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8화. 이 괘씸한 놈이 (4)
“왜 대답을 못 하세요? 교황 성하?”
교황은 답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사제들이 술렁거렸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술렁거림이었다.
“왜 침묵하시지?”
특히 금의 사제들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건가.”
“이 정도로 깽판을 부리면 맞대응을 해야지. 침묵을 택하시다니……!”
여러모로 곤란하다는 반응이다.
지켜보던 다른 신앙의 사제들도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진짜야?
“…설마 진짜겠어? 상대할 가치가 없으니 침묵하시는 것이겠지.”
“맞아…. 그럴 거야. 교황께서 설마.”
그러나 아이작은 코웃음을 흘렸다.
뭐? 상대할 가치가 없어?
그래서 침묵하는 거야?
아니, 저건 무시를 위한 침묵이 아니었다. 진짜로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니 아이작으로서는 입꼬리가 찢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야아, 진짜였어?’
뭐, 강력한 심증이 있어서 한번 찔러본 건데, 의외로 진짜였던 모양이었다.
물론 저놈은 수십 년간 교황으로 있던 놈이었다. 그리고 사제들이 바보도 아니고, 그 기간 동안 가짜도 구분을 못 할까. 무려 할아버지까지 속이고 있었으니 말 다 했지.
그러니 분명 교황 행세를 할 수 있던 모종의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쌍둥이라서 가능했다거나, 금의 신이 봐줬다거나, 뭐. 뭔가 있을 거다.’
신성제국 전체를 속일 수 있는 강력한 수가. 단지 저놈이 예상하지 못한 유일한 변수는 아이작. 최고신을 가진 존재다.
‘뭔 수를 쓰든 최고신 앞에서는 진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런 것치곤 최고신하고 접점도 없잖아요.]
쉿. 언젠가 만들 거야.
최고신도 자신의 행동을 막지 않는 걸 보면, 뭐. 금의 신하고 사이가 안 좋은 거겠지.
아무튼 최고신을 다룰 수 있어야 당당히 목 펴고 뻗댈 수 있긴 하지만,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최고신이 간택한 놈이 하는 말에는 힘이 실린다.
아니나 다를까.
사제들이 술렁거리고, 금의 추기경도 당황해하며 교황을 불렀다.
“교황 성하.”
그러나 교황은 여전히 답이 없다.
“교황 성하?”
부름에 불안감이 담기기 시작했을 때, 교황이 곧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절머리 난다는 듯한, 혐오 어린 한숨이었다.
“뭔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군.”
“!”
교황은 드물게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청에서는 후계 교육을 어떻게 하는 거지?”
“!”
그 살의에 오싹해진 사제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순간, 가짜라고 오인한 게 부끄러워질 만큼의 존재감이었다. 솔직히 아이작의 발언 수위는 이미 국가전복과 신성모독의 수준을 넘어섰다.
그 증거로 교황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듯,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나를 음해하는 저의가 궁금할 수밖에 없군. 가뜩이나 신앙심이 부족해 보인다고 질시받는 아이가 아닌가. 성직자들을 이간질하고, 분란을 일으켜 국가를 혼란에 빠지게 하려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아. 이건 마족의 아이나 할 법한 짓이 아닌가?”
마족의 아이가 아니라, 마왕입니다만?
아이작은 한쪽 눈썹을 치켜떴지만, 금의 사제들은 그사이에 기세가 등등해졌다.
“맞습니다!”
“교황 성하를 음해하여 신성제국을 위험에 빠트리려는 것입니다.”
똘똘 뭉쳐 물타기를 시작하는 모습에, 아이작은 같잖다는 듯 웃었다.
아, 이렇게 나오시겠다? 이것들이 해골왕 짬바를 무시하네. 이래 보여도 말싸움으로 진 적이 없거늘.
[털 수 있는 게 이빨밖에 없으시니까요. 흑흑.]
닥쳐.
곧 아이작이 웃으며 말했다.
“교황 성하. 저는 그래 봐야 2품 사제 나부랭이입니다.”
“!”
