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7화. 이 괘씸한 놈이 (3)
“당신, 진짜 교황 맞아?”
아이작의 말에 모두가 제 귀를 의심했다.
…미친, 지금 뭐라고?
청문회장에 정적이 흘렀다. 충격이 상당했는지, 1품 사제들은 물론 추기경들조차 넋을 잃을 정도였다.
물론 적의 추기경만이 입꼬리를 주체 못 하는 게, 좋아 죽으려고 했지만 말이다.
이 정도면 책임을 감수하고 들여보내준 보람이 있었다.
아니, 보람뿐이야?
최고다!
미쳐도 제대로 미쳤어!
설마 구름 위에 선 고고한 인간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내리려 할 줄이야!
반면 입구에 서 있는 벤야민으로서는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저 아이가 뭔가 크게 터트릴 줄은 알았다만.’
이건 선동과 날조 수준이 아니잖아!
신성모독이며, 국가 전복 수준의 발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 애송이가 뭐라 지껄이는 것이냐!”
“지금 무슨 말을!!”
침묵했던 청문회장에 폭발하듯 고함이 터져 나왔다. 특히 금의 사제들은 경기를 일으켰다.
“이건 능멸입니다!”
“청도 적과 함께 멸문하고 싶은 것이냐!”
그 아수라장 속에서 청의 가주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드물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만큼 충격이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아이작은 당당하게 테이블 앞으로 가 서류를 펼쳤다.
“황실 서고에서 가져온 교황 성하의 기록입니다.”
“황실 서고?”
황실 서고란 말에 교황가가 움찔하고, 모두가 놀란 듯 술렁거렸다.
“황실 서고라면 역대 황제와 교황 성하의 기록이 보관된 곳 아니오?”
“맞소. 분명 역대 황실, 교황, 그 누구도 건들 수 없는 초대 신성드래곤의 마법이 객관적인 사실만 기록을 한다고…….”
“하지만… 그걸 열람할 수 있는 사서가 파괴되었다고 하지 않았나?”
“넵. 그거 고쳤고요.”
“뭐?!”
아이작은 푸흐흐 웃으면서 자료를 읽어주었다.
“율리오 교황. 옛 이름은 ‘율리오 베리트’죠. 아무튼 기록에 의하면, 형 ‘율리오 베리트’와 동생 ‘브루티오 베리트’는 성인식 날도, 생일도 같습니다.”
“!”
“그 둘만 같은 게 아니라 출생연도도 같은 걸 봐선, 교황 성하는 명백한 쌍둥이입니다. 1품 사제분들 중에서는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요.”
그 말에 교황과 비슷한 나이 대의 금의 사제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쌍둥이가 어쨌단 것이냐!”
“쌍둥이라도 교황으로서의 재능은 한 아이에게만 쏠리니, 교황이 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뇨아뇨, 그걸 말하려는 게 아니고요. 쌍둥이라는 사실에서 주목해야 하실 건 그딴 게 아니죠.”
“뭐?”
아이작은 자료를 읽으며 웃었다.
“열여덟 살, 형과 동생은 교황청에서 성인식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도중 암살자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그 습격으로 당시 마부며 시종들은 다 죽었다고 하죠. 유일한 생존자는 형인 율리오 베리트뿐.”
“……!”
그 말의 의미를 눈치챈 사제들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작의 가늘어지는 눈이 교황을 향했다.
“동생은 즉사했다지만, 글쎄. 그래서 당신이 진짜 형인 ‘율리오 베리트’가 맞느냐고.”
“!”
“사실은 그때 죽은 게 형이고, 당신은 동생 아닌가?”
뭐가 어째?! 네 추기경들도 기가 찬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적의 추기경만이 어서 더 해보라는 듯, 눈이 반달을 그리고 있다.
“기록을 봐도 그래요. 어떻게 쌍둥이가 죽었는데 동생이 죽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물론 성법이나 마법으로 신원을 판별할 수 있긴 하지만, 그게 불가능한 유일한 예가 바로 쌍둥이였다.
