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0화. 드러나는 진실 (6)
“뭐? 카야?”
황태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아, 카야 에슈아 경 말인가? 그녀를 왜 여기서 찾지?”
“왜긴요. 황태자 궁에 갔다길래 왔죠.”
“온 적 없는데.”
아이작은 황태자 궁에 와 있었다.
그리고 카야에 대해 묻는 말에 샤블리스는 특유의 무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보다 왜 황태자 궁이지?”
“왜긴 왜입니까? 종종 황태자 궁에 온다고 들었습니다만?”
“뭐, 그래. 오기는 오지. 카야 경은 황태자비 후보니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작은 마시던 차를 내뱉었다.
“콜록콜록…! 뭐야, 그런 거였어?!”
레아가 체한 아이작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아이작은 뜻밖의 사실에 입을 스윽 닦았다. 안 그래도 ‘어둠’의 각성신이라는 말에 혹한 그였다. 그리고 그 각성신에 대하선 카야가 더 잘 알 것이란 말에 왔더니, 이게 웬걸??
‘난 또 시동이라서 황태자 궁에 들락날락하나 했네.’
황태자와 황녀에게는 귀족가 자제들이 시동으로 붙는다. 또래 친구를 만들어주는 건데, 보통 남아는 미래의 권력을 위해, 여아는 반려의 자리를 위해 귀족들이 황태자에게 붙여준다.
시동으로 보내는 데 성공한 가문은 장원급제 급의 큰 경사로 여길 정도다.
아이작의 반응에, 황태자가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시동은 보통 열네 살 정도까지라, 이제 나이가 안 맞지. 그 이후엔 가신이나 비 후보가 된다. 애초에 나는 시동이 없었고.”
그러자 아이작은 알 만하다는 듯 끄덕였다.
뭐… 그러시겠져.
“취미가 그따위인데, 친구가 있겠냐…….”
“지금 속마음이 나오고 있는데?”
“커흠…! 아닙니다!!!”
아이작은 콜록콜록 기침하며 눈을 흘겼다.
‘어휴, 오타쿠 놈. 친구가 있는 게 기적…….’
“친구가 있는 게 기적일 거라고?”
“?!”
아이작이 흠칫 놀라 황태자를 보았다. 황태자는 실망이라는 듯 쯧 혀를 찼다.
“공자. 말하는 걸 깜빡했다만, 나는 상대의 속생각도 어느 정도 들을 수 있다.”
뭐, 인마?
“나는 어떤 말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사람의 속말도 예외는 아니다.”
시바, 뭐라고??!
“농담이다. 악의에 찬 게 아니면 안 들려. 지금은 네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시바 놈, 놀라게 하기는!
아이작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한편으로는 눈을 또륵 굴렸다.
‘그래도 악의에 찬 속말을 읽을 수 있다는 건 많이 쓸 만하겠는데?’
“아무튼 카야가 황태자비로 궁에 드나드는 건 맞죠?”
“그래. 의례적으로 티타임을 가지게 하니까. 뭐, 레아 경은 거절했지만.”
그 말에 레아는 방긋 웃었다.
“저는 해골왕이 더 좋으니까요.”
황태자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의미로 성녀 후보가 황태자비로 들어온다는 게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카야 경이 네 혈육이라는 말을 들으니 납득이 가는군.”
“아?”
황족인 그는 바로 노엘의 정치적 목적을 깨달았다.
“카야 경은 해골왕 토벌이라는 청의 사명이 아닌, 철저한 암살 도구로서 키워진 거지. 에슈아의 장남, 그리고 아이작을 죽이고 그다음엔 황후로 만들어 권력을 차지하고자 한 거야.”
아이작도 바로 수긍했다.
‘노엘, 그 권력에 미친 새끼라면 그러고도 남지.’
에슈아에서 가주 자리를 차지한 뒤, 황제의 장인이 되면 엄청난 권력을 가질 수 있게 될 테니까.
