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3화. 봉인이 풀리면 (2)
‘빌어먹을 아이작!’
노엘은 이를 갈았다.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하필 그 새끼들이 카야에 대해 눈치채다니.’
아버지, 아니 에슈아. 아니 귀족 사회에 퍼지기 전에 처리해야 했다.
이건 단순히 ‘아이 도둑질’을 했다는 걸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왜냐고?
-첫째 아이의 무덤을 조사해줘.
16년 전, 아이작이 태어났을 때였나.
돌연 장남이 벤야민에게 그런 지시를 했었다.
당시 노엘은 장남이 갑자기 저택을 나간 게 수상해서 계속 감시를 했다. 그 과정에서 서신 중 일부를 빼돌렸던 노엘은, 내용을 보고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장남이 왜 그런 조사를 시켰겠는가.
-어쩌면 아이가 뒤바뀌었을 수도 있을 거 같아.
‘죽은 게 지 자식이 아니란 걸 눈치챘구나!’
하지만 도대체 무슨 수로 알아낸 거지? 알아낼 방법이 절대 없었을 텐데?
어쨌거나 노엘은 진실을 알아챈 형님 부부를 처리하기 위해 금의 추기경과 손을 잡았다.
금의 추기경?
사랑하던 여자를 장남에게 빼앗겼던 만큼, 흔쾌히 나서줬다. 그렇게 금의 추기경은 형님 부부를 처리하고, 갓 태어난 아이작까지 죽이려 했다.
뭐, 대단한 조카는 결국 살아서 저택에 오긴 했지만, 카야의 산 제물로 바치면 되니, 그것도 나름 괜찮겠다 싶었다. 오히려 성녀로 각성시켜서 황실로 보내면 몸값이 올라갈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 새끼들이 카야에 대한 걸 알았다고?
자칫 장남에 대한 것까지 우르르 엮여서 털릴 수도 있었다. 그러면 정말 끝이었다.
‘가주는 물론, 최후의 보루였던 황실의 사돈까지 전부 물거품이 된다.’
아니, 지금 물거품이 문제인가?!
죽어가는 아내를 방치하고, 마족들을 유인해 하인들을 죽이고, 아이를 바꿔치기하고, 형님 부부의 살인을 사주했다.
그 민낯이 하나하나 까발려져 재판으로 넘어가게 되면, 제국의 공개 투석형에 의해 진짜 죽을지도 몰랐다.
신성제국은 그 정도의 죄를 용서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평소라면 공작가의 이름으로 빠져나올 수라도 있지, 파문당하고, 에슈아의 성이 박탈된 지금은 진짜 보호도 받을 수 없다.
‘아니, 그전에 아버지한테 살해당하겠지.’
하지만 뭐, 상관없었다.
‘아이작과 릴라이, 아버지만 죽여놓으면 어차피 가주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청의 가주가 죽으면, 베리트의 도움을 받아 성도 다시 되돌려놓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둠의 각성의 신을 풀어낸 것이다.
‘어둠의 각성이 왜 독이 든 성배인가.’
노엘은 큭 웃었다.
‘빛은 어둠이 존재하기에 더 밝게 느껴지는 법.’
에슈아의 상징은 <빛>.
하지만 현재의 에슈아는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없는 그림자 빛이었다. 마치 수면에 비친 어둑한 빛처럼 말이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더 강하게 느껴지듯, ‘어둠’은 그런 청을 완전체로 만들어줄 수 있는 존재였다. 강력한 빛을 위해선 필수로 어둠을 삼켜야 했다.
하지만 과거 모든 에슈아들이 실패했다. 전부 주화입마에 빠져 주변을 초토화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즉 이걸 이용해 카야를 각성시키면, 에슈아의 눈엣가시들도 죽일 수 있단 의미다.
일단 성녀 각성 때처럼 제물이 필요하니 아이작은 산 제물로 죽일 수 있고, 주화입마에 빠진 카야는 숙부들을 죽이겠지.
‘아버지는 콘클라베에 가셨으니, 카야를 막을 수 있는 건 같은 급인 릴라이 정도일 거다.’
레아는 귀중한 성녀니 다가가지 못하게 할 것이고.
조카바라기 놈이 조카를 내려둘 리도 없으니, 불나방처럼 달려들겠지? 심지어 친조카라는 걸 알았으니, 이제 더 끔찍이 생각하겠네?
노엘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친조카라는 걸 알게 된 게, 지들 목을 조르겠구나.”
뭐, 어둠의 각성을 쓰게 되면 카야란 패는 버려야 해서 아껴뒀지만, 어쩔 수 없지.
아니, 카야 정도의 힘이면 에슈아를 몰살시킬 수 있을 테니 의미 있는 죽음이겠구나.
그랬기에 노엘은 봉인된 어둠의 각성신을 찾아온 것이었다. 순혈 에슈아라면 몰라도, 자신은 어둠의 각성신에게 다가가도 상관없었다.
“금가의 핏줄이 이럴 땐 도움이 되네.”
<배척>.
노엘이 금가의 성법을 써 막을 둘러냈다. 아군 혹은 자신 외에는 모든 것을 배척하는 성법이었다. 이거면 적의 타깃이 되지 않는다.
그러고는 추기경급들만 풀 수 있는 봉인을 풀어냈다.
콰직!
노엘의 손짓에 맞춰 지하실 곳곳에 채워진 사슬이 깨졌다. 동시에 바닥에서 강력한 성법 진이 나타나고-
쿠구구!
그 진에서 강력한 어둠의 힘이 치솟았다.
-누구를 각성시키길 바라느냐.
노엘은 바로 어둠의 힘을 향해 카야의 물건을 집어넣었다. 각성의 신에게 각성 대상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엘은 금가에서 성물을 가져왔다. 그러고는 그 힘을 향해 외쳤다.
