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03화 (203/272)

제203화. 해골왕 어딨어! (3)

“폐하, 정신이 드십니까!”

사피엔의 힘으로 황제가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 황제가 몸을 일으켜 세우고 앉자, 가신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천만다행입니다, 폐하. 그간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모두가 기뻐할 것입니다!”

황제는 사피엔을 보았다. 자신이 깨어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그녀, 아니 신성드래곤의 힘이란 걸 눈치챈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복잡한 모양이었다.

“다시 제국에 돌아와줘서 정말 고맙다. 어떻게 다시 돌아와줄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자 사피엔이 같잖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왜긴 왜야. 해골왕이랑 혼… 우읍!”

아이작은 재빨리 사피엔의 입을 틀어막았다.

사피엔은 무슨 짓이냐며 노려봤지만, 아이작은 조용히 하란 듯 말을 돌렸다.

“폐하께서는 정말 신성드래곤의 서신을 받은 적이 없으신 거죠?”

황녀를 통해 일련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황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래. 당시 전대 드래곤은 해골왕한테 습격을 받아서 은퇴해야 할 만큼 큰 부상을 입어버렸었지.”

…뭐? 누구???

[주인님…. 역시 신성드래곤에게도 사고를 치셨군요.]

아니?! 걔들한테는 안 쳤다니까!

“당시 해골왕이 어린 황태자를 납치해갔었거든. 그걸 구해오다가 그리되었다.”

그 말에, 사피엔과 샤블리스가 아이작을 슬그머니 보았다. 위스퍼도 경멸하듯 혀를 찼다.

[세상에. 인질극까지……?!]

‘닥쳐! 나일 리 없잖아! 20년 전이면 더더욱 아니라고!’

“교황이 해골왕의 짓이라고 했었다.”

이 버러지 같은 교황 쉐키가!!!

툭하면 내 이름을 파네?!

아이작의 눈에서 살기가 치솟았다.

‘옛날부터 뭔 사건만 터지면 나한테 뒤집어씌우더니.’

이쯤 되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물론 교황하고는 원래도 사이가 안 좋긴 했지만, 성녀 가문은 직접적으로 연관이라도 있지.

‘그놈들은 왜 그리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여?’

세대가 몇 번이나 바뀌면 신경을 안 쓸 법도 하지 않나?

그 생각을 읽은듯, 샤블리스가 말했다.

“해골왕이 있어야 교황도 힘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납치 건도 높은 확률로 교황이 배후일 수 있습니다.”

높은 확률이 아니라, 거의 백 프로일걸?

“전부 신성드래곤과 황실을 찢어놓기 위한 계획이었겠죠.”

아이작의 말에 모두가 흠칫 놀랐다. 가신들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했을까요?”

“원래 이간질에 조작이 능한 놈들이라서요. 똑같은 방법으로 금가에게 처형당한 성녀도 있고요.”

해골왕에게 화친을 제의하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성녀 말이다.

하지만 가신들은 입을 떡 벌렸다.

“저, 전대 성녀님이 처형당한 적이 있으십니까?”

아이작은 아아, 하고 말을 돌렸다.

릴라이는 존재를 아는 듯했는데, 제국에서는 정말로 그 녀석의 이름이 지워진 모양이었다. 사관이 어리둥절한 얼굴이면 말 다했지.

“저도 숙부님께 들은 거라 자세한 바는 모릅니다.”

뭐, 단지 신경이 쓰이는 건 지금의 교황한테 그 정도의 힘이 있냐는 건데.

‘신성드래곤을 불구로 만들 수준이라면, 보통의 힘으로는 안 됐을 텐데.’

사실 자신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이작은 자신이 본 현 교황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인간 중에서는 강하긴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추기경보다 좀 나은 정도였는데.

‘뭐, 나이도 있으니까.’

<생존을 위협하는 자>의 경고가 뜨긴 했지만, 본래 생존 기원의 알림은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의 환경을 지칭하기도 했다.

그래서 틀림없이 <교황>이라는 권위가 ‘에슈아’를 공격하면서 자신의 생존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놈이 해골왕급 이상의 힘을 가졌다는 이야기인가?’

[엥, 그 정도의 힘까진 못 느꼈는데요. 오히려 청의 가주가 더 강하게 느껴졌어요. 늙어서 그런가?]

아니. 신성드래곤을 불구로 만들었을 정도의 위인이 고작 나이를 먹었다고 힘이 약해질 리 없다. 그 정도의 고수는 세월이 지날수록 힘이 농축되기 마련이니.

‘확실한 건 금가가 비장의 수를 숨기고 있다는군.’

아무래도 이건 키나를 꼬셔서 캐내봐야 할 것 같았다.

뭐, 신성드래곤을 불구로 만들 만한 힘이 그쪽에 있다면, 이쪽도 대비책이 있어야겠지만…….

그런데 때마침 황제가 사피엔에게 말했다.

“이야기는 대충 들었다. 전대 드래곤… 세이지, 그 녀석이 끝까지 나를 기다리다가 갔다고.”

