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1화. 드러나는 진실 (7)
카야의 말에 아이작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황태자 샤블리스도 드물게 당황한 듯한 얼굴이다.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당황하지 않는 건 레아 하나뿐.
“…해골왕이라니? 그것도 영혼에서?”
으아아악!!!
레아의 관심에, 아이작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는 원망하듯이 샤블리스를 바라보았다.
‘아니, 황태자 시키야! 너 카야에 대해 알고 있던 거 아니냐? 지금도 일부러 만나게 한 거지!’
그 눈빛을 읽은 듯, 샤블리스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도 카야가 이럴 줄은 몰랐단 얼굴이다. 물론 카야가 황태자 궁에 종종 방문한 목적이 아이작 때문이란 건 눈치챘지만 말이다. 아이작은 황태자 궁에 내준 정원 때문에 이곳에 자주 머물렀으니까.
카야 역시 티타임은 핑계고, 실제론 숨어서 아이작을 보려고 왔으리라. 그런데 대뜸 보자마자 해골왕이라니?
하지만 샤블리스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아이작을 힐끗 보았다.
“그보다 불안해하는 거 보면, 역시 본인이 해골왕인 걸 인정하는…….”
“그럴 리 없잖습니까앍!!”
이 끈질긴 해골왕 오타쿠 놈아!
그럴 때 카야가 아이작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 해골왕이야?”
카야까지 합세하자, 아이작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장난해? 그보다 해골왕은 백 년도 더 전의 마왕이잖아! 상식적으로 해골왕 냄새를 네가 어떻게 아는데?”
그러자 카야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어찌 알긴… 멜리사 할머님이 해골왕의 물품으로 교육해 주셨으니까.”
교, 교육?
“할머니가 해골왕에게서 뜯어내신 해골왕의 발이 있는데…….”
바, 발?
“그걸 계속 보관하고 계셔서. 항상 그걸로 성녀들에게 추적 교육을 하셨어…….”
아, 멜리사아아앍! 쪼옴!!
황태자는 그런 게 있었냐는 듯 눈을 반짝였지만, 아이작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 발이라는 게 뭔지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주인님이 멜리사의 지갑을 훔쳤을 때였나. 그때 뜯긴 다리를 말하는 거죠?]
그래! 고작 지갑 좀 털었다고! 그걸 또 쫓아와서 마왕의 다리 한쪽을 뽑았던 그거!
[하지만 그거 그냥 뼈다귀 아닙니까?]
그래. 몸통에서 다리가 떨어져 나간 순간, 다리 쪽으로 흐르는 마력을 끊었지. 그다음 떨어져 나간 다리에 남아 있던 힘도 모조리 가져왔다.
그래서 그건 세간에서 노리는 ‘해골왕의 육신’과는 다른, 그냥 칼슘 덩어리였다.
그런데 그걸 지금까지 갖고 있었다고?
‘멍멍이냐! 애착 장난감이냐고!’
하지만 정작 레아는 알은체를 했다.
“아, 그거구나. 할머님은 맡을 수 있는 냄새.”
“!”
“난 아무리 해도 못 느끼겠던데. 그나마 그게 가능했던 건 칼리야 숙부님 정도였고…….”
그 말에 아이작은 뒷목을 잡았다. 어쩐지 멜리사 남자 버전인 셋째 놈도 자신을 보자마자 검을 휘두르더니!
‘그래. 애송이 놈들이 어떻게 내 냄새를 아나 싶었다.’
이게 다 멜리사의 조기교육 때문이었구나?
레아는 내심 부럽다는 듯 카야를 보았다.
“카야도 그게 가능하구나…. 그런데 아이작한테 해골왕의 냄새가 난다고?”
레아의 시선에, 아이작은 붕붕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반응에 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야, 네 착각이야. 아이작이 해골왕일 리 없잖아.”
“착각 아닌데.”
“착각이 아니라고?”
“응. 확인해보면 바로 알게 ㄷ…….”
카야는 아이작을 보았지만, 아이작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카야에게 조사를 당할까, 재빨리 황태자 궁에서 뛰쳐나온 아이작이 씩씩거렸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시바 놈들…! 내 머리털이 빠지면 전부 저것들 탓이다……!”
설마 혈육이 이런 놈일 줄이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아무리 교육이 있었다지만, 해골왕의 냄새를 느낀다고?’
이건 감지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의미였다. 이쯤 되면 부모의 얼굴이 궁금할 지경이다.
‘부모가 도대체 뭘 하는 놈이길래.’
아무튼 지금 상태로는 위험하다.
‘이 사실이 에슈아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면 능지처참당할 수도!’