“만약 교황 성하가 한 치의 의혹도 없는 진짜시라면, 저는 분란을 일으킨 죄로 목이 잘리면 그만일 찌끄레기 신분이죠. 아. 뭐, 거기서 좀 더 나가면 멸문일 뿐이고요. 가문 사람들 전원 목이 뎅강뎅강이겠네요.”
아이자아아악!
벤야민과 일라이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특히 벤야민은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줄은 아는 것이냐!’
그러나 아이작은 큭큭 웃었다.
‘이 정도로 청은 무너지지 않는다.’
자신이 어떻게 황태자와 황제를 꼬셔놨는데?
‘캬, 고생했다. 팔자에도 없는 신성드래곤을 찾아와줘, 20년간 고생하던 황권도 되찾아줘, 날 안 예뻐하고 배겨?’
지금 시점에서 청을 무너트린다는 건 황제한테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신성드래곤과… 뭐, 그래. 황태자는 빡쳐할 수도 있겠지만, 마도제국의 침공을 받을 수 있겠네.
백의 추기경하고도 손잡아놨으니, 청을 건드려면 백의 눈치를 봐야 할 거고.
그러니 이 정도 깽판은 괜찮다. 자신의 패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아이작은 방긋 천사처럼 웃었다.
“저야 미꾸라지니까, 저 하나 목 잘리면 누구도 피해 보지 않고 끝나는데, 교황 성하는요?”
“!”
“교황 성하는 저 따위랑 전혀 다르신 분이세요! 교황 성하가 가짜라면 그 여파는 상상 이상입니다!”
“……?!”
아이작은 선량한 애국자의 얼굴을 했다.
“당장 5대 가문과 교황께 손 벌린 나라들, 그 밑에 딸린 선량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피해량이 차원이 달라요! 진짜 신성제국을 위험에 빠트리는 건 어느 쪽인데요? 저입니까? 교황 성하입니까?”
“……!”
“제국의 근본적인 신용과 신뢰가 걸린 문제이고,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제국민들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호소하는 겁니다! 교황 성하가 진짜라고 믿고 싶으니까요!”
교황이 진짜라고 믿고 싶다고……?
진짜로?
일라이와 벤야민이 질색하듯 아이작을 보았지만, 아이작은 경건하게 가슴에 손을 얹었다.
“교황임을 증명해주시면, 이 아이작 에슈아. 달게 벌을 받겠습니다. 결과에 승복하고 이 목을 바치겠습니다.”
어떤 의미론 이번엔 아이작이 내기를 거는 셈이었다.
위스퍼는 슬슬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주인님, 진짜면 어쩌려고요?]
‘진짜여도 상관없어. 내가 가짜로 만들 거라서.’
[저쪽이 예상치 못한 걸로 증명해오면, 어쩌려고요?!]
‘못 해. 쌍둥이이기 때문에 이쪽이 진짜를 알아낼 방법도 없지만, 그건 반대로 말하면 저쪽도 증명할 방법이 없단 거야.’
그래, 그나마 증명을 하려면…….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께서 그러셨죠. 젊은 시절, 교황 성하와 나눈 중요한 약속이 있었다고.”
“!”
그 말에 일라이는 황당하다는 듯 손자를 바라보았다.
약속이라니?
하지만 아이작은 뻔뻔하게 웃었다.
“분명 있었을 겁니다. 약속이.”
…저놈이 없어도 만들어내라는 건 잘 알겠다. 손자의 의도를 눈치챈 일라이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칼자루를 쥐고 싶어 하는 거군.’
무모하기 짝이 없지만, 사실 아이작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젊은 시절에 교황과 나눈 약속이 있었다. 그 정도로 가까운 친구였으니, 당연히 공유하고 있는 기억들이 많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
교황이 된 시점에서, 교황은 인간이 아닌 성인으로 취급된다. 즉, 자신의 친구와 더 이상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신분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일라이는 젊은 시절 약속을 나눴던 친구를 대하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내 오랜 벗이여. 성인식이 되기 전에 나와 나눈 이야기를 기억하나? 내게 했던 그 약속을.”
하지만 교황은 일라이를 노려만 볼 뿐이었다.
그 모습에 일라이의 동공이 흔들렸다.
많은 의미가 담긴 그 침묵에, 아이작은 씨익 웃었다.
