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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26화 (226/272)

제226화. 드러나는 진실 (2)

“뭐라고?!”

에슈아 저택이 발칵 뒤집혔다.

소가주, 아이작의 방으로 불려온 릴라이와 벤야민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지금 누가 뭐라고?”

“노엘이… 뭐?”

두 숙부의 얼굴에, 그들을 부른 아이작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귀들 막히셨어여? 그 새끼가 에슈아 저주를 받았다구요.”

“그러니까… 뭐, 뭐?”

“어휴, 고자요, 고자! 그러니까 그만 입 좀 다물어요. 턱 빠지겠네.”

아니! 이게 안 놀랄 일이야?!

심지어 아이작에게 성녀 각성장에 간 것으로 잔소리를 하려고 왔던 슈리조차도 물건을 와르르 떨어트렸다.

“노엘 백부가… 고자라고?!”

주변의 반응이 심상치 않자, 아이작은 질색하듯 한숨을 쉬었다.

“뭐 그리 놀라. 에슈아에서 고자 처음 보나.”

조카의 시선에 릴라이는 굉장히 억울해했다.

“아이작… 뭔가 이상한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에슈아의 저주는 그런 게 아니란다…….”

뭐가 아닌데?

“아니니까 이 숙부를 그리 측은하게 보지 말아줄래…? 이 숙부는 그… 기능에 문제가 없단다. 그냥 2세만 못 보는 거야…….”

그게 그거지, 뭐. 새끼야.

뭐, 릴라이는 불쌍하니 내가 저주를 풀어줄 거지만.

아무튼 그들은 뜻밖의 사실에 매우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가짜 정보일 가능성은?”

벤야민의 말에 아이작이 헛웃음을 흘렸다.

뭐? 가짜?

“교황이 숙부님을 죽이면서까지 숨기고 싶어 했던 황실 서고의 자료입니다. 거기 기록은 마법으로 기록되는 거라 조작할 수도 없고, 열람조차도 황실의 허가가 있어야만 볼 수 있죠.”

위조는 절대 아니라는 말에 다들 기가 찬 듯, 몹시 분노했다. 특히 벤야민이 가장 어이없어했다.

“그럼 그 새끼는 릴라이 너랑 똑같은 조건인 주제에, 그렇게 널 구박하고 하자품이라며 무시한 거냐?”

“기분 나쁘니 똑같다고 하지 마시죠…….”

아이작이 있기 전까진 릴라이와 노엘이 가주 후보였다. 똑같은 9계위에, 능력도 우수. 다른 것이라곤 후계를 생산할 수 있냐 없냐의 차이였는데, 그쪽도 결국 같은 나물이었다니.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아니, 어떤 의미론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오히려 그래서 더 물고 늘어진 건가?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럼 카야와 사마엘은 도대체 누구 자식인 건데?”

그렇다. 그쪽이 문제였다.

“사마엘은 뭐… 교황가에서 입양해 왔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카야죠.”

카야는 레아와 함께 차기 성녀로 유명했다. 외모면 외모, 검술이면 검술. 정신이 불안정한 부분이 있지만, 밸런스가 완벽한 레아와는 다르게 폭발력을 자랑하는 아이였다.

아이작이 물었다.

“카야가 다른 핏줄일 가능성은요?”

“그 은발을 보면 모르겠느냐. 전형적인 성녀 핏줄의 증거다.”

에슈아 사람이 아닌 성녀들도 각성을 하면 모두 은발로 변했다.

‘하긴, 황태자 놈도 그랬지.’

카야는 에슈아의 핏줄이 맞는다고. 그러고 보면 교황가 핏줄에서 유일하게 은발이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방계의 핏줄일 가능성은요?”

“그건 아닐 거다. 나이 대가 안 맞아.”

“그럼 직계 중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건…….”

아이작이 슬쩍 벤야민을 보자,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날 뭘로 보냐. 난 깨끗하다.”

슈리도 한숨을 쉬었다.

“제 아버지도 아니실 겁니다. 솔직히 제 아버지긴 하지만… 여아를 낳았으면 아주 지금보다 콧대가… 아니, 어깨가 천장을 뚫다 못해 하늘로 승천하셨겠죠.”

뭐, 고엘 놈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릴라이는 고민했다.

“그럼 셋째 형님… 칼리야 형님은요?”

“…칼리야는 병약해서 저택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하녀들도 나이 대가 있어.”

슈리가 끼어들었다.

