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29화 (229/272)

제229화. 드러나는 진실 (5)

분위기가 싸늘했다.

노엘은 자신을 바라보는 형제들의 눈빛에 오싹해졌다.

차갑다.

고요히 발광하는 4개의 푸른 눈이 혐오하듯 내리꽂혔다.

뭐, 벤야민이야 늘 자신을 기생충 취급했으니 그러려니 해도, 릴라이는? 이복형제에 쓰레기인 고엘에게도 ‘형님, 형님’거리며 챙겨주는 호구 놈이었다. 청에선 가장 ‘가족’이란 울타리에 집착하는 놈이었으니까.

거기에 레아? 저렇게 사람을 벌레 보듯 볼 수 있는 아이가 아니다.

하물며 슈리? 친조카인 아이가 큰아버지를 저렇게 경멸하듯 본다고?

하지만 그 눈빛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건 아이작이다. 푸른 안광들 사이에서 유일한 붉은색. 그것만으로도 기이할 정도로 소름 돋았다.

다른 놈들이 겨울의 에슈아처럼 시린 푸른빛이라면, 아이작은 뜨겁다. 혼자 모든 걸 녹이는 태양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다.

뭐라 설명 못 할 위압감에, 노엘은 당황스러웠다.

‘뭔데?’

이 자식들 뭔데, 날 저런 눈으로 보는데?

‘혹시 벤야민을 죽이는 일로 금가에 붙은 것 때문에?’

아니, 그거야 저놈들도 상상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저 눈빛은 평소처럼 자신을 싫어하는 그 눈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유로워서 기분이 나쁜… 그래. 어디 지껄여보라는 듯 재수 없게 내려보는 눈빛이다. 평소의 청이라면 절대 나올 리 없는 눈빛.

그게 내심 불쾌하다 여기면서도, 노엘은 연신 침만 삼킬 수밖에 없었다.

‘뭐지?’

뭐가 발각된 거지?

무섭다. 그는 난생처음 두려움이라는 걸 느꼈다.

그때. 노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이작이 성큼 다가왔다.

“모르겠지? 시키야?”

“헉……!”

아이작이 훅 다가오자 노엘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짚이는 구석이 너무 많아서, 우리가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지?”

“……!!”

이 새끼는 독심술이라도 쓰는 건가?

하지만 노엘은 애써 태연한 척, 팔짱을 끼었다.

“뭐, 네놈들이 이러는 것도 빤하지. 누구도 죽지 않고 정식 성녀로 각성한 데다가, 쓰레기 0계위는 무려 6계위가 됐다. 그깟 각성 좀 했다고 낙오자 놈들이 이제 좀 의기양양해진 모양인데. 약자를 위한 신앙이 힘 좀 얻었다고, 이리 나와도 되는 건가? 어? 소가주님?”

그 말에 형제들의 눈은 더욱 싸늘해졌고, 아이작은 입꼬리를 올렸다.

“정말 그게 이유라고 생각해?”

“?”

그게 아니면 뭔데?

“카야.”

“!”

“위대한 성녀의 아버지?”

“……!”

카야의 이름이 나오자, 노엘은 어처구니없어했다.

이 자식들이, 뭘로 기세가 등등해졌나 했더니. 고작 이거였어?

“아이작. 설마 지금 레아가 먼저 성녀가 되었다고, 감히 카야를 깎아내리는 거냐? 각성의 신을 죽이고 나니까 우습게 보여? 카야는 이제 각성을 못 할 것 같으니까?”

그 외침에 아이작은 풉 웃음을 참았다.

이 병신이 아주 헛다리를 짚네. 하지만 아이작은 굳이 진실을 말해주지 않고서 노엘을 보았다.

“왜? 그래서 부성애가 들끓어?”

“당연한 거 아냐? 난 카야의 친아버지다. 딸의 미래를…….”

“…푸훕!”

“……????”

아이작의 반응에, 노엘은 미쳤냐는 듯 아이작을 훑었다.

그 동공 지진에 아이작은 미안하다는 듯 기침했다.

“아, 쏘리. 하지만 참을 수가 없어서.”

“뭐?”

“씨 없는 부성애가 참 위대하구나 싶어서?”

그 순간, 노엘의 얼굴이 굳었다. 그렇게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진 그가 반문한 건, 몇 초 뒤였다.

“…뭐, 뭐? 뭐?”

노엘이 드물게 말을 더듬자, 아이작 놀리듯이 능청스럽게 다가갔다.

“아, 실수! 하도 카야하고 안 닮아서 내가 말실수를 했네. 자식을 향한 사랑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아서, 미운 오리 새끼인 줄 알았지 뭐야. 미안 사과할게!”

