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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35화 (235/272)

제235화. 봉인이 풀리면 (4)

아이작의 순했던 눈이 한순간에 섬뜩하게 변했다. 그 순간, 아이작의 마력핵이 요동을 쳤다.

마력을 뽑아내는 아이작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미 깊은 어둠에 삼켜진 만큼, 주변의 눈치를 볼 것도 없었다.

아니, 힘 조절을 할 이유가 없는 거지.

동시에 강력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쾅!

곧 아이작을 잡아먹으려던 어둠의 각성신의 힘이 튕겨져 나갔다.

-크윽!

힘이 무효화되자, 각성신은 당황한 눈치였다.

뭐지? 왜 튕겨져 나온 거지? 자신의 어둠을 쳐낼 수 있는 건, 같은 어둠밖에 없는데.

하지만 그래서 각성신은 오히려 가증스러운 기색이었다.

-이번 떡잎은 나를 굴복시켜보겠다고, 아주 작정을 했나 보구나.

이 정도면 단순히 어둠에 손을 댄 수준이 아니라, 마족과 계약을 한 것이 틀림없다.

-같잖구나, 같잖아! 아무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신앙이라고 해도 그렇지. 마족과 계약을 해?

“!”

-뭐, 머리는 제법 굴렸다만, 그걸로 나를 굴복시킬 수 있을 것 같으냐?

어둠의 각성신은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듯, 힘을 폭주시켰다.

-원래는 신에게만 쓰는 힘이지만, 어쩔 수 없지.

곧 어둠의 각성신이 아이작의 몸속에 직접 들어왔다. 아이작의 몸속에서 영혼을 직접 타락시킬 심산이었다.

콰르릉!

본래 새하얀 물건일수록 더럽히기도 쉽다고, 어둠의 각성신은 오히려 신들을 타락시키는 게 쉬웠다.

왜냐고?

애초에 ‘각성’이라는 힘은 상대의 본질에 들어가, 상대의 힘을 업그레이드해 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즉, 누구보다 상대의 몸속에 들어가기 쉬운 신이라는 의미다. 그 덕에 자신은 다를 거라며 너스레를 떠는 신들을 타락시키는 재미가 어찌나 짜릿하던지.

-자, 너도 울부짖어라! 살려달라고 울어!

어둠의 각성신은 아이작의 영혼에 직접 어둠을 뿌렸다. 그러곤 앞으로 일어날 즐거운 일들을 상상했다.

보통은 상극의 힘에 경련을 일으킨다.

그래, 처음엔 경련을…….

“?”

-?

경련은커녕 귀를 후비는 아이작의 모습에, 각성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너무 약했나?’

-다시!

어둠의 각성신은 다시 한번 아이작의 영혼에 어둠을 뿌렸다.

이번엔 꽤 강하게 뿌렸다.

그래, 이 정도 되면, 정신이 무너지면서…….

“?”

-……??

발작은커녕 이젠 배를 벅벅 긁는 아이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뭐 하냐?”

-???

각성신은 당황한 듯, 이번엔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천천히 가지고 놀려고 했더니! 그냥 바로 죽여주마!

강렬한 어둠이 아이작의 영혼에 퍼졌다. 마치 심해에 내던져지듯 영혼이 먼저 찌부러지고, 심장과 뇌가 얼어붙고, 육신은 죽어간다.

그 강렬한 충격 때문인지, 아이작이 곧바로 뒤로 넘어가듯 쓰러졌다. 마치 숨이 끊긴 듯했다.

각성신은 그것 보라는 듯 비웃었다.

-마족과 계약한 게 아니었다면, 죽이지는 않았을 텐데! 뭐, 인간치고는 훌륭한 시도였…….

하지만 그 순간.

“아까부터 뭔 소리야. 계약은 무슨 계약?”

-?!

몸을 일으켜 세우는 아이작의 모습에, 각성신은 얼어붙었다.

사, 살아있다고?

하지만 놀라운 건 그뿐이 아니었다.

“그래도 꼴에 신이라고, 마사지 급은 되네.”

…뭐라고?!

-이, 인간 주제에, 왜 어둠에 물들지 않지?

그 말에 아이작은 미친 듯이 웃어댔다.

“어두움? 어둠이라고 했냐?”

그는 자신의 몸안에 들어와 있는 신이 안쓰럽다는 듯 제 가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 손이 멈춘 것은, 아이작의 눈이 섬뜩해진 때였다.

