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7화. 드러나는 진실 (3)
노엘은 아직도 약 20년 전의 일이 생생하다.
교황과 똑 닮은 어머니, 헨나가 정체도 모를 아이를 데려온 일이다.
-이 갓난아이는 뭡니까?
-오늘부터 네 아이인 사마엘이다.
-예?
-왜 그러느냐? 너도 자식을 볼 수 없는 몸이 아니냐.
-……!
-너도 숙지하고 있겠지만, 그 사실은 절대 알려져선 안 된다. 네 동생인 고엘은 볼 가치도 없는 4계위 쓰레기고, 이제 믿을 게 너밖에 없구나.
-어머니는 너무 걱정 마십시오. 후계는 양자를 들이면 그만이고요.
-내 앞이라고 내숭 떨지 말아라. 누구보다 네놈이 알지 않느냐. 오점이 있어서야 아담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잘 알죠. 그리고 어머니가 일라이 에슈아를 짝사랑해 오빠인 교황에게 졸라, 에슈아 공작가로 들어오신 것도 잘 알죠.
하물며 고엘 다음으로 여동생을 낳으셨지만, 본인의 아이를 죽일 정도로 지독하시다는 것까지도 잘 알죠.
‘뭐, 여동생을 죽인 이유는 대충 짐작 간다만.’
어쨌거나 아담이 있는 이상, 가주가 될 수 없다는 건 바뀌지 않는 사실. 하지만 아담은 마치 신이 성자나 성녀를 빚은 것처럼 인품, 능력, 무엇 하나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강제로 빼앗으려고 했다.
아이를 바꿔치기하는 것으로.
성녀 각성에 산 제물이 필요하다는 건, 원래부터 교황가를 통해 알고 있던 정보였고 말이다.
그래서 하인들은 마족들에게 모조리 죽고, 갓난아이들만 남은 순간. 이건 신이 내려주신 기회라고 여겼다.
남은 목격자는 모조리 죽였다.
아내? 죽어가는 걸 못 본 척했다.
원래도 사랑 없는 혼약이었지만, 누구의 아이를 품은 건지도 모를 사람에게 정이 붙을 리 없다.
그나마 딸이었다면 이용 가치라도 있었겠지만, 에슈아 피도 흐르지 않는 아들이라니. 의미가 없다.
그래서 처음엔 장남, 그다음엔 아이작을 죽일 패로서 정성껏 카야를 키워왔다.
뭐, 카야의 비밀을 눈치챈 교황가가 협력은 해줬지만, 동시에 은근 협박해오던 게 빡치던 참이었는데.
“그 교황가가 먼저 망하게 생기셨네?”
교황청에서 사촌을 발견한 노엘은 몹시 즐거워했다. 그는 자신을 피하려는 금의 추기경을 막으며 골리듯 이죽거렸다.
“아주, 꼴이 개판이야. 히레이 님.”
“!”
“가짜 교황 건으로 니들은 손절당하는 중이고, 사람들은 아이작을 신뢰해서 의뢰를 맡기고 있어.”
“!”
“왜, 내 말 틀려? 지난번에 청이 국가사업을 다 가져가서 손해를 보신 거랑은 차원이 다른데?”
“……!”
“세상에, 금이 이런 치욕을 당하다니, 수천 년 만에 처음 있는 일 아냐? 이대로 교황권을 빼앗기나? 너희는 아주 청을 키워주는 호구였구나? 아이작 하나로 개판이 났어.”
결국 빡친 금의 추기경이 노엘의 멱살을 잡았다.
“닥쳐! 네놈이 제대로 안 하니까 아이작 그놈이 설치는 거잖아! 자신 있게 가주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해서 도움만 받아갈 땐 언제고!”
그러자 노엘이 추기경을 바로 뿌리쳤다.
“니들이 실패해놓고, 왜 나한테 지랄이야? 그러니까 레아 말고 카야 먼저 각성을 시켰어야지!”
“……!”
“졸지에 그쪽 힘만 키워주고. 알아? 카야를 먼저 각성시켰으면 아이작은 산 제물이 되어 바로 죽었어!”
금의 추기경은 혐오하듯 노엘을 노려보았다.
“그래서 지금 시간이 남아돌아 조롱하러 오셨나?”
“아니? 귀한 거 알려주려고 온 거야. 아이작이 각성의 신에게서 핵을 뽑아왔더라고.”
“…뭐라고?!”
금의 추기경은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각성의 신은 완전히 재가 되어서 남은 게 없었는데.
조사로 시신을 받은 흑의 추기경도 한마디 하지 않았던가.
-장난해? 이딴 생선살로 뭘 하라고?