…이 새끼가?

노엘이 떨리는 눈으로 아이작을 봤지만, 아이작은 여전히 해맑게 웃었다.

“근데 그거 알아? 노엘? 베리트 영토에 갔을 때 본 건데. 거기서 씨 없는 과일이 나오더라고?”

“!”

“그게 얼~마나 먹기 편한지 몰라. 너도 베리트에 가면 꼭 확인해봐.”

이 자식이?

노엘은 이 자식이 왜 이러냐는 듯 아이작을 보았지만, 아이작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베리트는 참 기상천외한 걸 키워. 그치? 파렴치한 놈이라든가, 뻔뻔한 인두겁이라든가, 양심도 없는 도둑놈이라든가.”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러는 걸까. 노엘이 분노하듯 주먹을 떨면서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이… 이 자식이 미쳤나. 아까부터 무슨 개소리를……!!”

“고자 놈이.”

철렁.

노엘의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그 얼어붙은 얼굴을 향해, 아이작이 막타를 날렸다.

“도둑놈이 어디서 성녀의 아버지를 입에 올려?”

“……!!!”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노엘은 당황한 듯 황급히 형제들을 보았다.

자신을 보는 가족들의 눈빛이 더없이 차갑다. 그건 이미 벌레로 보는 눈빛이다.

아이작은 말문을 잇지 못하는 노엘을 보며 말했다.

“이럴 거면 건국제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있을 때 까발릴 걸 그랬나?”

노엘의 등줄기에서 줄줄 식은땀이 흘렀다. 그의 당황스러운 시선은 주변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눈치챘나?’

아니, 그럴 리 없다.

이놈들이 알 수 있을 리 없는데!

입술을 깨물던 노엘이 바로 발뺌했다.

“이 괘씸한 놈들! 이젠 하다 하다 거짓으로 사람을 모함하고 모욕해?!”

“아. 거짓이요?”

“!”

참다 못해 기어이 헛웃음을 터트린 건 릴라이였다. 릴라이는 섬뜩한 눈으로 노엘을 보았다.

“형수님들이 아이를 낳으실 때, 거기 있던 건 노엘 형님뿐입니다. 그럼 아이가 뒤바뀌는 것도 쉬운 일 아닌가?”

적나라한 폭로에 노엘은 말문이 막혔다.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정확한 추론이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에 순순히 인정할 노엘도 아니다.

“…아주, 소설을 쓰는구나!!”

“!”

“새끼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날 내쫓으려고 작정을 했어. 아이작이지? 다 저 새끼가 선동했지?”

“야, 노엘 뭐시기.”

벤야민이 빡친 듯 나서려고 했지만, 노엘은 코웃음을 쳤다.

“와, 새끼들 하다 하다 천륜으로 물고 늘어져? 같잖지도 않은 걸로 무고한 사람을 모욕하고 상처 입혀놓고,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야 이…….”

“도대체 무슨 증거가 있어서……!!!”

바로 그때였다.

팔랑-

아이작이 서류 한 장을 흔들어 보였다.

“황실 서고에 재미있는 게 있던데.”

보라색 빛으로 새겨진 문서에, 노엘의 얼굴이 굳었다. 내용물은 굳이 자세히 읽어볼 것도 없었다.

노엘에 대한 기록이다. 선천적인 몸 상태에 대한, 노엘이 그간 거짓으로 가문 사람들을 우롱하고 있던 비밀.

‘…젠장! 저게 왜!’

황실 서고에는 저런 것까지 적혀 있단 말인가?

“정확히는 신의 가호를 받는 이들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지.”

“!”

신의 가호 아래, 거짓은 없어야 한다는 감시.

‘뭐, 초대 황후인 신성드래곤이 황제권과 교황권 둘 다 견제하려고 마련한 장치 같다만.’

물론 아이작에 대한 기록은 깊게 새겨지지 않는다.

‘난 신의 가호를 안 받으니까.’

그래서 좋은 거지만.

곧 릴라이가 싸늘하게 말했다.

“아직 아버지한테 말씀 안 드린 걸 행운으로 아시죠.”

“!”

“뭐, 곧 아시게 되겠지만. 아니, 그 전에 에슈아 모임에서 전부 까발려지려나?”

“장난해?! 그게 위조된 것일 수도 있잖아! 그딴 글귀를 어떻게 믿어!”

“안 믿으셔도 상관은 없죠. 아니 오히려 잘됐군요.”

“……!”

사실 릴라이를 가장 구박하고 비웃었던 건 노엘이다.

“이리된 거, 똑같이 검사를 해보시죠?”

“……!”

“왜, 싫으십니까? 아니, 못 하시겠어요?”

“윽……!”

