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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04화 (204/272)

제204화. 거짓말이야!

“그래서 이번에 들어가면… 아이작?”

“…….”

“아이작? 내 말 듣고 있냐?”

“…….”

“아이작!”

“…….”

“아이작 에슈아!”

“…….”

“야! 또라이 에슈ㅇ… 컥!”

언성을 지르던 슈리는 정강이를 얻어맞곤 고꾸라졌다.

앉아서 슈리를 걷어찬 아이작은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귀 안 먹었어 새끼야.”

…차라리 먹지 그러냐.

슈리는 아파 죽겠다는 듯 정강이를 움켜쥐면서 아이작을 보았다.

그들은 지금 교황청에 있었다. 교황 심문의 자리에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다름 아닌 적의 추기경이 아이작을 부른 것이었다. 물론 추기경이 주관하는 심문에 작위도, 직위도 없는 일개 3품 사제를 부른다는 건 전대 미문의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이번 일로 적의 추기경이 아이작을 몹시 마음에 들어 한 기색이었다.

아무튼 엄청난 기회라, 이 못된 새끼가 푸흐흐헤헿 웃으면서 날라다니고 있을 줄 알았건만.

“너 왜 그렇게 멘탈이 나가 있어? 다들 네가 신성드래곤을 데려왔다고 난리야. 너 지금 장안의 화제라고. 근데 왜 그래?”

그러자 아이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왜겠냐.

“내가 황실에서 기가 막힌 걸 경험해서 그렇다.”

“황실? 폐하께도 보상을 두둑하게 받았다며? 보석만 보면 눈이 뒤집히는 새끼가, 도대체 뭐가 문젠데?”

뭐가 문제냐고?

“야. 낌슈리.”

“엉?”

“어떤 킬러가 있어. 그리고 그 킬러는 자기 원수를 죽여야만 해.”

“……?”

…이 새끼 뭐 하자는 거지?

난데없이 킬러? 이거랑 멘붕이랑 도대체 뭔 상관인데?

슈리는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맞장구를 쳐 줬다.

“어어. 죽여야 하는데, 뭐?”

“그런데 그 킬러가, 저가 죽여야 하는 그 원수를 좋아하게 됐대. 이게 말이 되냐?”

“…뭐, 원수한테 얼마큼의 원한을 품었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용서 가능한 범주의 원수라면…….”

“저얼-대 좋아할 수 없지. 뭐랄까…. 그래! 부모의 원수라고 보면 돼. 그런데 원수를 좋아하게 됐대. 대체 왜일까?”

……???

슈리는 뭐 이딴 질문을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묻는 것에 답은 성실히 해 주었다.

“어, 음…. 원수가 잘해줬다든가……?”

“그건 아냐.”

성녀들을 냅다 내던졌으니까.

“…의외로 원수가 마음이 따뜻했다거나…….”

“아니. 걘 인간의 감정을 느끼지 못해.”

해골이 된 순간, 저주를 받아 아무 감정을 못 느끼고 생존에 도움이 되는 의식만 남았거든.

“…그럼… 재력이 좋다거나?”

“아니? 그것도 아냐. 툭하면 킬러의 지갑을 뜯어갈 정도로 가난뱅이거든.”

슈리의 눈썹이 점점 치켜 올라갔다.

“…그럼 원수의 얼굴이 누가 봐도 놀랄 만큼 몹시 뛰어나다거나.”

“아니! 그것만큼은 절대 아니지!”

해골바가지거든!

곧 슈리는 그럼 뭐 어쩌라는 거냐는 듯, 아이작을 쳐다보았다.

“뭐야. 그럼 왜 좋아하는데???”

“그치?! 아, 시바. 내가 생각해도 진짜 모르겠네.”

“……???”

슈리는 ‘이 새끼가 뭘 잘못 먹었나, 대체 왜 이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뭐 사람들이 돌려 보는 연애 소설이라도 읽었냐?”

“허, 허허. 그래. 그렇지. 그 비슷한 걸 봤지.”

성녀의 일기를 본 아이작은, 도무지 납득을 할 수 없었다. 일기는 2대부터 시작해 멜리사 전대 성녀의 것까지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일기가 아니었다. 성녀들의 사적인 감정이 적혀 있다 못해… 시발! 무슨 청혼장 보는 줄 알았네! 수위도 묘하게 세고! 어떤 의미로는 퇴마서보다도 끔찍하잖아!

