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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24화 (224/272)

제224화. 성녀 각성 (9)

사람들은 충격을 받은 듯 술렁거렸다.

“이건 각성의 빛이 아닌가!”

“어찌 신께서 안 계시는데 각성의 빛이……!”

아니, 사실 진짜 중요한 건 그쪽이 아니었다.

“왜 각성의 빛이 저 둘한테까지!”

“각성이 일어난다 해도 성녀한테만 일어나야지!”

그들은 설명 좀 해보라는 듯 에슈아 사람들을 보았지만, 정작 벤야민과 조셉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일라이도 처음 보는 현상에 드물게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가 저 빛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비전서에 전해져 오는 기록과 형태가 흡사했다. 아니, 그 기록의 묘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빛이……!

번쩍!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하는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레아의 성력이 무섭게 치솟아 오른 것이다.

콰직!

“으악!”

굉장히 강력한 성스러운 기운에 주변인들이 눈을 가리며 물러났다. 조금이라도 불순한 마음을 품은 자들은 괴로워질 만한 힘이었다.

위스퍼도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앍! 주인님! 주인님! 저 정화됩니다!! 정화돼요오옭!]

‘오냐, 이 기회에 정화나 되렴.’

[저만 죽습니까아아앍?!!! 주인님도 위험하시거든요?!]

‘난 안 죽어, 쨔샤.’

오히려 이 힘을 꿀꺽하면 꿀꺽했지.

하지만 아이작도 감탄할 수준이긴 했다. 뭐, 자신의 힘이랑 비교하면 귀여운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나 각성 전후 차이가 난다고?’

아니, 어쩌면 각성의 방식이 달라서 그런지도 몰랐다.

원래는 각성의 신이 각성을 시켜주는 건데, 산 제물을 요구하는 치졸한 놈이 성실하게 파워 업을 해 줄 리도 없고…….

‘어쩌면 힘의 절반만 업그레이드해줬을 가능성도 있지.’

성녀가 계속 만들어져야, 지가 산 제물을 계속 받아 처먹을 수 있을 테니까.

‘원래 인계와 맞닿은 하급신들은 타락하기 쉽지.’

금의 사제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레아를 보았다. 레아의 성력은 원래도 강했지만, 이 정도 힘의 느낌은…….

‘반신(Demigod)?’

교황에게서 느꼈던 기운과 비슷했지만, 그들은 바로 제 머리를 쳤다.

‘그럴 리 없지 않은가!’

오히려 지금 진짜 문제는 그녀가 아니었다.

번쩍!

‘젠장, 왜 저 둘한테서도 각성의 빛이 솟냐고!’

특히 벤야민이 문제였다.

조셉은 그래도 3계위 정도라고 알고 있지만, 벤야민은 성력을 아예 쓸 수 없는 무능력자일 텐데.

괜히 사제들이 무시했던 게 아니다. 머리가 좋아서 성직자 사회에 있는 걸 자신들이 봐주고 있는 거지, 원래라면 당장 퇴출당하고도 남았는데.

그런데…….

‘뭐지? 0계위 따위한테서 왜 성력이 느껴지지?’

그 광경에 불안해진 금의 추기경이 외쳤다.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다!”

“예?”

“정상적인 각성이 아니라, 신의 힘을 뺏는 것이 틀림없다! 셋 모두 막아라! 중지시켜!”

“!”

금의 추기경의 외침에, 사제들의 눈빛이 변했다.

각성 중에 공격을 받으면 각성은 끊긴다. 아니, 각성의 순간은 가장 무방비한 상태이기에 성력을 영영 쓰지 못하는 몸이 될 수도 있었다.

비겁한 짓인 건 알지만, 신의 힘을 뺏는 것이라면 용서할 가치가 없지! 그들이 벤야민과 레아를 노리는 그 순간-

콰르릉!!

“?!”

푸른 낙뢰가 쏟아졌다. 지면이 깎일 정도로 살벌한 위력에, 사제들은 순간 놀라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더 놀란 건 이 힘을 쓴 게…….

“내 아이들한테 손끝 하나라도 대봐라.”

“……!!”

그 살벌한 음성에 사제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벤야민을 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성법은…….

‘6계위 성법인 <천벌>?!’

아니, 위력만 보면 훨씬 더 강하다. 잠깐이지만 청의 가주가 쓴 성법인 줄 알았으니.

