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2화. 성녀 각성 (7)
쾅쾅!
고막이 찢어질 듯한 폭발이 연이어 터졌다. 벤야민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몰랐다.
알 수 있는 건 그저 코를 찌르는 탄내와 함께 고기가 맛있게 익는 냄새가… 아니, 아니아니! 신이 익는 냄새가… 아니! 그게 아니라,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작이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새끼가 지금 사고를 치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벤야민! 이 새끼야! 눈 감앗!”
더불어 이 자식이 답도 없는 패륜이란 것도 아주 잘 알겠다!
결국 벤야민으로서는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다.
“…아이작.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이냐.”
“어, 아직 눈 뜨지 마. 넌 보면 안 돼!”
“이젠 숙부라고 하지도 않는구나…….”
“열 때문에 눈알이 타버린다고!”
“내가 네 작은아버지다, 자식아…….”
그러자 아이작은 그것 때문에 삐친 거냐며 토닥거렸다.
“액면가는 어차피 형이잖아! 누가 부모뻘로 봐, 젊어 보이고 좋지!”
“아이작… 그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니란다…….”
“그러니까 죽을 생각 말고, 살자. 응?”
“네놈 교육 때문에 죽고 싶어도 못 죽겠다!! 이눔의 자식아!!”
결국 참다 못한 벤야민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너 아버지한테는 패륜 짓 하지 마라!”
“걱정 마! 할부지한테 내가 얼마나 잘하는데!”
벤야민은 앓듯이 머리를 움켜쥐었다.
‘어떻게 이딴 놈이 그 형님과 형수님한테서 태어났지??’
뭐,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벤야민이 앓는 듯이 말했다.
“이제 눈을 떠도 되겠느냐?”
“응, 이제 괜찮을 것 같음.”
아이작은 손을 툭툭 털었다. 애초에 벤야민의 눈을 감긴 건 상급 화염 마법에 눈알이 탈 수도 있어서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마법을 쓰는 걸 들키면 안 되니까.’
뭐, 벤야민은 0계위라 마력을 못 느끼니까 괜찮지만, 아무리 무능력자라도 코앞에서 불꽃이 터지면 기이하게 여길 것이 아닌가.
[글쎄요…. 아무리 바보라도 저게 불에 의한 거란 걸 모를 리 없어 보이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눈을 뜬 벤야민이 비명을 질렀다. 눈앞에서 뱀장어가, 아니 신이 새까맣게 그을려 둥둥 떠다니고 있는… 뭐?! 뭐가 어째?!
거품을 무는 벤야민의 입에서 사자후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 지금 뭔 짓을 한 거냐!!”
“아, 지멋대로 불타올랐어요.”
“말이 되느냐! 바른대로 말해라!”
“아, 실은 장어구이 만들려고 살짝 좀 지졌어요.”
뭐, 인마?!!
벤야민은 무슨 천벌 받을 짓이냐며 입을 뻐끔 거렸지만, 정작 아이작은 푸흐흐, 웃었다.
‘현재 이 몸뚱이로 쓸 수 있는 마법은 그럭저럭 8계위 정도다.’
그리고 8계위 화염 마법? 인간이라면 닿는 즉시 온몸의 수분을 증발시키고, 뼈까지 녹여버릴 위력이었다. 물론 신을 태워버리기엔 부족하지만.
그래서 딸랑이에 드래곤의 마력을 응축시켜 힘을 더했다.
-결혼해줄게, 여기에 힘 좀 가득 담아줘.
그렇게 사피엔을 꼬셔서 마력을 얻어내고, 효과가 확실하게끔 일부러 몸 내부에서부터 지졌다.
‘뭐, 해골왕의 지옥불과 비교하면 모닥불 수준이지만…….’
신의 극상성인 마법을 내장기관에서부터 지져댔으니, 아프긴 더럽게 아플 거다.
[어이구, 불쌍해라…. 저거 다 타서 살은 남았나 모르겠네요.]
‘안 불쌍해해도 돼.’
오히려 괘씸하지. 그냥 얌전히 각성을 시키면 됐을 걸. 뭔 제물이여, 제물은?
아이작은 눈살을 찌푸리며 신의 꼬리에 손을 얹었다.
‘역시 그렇군.’
직접 감지해보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산 제물은 각성과 연관이 없다.’
[예? 정말이요?!]
‘그래. 애초에 각성 원리 자체가 그냥 각성석을 토해내는 원리라서. 산 제물은 필요 없어.’
[!]