“그럼 저희는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여섯째 숙부님은……?”

그러자 어째서인지 두 숙부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쪽은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빼도 된다.”

“???”

그때, 슈리는 계속 침묵하는 아이작을 이상하게 보았다.

“왜 그래? 너 지금 보고 있는 거, 가주실에 있던 에슈아 기록 일지지? 거기에 뭐, 이상한 거라도 있어?”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신경 쓰이는 거?”

“카야가 태어난 달에, 산파가 두 팀이나 별장에 방문했네요? 하나는 카야고, 다른 쪽은 누구죠?”

“아. 그건 아이작, 네 형이다.”

벤야민의 말에 아이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왓? 뭐?!

“형?”

“너한테 죽은 피붙이가 있었다고 했지? 큰형님한테는 첫째 아이가 있었다고.”

아, 그래. 얼핏 듣긴 했었지.

일전, 에슈아 가족 모임 때 말이다.

-에이, 설마요. 큰형님 가족의 사고도 노엘 형님의 짓일지 모르는데요.

-큰형님의 첫째 아이가 죽은 건도 그렇고. 교황가 쪽이 영 수상하긴 하지.

곧 벤야민이 말했다.

“네 어머니와 노엘의 아내는 비슷한 시기에 임신했거든. 그래서 출산일도 거의 같았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특별한 축복을 가진 아이나, 성녀처럼 특별한 존재를 낳으려면, 특정한 신의 힘이 강해지는 시기에 아이를 갖게 했다. 심지어 시간까지 맞춘다고 하니 말 다 했지. 점술처럼 신의 계시가 있었으리라.

그러니, 그건 이상하지 않은데.

“왜 에슈아 저택이 아니라, 하필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의 별장에서 낳은 거죠? 여긴 너무 외지인데?“

릴라이가 말했다.

“그때 비밀이 어떻게 새어 나간 건지, 마족들이 에슈아의 아이를 노리고 있었단다. 둘 중 하나에게서 여아가 태어날 거라는 예언이 있었거든.”

“!”

“뭐, 성녀가 가장 약해지는 때이기도 하니, 같이 처리하기도 좋고. 그래서 아버지랑 청의 모두가 연막작전을 펼친 거야. 출산 장소에서 떨어진 곳에서.”

아이작은 바로 납득했다.

마족들이라면 경비가 심한 곳에서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하고, 그쪽으로 몰려갈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짜 출산 장소엔 노엘만 남겼지. 특히 장자는 너무 유명해서 자신이 있는 곳이면 본거지가 발각되기 쉬울 거라면서, 아버지랑 같이 유인작전을 펼쳤었다.”

벤야민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는 듯 혀를 찼다.

“하지만 결국 출산 장소를 들켜 마족의 습격을 받았다. 수많은 하인들이 죽었고, 갓 태어난 네 피붙이도 그날 죽었지.”

그 말에, 아이작은 레아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왜 나는 ‘에슈아 밖에서 태어나서 가짜 유모한테 유괴당하고, 시발! 쌩고생을 해야 했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지.

-네 어머니는 첫째를 낳으실 때 습격을 받으셨어. 그래서 네가 생겼을 때도 또 그렇게 될까 봐, 아이가 생긴 것도 비밀로 하고서 밖에서 낳으신 게 아닐까 싶어.

응, 그래. 이제야 그 말이 제대로 이해가 가는구만.

모두가 그때 일을 생각하며 침울해할 때, 아이작만이 가증스럽다는 듯 비웃었다.

“그래서요. 죽은 거, 진짜 제 형 쪽이었어요?”

“뭐?”

그게 무슨 말이냐는 얼굴에, 아이작이 입꼬리를 올렸다.

“못 알아들으시는 것 같으니,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제 어머니 쪽이 여아를 잉태 중이었고, 죽은 남아는 노엘 쪽의 자식인 거 아니냐고요.”

“……!!”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듯, 모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곧 봇물이 터지듯 목소리가 거칠게 높아졌다.

“아이작, 뭘 말하고자 하는지는 알겠으나, 그건 아니다!”

“그래, 분명 확인을…….”

아이작은 큭큭 웃었다.

“어차피 거기 하인들이랑 산파는 다 죽고, 살아남은 건 아버지랑 노엘뿐이었다면서요.”

두 숙부들은 얼어붙었다.

뭐, 그랬지. 결국 아이를 낳는 중에 마족들이 쳐들어와서, 장남인 아담이 노엘에게 형수님과 태어날 아이를 부탁하고서 나갔었다.

