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5화. 이 괘씸한 놈이 (1)
교황청 한편.
거기엔 수많은 성직자들이 두려워하는 이단 심문장이 있다.
[뭐, 원래라면 주인님이 이곳에 오셔야 했지만요.]
뭐, 그건 그렇지.
‘사실 이 나라에서 제일 먼저 잡아야 하는 건, 교황이 아니라 나일걸?’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어서 오십시오, 아이작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작은 고개를 숙인 적의 사제들을 보며 크으으으, 쾌감에 젖었다.
‘그렇지, 이게 바로 적폐의 맛이지!’
지들 안방에서 뛰놀고 있는 마왕인데, 이것들이 알지를 못하네!
아이작은 낄낄 얄밉게 웃으며 누군가에게 다가갔다.
“니들 오랜만이다아?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구나?”
“!”
아이작이 어깨를 토닥인 건, 다름 아닌 견습 때 아이작을 괴롭히던 적의 사제들이다.
그간 많은 승진을 한 것 같지만, 그런 그들조차도 3품 사제급인 아이작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야 똑바로 안 숙여? 허리가 90도가 아니잖아. 니들 추기경이 이러라고 가르쳤어?”
빠직.
시간이 흘러 상급 이단심문관이 된 그들은 얼굴을 씰룩거렸다.
‘이런 녀석을! 적의 귀중한 손님으로 맞이하라고 하시다니……!’
‘각하께서는 왜 이딴 녀석을……!’
결국 적의 사제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두고 보자……!”
“그래봐야 뻐꾸기 새끼 놈이……!”
“!”
아이작은 뜻밖의 단어에 오, 신기해했다.
‘뻐꾸기 새끼라. 그런 소문이 돌고 있었나.’
[무슨 의미입니까?]
‘에슈아의 피가 아니란 의미야.’
[그거라면 오히려 교황 핏줄들 아닙니까?]
‘뭐, 이해는 한다. 이놈들이 깎아내릴 수 있는 게 고작 그 정도겠지.’
그리고 사실 맞는 말이긴 하지 않은가?
‘난 마왕이니까. 푸헤헿.’
중요한 건 그 마왕이 이제부터 교황을 심문한다는 거지!
캬, 이 나라에 들어와서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가!
신들을 몰락시킬 그 위대한 한 보!
그래, 교황을 끌어내릴 그 첫 보……!
…첫 보였을 텐데.
“야. 여긴 심문장이 아니잖아.”
아이작은 자신을 데리고 온 방을 보곤 핏대를 세웠다.
방에는 교황이 아닌, 적의 주교들이 있었다.
아이작의 눈초리에 기다리고 있던 적의 주교들이 눈을 번득였다.
“건방진 것. 청, 그것도 일개 2품 사제한테 교황 성하의 심문을 맡길 거 같으냐?”
“눼?”
“이곳에 들여보내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라.”
“네놈의 수상쩍은 행보를 우리가 넘어갈 줄 알았더냐. 네놈은 우리가 직접 조사해주겠다.”
허어, 이 새끼들이?
사기를 쳤어?
자신을 심문하려고 해?
곧 적의 사제들이 아이작을 붙잡자, 아이작은 고개를 우득거렸다.
“이거, 적의 추기경도 아는 일이야?”
“천박한 것! 각하께 말을 높이지 못할까!”
“니들은 날 심문할 권리가 있고?”
“이놈이 감히 1품 사제들한테!”
“각하께서는 이런 더러운 곳에 오시지 않는다. 이 음지에서 그 버릇을 단단히 고쳐줄…….”
“누구의 버릇을 고친다고?”
“…헉!”
낯익은 목소리에, 주교들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바로 적의 추기경이었던 것이다.
“아이작의 기운이 왜 멀어지나 해서 왔더니. 뭐 하는 것이지?”
주교들은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이 공간은 과거 적의 후계자한테 문제가 터진 곳이라 적의 추기경은 절대 얼씬도 않는 곳이다.
그런데 고작 아이작 때문에 직접 이곳에 오다니!
‘이 무슨……!’
“아이작이 왜 여기에 있지?”
“그, 그게 동기를 보니 반가워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만…….”
“쟤들이 저더러 교황 심문할 자격이 없대요.”
