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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09화 (209/272)

제209화. 이 괘씸한 놈이 (5)

신성제국은 발칵 뒤집어졌다.

“들었어? 교황 성하가 잡혀가셨대!”

“뭐라고?”

상상도 못할 소식에 제국민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특히 성직자들은 제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세상에, 아무도 건들 수 없는 최고의 존재를 도대체 누가! 어떻게!

“가, 가능해? 어떻게 감히 교황 성하를 잡아가……!”

“개소리하지 마! 안 잡혀가셨어! 그냥 직권이 정지되신 것뿐이야!”

“뭐라고? 그게 더 충격인데?”

사제들은 이 모든 일을 주도한 게 아이작이란 사실이 충격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더 충격인 건, 조사의 대상이 된 게 아이작이 아니라 교황이라는 점이었다.

‘보통은 교황을 공격한 쪽이 끌려가지 않나……?’

‘그게 아니라는 건, 진짜 교황 성하한테 문제가 있다는 거잖아……?!’

실제로 귀족들은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지금 금가가 조사를 받고 있나봐.”

“말이 되냐? 어떻게 금가한테?”

“어쩔 수 없지. 황실과 신성드래곤 사이를 이간질했다는 정황이 나왔으니…….”

“그것만 있음 다행이게? 그 일 이전에 교황 성하의 승계에 문제가 있었나봐.”

“뭐? 승계? 무슨 문제?”

“모르겠어. 실제로는 그것 때문에 일이 커져서 조사에 들어간 거래.”

“뭐지? 비리인가?”

“교황이 가짜래…….”

“뭐?!”

그제야 사제들은 교황이 끌려간 이유도 납득한 듯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끌고 간 아이작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다.

“어쨌거나 교황의 승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이거 진짜 피바람 부는 거야.”

“…이런 미친, 그러네. 승계 이후 교황이 직접 임명한 사제들이랑 귀족들, 정책이랑 사업들도 다 같이 문제 터지는 거잖아.”

“헉, 그럼 전부 옷 벗는 거야? 전부 없던 일로 되는 거고?”

“장난해? 교황가하고 얽힌 귀족 가문들이 몇인데?”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지금 다들 진짜인지 아닌지, 살얼음판이란 거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교황가와 연이 있는 귀족들은 당연히 뒤집힌 상태였다.

“각하! 각하!”

“적가에서 저희를 조사하겠다며 쳐들어왔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 좀!”

교황청은 금의 추기경을 따라다니는 귀족들로 가득했다.

이런 상황에선 금의 추기경도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다. 결국 그는 항의하는 귀족들을 뿌리치곤 교황의 방으로 들어왔다.

쾅!

안에는 키나와 교황이 있었다.

“귀족들은 일단 쫓아냈습니다. 키나, 너도 당분간 귀족들과의 만남을 자중해라.”

“…….”

키나는 심정이 복잡했다.

‘하필 에슈아가 적이랑 손을 잡을 줄이야.’

적가는 귀족들 모두에게 위협적인 곳이었다.

특히 세력만 보면 굉장히 막강해서, 금이라는 막강한 호랑이를 언제든지 끌어내리려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는, 이인자 여우였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 아이작이 그놈들과 손을 잡고 할아버지를 공격했다니?

키나의 표정에 금의 추기경이 바로 눈치를 주었다.

“네가 얼빠지게 아이작 에슈아의 꽁무니를 쫓아다닌 결과가 고작 이거냐? 결국 칼로 널 찌르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친구라고?”

“……!”

“성자로서 입지로 굳혀놓지도 못하고, 그놈은 황실과 손을 잡고 우리를 쳐낼 생각인 거다. 널 이용한 거지.”

키나는 대답 대신 입만 삐죽거렸다. 그러나 금의 추기경의 눈초리는 더욱 살벌해졌다.

“가주가 돼야 하는 네 동생도 네게 물들게 하고. 아이작 에슈아의 팬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네 동생이, 정녕 정상이더냐?”

“윽.”

“한 번만 더 아이작 에슈아를 만나겠단 말을 지껄이면 가만두지 않겠다. 아이작 에슈아를 처리해.”

“…….”

곧 훈계를 끝낸 금의 추기경이 교황을 보았다.

“제가 손을 쓰고 싶지만, 적가 놈들은 신진 귀족들이 많아서 이쪽의 눈치도 안 봅니다.”

백과 흑도 적만큼 세력은 강하다.

하지만.

“그놈들은 혈통 있는 것들이라, 고상하고 얌전하기라도 하지.”