아니,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해골왕 고문서야!

그런데 안 읽을 수가 없었다! 하필 일기에 진귀한 비밀과 기록들이 함께 남아 있었던 것이다!

몰래 묻어둔 보물이라든가, 지금은 기록이 사라진 광석의 출처라든지, 신들의 비밀스러운 정보, 다른 가문의 중요정보라든지!

하나같이 돈 주고도 못 사는 귀한 정보들이었다.

‘그래, 자료서로서는 몹시 귀중하고 소중한 물건이긴 한데…….’

하필 그 중심 서사 내용물이… 시바.

-해골왕이 좋아서 미치겠다.

“으아아악!!”

아이작은 또 데굴데굴데굴 굴렀다.

슈리는 미친놈을 보듯 그저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드래곤을 데리고 오더니 머리가 이상해졌네…….”

그러나 정작 아이작은 동공 지진을 일으키고 있었다.

‘뭐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아이작은 오랜 기억을 더듬었다.

그래…. 그러니까 1대는 자신과 싸우다가 자폭했지. 그러니 기록이 2대부터 있다는 것까진 일단 알겠다.

알겠는데……!

‘시발! 도대체 왜!’

이 무슨, 부모의 원수한테 반했다는 미친 상황이냐!

그런데 그때, 위스퍼가 뜻밖의 말을 했다.

[뭐, 저는 좀 알 거 같은 부분이 있기도 하고요. 주인님, 성녀들이 자폭하려 할 때마다 막으셨잖아요.]

‘그건 새끼야! 눈앞에서 산 채로 터져 죽는데, 그걸 그냥 냅두냐? 고어한 꼴 보기 싫어서잖아!’

[…분명 ‘네 목숨을 소중히 하라’면서 말리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야 자폭을 안 하지! 그 변태들, 승산이 없으면 툭하면 무지성 자폭하려 했다고! 어디 단체로 세뇌받고 와 가지고!’

[공격할 때도 진심으로 안 하시고…….]

‘걔들 죽여봤자 더 센, 업그레이드된 성녀가 찾아올 뿐이거든?!’

[틈만 나면 먹을 것을 던져주시고…….]

‘평소엔 마수들도 성녀 기에 눌려서 안 다가오는데, 굶어서 비실거리면 마수들이 잡아먹으려고 몰려온다고! 애기들 입맛만 나빠져!’

[어떤 성녀는 손수 옷가지까지 입혀서 인간진영에 놓아주고 오셨죠……?]

‘아니, 그럼 고작 열한 살짜리한테 마왕 목 따서 가져오라는 게, 어디 정상이냐? 동네 어부 할아범도 치어는 풀어준다, 이 새끼야!’

[크흠….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님이 원인인 것 같은…….]

‘아니라고옭!’

그래!

이건 속임수!

실은 훗날 환생한 마왕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 일기장이야!

그래, 성녀가 해골 새끼를 좋아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질 리 없지.

[이야, 현실 부정 제대로 하시네. 하지만 그러기엔 실제로 친했던 성녀가 있으셨잖습니까?]

그 말에 동공 대지진을 일으키던 아이작이 두 눈을 번득였다.

‘걘 그냥 친구고!’

하지만 분명, 자신에게 유일하게 화친을 제의해왔던 성녀이긴 했다.

-뭐? 진짜 이름은 이삭이라고?

-넌 제대로 구분해서 듣는다? 다들 알아듣지도 못하던데.

-세상에, 너무 멋진 이름이야!

하도 싸우기만 하니, 성녀들이 체념을 안 하나 싶어서 이번엔 대화나 해 보자, 하다가 유일하게 친해진 성녀였다.

걔도 말이 통하는 걸 느낀 건지, 틈만 나면 우리 서로 무의미한 죽음을 없애기로 노력해 보자고 해 댔었지. 우리 둘이라면 인간진영과 마족진영의 싸움을 없앨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그, 그리고 혹시 화친을 맺어서 전쟁이 사라지면… 저기… 나, 나도 여기서 지내도 될까?

뭐, 그게 교황에게는 거슬렸는지 얼마 안 가 처형당했지만.