하지만 상급 성직자나 쓸 수 있는 성법을 어떻게 0계위 따위가……!

그 순간, 금의 추기경의 얼굴이 빠르게 굳었다.

‘설마 해골왕의 저주가 풀린 건가?’

원래 에슈아 사람들은 해골왕의 저주 때문에 무능력자나 저계위가 한계였다. 그 저주가 풀려야 정상적으로 5대 가문의 혈통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상급 사제들은 덜덜 떨며 그를 볼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벤야민을 무능력자라며, ‘0계위 주제에 성직자 사회에 붙어있다’며 놀리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설마 진짜 저주가 풀린 거야?’

‘각성의 힘으로 해골왕의 저주를 누른 건가?’

정확히는 강제로 계위를 상승시킨 듯했다. 무려 9계위를 10계위로 만들 정도의 강한 힘이니, 0계위를 6계위로 올리는 건 일도 아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법을……?

‘아니지, 가능은 하지.’

5대 가문 사람이 성법 교육을 안 받았을 리도 없고. 성력을 운용할 수만 있다면 가능…할 리가 없잖아?! 젠장!

이 정도로 한번에 사용할 수준이 되려면, 매일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습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또 지독하게 연습해야 하는 거다. 설령 성력을 쓸 수 없는 몸이라 이 모든 게 의미가 없을지라도, 그렇게 십수 년을…….

그러니 사제들로서는 멘붕일 수밖에 없다.

‘무능력자면 보통 성법서는 보지도 않지 않아?’

‘이 새끼들, 변태야??’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나마 에슈아를 무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가문과 다르게 에슈아 직계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명이나 제약이 풀린다면……!

‘젠장, 우리가 무슨 짓을……!’

사제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 그 순간,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

“……!!”

“그래, 청이라면 그래야지. 인내의 신앙답구나.”

드물게 호탕하게 웃는 일라이였다. 그는 몹시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답지 않게 입가에서 웃음기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뭐? 누가 자격이 없다고?”

“……!”

금의 추기경이 움찔했다.

일라이는 늑대처럼 사나운 눈으로 추기경을 노려보았다.

“각성에는 문제가 없는 듯하니, 5대 신앙에도 변화는 없겠군.”

“헛소리 마라. 이건 우연……!”

그때, 아이작이 푸핳 웃었다.

“아뇨. 우연 아닌데요?”

“!”

아이작의 눈이 초승달로 휘었다.

“희한하죠? 신을 죽이니까 각성을 하다니. 심지어 여러 명이 각성해 계위가 올랐네요?”

“……!”

“뭐가 어떻게 된거죠? 저희가 알던 성녀 각성 조건과는 너무 다른데에??”

“……!!”

“이거, 잘하면 저 셋뿐이 아니라, 에슈아 전원이 파워 업 할 수 있겠는데? 응?”

“?!”

에슈아 전원이라고?!

아이작의 말에 금의 사제들은 어지러워졌다. 감히 선을 넘어 교황을 공격한 에슈아를 이번에 처리할 계획이었건만.

“…각하!”

금의 사제들이 초조하게 금의 추기경을 보았다.

그러나 아이작은 푸흐흐흐 웃으며 금의 추기경에게 다가갔다.

“각하. 지인짜 고맙습니다. 이걸 쓰면 저도 계위가 오르겠어요. 순식간에 추기경의 자리나 교황 자리까지도 가능하겠는데?”

아이작은 살벌하게 웃으며 금의 추기경의 어깨에 손을 툭 얹었다.

“교황 가문의 이름은 청이 가지라고, 아주 떠밀어 주시네요.”

“!”

“왜? 그렇잖아요! 히레이 각하는 원수를 키워준 희대의 성군으로 기록에 남으시겠어요! 느무느무 감사합니다! 청을 이리도 생각해 주시는데 저희가 보답해 드릴 길이 없으니, 어쩌죠?”

순간 금의 추기경의 눈에서 불꽃이 튀겼다. 그는 마치 더러운 오물을 털어내듯, 제 어깨에 얹은 아이작의 손을 뿌리쳤다.

철썩!

그러곤 강력한 살법을 발동했다.

이놈의 도발도 도발이지만, 행여라도 아이작의 말대로 이놈이 각성이라도 할 수 있게 되면 골치 아파진다.

이 자리에서 처리해야 했다.

그리고 이놈이 내상을 입어 성법을 못 쓰는 지금이 기회!

<일즉살>.