물론 적가도 5대 가문인 만큼 수백 년의 역사를 가졌지만, 하도 쿠테타로 가주와 구성원이 물갈이되는 곳이라, 황실과 유수 깊은 교황 가문이 보기엔 근본이 없다.

‘그딴 천한 것들이 감히 금가에 흙발로 들어오다니.’

물론 지금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지만.

“사실입니까?”

“!”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아닌지를 알아야 대처를 합니다. 가짜라는 말은 사실입니까?”

교황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아이작 에슈아가 헛소리하는 거다.”

“!”

“이 자리는 정당한 자리다. 놈들로는 결코 끌어내리지 못해.”

“그러면…….”

“단, 황실 서고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

“황실 서고…….”

“놈들이 보면 안 되는 기록이 거기 있다. 아직 모든 사서를 부활시킨 건 아니지만, 그 사서의 일부를 청이 부활시켰더구나.”

무슨 말인지 잘 아는 금의 추기경이 이를 갈았다.

“벤야민 에슈아…….”

설마 0계위의 쓰레기가, 그런 능력을 숨기고 있는 줄은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거슬린다. 치워라.”

“!”

“그놈을 죽이고, 부활시킨 사서도 박살 내라. 그럼 그 안에 있는 내용이 세상에 나갈 일은 없겠지.”

교황은 드물게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향해 살의를 드러냈다. 아무래도 황궁에서의 굴욕이 지워지지 않는 듯했다.

-계시? 그럼 최고신의 신탁을 받은 아이작의 결정은, 이 나라 최고 계시겠군?

-아이작이 저 드래곤을 신성제국으로 데려왔으니. 그게 최고신의 뜻이겠고.

감히 성녀 가문의 남아가 자신의 앞에서 최고신을 들먹이며 최고 권위에 도전해?

동시에 자신에게 의문을 제기한 청의 가주, 일라이도 가증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그래봐야 해골왕을 잡지도 못한 성녀 가문 주제에. 교황가에 굴욕을 느끼게 해? 주제를 파악해야지.

그때, 금의 추기경이 말했다.

“벤야민 에슈아를 처리하고 싶어도, 황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이번 일로 완전히 아이작 에슈아의 패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니까요. 하물며 벤야민 에슈아는 딱히 문제 될 거리가 없어서 치우기 더 힘든…….”

“아니. 그 딸이 성녀라서 쉽게 처리할 수 있다.”

“!”

그 말에, 키나가 움찔했다. 그는 이상하다는 듯 관심을 가졌다.

‘성녀…? 그게 왜?’

* * *

“캬아아아아, 이거지. 이거야! 아주 좋아!”

아이작은 신성제국에 들어온 이례로 가장 기분이 째졌다. 오죽하면 덩실덩실 관광버스 춤을 추는 아이작을, 슈리가 썩은 눈으로 쳐다볼까.

하지만 상관 없었다.

아이작의 계략은 처음부터 교황의 손발을 완전히 묶는 것이었다.

‘황위 계승의 승인권? 그걸로는 너무 약했지.’

처음부터 이 상황까지를 계획했던 아이작은 푸흐흡 웃었다.

뭐, 거슬리는 금의 사제들은 변태 사이코패스한테 끌려가 비명을 지르고 있겠지만, 알 게 뭐람.

‘같은 편이 되니까 엄청 든든하구만.’

뭐. 문제가 있다면…….

-아이작, 역시 우리집에 안 오실래요?

이 미친 새끼. 아이작은 적의 추기경이 보낸 서신을 혐오스러운 듯 찢었다.

곧 슈리가 춤은 다 췄냐는 듯 한숨을 쉬었다.

“우리로서는 좋긴 한데, 너 괜찮은 거 맞냐? 이렇게까지 들쑤셔놨으면, 교황가에서도 가만히 있을 리 없잖아.”

그 말에 춤추는 아이작을 몹시 귀여워하던 레아가 붉은 편지를 펼쳐보였다.

-우리집 아이가 되면 적이 보호해줄 수 있는데.

-리온 세페트

하. 그 변태 새끼, 참 끈질기네.

하지만 아이작은 상관없다는 듯 큭 웃었다.

“교황가 놈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건 알아. 그리고 당연히 나도 대비를 해 두고 일을 벌이는 거지.”

“!”

“그리고 벤야민 숙부가 사서들을 복구하고 있으니까, 증거물은 더 나올 테고.”

아이작은 최고라는 듯 푸히히힣 웃었다.

“적가 놈이 수사권을 나한테 줬으니 이제부터 시작이야.”

교황가 놈들을 아주 잘근잘근 조져주지!

