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6화. 이 괘씸한 놈이 (2)
‘심문이란 본래 선동과 날조로 이루어지는 법이죠.’
아이작의 말에, 벤야민은 땀을 삐질 흘렸다.
세상에, 선동과 날조라니?
얌마! 그게 청이 할 말이냐?!
벤야민으로서는 머리가 핑 돌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그 착한 형님한테서 어떻게 이런 애가 태어났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더 잘못된 게 있다.
“아, 좋아. 최고야……!”
적의 추기경이 아이작의 말에 몸을 바들바들 떨며 몹시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아이작에게 이런 말까지 했다.
“아이작, 역시 우리 집에 올래요?”
…진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벤야민은 혐오스럽게 적의 추기경을 보았다.
하지만 정작 아이작을 보는 적의 추기경은 진심인 듯했다.
“우리 집 애들은 하나씩 문제가 있거든. 그래서 더욱 아쉽네요. 왜 태어나도 청 따위에 태어났지? 역시 지금이라도 안 올래요?”
벤야민은 바로 아이작 끌어안았다.
“아이작은 우리 집 애입니다! 선 넘지 마십시오!”
무엇보다 아버지가 듣기라도 하시면, 눈이 돌아가신다.
“그리고 사실 각하도 아시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죠.”
“!”
무려 교황의 청문회였다.
선동과 날조는 너무 갔지만, 의문을 제기해서 발목을 잡아야 하는 건 맞았다. 언제 또 교황을 심문할 기회가 생기겠는가.
하지만 이쪽이 불리한 상황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아마 오늘은 큰 수확은 없겠죠. 제가 서고에서 더 자료를 찾아올 테니, 오늘은 구색만…….”
“아뇨.”
“!”
아이작이 큭 웃었다.
“아마 다음 기회는 없을 겁니다. 오늘 청문회가 끝나면 두 번 다시는 이런 자리가 안 만들어지겠죠. 베리트 가문이 그렇게 만만한 놈들이 아니에요. 실제로 오늘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바로 적가를 박살 낼 겁니다.”
“!”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적가가 박살 날 일은 없을 테니까요. 제가 그렇게 안 냅둬요.”
그 당당함에 벤야민은 놀랐다. 교황이 빠져나갈 것 같다는 말에, 내심 기가 죽어있을 줄 알았건만.
벤야민은 매우 든든하다는 듯 아이작의 어깨를 꽉 잡았다.
“그래, 아이작. 네 숙부로서 정말 자랑스럽구나. 정말 자랑스럽긴 한데……!”
“한데?”
벤야민은 불안한 듯 적의 추기경을 보았다.
“제발 저 변태가 좋아할 건덕지 좀 주지 말렴……!”
“!”
아이작이 적을 박살 나게 하지 않겠다고 한 말을 뭐라고 알아들은 것일까. 적의 추기경은 쾌락에 빠진 것처럼, 몹시 짜릿해하며 감격하고 있었다.
벤야민은 적의 추기경이 이상한 생각을 하기 전에 아이작을 끌고 갔다.
* * *
웅성웅성.
청문회장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내부는 둥근 홀과 같은 형태였는데, 그 분위기가 마치 재판장과 같았다.
‘처음 보는 놈들로 가득하군.’
중심에 금의 추기경과 교황이 있고, 그를 감싸듯 고위 사제들이 앉아 있었다.
청, 백, 적, 금, 흑.
제각각 어깨에 화려한 영대를 두르고 있는 걸 봐서는 전원 1품 고위 사제들이다. 대부분이 장로급 이상으로, 나이 대가 있었다.
[한마디로 꼰대들만 모였군요.]
뭐, 그런 거지.
그것도 그냥 꼰대들이 아니었다. 정말 최소 주교급 이상, 다섯 신앙의 1품들만 모인 것이다.
추기경은 물론, 대주교까지 있었다. 드물게 보이는 젊은 사제들은 괜히 그 나이에 1품이 된 게 아닌지, 성력의 차원이 달랐다.
