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6화. 인과응보 (1)
에슈아 사람들은 제 귀를 의심했다.
그러니까, 지금… 아이작이 노엘을… 산 제물로 바치겠다는 말을 하는 건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행위에 모두가 멘붕에 빠졌다. 슈리도 미쳤냐는 듯이 아이작을 보았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미친… 아니, 애초에 그게 가능할 리 없잖아!”
산 제물 각성 성법은 혈육에게만 해당이 된다. 아이작의 혈육은 현재 카야밖에 없었다. 조금 넓게 잡아서 친족도 된다면 가능은 하겠지만, 그럴 거면 노엘이 아니라 벤야민이나 릴라이가 낫지. 노엘은 교황 핏줄이니까.
하지만 아이작은 푸훕 비웃었다.
“왜? 뭐가 문젠데? 자기 딸이라고 그렇게 자랑했잖아? 언제는 자기 딸의 각성을 위해서라면 스스로 희생하겠다며?”
“아, 아니… 분명 그 인간이 그러긴 했는데.”
카야의 아버지가 노엘이면, 아이작의 아버지가 노엘이 되어버리는 거잖아! 말이 된다고 보는 건가?
“각성의 신께서도 용납을 안 하실…….”
[아니. 상관없다.]
…뭐라고?
슈리는 뜻밖의 답에 각성신을 보았다.
힘이 쪽쪽 빨려 해골이 된 각성신은 비틀거리면서 눈을 번득였다.
[카야 에슈아한테 아버지가 있다고? 그럼 산 제물은 그놈으로 해도 된다.]
“아니, 저기. 친아버지 아닌 거 아시잖아요. 그래서 아이작을 노리고 오신 거잖아요.”
[지 입으로 아버지라며. 그러면 된 거지, 뭐가 더 필요해?]
“…….”
아니, 저기요? 신님? 이유는 모르겠는데, 왠지 굉장히 빡쳐 계시는데요?
에슈아 사람들은 당황한 듯 각성신을 보았다. 물론 이미 힘이 쪽쪽 빨려, 신인지 마물인지 구별도 안 되지만… 아무튼-
‘하급신들은 비교적 인간과 가까운 신이다.’
그들은 천사들처럼 인간이 그나마 대면할 수 있는 존재지만, 인계에선 힘의 제약을 크게 받았다.
사자(使者)의 존재이기에, 허락 없이는 큰 힘을 휘두를 수 없다. 그래서 십사육마 처형식 때도 아이작이 천사에게 지랄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 만큼, 이번에도 각성신에게 뭔 짓을 했을 수도 있지만…….
“봐아, 본인이 괜찮다고 하잖아?”
…시바. 이 새끼, 각성신한테 뭔 짓거리를 해둔 거야??
그러나 정작 웃고 있는 아이작은 빡친 듯한 각성신 보며 푸흐흐, 얄밉게 지시했다.
“자, 알았으면 빨리 가시지? 싫으면 내가 날려줘?”
그 말에, 각성신이 이를 갈며 스르륵 그림자로 변했다. 그러곤 열받은 듯 부들거리며 순식간에 어디론가 향했다. 바로 노엘에게로였다.
그걸 눈치챈 에슈아 일가는 입을 떡 벌렸다.
슈리는 당황한 듯 아이작을 보았다. 아무리 어둠의 각성신이 에슈아한테는 애증스러운 신이라지만, 그래도 신이었다.
신앙의 수호자로서 신에 대한 공경심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아이작의 태도도 태도지만…….
“정말 노엘 백부를 산 제물로 먹게 한다고?”
“왜? 이건 아닌 거 같냐?”
“아니. 그게 아니라, 각성신을 어떻게 빡치게 했냐고!”
어떻게긴. 해골왕이니까.
하지만 니들이랑 신들이 경기를 일으키는 해골왕이라고 할 순 없으니, 아이작은 말을 돌렸다.
“니ㄷ… 숙부님들도 행여나 노엘을 구해줄 생각은 꿈도 꾸지 마세요.”
“!”