그래서 장례식 때, 노엘은 큰 형님께 울면서 사죄했지.

-죄송합니다, 형님. 제게 맡기셨는데, 결국 형님의 아이를 못 지켰습니다. 제가 갔을 땐 이미…….

물론 자신들도 바보는 아니니, 그 후에 모두 노엘을 수상하게 여기긴 했지. 마족을 불러들인 건 사실 노엘이 아니냐고.

장남의 아들, 심지어 성녀의 아이는 높은 확률로 차차기 가주가 될 테니까. 증거는 없지만, 미리 후계를 없애버린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던 것이었나?

아니, 그 새끼의 진짜 목적은…….

벤야민이 이를 뿌득 갈 수밖에 없었다.

“설마… 그때 그 새끼가 아이를 바꿔치기했단 소리냐?!”

“!!”

그 외침에 슈리와 릴라이는 몹시 충격을 받았다.

“자, 자, 잠깐. 그러니까 카야 누나가… 그러니까, 아이작 네 친누나라고?!”

“큰형님의 첫째 아이가… 뭐??”

그들의 반응에, 아이작은 푸하하하 배를 잡고 웃었다. 이제야 교황가의 목적과 행동의 의미를 전부 깨달았기 때문이다.

“계속 궁금했거든요. 교황가가 눈엣가시인 저를 수년간 내버려 둔 이유를요. 노엘도 가주 자리를 그리 탐냈는데, 소가주인 저를 그냥 냅뒀고요. 그게 계속 이상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가네요.”

“!”

아이작은 가증스럽다는 듯 일지를 덮었다. 그의 눈이 사납게 번득였다.

“성녀의 각성 조건이 혈육을 바치는 거라면, 카야를 각성시키면 제가 자연스럽게 산 제물이 되는 거잖아요?”

“……!”

숙부들은 물론, 슈리는 몹시 경악한 듯 입을 떡 벌렸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작이 쿡쿡 웃었다.

“카야를 조용히 성녀로 만들면 알아서 뒤질 거라고 생각했겠네. 그 새끼들.”

본인들 손에 피도 안 묻히고, 깔끔하게 소가주를 처리할 수 있다.

새끼들이 얼마나 더럽고 치사한가.

그래서 아이작은 오히려 재미있었다.

‘아, 각성의 신이 그 말을 했을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에슈아를 좋게 봐서, 네놈들을 먹은 대가로 이번 성녀들을 훌륭하게 각성시켜줄까 했더니.

그놈은 분명 성녀‘들’이라고 했다. 그땐 단순하게 카야 각성 때도 신경을 써 주겠단 소리로 알아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 새끼가 인심을 쓴 게 아냐. 벤야민과 나, 둘다 각각 산 제물 대상자였으니까, 그냥 그딴 말을 한 거지.’

“아마 원래 목적은 제 아버지를 죽일 요량으로 아이 교환을 한 걸 겁니다. 카야를 자기 아이처럼 기르다가, 각성시킬 때 아버지를 산 제물로 바쳐 죽이려고 했던 거죠. 가주가 되었을 아버지가 죽으면, 솔직히 그 자리를 이어받을 놈은 노엘밖에 없잖아요? 교황가도 그걸 알고 협력한 거고.”

“……!”

그들은 충격 위에 더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겸사겸사 본인의 하자도 숨기고, 일석이조였겠죠. 산 제물로 바칠 땐, 어떻게든 사고사로 위장하면 그만이니까.”

동시에 벤야민은 이마를 짚었다.

그러고 보면 형님과 형수님이 아이작을 낳고 행방불명되셨을 때쯤, 이상한 편지가 왔었다.

-벤야민, 죽은 아들의 무덤을 다시 조사해줘.

그땐 왜 첫째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만약 형님이 이 사실을 깨달았고, 이를 눈치챈 놈들에게 입막음을 이유로 습격받은 거라면…….’

아이작의 말에 다들 충격을 받아 입을 열지 못할 때, 벤야민이 뒷목을 잡으며 물었다.

“…할아버지한테는 이 사실을 말했느냐?”

아이작은 푸핳 웃었다.

“아뇨? 알게 된 순간 눈 돌아가 다 죽이려고 하실 텐데. 그건 너무 쉽고 아깝잖아요? 기껏 이런 좋은 재료를 선물 받았는데. 푸흡.”

…재료라니!

뭘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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