“뭐, 노엘 사제는 내심 내가 아닌 루이스의 장인이 되었으면 했겠지. 루이스는 카야 경한테 푹 빠져 있으니까.”
“엥? 루이스가 누구더… 아아! 그 병신 3황자 새끼, 요즘 뭐 해요? 이제 지랄 안 합니까?”
“시커먼 용용이한테 쳐맞고 아직도 사경을 헤매고 있다. 어차피 다리 하나는 불구일 거야. 다시 일어나진 못해.”
아이작은 다행이라는 듯 흐흐 웃었다. 단지 카야를 만나기 위해 온 건데, 카야가 알고 보니 황태자비 후보라고?
그러면 흐흐, 샤블리스가 매형이 되고, 황실과 사돈이 되는 거니, 부자…가 아니라 시바!!!
‘이러면 샤블리스랑 사피엔이랑 못 엮어주잖앍!’
그러면 자신은 꼼짝없이 사피엔이랑 결혼행!
아이작은 기겁해서는 바로 책상을 쳤다.
“전하! 제 누이는 안 댑니다앍!!! 아무튼 안 됩니다!”
그 모습에 샤블리스는 의외라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카야가 아이작의 친누나라는 말은, 황실 서고를 빌려주면서 듣긴 했었다. 하지만 사항이 사항이다 보니, 사피엔도 자신도 크게 놀라긴 했다만…….
황태자는 해골왕의 의외의 면모라는 듯 좋아했다.
“그대에겐 형제애가 당연히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 그래도 가족애가…….”
“사피엔 어떠십니까?!”
…뭐?
“역시 황실은 성녀 말고, 신성드래곤이 짱이죠! 그쵸?!”
황태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아니, 가족애는 둘째 치고, 이 녀석은 왜 자꾸 들이밀어도 그딴 용용이를 들이밀어.
심지어 본인이 살자고……?
황태자가 곰팡이가 핀 빵을 베어 문 표정을 지었지만, 아이작은 얄밉게 황태자를 붙잡았다.
“에이, 왜 그러십니까. 황실한테는 신성드래곤이 최고잖습니까. 다 압니다. 부끄러우셔서 그렇죠? 역시 반려는 드래곤이 최고죠? 제가 다리를 놓아드릴 테니, 어떻게 둘이 좀 므흣하게…….”
그 목적이 빤히 보여서 묘하게 얄미웠는지, 황태자가 한마디 했다.
“황실도 성녀를 좋아한다.”
“아니, 안 됅!!”
황태자가 삐친 듯 책을 읽기 시작하자, 아이작은 절망했다.
“…이렇게 된 이상… 다른 걸로 꾀어… 그래, 사피엔 어딨어요? 얼굴 좀 봐야겠습니다.”
“찾아봐야 소용없다. 아까 시할아버님을 만나러 간다 했다.”
“으악!!”
걔가 왜 할아버지를 만나!
“아무튼 카야 경이 황태자 궁에 종종 오긴 하지만, 목적은 내가 아닌 다른 곳 같다.”
다른 곳이라고……?
“뭐, 목적은 지금에 와서야 대충 짐작 간다만.”
황태자는 힐끗 아이작을 보았다.
뭔데. 왜 나를 보는데?
아이작이 레아를 힐끗 보았다.
“레아, 카야에 대해 좀 알아?”
사실 아이작은 카야가 친누나라는 사실을 눈치챘을 때에도, 그녀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뭐, 이런 소패 같은 생각도 저주의 일환이지.’
해골왕의 저주가 아직 풀린 건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쪽이 아니다.
레아가 고심하듯 말했다.
“음, 카야는 같은 성녀 후보로 자라긴 했지만… 나도 접점이 없어서 잘은 몰라. 노엘 숙부에게 절대 충성하지만… 나쁜 아이는 아냐. 단지 좀 극단적이라고 해야 하나…….”
“극단적……?”
레아는 끄응, 아이작을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레아는 아이작을 카야와 만나게 하는 게 걱정스러웠다. 아이작을 무섭게 노려보는 카야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뭐, 노엘의 딸로 자랐으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때 황태자가 말했다.