‘성직자들의 수뇌부군.’
[마족으로 치면 진마들이 모인 거겠죠?]
‘그렇지. 그 정도로 힘도, 직위도 높은 놈들이야.’
어쨌거나 평소라면 절대 볼 수 없는 이들이 한곳에 모인 만큼, 장관도 이런 장관이 없었다. 다들 술렁거리는 게 문제였지만.
“교황 성하께서 이곳에 서시다니요.”
“초유의 사태입니다.”
그들은 심문석에 있는 교황을 보며 시름하고 있었다.
금가도 심기가 거슬리는 건 마찬가지인지, 금의 추기경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 상황이 온 것도, 전부 그놈 때문이다.’
금의 추기경은 아이작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래. 일이 이렇게 된 건, 전부 아이작이 신성드래곤을 데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러운 원흉은 하나 더 있었다.
‘빌어먹을 벤야민 에슈아.’
0계위인 버러지가.
그때 그놈이 최고신만 들먹이지 않았으면, 적의 추기경이 미끼를 물 리 없었거늘. 원래 옆에서 훈수 두는 놈이 더 미운 법이다.
‘진작 최고신을 가진 아이작을 빼앗아 왔어야 했는데.’
하지만 괜찮았다.
‘오히려 적을 역으로 공격할 수 있는 기회다.’
청문회?
어차피 청문회는 자신들이 이긴다. 오히려 이 자리만 끝나고 나면, 칼자루는 금이 잡게 되는 것이다.
‘감히 청과 손을 잡아?’
어찌보면 금과 적의 싸움이기도 한 자리에서, 금의 추기경은 절대 질 생각이 없었다.
‘무고죄로 적가를 뿌리부터 뽑아주지.’
아니나 다를까, 그가 일어났다.
“금이 할 말은 끝났다. 우리가 이간질을 해 황실의 신성드래곤을 빼앗았다? 헛소리도 적당히 해야지.”
“!”
“더 이상 이야기를 진행해봐야 무의미하니, 청문회를 종료하겠다. 적은 각오하는 게 좋을…….”
“각오하는 게 좋을 건 그쪽이겠죠.”
“!!”
청문회장에 울린 목소리에 다들 크게 놀랐다. 언제 들어온 건지, 아이작이 금의 추기경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의 등장에 청문회장이 크게 술렁거렸다. 웬만한 일로는 동요하지 않는 다른 추기경들도 내심 놀란 듯했다.
특히 금의 추기경이 눈을 부릅떴다.
“감히 2급 사제 주제에,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나?”
다른 사제들도 기가 찬다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마치 어딜 겸상하려고 하느냐는 듯한 불쾌한 얼굴.
가장 분노하는 건 역시나 금의 사제들이었다.
“저 아이는 아이작 에슈아가 아닌가. 분명 2품 사제 아니었나?”
“2품도 그냥 2품이 아닙니다. 이제 막 자격 얻은, 3급에 가까운 햇병아리 놈입니다.”
“당장 쫓아내시오!”
금의 추기경도 아이작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건방진 것. 썩 물러가라! 여긴 네놈이 나설 곳이 아니다.”
다른 대주교들도 언성을 높였다.
“애초에 누가 여기 들였…….”
쾅!
“!”
갑자기 청의 가주가 책상을 내리쳤다.
닥치라는 듯한 그 신호에, 사제들이 약속이나 한 듯 조용해졌다.
청의 가주는 손자에게 가볍게 눈짓했다. 지금은 때가 안 좋으니, 잠시 나가 있으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괜찮습니다. 제가 고른 참고인이니.”
“!!”
뜻밖의 목소리에 모두가 놀랐다.
그는 다름 아닌 적의 추기경이었다. 그는 즐거워 죽겠다는 얼굴로 걸어왔다.
“아이작 에슈아는 이번 일의 중요 인물입니다. 나오기 싫어하는 신성드래곤의 대리인이거든요.”