“죽은 쪽의 손에 차기 가주의 반지가 껴 있고, 살아남은 쪽이 율리오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모두가 형이 살아남았다고 생각했을 뿐.”
“……!!”
“그러니 혹시 또 모르는 거죠? 사실 그때 죽은 건 형이고, 동생이 형 행세를 했을지. 아니지, 실은 교황이 되고 싶어 형을 죽인 건가?”
아이작의 도발에, 금의 사제들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일어났다.
“이런 무엄한!”
“끌어내라! 능멸도 이런 능멸은 없다!”
“청은 지금 본인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줄 아느냐!”
하지만 다른 신앙의 사제들은 은밀히 속닥이며 술렁거렸다.
“쌍둥이란 걸 아셨소?”
“아니…. 굳이 밝히지 않았으니까.”
성인식과 생일이 같은 건, 신께 함께 축복받았다는 걸로 받아들였다. 교황가치곤 특이하다 싶었지만, 공동체를 중시하는 성직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좋게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애초에 동생 쪽은 모습을 잘 드러내지도 않지 않았소.”
왜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았느냐면, 좀 특이한 금가의 가주 승계 방식 때문이었다.
금의 가주 자리는, 형 쪽이 가문 일을 배워 귀족들과 모든 연을 만든 뒤, 동생에게 승계해주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래야 교황이 된 후에도 귀족들과의 연이 끊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교황과 가주는 하나라는 인식을 주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두 동생에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베리트 가주는 대대로 교황의 그림자일 뿐.
교황이 될 키나가 현재 소가주라고 불리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쌍둥이란 것도 아마 금의 직계들 정도만 알았겠지.’
그리고 그런 만큼, 동생이 죽은 사건에는 충분히 의혹을 품을 만했던 것이다.
“이거, 제대로 판별해야 하는 것이 아니오……?”
금의 사제들을 제외한 다른 사제들이 술렁거리자, 아이작의 입꼬리가 귓가에 닿았다.
좋다! 걸렸어!
다들 미끼를 물었어! 한번 의혹을 품으면, 한없이 생각의 나래를 펼치는 게 인간이다!
‘사실 교황이 진짜든 아니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사제들이 의혹을 품기 시작했다는 거지!
‘그리고 난 반드시 널 가짜로 만들 거거든! 크크크큭.’
하지만 그 반응에, 금의 사제들이 눈을 부릅떴다.
“헛소리 마라! 교황 성하께서 형의 행세를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왜 굳이……!”
그 시선에 아이작은 몹시 짜릿해했다.
크으, 금의 사제들이 저 말을 하다니!
‘새끼들, 넘어왔네,’
아이작은 기다렸다는 듯 능청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충분히 있죠. 보통 교황이 죽으면 곧장 차기 후보에게 넘어가지만, 차기 후보도 공석이라 승계가 불가능해지는 경우. 그땐 추기경들의 회의와 신의 선택에 따라 대리자를 둡니다. 보통 그 대리자는 신성드래곤이죠.”
“……!”
사실 긴 신성제국의 역사 속에서 교황의 승계가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어린 교황이 들어서면 들어섰지, 절대 넘겨주지 않았다.
수백 년 전, 딱 한 번 신성드래곤에게 넘어갈 뻔한 적 외에는.
그리고 그때의 기억의 때문일까.
“자칫 권력이 황제나 다른 신앙 쪽으로 넘어갈까 봐 두려웠겠죠.”
뭐, 본인이 형을 살해했다는 쪽이면 이야기는 더 심해진다.
‘친족 살해는 극형.’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싶든가, 목숨이 아까웠든가, 이유는 많겠지만… 뭐, 사실 관심 없었다. 아이작에게 중요한 건 저놈이 가짜란 거지.
‘쌍둥이라서 외견은 똑같고, 능력도 뭐, 교황 정도의 힘은 아니더라도 다행히 쌍둥이라서 어느 정도 속일 수준은 된다.’
본인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눈치 못 채겠지.
