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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02화 (202/272)

제202화. 해골왕 어딨어! (2)

아니이! 왜 여기서 이렇게 정체가 밝혀지는 건데?! 아이작은 속으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주인의 속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위스퍼는 신이 난 듯 웃음을 터트렸다.

[푸흐흐흐. 주인님이 혼약, 혼약을 하시게 되다니!]

아, 닥쳐!

[좋으시겠습니다. 이제 근육 없는 해골도 아니라, 자손을 보실 수 있을 테니.]

아씨, 닥치라고!

[뭐, 드래곤이 상대면 진짜 몸이 안 남아나시겠네요. 여러 의미로… 푸흐흐흐.]

이 변태 새끼, 그냥 죽일까?

아무튼 여기서는 인정하면 안 된다.

[인정하는 게 편할 수도 있는데요.]

괜히 신들의 귀에 들어가면 골치 아파져! 신성드래곤 정도 되는 놈이 인간이랑 결혼하자는데, 이목이 안 쏠리겠냐??

[에잉, 뭐래요. 그냥 귀찮아질까 봐 결혼 도장 찍기 싫으신 것 아닙니… 컥!!]

아이작은 위스퍼를 닥치게 하곤 사피엔을 보았다. 그녀의 떨리는 시선에 아이작은 그거 아니라는 듯, 방긋 웃었다.

“저기? 내가 어딜 봐서 해골왕이야?”

사피엔은 몸을 떨면서 아이작을 보았다.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내가 아들로 오해할 만큼 해골왕의 힘에 능숙했지.”

“저기, 그러니까 그건…….”

“인간이 해골왕의 뼈를 삼키고도 멀쩡하질 않나, 원수의 육신을 탐내질 않나. 아까 전 미니 스켈레톤에도 이상할 정도로 해골왕 힘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라면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가지. 해골왕이 본인의 힘을 되찾으려는 거잖아?”

…젠장, 이럴 땐 왜 이리 눈치가 빨라??

‘누가 드래곤 아니랄까 봐.’

하지만 아이작은 발뺌했다.

“이봐, 종족이 다르잖아. 걘 스켈레톤, 난 인간. 눈 삐었어? 드래곤이란 녀석이 종족 구분도 못 해?”

그러자 사피엔이 움찔했다.

아이작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애초에 해골왕이 성녀 가문 사람? 그야말로 용사 가문에 마왕이 있는 셈인데, 이게 뭔 거지 같은 상황이냐? 어떤 미친놈이 지 죽인다는 가문에 들어가냐고?”

“!”

“네가 좋아한다는 해골왕이 그딴 바보짓을 할 거 같아?”

그 말에 사피엔은 더더욱 움찔했다. 그건 그렇다는 것이다.

드물게 그녀가 상처받은 듯한 표정에, 아이작은 이거라는 듯 큭큭 사악하게 웃었다.

좋아. 이리된 김에 황태자를 이용해 쐐기를 박는다.

“전하도 그러십니다. 저는 해골왕이 아닙니다. 자꾸 그러시면 성녀 가문 사람에겐 모욕이 될 수 있음을 알아주십시오.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자꾸 증거도 없이 그러시면 에슈아도…….”

“증거?”

“예. 증거가…….”

황태자는 대답 대신 미니 스켈레톤을 스윽 들어 올렸다.

미니 스켈레톤은 해맑게 외쳤다.

[쭈인님! 쭈인님! 우리 위대한 해골왕 쭈인님! 여기 좀 봐 주세요!]

부하의 외침에, 아이작의 새하얗게 변했다.

끄아아아악!

저 도움 안 되는 새키야앍!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미니 스켈레톤이 황태자를 나무랐다.

[야, 멍청한 인간 황태자. 너 우리 주인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지?]

야, 인마! 성국의 수장에게 뭔 말을 하는 겨!

황태자는 특유의 표정 없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하가 그렇다는데.”

아이작은 얼음이 되었다.

황태자가 저걸 왜 들고 다니나 했더니! 저 자식, 설마 황태자 옆에서 맨날 저 지랄하고 있었나?

‘아니, 그보다 스켈레톤의 말을 알아듣지 말라고!’

그러나 정작 사피엔은 화들짝 놀라 황태자를 붙잡았다.

“네놈, 설마 스켈레톤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 것이냐?”

샤블리스는 그런 사피엔을 비웃었다.

“설마 해골왕과 혼약하고 싶다는 자가, 스켈레톤의 말도 못 알아듣는 건 아니겠지? 그것도 드래곤이?”

“…크윽!”

사피엔은 굉장히 자존심 상했다.

아이작은 어이가 없다는 듯 샤블리스를 보았다. 왜 스켈레톤의 말을 알아듣는 걸로 의기양양한 건데?

‘뭐, 체계화되지도 않은 스켈레톤 언어를 스스로 배워 익힌 그 집념은 알겠다.’

비유하자면 그런 거다. 어디 지도에도 없는 섬의 원주민… 아니, 원주민도 아니지. 동물의 언어를 스스로 공부해 익혔다는 것이었다.