뭐, 설마 그렇게까지 호구들일까 싶긴 하다만. 행여나 형제로서의 정이 있을까 봐 못을 박았다. 실제로 릴라이의 얼굴이 꽤나 불편해 보였다.
“아이작.”
“왜요? 애초에 먼저 산 제물로 혈육들을 바치려고 한 게 누군데요? 형제를 배신한 건 그쪽이고. 전 그대로 돌려주는 것뿐이에요.”
그러자 그게 아니라는 듯 릴라이가 말했다.
“네가 친누이인 카야와 적이 될까 봐 그런다. 카야는 노엘 형님을 아버지처럼 따라. 학대와 폭언조차도 사실은 본인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네가 노엘 형님을 공격한다면, 필연적으로 카야하고는…….”
그럴 바에야 차라리 자신이 노엘을 처리하는 게 낫다.
그러자 아이작은 픽 웃었다.
“그러니 믿는 구석에 기대지도 못하게, 손발을 다 잘라놔야죠.”
“뭐?”
아이작은 곧장 레아에게 연락했다.
* * *
그 무렵, 노엘은 즐거운 듯이 지하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는 아이작을 산 제물로 삼아 어둠의 각성신을 불러내고서, 에슈아 저택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하하, 지금쯤 아수라장이겠지!”
저택 쪽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노엘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엄격한 청의 기사들이 저리 비명을 지를 정도면, 안 봐도 훤했다.
아이작?
이미 산 제물이 되었겠지!
그래, 드디어 끝난 것이다.
아이작은 먹이로, 그리고 폭주한 카야는 에슈아를 쑥대밭으로 만든 뒤 자기 숙부들을 죽이겠지!
이걸로 에슈아에 남은 가주 적임자는 자신뿐! 이제 남은 건, 카야의 힘이 빠졌을 때쯤 돌아가 자신이 사건을 수습하는 일뿐이다.
‘그래도 만에 하나 이쪽에는 피해가 없도록 시간을 두고 저택으로 돌아가야겠군.’
자칫 각성한 카야에게 자신이 공격당하면 말짱 도루묵이 아닌가?
그래, 그랬는데.
스스슥.
“!”
노엘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림자의 모습에 흠칫 놀랐다. 그러곤 잠시 후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각성신의 모습에 입을 벌렸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노엘은 피식 웃었다.
“뭐야, 벌써 아이작을 잡아먹고 오신 건가?”
성녀 각성 술법을 쓴 건 다름 아닌 노엘이었다. 의식의 주최자인 셈인 노엘에게 신이 나타나 경과를 알려주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묘하게 뿌듯함을 느끼는 노엘은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생각보다 빠르지 않은가.’
진작 이렇게 처리했어야 했는데.
“별것 아닌 제물이었지만,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합니다.”
그 말이 몹시 거슬리는 듯, 각성신이 사납게 읊조렸다.
[산 제물은 아직 먹지 않았다.]
…뭐라고?
노엘의 눈썹이 조금 꿈틀거렸다.
“그럼 카야의 각성 먼저 하셨단 말씀이십니까? 뭐, 그래 주셔도 되지만…….”
[각성자는 아이작 에슈아다.]
…뭐?
이건 뭔소리야?
[아이작 에슈아를 각성시켰다고. 각성은 훌륭하게 끝났다. 아직 각성의 힘은 쓰지 않았지만, 이제 초월의 힘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뭐??
[그리고 놈을 각성시켰으니, 이제 성법의 규칙대로 산 제물을 먹어야겠지.]
아니, 이건 또 뭔소리냐고!
드물게 당황한 노엘이 황급히 각성신을 보았다.
“왜 아이작을 각성시키… 아니, 각성에 성공? 아니! 그놈이 산 제물이라니까요?”
그러나 각성신은 노엘의 말을 개무시하고 살벌하게 내려다보았다.
[그 산 제물로, 널 먹어야겠다.]
“……!”
뭐라고?
왜 나를 먹는데??
노엘의 더더욱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에, 각성신은 이를 악물었다.
[…할 말은 많은데, 그렇게 됐다.]
뭐라고?!