황제는 그 사실이 몹시 슬픈 듯했다.

죽어가면서 자신을 얼마나 원망했을까.

“세이지의 물건은 돌려주겠다. 지금이라도 만나러 가는 걸 허락해줄 수 있겠나.”

황제의 말에, 사피엔은 대답 대신 침묵했다. 그래서 역시 쉽게 풀릴 리 없나 싶던 그때, 사피엔이 휙 돌아서며 나갔다.

“뭐, 삼촌은 죽기 전에도 네 자랑만 하다가 가셨으니까. 한 번쯤 가면 좋아서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르지.”

“!”

“무덤은 북부 땅에 있으니, 갈 수 있음 가 봐.”

그게 용서와 화해의 표현이라는 걸 안 황제는, 눈을 지긋이 짚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미간을 좁혔다.

‘무덤이 북부 근처라고?’

거긴 흑가의 영토 아닌가?

그리고 그 무덤에서 벌떡 일어난다는 건, 그 유해가 남아 있다는 소리니까…….

‘뼈다귀 드래곤으로 부활시킬 수 있을지도?’

흑마법사인 해골왕에게 그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언데드 드래곤이라면 최고 흑마법 계열로, 최상급의 전력이다. 특별한 특성이 생겨서 살아있는 드래곤보다 수십 배는 강했다.

보통은 그 재료를 못 구해서 실현을 할 생각을 못하는 거지, 이거라면…….

푸흐흐흐흐, 아이작의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갔다.

신성드래곤 정도나 되는 놈을 언데드로 종속시킨다? 이거 완전 비교도 안 될 따까리지! 푸헤헤헤헤헿!

하지만 아이작의 그런 흑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제와 가신들은 기뻐했다.

“아무튼 신성드래곤이 다시 와 줘서 다행이구나.”

“예! 폐하! 신성드래곤이 있는 것만으로 국력이 올라갑니다! 물론 신성드래곤과 교류를 하게 된 이상, 마도제국은 헬라를 탐낼 수도 있지만요.”

“교황도 이걸로 딴지를 걸지 못하겠지. 황태자가 그간 수고가 많았다.”

“예, 폐하. 이제…….”

보는 사람마저 훈훈해질 정도의 훌륭한 덕담의 자리였지만, 아까부터 굉장히 못마땅해하는 시선이 하나 있었다.

“크흠.”

“…….”

“크흐으음.”

“…….”

“크흐으으으으으음.”

아이작의 눈치를 주자, 황제가 땀을 삐질 흘렸다. 아이작은 마치 자기를 잊지 말라는 듯, 도끼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을 읽지 못할 리 없는 황제가 사과했다.

“이야기는 들었네. 이번 일은 모두 공자의 공이지.”

“크흠. 꼬옥, 그렇게까지 인사를 바라는 건 아니고요. 받아먹은 게 있으면 주실 게 있지 않나 싶어서요.”

이놈아아아! 폐하의 앞이다!

가신들이 입만 벙긋거릴 때, 황제가 웃었다.

젖먹이 시절이었나. 처음 봤을 때부터 제국에 빛을 가져올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받긴 했다만.

“몸 상태가 이래서 이렇게 감사를 표하는 건 양해를 바라네. 나중에 정식으로 보답하겠네.”

황제가 고개를 깊게 숙이자, 가신들이 기겁을 했다.

“폐, 폐하!!”

“어, 어찌 폐하께서 작위도 없는 일개 사제에게 고개를 숙이십니까! 거둬주십시오!”

“헬라와 황실을 구해준 은인이나 다름없다. 하물며 자식을 구해줬는데, 아비로서 어찌 이 정도 인사도 못 하겠는가.”

“폐하!”

아이작은 키야아아, 기분 째진다는 듯 웃음을 참았다.

그래, 이래야지! 어디 가서 이런 걸 겪어보겠어! 황제한테 인사받는 기분, 째지네!

“하지만 괜찮겠는가?”

“눼?”

황제는 걱정하듯이 아이작을 보았다.

“황위 계승의 승인권을 포기해도, 교황이 가진 권한은 아직 많이 남았다. 대표적으로 대륙의 모든 성직자들을 소집할 수 있는 절대 권한이 있지.”

모든 성직자들의 왕. 사실상 교황의 패는 대륙 전역의 성직자들인 셈이었다.

괜히 황실도 전면전을 피한 것이 아니다. 힘의 문제가 아니라, 성직자가 필수인 현 시대에서, 관계에 파국을 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교황의 명 하나면 황실기사단은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었다. 사제들은 환자 앞에서도 치료를 거부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자를 공격할지 모르네.”

그러나 아이작이 큭큭 웃었다.

“괜찮습니다. 폐하. 그래서 권력을 하나씩 빼앗아 오는 중이고, 결정적으로 아군들이 있으니까요.”

황태자, 신성드래곤, 백의 추기경, 에슈아. 그리고 이번 일로 적의 추기경도 포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남은 건 흑의 추기경뿐이지.