‘또라이지.’

뭘 해도 될 놈이다.

하지만 사피엔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떨리는 눈으로 황태자를 보았다.

“그 스켈레톤이 뭐라고 했지?”

“뭐라고 했냐니, 그거야…….”

바로 그때, 황태자와 아이작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 아이작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대충 ‘제발 살려줘, 살려줘’ 하는 눈빛이다.

그 의미를 바로 알아들은 황태자가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아이작이랑 혼약은 안 된다.”

“역시 이 녀석이 해골왕인 거군?!”

야, 인마. 황태자!!

그러나 황태자는 시치미를 뚝 뗐다.

“됐으니, 신성드래곤은 썩 제국에서 꺼져라. 최소 100년은 오지 마.”

얌마, 니 드래곤이야!!

“아이작은 교황이 돼야 한다.”

그는 사피엔이 몹시 불만인 모양이었다. 그로서는 그럴 만도 했다.

“교황은 결혼할 수 없다. 반대로 말하면, 결혼한 자는 교황이 될 수 없단 거지. 황실 입장에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

사피엔은 깜짝 놀란 듯했지만, 곧 이를 갈았다.

“교황 따위가 뭐가 좋다고. 당장 때려쳐!”

“본인이 교황이 되고 싶어 한다.”

“뭣… 아니 애초에 교황은 왜 결혼을 못 하는데? 불공평하잖아!”

그 이야기에 아이작은 크으, 황태자 최고라는 듯 큭큭 웃었다.

‘그래, 생각해보니 이런 수가 있었네.’

[교황은 결혼할 수 없다고요?]

‘푸흐흐흐. 그래.’

[왜 결혼을 못 하죠?]

‘왜긴.’

그 말에 답하듯, 샤블리스가 말했다.

“교황은 정치적인 이유로 가족을 만들지 않는다.”

“!”

“가뜩이나 황실과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가족들까지 있으면 그 귀족들의 힘이 세져 난장판이 될 것이 아닌가.”

아이작은 크으, 바로 그거라는 듯, 히죽히죽 웃었다.

“뭐, 간접적으로 간섭하고는 있지만, 괜히 교황이 된 순간 성을 버리고 이름만 남기는 게 아니지. 암, 암. 그렇고말고! 그러니까 결혼 포기해!”

[주인님, 이제 해골왕 아니라고 부정도 안 하시죠……?]

곧 사피엔이 말했다.

“그럼 교황의 손자랑 추기경은 뭔데!”

“뭐긴 뭐야. 결혼 못 한다고 애인도 못 만드는 건 아니니, 그것들은 혼외자식…….”

“아니. 교황가는 좀 특이하다.”

응?

샤블리스의 말에, 아이작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샤블리스는 몹시 중요한 말을 해주었다.

“베리트 가문은 대대로 남자 둘만 낳게 해서, 형은 교황으로, 동생은 가주인 추기경으로 키우지. 그것이 신과의 약속이다.”

“!”

“보통 형이 훨씬 강하게 태어나 교황이 되지. 이번 세대 역시 그랬다. 하지만 정작 추기경이 되어야 하는 동생 쪽이 성인식 때 사고로 죽었거든.”

죽었다고?

“그래서 교황이 되어야 하는 형이 혼약해 자식을 낳아 추기경으로 만든 거고. 그게 바로 현 베리트 추기경이다.”

아이작은 그제야 모든 게 납득이 갔다. 그래서 ‘교황의 손자’라는 타이틀이, 그렇게나 희귀한 것이었구만?

키나가 왜 그렇게까지 떠받들어지나 했더니.

“굉장히 이례적인, 아니 유일한 경우였다. 자칫 베리트 가문의 대가 끊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거든. 하물며 형 쪽… 즉, 현 교황은 역대 최고의 자질을 가지고 있어서, 추기경이 되어 대를 잇게 하기엔 아까워했다. 교황보다 추기경의 신앙심이 높은 것도 그러니.”

뭐, 알 것 같았다.

현 교황은 할아버지인 일라이의 친구였고, 일라이조차 인정할 정도로 천재라고 들었다. 그런 것치곤 지금은 적가의 조사를 받게 되었지만. 푸흡. 자업자득이지.

하지만 그 말에 사피엔이 비웃었다.

“네 말대로라면, 그런 특별 사례가 하나 더 생겨도 문제없단 거잖아?”

그러나 샤블리스는 같잖다는 듯 보았다.

“가뜩이나 청에서 교황이 나오는 걸 허락할 리 없는데. 결혼까지 했으면 잘도 올리겠군? 그러고도 지능 높은 드래곤이냐?”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둘의 무서운 살기가 부딪쳤다.

하지만 샤블리스도 여러 의미로 계약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20년간 쌓인 것도 그렇지만, 여동생을 아끼는 그였다. 어린 율리우스 공주의 목숨을 이용한 셈인 사피엔에게, 썩 좋은 인상을 가질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너흰 이미 황실과 종속 계약이 되어 있으니, 순순히 내 말을 들어라.”