-생선ㅅ… 신께 경외심을 갖춰라, 발라그. 흑의 신이 아니라고 해서 막말을 해도 되는 건 아니다.
-그럼 핵이라도 가져오지 그랬나. 그랬으면 인어 취급은 해줬지.
-인어…….
-아무튼 이걸로는 너희한테 큰 도움이 안 돼.
-닥치고 조사해라. 뭐든 알아내.
-아. 핵을 갖고 있으면 차라리 니들한테 관심이 있었을 텐데.
뭐? 핵?
이 새끼가 옘병한다 싶었다.
<신의 핵>.
그건 정확히 말하면 신의 기원의 일부로, 신이 인간들을 위해 남겨놓는 최후의 힘이었다.
보통은 인간들이 공양을 드리고 은혜롭게 사용했다. 풍년을 이루든, 병을 고치든, 군사를 키우든. 다양한 형태로 말이다.
아무튼 그게 있으면 조건 없이 누구든지 파워업을 할 수 있었다. 그걸로 흑가를 키울 생각인 걸 누가 모를 줄 아는가?
그런데 그걸 아이작이 가져갔다고??
도대체 언제?
곧 노엘이 코웃음을 흘렸다.
“그걸로 지 기사들이랑 본인의 파워업을 하려고 하더라.”
그렇겠지.
각성의 신이니까 그쪽이 더 잘 맞겠지.
금의 추기경이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물며 아이작의 약점은 백의 신앙 계열의 치유 성법이야. 그것도 커버되지 않겠어?”
“이……!”
금의 추기경은 입에서 쌍욕이 튀어 나가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그 자식은 지 아비랑 똑같아서, 사사건건 자신을 방해하는 건지!
그는 사실 가짜 교황이라는 증거가 나온 이상, 빠르게 인정하고 교황 선출, 즉 <콘클라베>를 진행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키나를 재빨리 올려버릴 생각이었다. 지금 당장 교황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건 키나였으니까.
그런데 뭐?
그 표정에 노엘이 얄밉게 웃었다.
“그러니까 이번엔 내가 도와줄게. 아이작은 내가 처리해주지.”
금의 추기경은 기가 찬 듯, 노엘을 무시했다.
“각성의 신도 안 계시는데 뭘 어쩐다고? 설마 정면 승부라도 할 셈이야? 네가? 아주 에슈아 공작한테 목이 잘리려고 작정을 했군?”
그러자 노엘이 풋 웃었다.
“너 모르냐? 이번에 죽은 각성의 신은 ‘빛’의 각성의 신이야.”
“!”
“각성의 신은 하나 더 있거든. 바로 ‘어둠’의 각성의 신. 에슈아에 깊게 봉인된 비전이지.”
“……!”
“매우 강한 힘이지만 자칫 어둠의 사제가 되는 지름길이라 처박아놨지만, 그 각성도 동일해. 산 제물을 잡아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산 제물을 먹을 때까지 쫓아간다는 거야.”
노엘은 이쯤 말하면 알아들었냐는 듯, 조건을 걸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네놈들이 처리해. 난 아버지하고 상성이 안 좋거든.”
금의 추기경은 기가 찬 듯했다.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지?”
“옘병. 날 좋아라 이용할 땐 언제고, 나만 죽을 것 같냐? 내가 네 약점을 몇 개나 가지고 있는 줄 알아? 마족과 교류해서 큰형님을 습격한 게 누구 짓인지, 진짜 다 까발려?”
금의 추기경은 눈을 부릅떴다.
“내게 감히 가주 살해를 사주해? 너, 쫓겨나는 걸로 안 끝날 텐데.”
그러자 노엘은 몹시 의기양양해했다.
“에슈아는 나 절대 못 건드려. 내가 성녀의 아버지라고 알고 있으니까 말이지.”
* * *
그 무렵, 아이작은 푸흐흐 웃고 있었다.
‘아주 좋은 재료가 손에 들어왔군.’
설마하니, 노엘 놈이 자식 바꿔치기했다니. 이건 노엘 쪽을 한꺼번에 실각시킬 수 있는 좋은 재료였다.
아니, 노엘뿐이야? 반대 세력을 싹 쓸어버릴 기회였던 것이다.
‘뭐, 지금은 이게 먼저지만.’
아이작은 각성의 신의 몸에서 미리 뜯어온 금색의 빛 덩어리를 꺼냈다.
그 모습에 왕급 성령, 샬라크가 혀를 찼다.
[그거 빼내서 보관하느라 고생했다. 말해두지만, 한두 푼으로 끝낼 생각 마라.]
크흐흐흐흐. 오냐, 두둑하게 챙겨주지.
아이작은 본인의 성령을 시켜 신의 힘을 보관 시켰었다. 아무리 그래도 위스퍼한테 성력을 삼키게 할 순 없었으니 말이다.