창백하게 질린 노엘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마침내 그가 이를 갈면서 서둘러 어디론가로 향했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어둠의 각성신을 불러내는 수밖에!’

곧 그가 멀어지자, 레아가 슬쩍 검을 쥐며 물었다.

“저대로 돌려보내도 돼?”

자신이 해결해줄까, 하는 말에, 아이작이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해야 저놈이 움직이지.”

“뭐?”

“그거 알아? 저런 놈들은 궁지에 몰리면 어디로 가는지?”

“…가장 믿을 만한 사람한테?”

“아니. 저런 놈들은 보통 자기한테 가장 소중한 금고로 향해.”

“!”

“자기가 생각했을 때 제일 쓸모 있는 걸 꺼내오겠지. 평소에 꼭꼭 숨겨둔 걸, 제 손으로 꺼내온다는 의미야.”

그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란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작은 알았다.

‘저런 놈은 절대 혼자 안 죽는다.’

아마 금의 추기경도 물귀신처럼 끌고 올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건 내 예상인데, 카야를 각성시킬 방법이 있을 거야.”

“뭐?”

아이작은 같잖다는 듯 웃었다.

“각성의 신이 죽는 바람에 본인의 패인 카야가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했어. 그런데 저 새끼, 의외로 그 부분에선 덤덤했잖아? 그게 무슨 의미겠어? 각성할 정도의 힘이 하나 더 있든가. 아니면…….”

아이작이 떠보듯이 말하자, 벤야민이 알은체를 했다.

“아, 그거라면 설마 그건가? 에슈아에서 봉인한?”

역시 있구나?!

아이작의 입꼬리가 귓가에까지 올라갔다.

안 그래도 존재는 알고 있었다.

‘에슈아의 남은 반쪽 비전.’

아이작은 분명 에슈아의 비전을 부활시켰다. 하지만 그건 반쪽짜리였던 것이다.

수년간 비전을 연구하면서 느낀 게 그거였다.

그리고 지금으로도 충분히 강했지만, 묘하게 성이 안 찬다 싶어 더 알아보니 이게 웬걸.

‘원래 청의 기술 자체가 반만 전해지고 있다지.’

그러니까 지금 쓰고 있는 청의 모든 기술은 반쪽짜리라는 의미다.

‘다른 반쪽은 강력하지만, 인간은 도저히 감당이 안 되서 금기로 봉인해뒀대.’

[오, 그만한 게 있었습니까?]

괜히 최강의 창이라고 불리는 신앙이 아닌 것이다.

‘뭐. 그래봐야 성녀 가문의 비전이니 빛의 신의 힘이겠지만.’

[엥, 그럼 주인님은 못 쓰시는 겁니까?]

‘어휴, 새끼야. 내가 왜 각성의 신의 힘으로 각성 안 하고 있겠냐.’

[안 하셨어요?]

‘그래. 내 마력핵만 살짝 발전시킨 거란다.’

아이작은 구시렁거렸다.

자신도 레아 일가처럼 각성해보려고 했지만, 글쎄.

‘시바, 누가 뱀장어 주제에 신 나부랭이 아니랄까 봐.’

성력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했던 것이다.

‘그걸로 각성하면 나도 성자로서 한 방에 강해지겠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뭐죠?]

‘마력을 잃어.’

[헉?!!]

위스퍼는 마치 사형 선고라도 당한 것처럼 몸을 떨었다.

‘상성의 문제야.’

밸런스 문제이기도 했다.

현재 아이작의 몸은 빛의 신성력과 어둠의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둘 중 하나가 지나치게 강해지면, 다른 한쪽이 사라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괜찮았지만, 신 정도의 힘을 흡수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신의 힘 때문에 마력핵 자체가 날아갈 수도 있겠네요! 성자만 남는다는 거죠?]

‘그래. 그러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각성의 신의 힘은 그냥 우리 애들이나 키워주는 걸로.’

[봉인되어 있다는 그 힘도요?]

‘그래. 할 수 없지. 간접적이지만 청을 키우는 것도 결국 내 힘이 되는 거니까.’

[그럼 교황 선출, 콘클라베는요? 각성의 힘 없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새끼가, 이 몸을 뭘로 보고?’

뭐, 각성을 하면 당연히 좋지만, 그래봐야 인간들의 대결이다.

‘그리고 원래 왕이 잘날 필욘 없어. 진짜 흑막은 수족들을 부리는 거…….’

그런데 그때였다.

릴라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봉인된 금기의 비전이라고 하면… 설마, ‘어둠’의 각성의 신 말입니까?!”

그 말에 아이작의 귀가 드물게도 쫑긋쫑긋 섰다.

…음? ‘어둠’의 각성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