쉽게 말하면 먹지 않아도 힘을 쓸 수 있는데, 굳이 기호 식품으로 산 제물을 요구했단 의미다.
‘이미 신이 아니란 거지.’
아무튼 내장기관만 뜯어오면 각성도 여기 입맛대로…….
그렇게 아이작이 손을 우득거리자, 벤야민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성직자가 신을 죽이는 건 안 된다! 벌을 받게 될 거야!”
“벌 안 받아요. 그리고 저도 죽일 생각은 없어요. 그냥 내장만 뜯어올 거라.”
…아니, 그게 더 나쁜 것 같은데?!
그런데 그때였다.
쿠구궁!
“!”
쓰러진 줄 알았던 신이 일어났다.
[감히……!]
[주인님!]
신이 쿠구궁 몸을 일으켜 세우자, 아이작은 굉장히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뜨며 경계했다.
“이 자식 봐라. 그간 산 제물을 처먹더니, 강해지긴 했구나?”
[용서할 수 없다.]
“!”
[에슈아를 좋게 봐서, 네놈들을 먹은 대가로 이번 성녀들을 훌륭하게 각성시켜줄까 했더니.]
“뭐, 인마?”
[최고신의 문양을 가진 건 솔직히 놀랐지만, 그건 됐다.]
신은 아이작을 비웃었다.
[그분의 찜을 받긴 했지만, 네놈은 아직 최고신과 연결된 건 아니야.]
“!”
신의 말에, 아이작은 결국 이렇게 되냐며 눈알을 또르르 굴렸다.
뭐, 그래.
이 문양의 약점은 사실 그거지.
최고신과 계약은 했지만, 이건 최고신이 멋대로 영역 표시를 한 것이다. 그래서 그 자체로도 경고의 효과는 확실하지만, 아직 자신이 최고신의 힘을 쓰거나 하진 못했다.
한마디로, 경고도 안 먹힐 정도로 눈깔이 돌아간 머저리한테는 의미가 없단 거지.
그렇기에 아이작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아, 여기까지는 안 오길 바랐는데. 할 수 없지.’
[헉, 설마 주인님의 힘을 쓰시게요?!]
위스퍼는 걱정하듯 주변을 살폈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엔 추기경이 둘이나 있는데요! 지금 쓰신 건 평범한 화염계 마법이라 신성드래곤의 힘을 담아왔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주인님의 마법은 드래곤도 감히 흉내내지 못합니다! 위력부터 차원이 다른…….]
‘응. 알지. 하지만 마법은 그냥 때려 부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란다. 푸흐흐.’
[예?]
그때였다.
[죽어라! 네놈만큼은 끝장을 내주마!]
각성의 신이 매섭게 달려들었다. 이에 아이작도 기다렸다는 듯이 뛰쳐나갔다.
텅!
신의 거친 움직임에 눈을 뜰 수 없는 빛과 파도가 주변을 휩쓸었다. 주변에 있던 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가렸다.
“커헉! 결계가!”
신은 아이작을 고립시키기 위해 결계를 친 모양이지만, 한 손에 마력을 싣는 아이작은 신난 듯 웃어젖혔다.
“자식이 알아서 연막을 쳐 주네!”
“아이작!”
“벤야민, 눈 감앗!”
마침내 신에게 뛰어드는 아이작의 눈빛이 바뀌었다. 동공이 마치 마안처럼 변하며 그의 마력핵이 거칠게 반응했다.
외부에 모아둔 것이 아닌, 해골왕의 마력핵에서 직접 끌어내는 순수한 마력이었다.
둥둥!
그리고 그 마력이 마력 혈관을 타고 무의식의 세계에서 의식의 세계로 치솟으며, 아이작의 손에 모였다.
마치 우주의 진리가 한 점에 모이듯, 아이작의 손에서 술식의 창조가 이루어졌다.
[죽어라, 시건방진 놈!]
“죽는 건 너고.”
아이작이 파도를 발돋움해 신의 몸통으로 뛰어올랐다. 그렇게 그 몸통과 손이 가까워진 순간-
<망자재래(亡者在來)>.
터엉!
아이작의 손이 신의 육신을 내리찍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손이 닿은 장소부터 신의 육신이 빠르게 썩기 시작했다.
산 것은 죽은 것으로.
신성함은 더러움으로.
신을 위한 영광의 빛은 죽음의 주인을 위한 멸망의 재로.
신의 속성이 언데드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 어어?]
신은 당황한 듯 몸을 떨었다.
그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그도 그럴 게, 이 죽음의 힘은……!
[이 새끼가… 잠… 아니, 이 힘은…! 설마!]