[글쎄요, 의외로 수긍할지도요? 청의 가주는 이미 제 존재를 눈치챈 기미고요.]
‘네 존재를 눈치챘다고?’
[눈치챘다기보단 짐작하는 거겠지만요. 각성의 신을 죽이고 난 이후부터 계속 힐끔힐끔 감시하더라고요. 주인님이 흑마법에 손을 댄 걸 눈치챘으니, 얼마 전 주인님을 불러서 의도를 파악했던 거겠죠.]
의도 파악이라면, 그때의 일인가.
-너는 에슈아를 없앨 생각이냐.
그건 흑마법을 쓴 아이작을 나무라는 것이기보단, 아이작의 속내를 알고 싶어 하는 질문이었다.
그만큼 ‘아이작 에슈아’를 아낀다는 의미겠지. 아이작이 에슈아를 멸망시킬 생각만 아니라면, 보듬어주려는 의미일 것이다.
그걸 도중에 느꼈기에 아이작도 ‘가주님’이 아닌 ‘할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던 것이지만…….
‘해골왕이란 건 또 다른 문제지!!!’
시바!
아무리 그래도 천적 가문이 원수를 냅둘 리 없지 않은가!
[청의 가주, 그래도 해골왕한테 호의를 가진 편 아니었나요? 분명 꼭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고…….]
아니, 짝퉁 때문에 글렀어!
그리고 성직자와 마족 사이에서 대화란, 싸움을 의미하는 거란다!
‘아무튼 안 들키기 위해서라도, 그 어둠의 각성신이라는 게 필요하다.’
냄새는 더 강한 냄새로 덮는다.
하물며 <어둠의 각성신>이라면 분명 마력핵을 없애지 않고도 강력한 각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정점 마법인 해골왕의 마법만 쓰면 피를 토하며 골골거리지만, 각성하면 달라질 것이다. 필시 해골왕의 마법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겠지.
‘단지.’
[단지?]
‘어둠의 각성이라는 게, 묘하게 최고신 같아서.’
[예?]
‘최고신은 어둠과 빛의 속성을 둘 다 가졌거든.’
[오!]
뭐, <어둠의 각성신>은 노엘이 알아서 풀러 갔을 테니 자신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아이작이 푸흡 웃을 그때였다.
[근데 주인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뭐?’
[에슈아가 지금 난리가 났어요!!]
뭐? 왜??
* * *
그 무렵, 에슈아 저택이 발칵 뒤집혀 있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뭐라고?”
“신성드래곤이 왔다고?”
“뭐? 드래곤?!’
사피엔의 방문으로 에슈아 저택은 하인, 기사, 가족들 할 것 없이 난리가 나 있었다. 특히 저택에 있던 숙부들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릴라이도 벤야민도, 심지어 고엘도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은 인간을… 끔찍하게 싫어하지 않습니까?”
아니 싫어하는 수준이 아니다.
‘개 하찮게 생각하지…….’
비록 멜리사가 용인이고, 멜리사의 자손들도 쿼터하프들이라 용인이나 마찬가지지만, 글쎄.
‘사이가 좋다고 할 순 없지…….’
그러니까 대충 그런 느낌인 거다.
그 오만한 새끼들 입장에선 인간들은 오래 살지도 못하는 고양이나 강아지…같은 건데, 인간들이 강아지, 고양이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고 하면 어떤 감정이겠는가.
비유가 극단적이지만, 아무튼 그런 놈들이었다. 사실 신성드래곤이 황가와 연을 맺고 있는 것도 낡은 계약 때문이지, 그걸 지키고 싶어 하는 드래곤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놈이 왔다고?
심지어 그냥 드래곤이 와도 보통 일이 아닌데, 무려 신성드래곤들을 총괄하는 수장이?
‘뭐지?’
‘에슈아를 부수려고 왔나???’
청의 기사들의 몸도 떨릴 수밖에 없다.
“리, 릴라이 님. 전쟁 준비를 할까요?!”
“그래, 전투 준비를……!!”
그 반응에 소식을 가져왔던 시종들이 다급히 말렸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이작 도련님의 일로 왔다고 합니다!”
뭐? 아이작???
그 이름에 에슈아 일가는 다른 의미로 창백해졌다.
“왜 또!!! 무슨 사고를 쳤는데!!”
“예?”
숙부들이 외쳤다.
“수장이 직접 올 정도면, 도대체 어떤 규모의 사고인데?!”
게다가 신성드래곤 수장이라고?
“그놈은 4대 드래곤 중 하나 아니냐!”
인계에서 절대 건들지 말라는 게 4대 드래곤들이다. 동서남북을 지배하는 드래곤인데, 해골왕이 지배하는 마족의 영토는 당연하고, 그들의 영역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고엘도 뒷목을 잡았다.