‘그놈도 포섭하면 금을 몰아넣을 수 있잖아?’

안 그래도 아이작은 교황가를 살펴볼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왜 소가주 상태로 두고 있는지도 궁금했고 말이다.

‘고엘, 노엘 놈을 이용해서 에슈아를 먹으려던 놈들이, 이렇게 빠르게 포기할 리 없잖아?’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폐하. 제게 주시기로 한 게 있지 않습니까?!”

황제는 이제야 떠올랐다는 듯 작게 탄식했다.

“아, 그렇지. 공자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지.”

그가 시종에게 지시하자, 시종이 바로 물건을 가져왔다. 원래도 아이작에게 줄 걸 생각하고 준비해둔 모양이었다.

“신성드래곤의 힘으로 봉인된 거라 지금까진 열 수 없었지만, 이젠 열 수 있다.”

황제가 내민 것은 다름 아닌 화려한 상자였다.

척 봐도 귀한 게 들어가 있을 것 같았다. 까마귀처럼 반짝이는 걸 좋아하는 아이작의 눈이 돌아갈 만했다.

‘오오오! 내용물은 금괴인가? 보물 상자야??’

딱 봐도 견적이 보이는지, 아이작의 입에서 침이 줄줄 흐르는 듯했다.

‘저 상자만 팔아도 얼마냐. 푸흐흐흐.’

본전은 이미 뽑고도 남은 듯했다.

하지만 그걸로 성이 찰 아이작이 아니다.

‘상자가 이 정도인데, 내용물은 얼마나 더 대단하단 거야?’

그 기대에 부응하듯 황녀가 웃었다.

“아이작 님이 몹시 좋아하실 거에요. 가치가 굉장히 높은 물건이 담겨 있거든요.”

“진짜입니까?”

“그래. 내 딸 역시 황가의 눈을 타고나서, 가치가 높은 걸 알아볼 수 있다네.”

키야! 남매가 쌍쌍으로 탐나네!

아이작은 크흐흐, 웃으면서 상자를 개봉했다. 사피엔이 돌아와 봉인이 풀린 건지, 간단한 해체 주문을 읊자 상자는 바로 개봉되었다.

상자 안을 본 가신들과 아이작은 깜짝 놀랐다.

내용물은 다름 아닌 수첩이었다.

“뭐지? 비전서인가?”

황녀가 웃었다.

“역대 성녀님들의 일기에요.”

서, 성녀들의 일기이??

“2대 성녀님부터 성녀님들이 이어서 쓰신 것 같은데, 무려 수백 년에 걸친 기록이죠. 해골왕과 전투하면서 쓰신 일기 내용입니다.”

주변에서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크게 환호했다.

“오오 역사적인 가치가 뛰어납니다!”

“에슈아에 둘도 없는 보물이군요!”

“제국의 보물입니다!”

…아니, 필요없어어어어어어!!!

수첩을 든 아이작이 거의 데굴데굴 구르자, 황제는 몹시 흐뭇해했다.

“소가주가 몹시 좋아하니 다행이군.”

이게 좋아하는 걸로 보이냐아아아!! 띱때야!

“이름과 소개가 써진 첫 장을 빼곤, 에슈아 사람만 읽을 수 있는 것 같더군. 첫 장을 통해 일기란 걸 알았지만, 공자라면 읽을 수 있겠지.”

읽긴 뭘 읽어!

이것만으로도 이미 퇴마서야!

[그래도 확인해보시죠? 성녀들의 일기라면 일기에 담긴 성력은 뽑아먹을 게 많을 겁니다.]

아이작은 개소리 말라는 듯 일기장을 넘겼다.

새끼가 뭐라는 거야.

‘그래봐야 그 시절이면 날 욕하는 말만 가득할 텐ㄷ…….’

그렇게 기대 없이 일기장을 넘기던 아이작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해골왕이 좋아서 미치겠어.

-해골왕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어쩌지.

-우리들의 원수인데, 왜 좋아지는 거지?

-왜 친절해? 왜 상냥한 거지?

-내 운명을 저주한다.

대충… 역대 성녀들이 해골왕을 좋아한다는 내용… 시발, 뭐?!

황제가 흥미를 가졌다.

“역시 에슈아 사람이니 읽을 수 있나 보군. 뭐라고 쓰여 있나?”

아이작은 확 수첩을 덮었다.

그러곤 동공 대지진을 일으켰다.

“공자?”

이거, 뭔가 잘못됐어.

어. 진짜 잘못됐어!

걔들이 왜 날 조아해에에엙!!

그 반응에, 황녀가 웃으며 그 밑에 있는 수첩을 가리켰다.

“참, 이건 멜리사 성녀님의 일기인데. 이쪽도 확인해 보실래요?”

뭐가 어째?! 멜리사?

아이작은 비명을 질렀다.

미쳤어? 그것만큼은 절대 안 봐아아아아아!

아이작은 판도라의 상자를 봉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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