“선택받지 않은 자가 교황이 되는 건 중죄입니다. 사기죄로 충분히 사임 사유가 됩니다.”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야말로 초유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사제들도 할 말은 있었다.
“신께서 그걸 모르실 것이라고 보나!”
그러자 아이작이 씨익 웃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교황은 신이 직접 간택하는 게 아니라, 교황의 자리에 태어난 자가 올라가는 겁니다. 베리트 가의 장손이요. 그 장손의 자리에 대대로 신의 축복이 깃드는 거죠. 그게 신성제국과 신의 약속이고요.”
“저……!”
“아니면 금의 신도 다른 쪽에 교황 자리가 넘어가는 걸 원치 않으셔서 묵인하셨을지도요.”
저놈이?!
그쯤 되자, 위스퍼가 불안한 듯 소근거렸다.
[저기요 주인님, 이렇게 막 지르셔도 됩니까? 쟤들 눈빛 보세요. 이러다 주인님 목이 졸려 죽겠어요.]
그러나 아이작은 푸흡, 웃었다.
‘나도 아무것도 없이 선동만 하는 건 아냐.’
[예?]
‘너도 그렇고, 나도 그랬지? 저 교황보다 청의 가주가 더 강해 보였다고.’
[아…. 그러긴 했죠]
‘내가 봐도 그래. 교황이 강한 성직자인 건 맞는데, 역대 교황들하고 비교하면 급이 좀 딸려.’
교황 특유의 아우라가 없었다.
‘뭐, 이것도 나니까 눈치채는 거지만.’
곧 아이작이 말을 이었다.
“근거는 또 있습니다.”
뭐?! 또 있다고?
사제들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적의 추기경은 ‘그렇지, 여기서 끝나면 재미 없지.’라며 좋아 죽었고, 벤야민은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자료는 그걸로 끝인데?’
공격할 요소가 남아있던가?
“교황 성하께서 할아버지, 즉 청의 가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뭐가 어째?!
이번엔 청의 사제들도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하지만 아이작은 웃었다.
“교황께서 청에 무모한 의뢰를 맡긴 적이 있습니다. 진마의 구역에 가서 성물을 찾아오라고요. 그것도 보름 내로.”
금의 사제들은 같잖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무모한? 웃기고 있군. 청의 주적은 진마다.”
“숙적을 잡아 오라고 한 것이 뭐가 무모한 의뢰지?”
“청의 가주에게는 힘든 일도 아닐 텐데.”
그러나 다른 사제들은 질색하며 그들을 비난했다.
“제정신인가?”
“그런 위험한 임무를 내리면서 보름밖에 안 주다니!”
“그리고 그 무렵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죠. 교황이 젊었을 때랑 많이 변했다고. 절친이셨던 할아버지가 본인의 정체를 알아차릴까 봐, 처리하려고 한 거죠.”
사제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듣는 일라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저 자식이 이걸 이렇게 엮는다고?
정신이 혼미하다.
동시에 일라이는 몹시 분노하고 있는 교황을 보았다. 그러자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천재라 불리던 교황, 율리오하고는 서로의 저택을 오가며 자주 어울렸다. 아카데미에서도 함께했었다. 동생의 존재 또한 알았지만, 동생은 얼굴에 화상을 입어서 늘 가면을 쓰고 다녔다. 소심했고, 자신들을 동경했다.
어쨌거나 세월이 지나고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이 변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면.
‘설마 진짜 브루티오, 너냐?’
청의 가주인 일라이마저 흔들릴 정도였다.
그쯤 되자, 금의 사제들은 치를 떨었다.
“이딴 말도 안 되는 말을 계속 듣고만 있어야 합니까?”
“맞습니다. 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아니, 미친놈에게 발언권을 준 적의 추기경은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일어서 교황만을 보았다.
“교황 성하께서 무고를 증명해주실 것이오.”
“어서 저 같잖은 것들에게 철퇴를!”
그러나 교황은 아이작을 노려볼 뿐 침묵했다.
금의 사제들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교, 교황 성하?”
아이작은 씨익 웃었다.
“왜 대답을 못 하세요? 교황 성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