헉!
아이작의 고자질에, 적의 추기경이 싸늘하게 웃었다.
“오. 내 명령을 무시했다고?”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심지어 저더러 뻐꾸기 새끼래요. 흑흑.”
적의 사제들은 히익,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귀족들에게 뻐꾸기 새끼라는 표현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표현인지, 그들이 모를 리 없다.
“그, 그게. 노, 농입…….”
“그럼 오히려 좋지. 적가에 입양되거라.”
뭐가 어째?!
적의 사제들과 주교는 어처구니가 없는 듯 적의 추기경을 보았다. 개소리인 줄 알았는데, 적의 추기경은 굉장히 호의적으로 아이작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 부하들로서는 몸을 떨 수밖에 없다.
‘아이작 에슈아 저 자식. 적의 추기경 각하까지 꼬셨어??’
아이작은 큭큭,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교황을 먹이로 넘기니 효과가 있군.’
곧 적의 추기경이 아이작을 데리고 교황의 심문장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도저히 한마디 하지 않고는 못 넘어가겠다는 듯 추기경을 보았다.
“…설마 그 꼴로 들어가실 겁니까?”
“이게 왜?”
왜긴 왜야, 미친 새끼야!
적의 추기경은 전신에 피를… 그래, 진짜 말 그대로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에도 토마토 주스를 뒤집어 쓴 것 마냥 범벅이다. 저러니 부하들이 사색이 되었지.
그리고 심문장에서 피를 뒤집어썼다는 게 무슨 의미겠는가.
“설마 직접 고문하신 겁니까……?”
“무려 상대가 고귀한 금가인걸? 아아, 금가를 취조할 수 있다니, 내 손으로 직접 살점을 뜯어줘야지.”
쾌락마저 느낀 듯 몹시 행복해하는 얼굴에, 아이작은 진심으로 혐오하듯 보았다.
뭐, 좋아할 것 같아서 일부러 자신이 끌어들인 거긴 하지만, 너무 좋아해서 문제네.
‘…이 변태 새디스트 새끼.’
교황 심문 건으로 끌려간 금의 사제들이 지금 어떤 꼴을 하고 있을지 상상이 간다.
‘청은 절대 끌려가지 않게 하자.’
“…그 피, 설마 교황의 피는 아니죠?”
그러자 쾌락에 젖어 있던 적의 추기경의 얼굴이 바로 일그러졌다.
“그랬으면 더 없이 좋았겠지만.”
“!”
“실은 교황이 빠져나갈 것 같다. 예상은 했지만,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거지.”
“꼬리 자르기라면…….”
“교황은 이간질을 하려 한 적 없다. 신성드래곤의 편지를 받은 것도 당시 주교로, 전부 그 주교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라 하는군.”
“교황이 전대 드래곤이 삼촌이라는 걸 알았던 건?”
“그 사실만 교황에게 말했고, 교황은 편지에 대해 일절 모른다는 것이야.”
아이작은 기가 찬 듯 했다.
아, 새끼가. 그렇게 나오시겠다?
“혹시 교황이나, 그때의 자료는 더 없고요?”
“없으니까 직접 이렇게 심문을 한 거겠지?”
“!”
적의 추기경은 피를 닦으며 말했다.
사실 그도 뭣도 없이 교황 심문을 흔쾌히 받아들인 게 아니었다. 자칫 적이 거꾸로 몰락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황실의 서고엔, 황제와 교황의 모든 정보가 남아 있다.”
“!”
“지금까지는 신성드래곤의 봉인이 걸려서 들어갈 수 없었지만, 신성드래곤이 돌아왔으니까 들어갈 수 있게 되었지.”
적의 추기경은 거기서 털어낼 게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교황가는 원래도 그 서고를 경계했어. 그리고 감이지만, 교황이 신성드래곤을 막은 이유가 만약 그것과 연관이 있다면 반드시 뭔가 나올 거라 생각했거든.”
“서고는 열리지 않았나요? 사피엔이 모든 기관을 부활시켰을 텐데?”
“열렸지. 근데 그 서고의 사서가 박살 나 있더라고.”
“사서?”
“황제와 교황의 기록을 봉인하고 지키는 고대의 골렘인데, 걔가 없으면 자료 열람을 못 해. 걔가 있어야 기록을 빼내는데.”