“각성의 신이여! 이곳에 힘을 바라는 성녀 후보가 있다! 카야를 각성시켜라! 산 제물은 그 혈육으로 잡아먹고!”
* * *
그 무렵.
“뭐라고?”
기도실에 끌려온 슈리는 제 귀를 의심했다. 그는 무슨 귀신이라도 본 듯, 아이작을 보며 동공을 떨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니가… 기도… 기도를 드린다고?! 신께?! 니가?”
슈리의 비명에, 아이작은 이 새끼 보라는 듯 눈을 흘겼다.
“왜? 할부지도 교황 선출 건으로 <콘클라베> 참여하러 교황청에 갔잖아. 그럼 당연히 나도 불려가겠지? 그러니 불려가기 전에 준비해놔야지.”
“넌 왜 불려가는데?”
“왜긴? 다음 교황은 성자가 된다고 했으니까.”
“누가 성잔데?”
“이 몸.”
“푸훕!”
슈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지랄…. 호박에 줄 긋는다고 성자가 되냐? 너 같은 놈이 무슨 성자 같은… 아아악!!!”
아이작은 슈리의 머리를 창문으로 밀었다.
“슈리야. 10층에서 떨어지면 신체가 어떻게 변하는지, 과학 실험 좀 해볼까?”
“찌부됩니다! 찌부된다고요!!!”
“정답.”
결국 자유낙하를 할 뻔한 슈리는 바닥에 엎드렸다. 그러고는 이딴 놈이 뭔 성자를 거론하냐는 듯, 혐오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확실했다.
‘이 새끼, 교황이 되면 폭정 할 놈이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은 못하겠던 슈리는 말을 돌렸다.
“…그보다 실베스테르 교황이 살아있을지 모른다 했잖아. 정말 그분이 살아계시다면…….”
곧 활짝 웃는 아이작의 손이 다시 머리 위로 올라오자, 슈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 그 새끼가 살아 있다면…….”
“응응.”
“…콘클라베가 열리긴 할까? 만약 그자가 교황이 되겠다고 하면…….”
아이작은 큭 웃었다.
“괜춘. 관여 못 해.”
“뭐?”
“서품식 때 나타난 해골왕이 그 새끼일 확률이 크거든.”
“아! 그렇구나! 그러면… 뭐라고?!”
슈리는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그는 몹시 큰 충격을 받은 듯, 말을 더듬었다.
“자, 잠깐만. 뭐라고? 실베스테르 교황이 해, 해골왕? 그게 무슨……!”
아이작은 대답 대신 방긋 웃었다.
“아무튼 그건 지금 안 중요해. 지금 네가 할 일은 빛의 신이 준 성물이나 주고 나가 있는 거야. 자.”
“우이씨. 이거 원래 남한테 주면 안 되는 건데…….”
슈리는 목에서 로자리오를 풀면서 아이작에게 건넸다. 그걸 받자마자 슈리를 뻥 걷어차 쫓아낸 아이작이 빛의 신을 불러내려는 그 순간,
화륵!
“!”
기도실의 촛불에 거센 적색의 불꽃이 치솟아올랐다. 그 불길이 매로 변하자, 아이작은 핏대를 세웠다.
“뭐여, 넌 또 왜 나왔어? 내가 부르려고 한 건 빛의 신인데.”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아이작과 계약한 또 다른 신.
형법의 신이었다.
그러나 형법의 신은 다급하게 외쳤다.
[너, 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냐!]
“왜?”
[어둠이 네게 향하고 있다.]
아이작은 참 빨리도 눈치챘다는 듯 이죽거렸다.
“아, 어둠의 각성신을 이용해서 나도 좀 각성하려고. 이번에 빛의 각성신을 얻었거든. 근데 주변 애들만 각성시켜 주려니까 졸라 아까워서.”
[뭐라고?!]
“왜. 신의 힘이라니까 아까워?”
[그게 아니야!]
형법의 신은 환장하겠다는 듯이 외쳤다.
[어둠의 각성신은 보통의 신이 아냐! 다른 신들도 그자를 이용해서 각성하려 했었다!]
“!”
[그러나 전부 타락했지. 네가 감당이 가능한 녀석이…….]
“븅신.”
아이작이 혀를 찼다.
“마왕한테 그딴 게 통할 것 같냐? 타락의 대명사인 마왕이 타락해봐야 마왕이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쾅!!!
거대한 폭발 소리와 함께 기도실이 뒤흔들렸다. 아이작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뭔 소리야?”
아이작이 기도실 밖으로 나오자, 연기가 보였다. 에슈아 저택 쪽이었다.
동시에 아이작에게 걷어차인 뒤 기도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슈리가 급하게 달려왔다.
“아이작! 큰일이야! 에슈아 저택이 습격을 받고 있어!”
누구한테 습격을 받고 있는 거냐고 물을 것도 없었다.
‘어둠의 각성신.’
강력한 힘이 저택을 파괴하며, 무차별적으로 기사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으악!”
소름 끼치는 비명들과 함께, 비릿한 피 냄새가 흩날렸다.
저택에 있던 릴라이와 다른 기사들이 뿌득뿌득 이를 갈았다. 놈이 누군가를 찾고 있는 중이란 걸 깨달은 것이다.
마침내 어둠의 기운이 급히 방향을 틀었다. 곧 그 방향이 기도원 쪽인 것을 깨달은 그들이 외쳤다.
“안 돼! 아이작이 있는 곳으로 간다!”
“쫓아가!”
어둠의 기운은 산 제물을 잡아먹기 위해 아이작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건물과 건물을 넘어, 아이작의 눈앞에까지 도착한 각성의 신은, 제 모습을 드러냈다.
-찾았다. 제물.
이에 아이작은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