‘좋아, 통할 줄 알았어.’
[저쪽이 기억이 안 난다고 발뺌하면 어쩌려시고요?!]
‘그래도 상관없어.’
[왜죠?]
‘이번엔 치매로 몰아넣을 거거든.’
[…사탄입니까?]
그리고 사실 교황이 뭔가를 기억해내도 상관없다.
‘이번엔 이쪽이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거든!’
[…와, 주인님. 진짜 오래 사시겠네요.]
아히, 좋아! 푸헤헤헤헿!
그래, 어느 쪽이든 지금 상황에선 교황한테 불리하다는 것이다.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말이다.
하필 절친이라 형을 자세히 기억하는 일라이의 존재가 굉장히 거슬릴 것이었다.
‘패는 이쪽이 쥐고 있다.’
저쪽도 신을 소환해서 증빙을 안 하려는 걸 보면, 분명 털릴 만한 게 있다는 거겠지.
‘그러다가 내가 최고신을 불러내기라도 한다고 할까 봐 침묵하는 거야.’
금의 신은 저놈의 편을 들겠지만, 최고신은 내 편을 들 테니까.
그게 아니어도 교황보다 강한 신을 소환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무능력하다는 걸 역사에 남기기 싫은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저 교황이 왜 그렇게 최고신을 빼앗아가려고 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럴 때였다.
사제들이 술렁거렸다.
“그럼 의혹 해결 방법이 없지 않나.”
“청의 추기경의 증언을 들어보면 되잖소?”
“저자가 거짓말을 하는 거면 어쩌려고?”
“청이 거짓말이라도 한단 말이오?!”
그 술렁거림에 적의 추기경이 나섰다.
“이대로는 끝이 없겠군요.”
“!”
“교황 승계 문제는 권력 구도에 큰 영향을 끼치기에 결코 비리가 있으면 안 되며, 모든 성직자들의 약속으로 이루어진 최고 중대 사항입니다. 모든 의혹이 끝날 때까지, 교황의 모든 직권을 임시로 정지시키고, 조사에 들어가겠습니다.”
뭐라고?
금의 사제들이 기가 찬 듯 입을 벌렸다.
“저……!”
뭐라 따지기도 전에, 적의 추기경은 다른 추기경들을 불렀다.
“교황께서 결정을 내려주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관례에 따라 다섯 추기경의 의결로 결정하겠습니다. 해당 의제에 동의하시는 분?”
손을 들어 올린 건 둘이었다.
“찬성이에요.”
“동의한다.”
백과 청의 추기경이었다.
적의 추기경은 씨익 웃었다.
청이야 뭐, 친구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것일 테고. 백은…….
‘아이작의 편을 드는 건가?’
흠, 라이벌이 늘면 곤란한데.
뭐, 아무래도 좋다.
“금은 당연히 반대이실 거고.”
그 웃음 섞인 말에, 금의 추기경이 매섭게 적의 추기경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적의 추기경은 무시하고 마지막 남은 사람을 보았다.
“흑은…….”
“기권하겠다.”
“좋습니다. 찬성 셋, 기권 하나, 반대 하나로 이 의제는 가결되었습니다.”
“뭣……!”
그는 아이작을 보았다.
“아 참, 수사권은 아이작 에슈아한테 드리죠.”
금의 사제들이 도저히 듣고 있지 못하겠다는 듯 들고 일어났다.
“보자 보자 하니까, 뭐라고?!”
“적가도 아니도, 청한테… 그것도 저놈한테 준다고?!”
“뭣도 없는 꼬마한테!”
그러자 적의 추기경이 크흐흡, 악마처럼 웃었다.
“뭣도 없는 꼬마라니요. 해골왕을 처리한다는 예언된 기수 수석에, 성자 후보, 청의 후계자, 신성드래곤의 신뢰까지 얻고. 거기에 다들 알다시피 최고신의 사랑까지. 명실상부 차기 교황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인데, 대체 뭐가 문제죠?”
“…큭!”
교황가와 금의 사제들이 굴욕적인 듯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작은 푸헤푸헤헿, 초승달 눈으로 웃었다.
어쩔 건데? 니들이 뭘 할 수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