어쨌든 신성드래곤을 데려왔으니, 내기 결과에 승복하지.”
“예하!”
“약속대로 황위 계승의 승인권을 내려놓겠다.”
“예하, 어찌 그런 말씀을!”
그러나 아이작은 같잖다는 듯 웃었다.
“설마, 그거. 이번 대에서만 내려놓겠단 말은 아니겠죠?”
“!”
“영구적인 걸 원합니다. 그리고 ‘편지’에 대해서도 좀 자세히 조사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교황가가 황실과 제국 결계를 책임지는 드래곤을 이간질하다니. 이거 어찌 보면 나라를 위협하는 행위 아닌가요? 사실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닌데요?”
교황은 대답 대신 아이작을 노려보았지만,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아이작은 입꼬리를 올렸다.
‘버러지야. 겨우 황위 계승 승인권 포기로 이 아이작이 끝낼 것 같냐?’
너도 같이 나락으로 보낼 거야.
뭐, 원래는 결계에서 얻은 증거품을 교황과 엮을 생각이었지만 이쪽이 더 효과가 있을 것 같다.
그러자 실제로 귀족들이 의심하기 시작했다.
“편지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이건 해명이 필요한데……?”
청의 가주가 나서자 아이작이 크으, 웃었다. 역시 할아버지! 물어줬어! 바로 그거야!
전대 드래곤을 둘러싸고 신성드래곤과 황실이 갈등을 빚은 사실까진 다들 알고 있다. 자세한 내막을 모를 뿐이지.
그리고 이건 모두가 굉장히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다.
하지만 교황은 지지 않고 씩 웃었다.
“황실의 명예를 위해 지금껏 참아왔지만, 할 수 없이 말해야겠군. 당시 교황청이 황실의 시종으로 저 드래곤을 맞이한 건 맞네. 하지만 확인을 위해서였다.”
“예?!”
“신의 계시가 있었다.”
“!”
곧 금의 추기경이 맞다는 듯 끼어들었다.
“저 드래곤의 흑발을 보면 알지 않나. 이번대의 신성드래곤은 저주받았으니 헬라를 망하게 할 존재라는 계시가 있었네. 뭐, 저주받은 황태자가 고를 상대가 저주받은 용밖에 더 있겠나 싶지만.”
황태자는 눈을 부릅뜨며 그들을 보았다. 그리고 교황가의 말에 사피엔도 빡친 듯 핏대를 세웠다.
하지만 교황가는 일부러 그녀를 자극한 것이었다. 그녀가 난동을 부리면, 헬라를 망하게 할 존재라고 몰아가기 쉬워진다.
그리고 아무리 신성드래곤이 강해도 신의 하위 객체일 뿐. 실제 신을 강림시킬 수 있는 교황의 입김도 매우 강하다.
그걸 잘 아는 사제들이 말했다.
“어쩌겠나. 이것이 신의 계시인데. 교황 성하의 결정이 곧 신의 뜻일세.”
바로 그때였다.
아이작이 뭐라고 하려는 그때, 누군가가 나섰다.
“계시? 그럼 최고신의 신탁을 받은 아이작의 결정은, 이 나라 최고 계시겠군?”
“!”
말을 꺼낸 건 숙부인 벤야민이었다.
벤야민은 그대로 되돌려주겠다는 듯 안경을 쓸어올렸다.
“아이작이 저 드래곤을 신성제국으로 데려왔으니. 그게 최고신의 뜻이겠고.”
“뭐라고?”
금의 사제들은 눈을 부릅뜨며 그를 보았다.
저 건방진 놈이? 지금 감히 최고신의 존재를 꺼내?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벤야민이 아이작을 돕듯 보았다.
“아이작, 저 드래곤을 데려온 건 최고신의 뜻이었느냐?”
아이작은 역시 손발이 맞는다는 듯, 큭 웃었다.
“예에. 당연하죠. 그리고 최고신께서 말씀하시네요. 적의 신앙에게 명령을 내리니, 교황 성하를 한번 조사해 보라고요. 어쩌면 마가 껴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풉, 적의 추기경이 웃음을 참는 게 느껴졌다.
“아, 그래요?”
적의 추기경의 눈빛이 변했다. 사실 금을 털고 싶어서 언제나 안달이 나 있던 그가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적의 추기경은 소름 끼치게 웃었다. 마치 교황의 입김 덕에 늘 범접하지 못했던 새하얀 눈밭을 드디어 밟게 되었다는 듯한 얼굴이다.
“최고신의 명령이시니, 어쩔 수 없이 제가 교황 성하를 모셔야겠군요.”
아이작이 얄밉게 끼어들었다.
“아, 참고로 5대 추기경 다 참여하래요.”
저놈, 제법이군. 빈틈이 없어.
적의 추기경의 눈빛에, 아이작은 계획대로라는 듯 웃었다.
* * *
교황이 적가의 조사를 받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귀족파는 이건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황태자의 피의 예고가 벌어진 상황에서 입을 함부로 놀릴 수 없었다.
아이작 역시 웃었다.
‘좋아, 이제 드래곤이랑 샤블리스를 이용해 다음 단계로 간다.’
교황을 털려면 제대로 털어야지.
하지만 정작 황태자는 말문을 잇지 못한 채 아이작과 신성드래곤을 보고 있었다.
‘절대 손댈 수 없을 것 같았던 교황을 공격할 수 있게 해 주다니.’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그는 감사를 표할 겸 그들에게 다가갔다.
신성드래곤은 처음 만나는 사이고, 지난 일을 생각하면 좋게 볼 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와 준 건 고맙… 엉?
황태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피엔이 황태자의 멱살을 잡았기 때문이다.
“해골왕 어딨냐, 꼬맹아.”
…엉?
해골왕이라니?
“감히 해골왕을 몰래 숨겨놔? 해골왕 내놔!”
……네?
황태자의 시선이 아이작을 향했다.
그 광경에 아이작이 흠칫 놀랐다.
아차, 이거 수습하는 거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