처음 보는 살의에 일라이가 바로 움직였지만, 금쪽이 아주 조금 더 빨랐다.

그렇게, 배척한 상대의 숨통을 끊는 금가의 궁극기가 아이작의 목을 조르려는 때였다.

“……!”

아이작의 얼굴을 본 금의 추기경이 움찔했다. 순간, 아이작의 얼굴에서 어떤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히레이 베리트. 잘 들어요. 나는 아담 에슈아와 결혼할 거에요.

아이작에게서 아이작 모친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와 똑 닮은 얼굴에, 금의 추기경은 이를 갈았다. 그러고는 성법을 해제한 뒤 휙 돌아섰다.

“신의 옥체를 회수해 와라!”

“각하?!”

“분석이 먼저다. 저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확인을…….”

그때였다.

쾅!!!

“!!!”

호수 쪽에서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남아있던 신의 시체가 폭발하면서 완전히 재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폭발의 불길을 일으킨 장본인이 얄밉게 웃었다.

“아이구, 다 조각이 되어서 조사할 것도 없으시겠네.”

저 새끼가……?!

금의 추기경은 눈을 부릅뜨며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금의 사제들은 난처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각하……!”

“발라그로 향해라! 발라그에 정예를 요청해!”

그 말에 아이작은 푸흡 웃었다.

‘발라그라면 흑가를 말하는 거군.’

뭐, 흑의 공작가가 와도 뭐가 달라지겠느냐마는.

그렇게 금의 추기경과 사제들이 우르르 흑가로 향했다. 이제 의식장에 남은 건, 에슈아 사람들뿐이었다.

그쯤 되자, 아이작이 레아에게 말했다.

“성녀가 되었으니, 이제 맘 좀 놓겠네.”

“!”

“봐, 아무도 죽지 않고도 가능했어. 그러니까 나만 믿으랬지?”

아이작의 말에 레아는 또륵 유리구슬 같은 눈물을 떨어트렸다.

“그럼 이제, 해골왕 보러 갈 수 있어?”

…뭐, 인마?

“이제 마음껏 해골왕 보러 가도 돼? 아무도 안 죽고도?”

아이작의 얼굴에서 물음표가 한가득 떠오를 때, 조셉이 이마를 짚었다.

“네가 이해해라. 레아는 어릴 때부터 해골왕을 만나는 게 꿈이었거든. 멜리사 할머님의 말을 듣고 자라서.”

…시발! 멜리사 그 녀석은 애한테 뭔 소리를 하길래! 얘가 난데없이 울어, 울기는!

“정말 해골왕 볼 수 있어?”

…이미 보고 있다.

“진짜 토벌하러 갈 수 있는 거야? 진짜로?”

그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아이작은 떨떠름하게 답했다.

“으…응. 갈 수 있어, 이제.”

레아는 매우 기쁜 듯 아이작을 꼬옥 끌어안았다.

“해골왕은 누구한테도 못 넘겨. 내 거야. 꼭 내가 박살 낼 거야.”

그 손에 힘이 실렸다. 그 집착에, 레아에게 안겨있는 아이작은 이를 악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성녀들은 왜 전부 이 모양이야……!!’

조셉도 아이작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 징글맞게 보았다.

“야, 미쳤어? 기껏 그런 힘을 얻었는데 왜 해골왕을 박살 내? 그런다고 돈이 나와?”

아이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장사치! 최고다! 그래, 성녀 교육 좀 해 봐!

“박살은 무슨, 형태도 없이 갈아버려야지! 빻아버리면 가루약으로 더 많이, 비싸게 팔 수 있는 거 몰라?!”

“…….”

아이작은 어이가 없어서, 이를 악문 채 벤야민을 보았다.

“쯖뿌님. 쟤들 헛소리해여.”

자식 교육 좀 똑바로 하라는 그 살벌한 눈빛에, 벤야민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아이작의 말이 맞다. 레아, 조셉. 너희는 이제 그런 사명을 신경쓸 것 없다.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각성을 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다. 그렇게 힘을 낭비할 거면, 차라리 가문과 아이작을 위해 써라.”

아이작은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역시 벤야민…! 너는 내가 진짜 아낀……!

“힘을 얻었으니, 해골왕 놈은 내가 직접 처리한다!”

“……….”

이… 시바. 개 같은 집안.

내가 니 새끼들은 진짜, 나중에 꼭 멸문시켜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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