각성의 신이 얼어붙었다.
마침내 각성의 신의 얼굴에 앉은 아이작이 섬뜩하게 웃었다.
“기껏해야 하급신 놈이.”
[……!!]
“감히 누구한테 이빨을 드러내는 거냐.”
[내 몸에 무슨 짓을…! 아니 이 힘은, 아니 그럴 리 없는… 으아악!!!]
아이작이 바다로 뛰어내리자, 신이 괴로운 듯 몸부림을 쳤다.
성력은 사라지고, 이성도 사라져갔다.
불멸왕이 이끄는 망자의 속성으로 변했다.
이 힘은 상대를 언데드로 만들어버리는 망자의 군주의 힘. 해골왕에게 걸린 저주를 역으로 이용한, 해골왕 고유의 마법이었다.
위력은 확실하지만, 반대급부는 확실하다.
아니나 다를까.
“우웨엑에에엑!”
“아이작!!”
아이작이 주르륵 피를 토하자, 벤야민이 놀라서 다가왔다.
“아이작, 괜찮으냐!”
‘시바…. 내가 이래서 내 힘은 안 쓰고 끝내려 한 건데.’
아직 마법 계위가 8계위 정도인 이 몸으로 쓰기엔 부담이 컸다.
하지만 뭐, 이거면 저만한 하급신 정도는 백 프로 숨통이 끊어진다. 일부러 티도 안 나게 몸 내부부터 언데드로 만들었으니.
그러나 신은 신인 듯, 해골왕의 망령이 되어가면서도 발악을 했다.
[네 이놈…! 죽기 전에 널 자세히 확인해봐야겠다!]
신은 최후의 힘을 발휘해 아이작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엔 단순히 잡아먹는 게 아니라, 아이작의 몸을 찢을 기세였다.
아이작은 숨을 몰아쉬었다.
시바 놈이 산 제물을 먹어서 쓸데없이 튼튼해져가지고는.
‘마법은 발동했으니 버티기만 하면 되는데, 시간이 맞을까?’
그럴 때 벤야민이 아이작을 보호하듯, 조카의 앞을 급히 막았다.
그 광경에 일라이가 있는 곳도 소란스러워졌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아이작 에슈아가 무슨 짓을 했는데 신이……!”
멀어서 잘 보이진 않는다. 추기경이 기운을 감지하지 못할 정도면, 일반 사제들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짐작도 못 하겠지.
하지만 청의 우두머리인 일라이는 직감했다.
‘이 느낌은 흑마법.’
그의 눈을 피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충 알 것 같았다.
‘신에게 극상극은 마법이니, 그쪽으로 머리를 썼겠지.’
하지만 잘못하면, 신을 공격한 것에 대해 아이작이 벌을 받게 될 수도 있다.
뭐, 신도 정해진 제물이 아닌 아이작을 먹으려 했으니, 규칙 위반으로 저쪽도 할 말은 없겠지만.
그런 만큼 저쪽은 차라리 아이작이 신에게 죽길 바랄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의 입장에서도 신을 공격한 사제 따위, 신에게 천벌 받게 두는 것이 맞는 것이고 말이다. 일라이도 원래라면 추기경으로서 신의 판결에 맡기는 것이 맞는다.
그럴 때, 신이 아이작과 벤야민의 목을 물어뜯을 듯 가까워졌다.
일라이가 움직인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벤야민이 아이작을 보호하듯 끌어안는 그때-
쾅!!!
“!!”
하늘에서 푸른 낙뢰가 쏟아졌다.
강력한 항마의 성법이 신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크허억!]
마침내 숨통이 끊긴 용이 비틀거리며 호수로 떨어졌다.
쾅!
물보라가 떨어지고, 벤야민은 놀란 듯, 신을 쓰러트린 일라이를 보았다.
“아버지……!”
“괜찮으냐.”
“…아버지, 이거는…….”
아들이 무슨 말을 할지 아는 일라이는 침묵했다.
사실 신이 강림한 순간 모든 걸 포기하려던 일라이였다. 신을 따르는 자로서, 신에게 거역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게 정녕 신인가?
어느 쪽이 더 나쁘지?
“아버지, 이건 신입니다.“
곧 일라이가 쓰러진 신을 보며 말했다.
“아니, 이놈은 신이 아니다.”
“예?”
“이놈은 그냥 장어 새끼다.”
벤야민은 놀란 듯이 아버지를 보았고, 아이작은 우웩거리며 한마디 했다.
“우이씨, 내 막타 빼앗아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