“닥쳐라. 그게 우리 목줄이라도 될 거라고 보나? 우리야 초대의 계약 따위 파기하고 떠나면 그만… 잠깐!”

사피엔은 돌연 뭔가 눈치챈 듯 아이작을 보았다.

“저 녀석이 해골왕이라면… 잠깐! 그럼 해골왕이 최고신하고 계약했단 거잖아!”

아이작은 천장을 보았다.

“아니… 나 해골왕 아니라니까?”

그보다 최고신이 왜?

“이 빌어먹을 최고신이! 미리 이딴 수작을 부려?!”

그러니까 걔는 왜?

“젠장! 최고신이 먼저 찜했으면 더더욱 그냥 갈 수도 없잖아!”

뭐? 찜??

바로 그때였다.

황제를 기다리는 그들의 앞에 황녀가 나타났다.

“폐하께서 눈을 뜨셨습니다.”

“!”

“들어가보셔도 될 것 같아요. 폐하께서 드릴 게 있다고 합니다.”

“아, 저 드래곤 삼촌의 물건인가요?”

“그도 그렇지만, 아이작 공자님께도요.”

“예? 저요?”

“원래 드리기로 한 물건이 있었잖아요. 그겁니다.”

“아, 그거!”

아이작은 듣던 중 가장 좋은 소식이라면서 다가갔다.

‘휴. 그 물건만 받고 얼른 교황 심문하는 쪽으로 가자.’

다행히 황태자가 신성드래곤을 견제해줄 것 같고 말이다.

‘푸흐흐흐. 해골왕의 혼약을 미끼로 끌고 왔지만, 내가 내 몸을 팔 것 같냐.’

교황이 결혼을 할 수 없다는데, 뭐 어쩔 거여! 푸헿!

그런데 사피엔이 뜻밖의 말을 했다.

“뭐, 사정이 그러하다면 이해하지. 대신 황태자 네가 추후에 고쳐라.”

왓더?

아이작의 고개가 불안하게 돌아갔다.

고치라니, 뭘?

“교황도 결혼할 수 있게끔. 교황이 된 후에 황제가 고치면 되잖아?”

뭐라고?!

“듣자 하니, 교황을 견제하기 위해 황실이 만든 법인 것 같은데. 네가 고치면 그만 아닌가?”

“!”

샤블리스는 반박은 못 하지만, 뭔가 굉장히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핏대를 세웠다.

“안 된다.”

사피엔도 그것 보라는 듯 따라 핏대를 세웠다.

“봐라! 교황이 어쩌고 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냥 해골왕을 뻇기기 싫어서잖아!”

“……”

빠직.

샤블리스와 사피엔이 또다시 서로의 목을 딸 듯 노려보았다.

그 광경에 결국 아이작이 이를 악물고 천장을 보았다.

“…나 해골왕 으니라니까여.”

그보다 친해져야 하는 놈들이 저렇게 원수처럼 사이가 안 좋으면 어쩌란 거야!

곧 아이작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나섰다.

“둘이 계약자인데, 서로한테 잘 보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전하도 신성드래곤이 필요하고, 너도 황실한테 원하는 게 있는 거 아냐? 그럼 친해질 생각을 해야죠.”

“크윽.”

“큭……”

그건 자신들도 아는데, 생리적으로 이미 혐오스러워서 먼저 손을 내밀 수가 없다.

그걸 읽은 건지, 아이작이 한숨을 쉬며 나섰다.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엉?”

“?”

아이작은 얄밉게 웃었다.

“신성드래곤은 초대만 봐도 황제와 혼약을 하면 했지, 교황하고 하는 경우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 둘이 결혼하면 되겠네요! 예로부터 결혼은 좋은 화친의 수단이었죠! 둘이 친해지려면 혼약이 딱입니다!”

“아아아앙???”

말이 반쯤 끝나기 무섭게, 사피엔과 황태자가 크게 분노하며 아이작을 보았다.

하지만 그걸 뭐라고 받아들인 건지, 아이작은 방긋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지금부터 황실과 신성드래곤 일족이 얻을 이점을 하나씩 말씀드리겠습니다. 분명 솔깃하실…….”

그 말에, 절대 겸상도 안 할 것 같은 사피엔과 샤블리스가 한마디씩 했다.

“어이 황태자. 임시 동맹이다.”

아이작은 움찔했다.

…음? 임시 동맹?

곧이어 아이작의 말 덕에 단숨에 친해진 둘이 사이좋게 말했다.

“아이작과 혼약은 안 된다. …뭐, 애인까진 봐주마.”

황태자의 말에, 사피엔은 얼굴 근육을 꿈틀거렸다.

“…뭐, 좋다. 원래 애인부터 시작해서 결혼하는게 정석이지. 나도 일단은 널 인정하마. 그러니 일단 저 입부터 막자.”

“해골왕이라는 증거도 잡아야겠군.”

그들의 눈빛에, 아이작은 땀을 삐질 흘렸다.

아니, 둘이 친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한데… 왜 상황이 이상해지는 거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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