그 웃음에, 슈리는 혐오스러운 듯 슬금 물러났다. 어째 웃는 게, 적의 추기경이랑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 이거는 레아 누님께 온 서신이네요.”

에슈아에 온 편지를 읽던 도중, 슈리가 편지 하나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 편지가 매우 수상하다.

“뭐야, 이거 교황이 보낸 거잖아?”

금색에, 교황의 인장.

하지만 내용물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이거 축하장이잖아.”

축하할 때와, 슬픔을 기릴 때의 봉투는 보통 다르다. 그래서 더욱 이상한 것이었다.

“교황가가 에슈아에 축하 편지를 보낸다고? 걔들 변태야?”

그러나 레아가 가볍게 웃었다.

“그래 봐야 별거 아닐 거야. 평소처럼 교황청에서 보낸…….”

그러나 편지 내용물을 본 레아의 얼굴이 드물게 창백해졌다.

아이작도 슈리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아이작은 레아가 들고 있는 편지를 빼앗아 읽었다.

-레아 에슈아 경에게. 9계위가 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건, 승단 축하 서신이잖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보통 계위가 오를 때마다 축하 서신이 온다. 아이작과 슈리한테도 왔었다.

특히 9계위면, 추기경급이었다. 최고위 성직자가 탄생한 일이니, 교황청에서는 엄청난 환대를 하며 엎드려 절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뭐, 레아는 9계위인 걸 숨기고 있었지만.’

사실 오래 숨길 일은 아니긴 했지.

성녀는 교황과 가까운 막강한 권위를 가진다. 그런 만큼 숨기지 않는 게 청이나 아이작한테는 좋은 일이었고 말이다.

단지 걸리는 게 있다면…….

-청에서 진정한 성녀가 탄생하게 되는 기쁜 일이니, 교황청에서 즉위식을 준비하겠습니다.

그 서신을 보는 아이작은 가증스러운 듯 웃었다. 그는 단번에 교황의 의도를 눈치챈 것이다.

‘이거, 레아를 이용해서 벤야민을 처리하려는 거구나?‘

새끼들이.

누구 앞에서 이딴 개수작을 부려?

잘은 모르겠지만, 아이작은 성녀의 일기장에서 봤었다.

‘성녀는 교황한테 압박당하고 있었다.’

자세하게 쓰여있진 않아도, 심리적으로 지독하게 괴롭혔단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레아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

‘뭐, 그쪽은 벤야민이 거슬리겠지. 그러니 대충 지 아빠 관리 잘하라고 간접적으로 협박하는 거 아니면… 혹시 명령을 내려서 죽일 셈인가?”

동시에 숙부를 처리해 자신의 멘탈도 날릴 셈이고?

뭐, 그 생각이었다면 새끼들이 똑똑하긴 하군.

‘벤야민은 에슈아의 재정 담당이다. 처리하면 나한테는 매우 안 좋아.’

내 소중한 돈줄이라고!

뭐, 자신이 두 눈을 뜨고 있는 상황에서 순순히 놈들의 계획대로 될까 싶긴 하다만…….

‘이상하네.’

어, 이상해.

아니, 거짓말 안 하고 진짜로 이상해.

아이작은 레아가 받은 편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저게 왜?’

바로 편지에서 검붉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바로 <생존> 기원의 본능이 말해주는 ‘위험 경고’. <생존을 방해하는 자>의 경고였다.

그러니 아이작으로서는 이상할 수밖에 없다.

‘뭐여. 저게 왜 내 생존이랑 연관이 있다는 건데?’

저 편지는 자신과 연관이 없었다. 저건 레아의 승단을 축하해주는 편지였으니까.

그런데 왜? 내 목숨이랑?

그리고 그 의문에 답해주듯…….

번쩍번쩍!

“?!”

아이작의 침대 쪽에서 미친 듯한 빛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건 <생존에 도움이 되는 자>의 알림!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빛에, 아이작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쌍욕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빛이 나는 곳은 침대에 숨겨둔 멜리사의 일기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생존 기원은 마치 멜리사의 일기장을 읽으라는 듯, 번쩍번쩍… 시발! 안 읽는다고!!!

‘젠장, 왜 하필 저기에서 빛이 나는데!’

아이작은 애써 무시하려고 했지만-

번쩍! 번쩍! 번쩍!

눈 실명되겠다, 새끼야! 그만…….

번쩍번쩍! 번쩍번쩍번쩍번쩍!!

‘아 꺼지라고! 내가 멜리사 일기만큼은 절대 안 읽을…….’

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

아이작은 이마를 짚었다.

안 읽으려고 했는데… 찌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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