“고작 이 정도로 어둠을 논해?”

-그 정도라니… 뭔 개소… 헉?!

순간 아이작의 몸에 들어가 있던 각성신은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곧 아이작의 영혼을 지배하려 했던 각성신은 비명을 질렀다.

끝도 없는 어둠이, 각성신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밟고 있는 게 거대한 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상대의 눈이라는 걸 알게 된 느낌이다. 자신의 어둠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망망대해가 눈앞에 펼쳐진 기분이었다.

생물이라면 누구나 가진 어둠?

아니. 고작 그런 수준이 아니다.

‘어둠 그 자체.’

인간이 이런 어둠을 가질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만한 어둠은 이제껏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숱한 마왕들 중에서도 심연보다 더 깊고, 모든 죽음을 관장하는 존재. 그 존재 자체가 멸(滅)인 어둠의 지배자.

쿵!

‘…설마!’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 순간, 각성신은 급히 아이작의 영혼을 확인했다. 마침내 영혼의 질을 확인한 각성신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아악!

뭔가를 눈치챈 각성신은 도망치듯 아이작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확실하다!’

상대의 심연을 끌어내어 타락시키는 신이기에 더 금방 알 수 있었다. 이 어둠은 신들도 손을 댈 수 없었던 최악의 존재.

모든 룰에서 벗어난, 신들의 존재!

-…너, 너는!

파르르 떠는 그림자 뭉치의 모습에 아이작이 입꼬리를 올렸다.

“말했잖아? 네놈은 생물이 가진 어둠을 자극하고 끌어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아이작은 바로 마력을 발동했다.

<흑승지옥(黑繩地獄)>.

<포박>.

아이작의 읊조림과 함께, 발밑에서 검은 쇠사슬이 솟아나왔다.

콰르륵!

강력한 힘과 함께, 쇠사슬이 무자비하게 각성신을 붙잡았다.

터엉!

-으악!

각성신은 도망가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다는 듯 아이작이 입꼬리를 올리며 외쳤다.

<흑승지옥(黑繩地獄)>.

<문지기>.

아이작의 등 뒤로 험악한 모습의 괴물 손이 나타났다. 마치 검은 안개로 이루어진 듯한 섬뜩한 망자의 손이었다. 손은 가차 없이 꿀렁거리는 어둠 속에서 각성신을 끌어냈다.

그렇게 딸려 나온 건, 머리가 길고 체형은 호리호리한 이름 모를 신이었다.

각성신이 급히 외쳤다.

-알았다. 내가 잘못했다! 물러나겠다! 에슈아는 두 번 다시 건들지 않을 테니!

“뭔 개소리야.”

-뭐?

아이작이 험악하게 웃으며 신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가긴 어딜가? 날 각성시켜야지!”

뭐라고?

“인간에게 도움이 되라는 하급신이 하라는 일은 안하고, 그동안 놀고 처먹었으면 이제 일을 해야지?!”

아이작이 허리춤에서 황금봉을 꺼내들었다. 그러곤 마력을 힘껏 실어 머리를 강타!

빠각!

-커헉!! 아, 아니 잠깐……!

빠각!!!

-아악!!

“자, 나 각성시킬 거야, 말 거야!!”

-장난하냐! 해골왕을 왜 각성시켜! 돌았냐!

“그래? 그럼 뒤지시든가! 아멘!”

아이작의 눈이 번득이자, 아이작이 불러낸 망자의 손이 각성신을 찍어눌렀다.

쾅!!

각성신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알았다, 알았어!

아이작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 알았어? 할거야?”

-그래! 에슈아 사람들을 각성시켜줄 테니… 커헉!!

“시발! 말귀 못 알아처먹는 건 신들 새끼들 종특이야?! 딴 놈이 아니라 날 각성시키라고, 새꺄! 날!!!”

젠장……!

* * *

그 무렵.

숙부들은 정신이 혼미했다.

아이작 구하기 위해 각성신이 펼쳐놓은 배리어를 공격했지만, 전혀 공격이 먹히지 않았다.

릴라이와 벤야민은 이를 갈았다.

“젠장, 성녀 각성이면 산 제물로 먹혔을 텐데……!”

“…아이작의 말을 들어주는 게 아니었다!”

설마, 자기를 희생해서 어둠의 각성신을 상대하려 할 줄이야.