젠장, 하필 형 놈이 어둠의 각성신을 푼다고 난리 치는 이때?
“신성드래곤 수장이라면… ‘광룡’이었나?”
“예…. 성룡이면서 최초로 수장이 된 엘리트 천재라고…….”
드래곤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강해진다. 그런데 그 어린 나이에 벌써 그 정도면, 얼마나 강한 놈일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포악하기로도 유명하지…….’
…그런데 그런 놈을 건드렸다고?!
“아이자아악!”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진 에슈아 일가의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최악의 경우, 가문 멸문이다…….”
“마왕을 퇴치하는 가문이 용 퇴치까지 해야 하는 건가……!”
그러자 시종들이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아이작 도련님과의 결혼을 허락받으러 오셨다고…….”
…아?
이건 또 뭔 소리냐는 그때, 시종들이 우르르 선물을 든 채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거는, 시댁 어른들에게 드리는 선물이라고…….”
……아?
………아?!!!
시댁이라니, 뭔 소리야!!!!
* * *
그 무렵, 에슈아 저택의 안채는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다름 아닌, 둘 때문이다.
“손주를 내놔라, 시할아버님.”
“말투부터 고쳐라, 드래곤 수장 놈아.”
“손주를 부디 내놓았으면 합니다, 시할아버님.”
“경어만 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아이작을 두고, 사피엔과 일라이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물론 사피엔도 처음엔 몹시 공손하게 일라이에게 인사를 했지만, 글쎄.
-내 집에서 썩 꺼져라. 우리 집에선 그 무엇도 가져갈 생각 마라. 어디서 도룡뇽이.
빠직.
처음부터 아이작을 줄 생각이 없단 걸 알고서 불꽃을 튀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일라이도 불만이긴 마찬가지였다.
“손주에게 똑똑한 짝을 붙여줄 생각이긴 했다만, 그렇다고 드래곤에게 보낸단 소린 안 했다.”
물론 멜리사의 남편인 일라이에게 있어 신성드래곤이라면, 사돈 종족인 셈이었다. 멜리사가 그쪽의 핏줄이었으니까.
하지만…….
“니들이 멜리사한테 한 짓을 떠올려라. 하프라고 얼마나 무시했지? 그 꼴을 또 보라고?”
그러자 묘하게 억울했는지, 사피엔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멜리사의 일이라면 윗세대의 꼰대들이 저지른 짓. 그랬기에 그녀가 말했다.
“원하면 그 새끼들, 다 죽여드릴까?”
그 살벌한 눈빛에 일라이는 어처구니가 없어 말도 안 나왔다.
‘…아이작, 그놈은 어디서 지랑 똑같은 걸로…….’
곧 사피엔이 말했다.
“지금은 신성드래곤들도 멜리사를 좋아하지 않나? 이런저런 특혜도 주고.”
“허, 성녀니까 모시는 거지. 이 버러지들이.”
멜리사는 어릴 적 일이라 용서한 듯하지만, 일라이는 다르다.
“어쨌거나 아이작은 안 된다.”
“!”
“내 손주… 아니, 가문의 후계자를 어디 신성드래곤 영역에 보내? 드래곤이면 보나 마나 종족 보존을 위해 지들 영역으로 데려가려 할 텐데.”
그러자 사피엔이 눈을 반짝였다.
“아니. 내가 여기로 들어오는 거다.”
…뭐라고?
드래곤이 인간 가문에 들어온다고?!
그것도 수장이?
아이작 이놈의 자식, 도대체 뭘 한 거야?
일라이가 드물게 당황한 듯했지만, 사피엔은 한숨을 쉬었다.
“뭐, 일단 시할아버님을 보러온 게 목적이지만, 실은 다른 건으로도 왔다.”
“다른 건?”
“성녀 가문이 반드시 알아둬야 할 이야기 같아서.”
성녀 가문?
그때, 사피엔이 몹시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시할아버님께서는 교황과 친했다고 했던가.”
“시할아버님 아니다.”
“이번 일로 신성제국 안에 들어와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왜 교황가 놈들이 황실과 드래곤을 이간질하면서까지 신성드래곤을 제국에서 내쫓았는지.”
일라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라면 황실 서고 때문 아닌가? 들키고 싶지 않은 정보가 있어서?”
“아니. 더 근본적인 이유야.”
근본적인?
곧 사피엔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제국 안에서 망자의 기운이 느껴진다.”
“망자?”
“실베스테르 교황.”
“!”
과거, 성녀 이네스를 처형하고, 해골왕과 접전이 제일 많았던 교황.
“그자의 냄새가 난다.”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