뭐라고?
“그래서 정말 나오는 게 없단다. 뭐, 일단 골렘을 복구해볼 생각이지만, 핵이 깨져서 가능성은 낮아. 심문에 의존해볼 생각이다.”
그런데 그럴 때였다.
“그거라면 걱정 마시길.”
“!”
그런 그들의 앞에 뜻밖의 인물이 나타났다.
“숙부님!”
벤야민이 수상한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내용물은 더 충격적이었다.
“황실 서고에서 가져온 교황의 자료다. 증거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뭐라고?!”
이번엔 적의 추기경도 드물게 놀란 듯했다.
“골렘이 없으면 그 자료를 가져올 수 없었을 텐데?”
“아, 그 골렘이라면 제가 고쳐놨습니다.”
“뭐라고?!”
고대의 물건을 어떻게?
아이작도 당황한 듯 숙부에게 속삭였다.
“어떻게 된 거죠?”
“적의 추기경이랑 똑같은 생각을 한 아버지가, 서고의 상태를 보곤 바로 날 호출하셨다.”
“아니, 그게 아니라, 숙부님은…….”
“능력이 없다고?”
“아, 아니.”
“아이작, 내가 몇 계위라고 보느냐?”
“…4계위?”
5대 가문에서는 쓰레기 취급을 받는 계위다. 그러니 차남이면서 가주 자리를 못 잇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사제 자격은 있고, 에슈아에 남아있는 걸 보면 대충 그 정도겠지. 딱 고엘 정도.’
하지만.
“0계위다. 그런 나도 성녀의 핏줄이기에 특수한 힘은 있지.”
“!”
“재생 능력이다. 상처 치료뿐 아니라, 무생물도 복구할 수 있지. 이용당하기 쉬운 능력이라 아버지는 치유 능력 정도로 알려놨지만.”
아이작은 숙부의 속삭임에 오오오, 감탄했다.
그래서 사제 자격은 있었던 거군?
레아의 아버지답다!
어쨌거나 교황의 자료를 바로 열어본 아이작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적의 추기경이 자신도 보여달라며 황급히 달라붙었지만, 아이작이 우리 숙부가 가져온 거라며 뻥 걷어찼다.
‘수십 년 간 아무도 열람 못 했던 교황의 자료라는 거잖아.’
아이작은 푸히히힣 웃으면서 자료를 빠르게 훑었다.
그런데 좀 기묘한 걸 발견했다.
-성인식을 마치고 동생과 함께 돌아오는 길에 사고. 해당 사고로 동생 사망.
아이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성인식 날도, 생일까지 같네요?]
그래. 똑같다.
[행사를 두 번 하기 귀찮으니, 한꺼번에 묶은 걸까요?]
장난하냐?
교황가가 돈이 없어, 뭐가 없어. 그런 없어 보이는 짓을 왜 해?
이게 성립하는 경우는 딱 하나다.
‘현 교황은 쌍둥이란 거다.’
아이작은 잠시 고민하다가, 질문했다.
“저기요. 죽은 교황의 동생이요. 둘 다 혹시 보신 적 있으세요?”
“우리 위 세대의 인간이니까, 우린 본 적 없지.”
적의 추기경의 말에 이어 벤야민도 말했다.
“아버지는 교황과 친구셨지만, 동생 쪽은 못 보셨을걸. 몸이 약해서 베리트가에서 나온 적이 없다고 했거든. 아카데미 출신도 아니고.”
그 말에 아이작이 기묘하게 웃었다.
‘찾았다. 교황을 공격할 수 있는 방법.’
아이작은 얄밉게 적의 추기경을 보았다.
“각하아. 제가 교황 성하를 공격할 수 있게 도와드릴까요? 또 내기라도 하실래요?”
“뭐?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공격할 건수가…….”
“아뇨. 제가 박박 긁을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긁을 게 없을 텐데? 아, 설마 거기에 황실을 공격한 증거가?!”
“아뇨. 그건 없어요.”
더 좋은 거지.
“그게 없으면 의미가 없지 않나?”
하지만 아이작은 큭 웃었다.
“아뇨. 원래 심문이란 선동과 날조로 이루어지는 법이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