“정 그러면 지금 확인해보지?”
지금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려는 그때였다.
“!”
아이작은 시선을 느꼈다.
깜짝 놀라 돌아보자, 기둥 뒤에서 낯익은 그림자가 걸어나왔다.
푸른 눈, 은색의 단발.
스물쯤 될까? 누가 성녀 핏줄 아니랄까 봐, 절세미인이었다. 레아와 다르게 웃음기도 없고, 굉장히 차갑게 느껴졌다.
날카로운 눈매는 아이작하고 닮았다면 또 닮았다.
하지만 레아는 그녀가 입은 남색 계열의 무복을 보곤 바로 경계했다.
“임무복이잖아.”
“임무복?”
“노엘 숙부는 카야한테 암살 임무도 시켰어.”
“……!!”
전형적인 암살자의 옷은 아니지만, 옷감에서조차 서늘함이 느껴졌다.
곧 카야가 다가오자, 아이작도 경계했다.
‘노엘, 그 새끼. 그렇게 물먹고 돌아가더니. 날 죽이라고 암살 명령이라도 내렸나?’
자신을 황태자 궁으로 유도하고, 배후를 밟은 건가? 그리고 황태자한테 들켰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나온 거고?
마침내 카야가 아이작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서늘한 눈빛이 아이작을 응시했다. 뭔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 녀석은 아직 아이작 에슈아가 친동생이라는 걸 모른다.
‘오히려 자기 아버지를 끔찍하게 따른다고 했나.’
그러면 아이작이 미울 수밖에 없겠지. 노엘을 나락으로 보내는 것도 아이작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카야의 새하얀 손이 아이작의 목 쪽으로 다가왔다. 아이작의 목을 조르려는 듯한 섬뜩한 모습에, 레아가 흠칫 놀라 막으려는 그 순간.
쭈우우욱.
“?????”
아이작은 얼굴에 물음표를 띄었다.
카야가 아이작의 볼을 쭈우욱 잡아 늘였기 때문이다.
쭈우욱, 쭈우우욱.
“……????”
마치 귀엽다는 듯, 사랑스럽다는 듯 아이작의 볼을 만지는 모습에, 레아도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저기……?”
…이거, 죽이려는 거 아니지?
이거… 좋아하고 있는 거 맞지?
카야는 드디어 아이작을 만져본다는 듯, 묘하게 뿌듯한 얼굴이었다.
“호, 호의를 가진 것 같은데.”
…그치? 레아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저기, 전하?”
황태자는 시치미를 뚝 뗐다. 그는 이미 짐작한 듯한 얼굴이다.
아이작은 어이가 없었지만, 잔머리를 잘 굴리는 마족답게 바로 눈을 번득였다.
‘가만, 이런 느낌이면 이용해 먹기 좋겠는데?’
그 생각에 미친 아이작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좋아, 이거 이용하자!’
그리고 그때였다.
처음으로 아이작과 가까워진 카야가 아이작의 냄새를 킁킁 맡았다. 그 느낌이 좀 이상했지만,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작은 일부러 얌전히 있어 줬다.
아군으로 삼을 수 있다면 이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푸흐흐.
그래, 실컷 맡아라. 향수까지 뿌려서 겁나게 좋은 냄새가…….
“너, 해골왕의 냄새가 나.”
“?!”
카야의 말에 당황한 아이작의 동공이 흔들렸다.
뭐, 뭐라고?
그는 주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몇 번이나 말하지만, 이건 해골왕의 뼈를 먹어서…….”
“그거 아닌데. 위장이 아니라, 영혼에서 나는데…….”
뭐가 어째?!!
곧 카야가 아이작에게 물었다.
“너, 해골왕이야?”
“프하화하후합!!!”
“푸훕!”
이번엔 차를 마시던 황태자도 당황한 듯, 같이 콜록콜록거렸다.
아이작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시바…. 얘, 여러 의미로 무서운 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