-더러운 해골왕의 앞잡이다. 인간들을 없애려는 저 사악한 마녀를 처형하라!

‘그래서 그 이후로는 일부러 성녀들을 피해 다녔는데.’

그 녀석이 자신과 친해졌기에 살해당한 것이라면, 애초에 친해질 계기를 만들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미로나 외딴 섬에 던지며, 마주치는 것 자체를 피했는데?

그런데 왜에에?

[그런 것치곤 미로에 먹을 것과 입을 거, 장작 같은 것들을 던져주지 않으셨나요?]

‘성녀들 육체는 신의 보호를 받아서 나만 처리할 수 있어. 시체 치우기 졸라 싫거든?’

사실 일부러 굴욕을 느끼게 해서 돌아가게 하려고 한 것도 있었다.

멜리사야 너무 압도적인 괴물이라, 미로나 섬에 던져도 그냥 죄다 박살 내고 나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맞붙게 된 거지만 말이다.

‘아무튼 시바. 이쯤 되면 성녀 가문에 태어난 것도 뭔가 있는 거 아냐??’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마왕이 성자의 몸으로 태어난 것도 수상한데, 하필 태어난 게 원수 가문이라고?

‘이거, 분명 뭔가 있다.’

심지어 이름마저도 똑같지 않은가.

벌레에 봉인되지 않고, 하필 이 몸에 들어온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스퍼는 다른 부분에서 푸흐흐, 변태처럼 웃어댔다.

[이쯤 되면 성녀들 화병도 사실은 상사병 아닙니까?]

아니라고!

‘아무리 그래도, 성녀나 되는 녀석들이 상사병일 리가 있나!’

실제로 일기에서 느껴지던 것도 비통이었다.

-내 운명을 저주한다.

그래서 더더욱 모르겠다.

왜 자신에게 그딴 취급을 받으면서도, 해골왕을 잡는데 그리 집착을 했는지.

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는지.

‘거 해골왕을 못 잡을 수도 있지.’

성녀는 왜 그렇게까지 괴로워하면서 해골왕을 잡아야만 했을까?

‘쪽팔리면 그냥 다른 나라로 망명을 가면 그만 아닌가?’

[기사 가문이니까요. 명예를 지들 목숨처럼 생각하는 놈들 아닙니까?]

‘그렇긴 해도, 해결 방법은 있어.’

체념하더라도 부상을 이유로 은퇴한 후, 후학 양성을 한다고 하면 된다.

‘오히려 그 경험과 기술을 살리면 점수를 높게 받을 수 있어.’

[푸흐흐흐. 단순히 주인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매번 찾아간 걸 수도 있죠. 아, 주인님이 해골만 아니었어도!]

이 변태 새끼, 진짜 갈아치워야지.

뭐, 일기에서 좀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면, 그거다.

-해골왕을 없애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 면목이 없다.

-해골왕이 이야기와 너무 다르다. 언니한테 면목이 없다.

-이 업보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같이 누군가에게 사죄하고, 업보라고 칭했다. 그럼에도 해골왕이 좋아져서 죽일 수 없다고.

‘뭐지? 에슈아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있는 거지?’

혹시 레아가 성녀가 되기 싫어하는 이유와 연관이 있는 걸까?

어쨌거나 에슈아의 문제면, 이 가문을 먹어야 하는 자신도 꼭 알아야 할 문제 같은데.

[멜리사 성녀의 일기장에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까 보죠, 흐흐흐.]

닥쳐, 그것만큼은 절대 안 까!

아무튼 신경이 쓰였다.

‘어쩌면 교황가가 몇 년 간 침묵하고 있는 이유가, 그 비밀과 연관 있을지도.’

그럼 그냥 넘어갈 순 없지.

아니나 다를까, 아이작이 말했다.

“김슈리. 너 ‘이네스’라는 성녀에 대해 알아봐라.”

슈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네스?? 성녀님들 중에 그런 분이 계셨나……?”

“있어.”

처형당해 역사에서는 지워졌지만, 분명 가문의 기록에는 남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적의 추기경 각하께서 들어오셔도 된다고 하십니다.”

“!”

아이작은 마침 잘 됐다는 듯 웃으며 일어났다.

이제부터 교황을 털러 가 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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