“……!”
“그리고 다들 착각하시는 모양인데, 이 청문회가 누구의 주관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잘 떠올려보시길.”
“……!”
이깟 일로 더 이상 토를 달면, 적이 모조리 잡아가겠다는 협박이었다.
금의 추기경은 미간을 좁혔다.
“관전은 허락하지.”
그 말에, 적의 추기경은 푸흡, 웃었다.
“이 청문회의 책임자 권한으로 아이작 에슈아의 발언도 허락하겠습니다.”
저 새끼가?
금의 추기경이 노려보았지만, 정작 적의 추기경은 싸늘하게 웃었다.
“금은 지금 피고 상태요. 그러니 제 역할을 착각하지 말고, 묻는 말에나 똑바로 답하시오.”
금의 추기경은 이를 갈았다. 이 상황 자체가 기가 막혔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이 자리만 넘기면 되었다. 여기만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청과 함께 적을 완전히 없애주겠노라.
아니나 다를까, 금의 추기경이 한쪽을 가리켰다.
“모두 저 주교가 한 짓이다.”
참조인으로 끌려온 금의 주교도 혐의를 순순히 인정했다.
“황실이 교황 성하의 힘을 누르려는 것이 보기가 싫었습니다. 하여 이 일은 교황가와는 무관하며, 전부 제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입니다.”
사제들은 모두 수긍했다.
‘충분히 있을 수 있지.’
다른 신앙은 모두 신이 주가 되지만, 금의 신앙은 충성의 대상이 신의 현신인 교황인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충신의 마음이군.’
금의 사제들은 감동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그를 비웃는 이가 있었다.
“허, 그럼 주교는 그런 일을 벌일 정도로 교황의 힘이 약하다고 생각한 거군요?”
뭐가 어째?
아이작의 말에 모두가 흠칫 놀랐다. 지금 저놈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하지만 아이작은 푸흡 웃었다.
“아니, 그렇지 않습니까? 고작 주교급이 교황 성하를 걱정해 일을 벌일 정도로, 교황의 권위가 위태로웠던 건가요?”
교황은 아이작을 보며 눈썹만 치켜올렸고, 금의 추기경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아랫것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의미 없고, 우리야 알 바 아니지.”
“글쎄요? 아랫것들이라기엔 주교급이 그리 머리가 텅텅 빈 신분도 아니고.”
뭐, 뭐? 머리가 텅텅?
다들 제 귀를 의심했지만, 아이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심지어 황실의 일입니다. 자칫 역모죄로 끌려갈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인데, 교황께서 멀쩡하시다면 과연 그런 위험한 짓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각자의 가치관은 전부 다른 법이지.”
금의 추기경은 천민들은 알지 못하는 세계라는 듯 말했다.
“아직 그런 일을 겪지 못했나 본데. 네 부하가, 네 소가주의 지위가 위험하다 오인하여 주군을 위해 멋대로 일을 벌일 수도 있는 것이다.”
“글쎄요. 아무리 충성심이 강해도, 건수가 없으면 그리 안 할 것 같은데요? 하물며 금의 주교쯤 되면 명문가의 엘리트잖아요? 그런 일은 본래 잃을 게 없는 이들이 하는 겁니다. 그것도 아니면 위에서 시켰거나.”
저놈이?
아이작은 푸흡 웃었다.
“그것도 아니면, 신성드래곤이 나타나면 교황 성하의 비밀이라도 밝혀질까 봐 그랬나요?”
아이작의 거침없는 발언에, 청문회장이 일순 조용해졌다. 다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듯한 얼굴들이었다.
그도 그럴 게, 적의 추기경이 입장을 허락할 정도면, 저 아이가 뭔가 알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교황 성하께 비밀이라니.”
“…그게 무슨?”
그 반응에 다들 제 미끼를 물었다는 듯, 아이작이 간드러지게 웃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
“당신, 진짜 교황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