‘이만한 걸 보관할 수 있는 놈은 성령 정도다.’
그리고 이놈의 기원은 <각성>이었다.
이것만 이용하면……!
‘성녀 핏줄이 아니어도 모조리 업그레이드 가능이지!’
어디 그뿐인가?
‘이거면 고대하던 초월계위로 갈 수 있다!’
그 생각에 미친 아이작은 기분이 째진다는 듯 웃으며 핵을 발동시켰다.
번쩍!
동시에 각성의 신의 힘이 몸에 들어왔다.
아이작은 그 힘을 마력핵에 퍼부었다.
둥!
물론 기존의 마력핵도 충분히 강했지만, 그는 성령을 쥐어짜가며 초월계위로 가는 밑거름을 미친 듯이 닦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으로도 장담할 수 없는 게, 바로 초월계위란 영역이었다.
‘하지만 각성의 신의 힘으로 마력핵을 강제로 발전시킨다면……!’
그리고 그 순간.
아이작이 눈을 번쩍 떴다.
“좋아! 드디어 성공했어!”
[오오!! 주인님! 드디어 성공하셨군요!]
‘그래! 내가 해골 때는 만들어내지 못했던 그 뿌리가! 드디어 생겼다고옭!’
초월계위는 어떻게 갈 수 있는지 아는가?
최고 단계인 10계위가 되면 성장은 끝난다. 쉽게 말해, 세상의 끝에 도착해, 눈앞에 낭떠러지밖엔 존재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그 낭떠러지를 건너 새로운 땅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리를 만들어야 했다. 뿌리가 생기고 줄기가 솟아나,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는 다리를 말이다.
거기서부터가 초월계위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이게 개 같은 해골 상태로는 힘들었다고!
‘아직 뿌리만 돋아난 거지만, 이제 초월계위도 가능해!’
10계위에서 더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그랬기에 아이작이 외쳤다.
“자, 봐라! 엄청나지? 나만 믿으랬지?”
그러나 그 광경 보는 슈리와 기사들은 미간을 좁혔다.
“…너 뭐 하냐?”
“…변화가 없으신 것 같은데요?”
“뭐가 어째?!”
마치 미친놈 보듯 하는 시선에, 아이작은 기가 막혔다.
“야, 낌슈리!! 이거 진짜 안 느껴지냐?!”
“…뭐가?”
“내가 이걸로 뭘 했는 줄 알아? 무려 뿌리를 만들었다고! 이걸로 9계위까지 초고속이야!”
“…아?”
“쉽게 말해서 상급 계위로 가기 위한 발판을 만들었다고!”
그러자 그들은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거 압니다. 고대의 수련법이죠?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넣는 방법이요.”
“야. 그거라면 신께 더 기도해서 힘을 받아야지. 왜 구닥다리 같은 방법을 써?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만 드는데.”
“뭐라고?!”
아이작은 뒷목을 잡았다.
‘이 머저리들!’
신께 기도하는 걸로는 한계가 있다고!
이걸 안 하면 초월계위로 못 가!
“내가 기껏! 니놈들도 최강으로 키워주려고, 어? 이거면 시발! 마법사도, 신도, 드래곤도 때려잡을 수 있는데!”
그러나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슈리와 청의 기사들은 수군거렸다.
“주인님은 저희를 각성시켜 주시겠다고 했지만, 역시 저희는 무리인 거 아닙니까?”
“그러게 말이다. 신을 죽이기나 하고, 이런 패륜 신도 같으니.”
아이작은 은근히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후.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
이만한 걸 눈치도 못 채다니.
‘역시 미개한 인간 놈들.’
[주인님도 인간이시자나여.]
‘닥쳐.’
“아무튼 니들, 조셉과 벤야민이 각성한 걸로 부러워했지? 둘을 각성시킨 건 나니까, 내 말대로 해.”
“하지만…….”
“내가 장담하는데, 내가 각성시킨 벤야민 조셉이 니들 다 이길걸?”
“!”
“릴라이도 벤야민이나 조셉한테 질걸??”
“뭐, 뭐? 나 말이냐??”
졸지에 가만히 있던 릴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청의 기사들이 농담 마시라며 웃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두분은 6계위에 5계위이십니다. 릴라이 님은 9계위시고, 저희는 8계위인데요.”
아이작이 핏대를 세웠다.
“싸워!!”
“예?”
“뭐?”
“일대일로 싸워보라고, 씹새들아!”
“예?!”
아이작은 눈을 이글거렸다.
“특히 김슈리! 릴라이, 내 말이 맞으면 니들은 바로 굴려지는 거다. 니들은 약간으로 안 끝나!”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