“산 제물로 먹히면 무슨 일이 생기죠?”

“아마 카야가 각성될 거다.”

“카야는요?”

“레아가 붙잡고 있다고 한다. 어둠의 신으로 각성하면 그쪽도 닥치는 대로 주변을 죽일 테니까.”

그걸 붙잡을 수 있는 건 성녀들뿐.

“조심해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먹혔을 가능성이 크지만… 아이작이 시체 상태로 폭주할 수도 있어!”

벤야민의 말에, 릴라이가 이를 갈며 어둠의 배리어 속으로 다가갔다. 슈리가 놀라 그를 보았다.

“숙부님?”

“내가 아이작을 꺼내오마. 지금이라면 아직 살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데 그때였다. 고치처럼 펼쳐져 있던 어둠의 배리어 속에서 뭔가가 나왔다.

쾅!

그건 다름 아닌 해골이었다. 어딜 봐도 남자의 전신 뼈로 보이는 그 모습에, 에슈아 사람들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이작!”

“이미 먹혀버린 건가?!”

숙부들과 기사들은 절망했다.

그와 동시에 어둠의 배리어를 찢어내며 누군가가 나왔다.

어둠을 머금은 남자였다.

그 흉흉한 기운에, 기사들이 눈물을 머금으며 검을 뽑았다.

“어둠의 각성신!!”

“저 자식이!!”

“기어히 아이작 도련님을 잡아먹다니!”

곧 기사들이 달려드려는 순간, 묘한 일이 생겼다.

슈우우!

어둠의 각성신인 줄 알았던 존재가 손짓하자, 남자를 감싸고 있던 질척한 어둠이 걷혔다.

그리고 드러난 낯익은 모습에 모두가 놀랐다.

“아, 아이작??”

그들은 당황해서 해골뼈를 보았다.

“자, 잠깐, 그럼 저 뼈는 뭐야…. 악!”

슈리는 갑자기 꿈틀거리는 해골뼈를 보며 기겁을 했다.

해골은 부들 부들 떨면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이 독한 새끼…….]

그런 해골의 머리를 아이작이 퍽 걷어찼다.

“야, 너 빨리 원래 모습으로 안 돌아와? 고작 그거 힘 빨리고, 어?”

“……?!”

아무래도 아이작이 각성신의 힘을 빨아먹은 듯했다.

어둠의 힘을 흡수했다고 보면 되었다. 에슈아 선조들이 그토록 삼키려고 했던 그 힘을 말이다.

그 증거로 아이작의 몸에 흉흉한 어둠이 일렁이고 있었다. 물론 거기까지만 보면 사악한 힘으로 보일 수 있었지만-

팟!

아이작이 어둠을 흡수하자, 강력한 빛이 치솟았다.

“……!”

스스로 빛을 뿜어내는 태양처럼,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빛이 솟아나왔다.

에슈아 사람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서둘러 아이작에게 달려갔다.

“아이작…! 도대체 이게 어찌 된 거냐!”

아이작은 아, 하고 숙부들을 보았다.

“아 그게요, 죄송해요. 성녀 각성인데 카야 대신 제가 각성해 버렸어요.”

“뭐?!”

“우리 각성의 신께서 특별히 산 제물을 먼저 먹기 전에 절 각성시켜주셨거든요.”

…뭐라고?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하지만 릴라이는 멀쩡해 보이는 아이작의 모습에 깊이 안도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행이다, 문제가 없으니…….”

“아뇨. 문제가 있어요.”

…엉?

“말했잖아요? 신께서 ‘후불’로 각성시켜 주셨다고.”

…어엉?

“그러니 절 각성시켜준 대가로, 지금부터 ‘산 제물’을 드셔야 한단 거죠.”

산 제물이란 말에, 숙부들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조카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카야를 제물로?”

“아니, 아니죠.”

아이작은 비틀거리는 각성의 신을 보았다.

“각성의 신님. 혈육의 혈육도 된다고 했죠?”

[그래…….]

그러나 그 말에, 에슈아 사람들은 더욱 영문을 알 수 없어했다.

“혈육의 혈육이라니…. 아이작을 제외하면 형님 부부밖에 없는데.”

“그 두 분은 없지 않느냐.”

아이작은 푸핫, 간드러지게 웃었다.

“왜 그러세요. 있잖아요.”

“?”

“노엘이라고. 딸을 끔찍하게 사랑하시는 아버지시죠.”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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