노엘은 어이가 없었지만, 이마를 짚었다.
아니, 그래! 백번 양보해서, 어쩌다 보니 사고가 나서 그렇게 되었다 치자!
“나하고 아이작 그 개새끼하고 뭔 관계가 있는데?!”
[닥치지 못해!]
“!”
각성신의 화난 음성과 함께 폭발적인 기운이 노엘을 짓눌렀다.
“…큭!”
해골 모습을 한 신은 어째서인지 굉장히 화가난 듯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버러지 같은 새끼가 자신을 하필 아이작에게 보내는 바람에 각성신도 굉장히 난처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아직 아이작이 각성의 힘을 쓰진 않았지만, 하필 해골왕을 각성시킨 사실이 신계에 알려지면 자신도 끝장이었다. 그러니 어디 가서 그놈이 해골왕이란 말도 못 한다.
뭐, 쉽게 말해 물려도 단단히, 아니 재수 없게 물려버렸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 모든 원흉은 노엘 때문.
[고운 꼴은 못 볼 거다.]
그 섬뜩한 눈빛에 노엘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슨 심보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쉽게 산 제물로 먹혀줄 것 같냐!
노엘은 바로 금의 성법을 사용했다.
<배척>.
펑!
적이라고 인식한 상대를 배척하는 금의 성법이었다. 그 빛의 장막이 각성신을 멀리 떠밀었다. 그 틈을 타 금빛을 몸에 두른 노엘이 재빨리 도주했다.
<고속활보>로 도주를 시작한 노엘은 이를 갈았다.
‘이 힘으로 각성신을 막는 것도 한계가 있다.’
대충 길어봐야 며칠 정도.
아니, 상대가 신이니 더 짧아질 수도 있다.
뭐, 작정하면 어떻게든 더 버틸 수는 있겠지만, 평생을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는 신수를 불러냈다. 곧 날아다니는 거북이가 나타나자, 그는 바로 누군가에게 연락을 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믿을 만한 동업자였다.
“히레이!”
금의 추기경이었다. 그는 노엘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듯했다.
[뭐야. 무슨 일이 생겼나?]
“아이작 그 경우 없는 개새끼가 성녀 각성을 되돌렸어!”
[무슨 소리야?]
“어둠의 각성신의 산 제물을 나로 되돌렸다고! 쫓기는 중… 아, 됐으니까, 금가가 되돌리라고!”
동시에 상황을 파악한 금의 추기경은 기가 찬 듯했다.
[이 미친 새끼가… 하필 건드려도 어둠의 각성신을 건드려?]
“뭐, 인마?”
[어둠의 각성신은 사실상 신들을 타락시키는 오물 같은 존재야. 그딴 병균을 어디로 끌고 온다고?]
“뭐, 새끼야?”
[그걸로 아이작 에슈아를 죽이려면 확실하게 죽였어야지. 네가 벌인 짓이니 알아서해. 이제 난 모른다.]
“뭐?!”
뚝.
금의 추기경과의 연락이 끊겼다.
곧 사촌에게 손절당한 노엘은 빡친 듯 뒷목을 잡았다.
“이 새끼가, 손절해? 날? 감히?”
그는 극심한 배신감과 수치스러움에 눈에 핏발이 섰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지금 지들 살겠다고 손절한 거지? 이 개새끼가!”
자신이 저울질에서 밀렸다는 모멸감에 참을 수가 없었다. 이를 뿌득 갈던 그는 제 품을 뒤졌다.
“개새끼, 내가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그가 품속에서 꺼낸 건 서신이었다. 혹시나 금의 추기경이 수작을 부릴까 몰라 준비했던 물건이다.
바로 에슈아의 장남을 죽인 범인이 금의 추기경임을 증명하는 증거물이었다.
그는 그걸 신수에게 건네며 명령했다.
“교황청으로 보내라.”
어디 지 혼자 살게 냅둘 거 같은가?
그런 다음 그는 재빨리 본인의 은신처로 이동했다. 숲속에 숨겨진 작은 별장이었다.
‘아이작, 이 새끼. 가만 안 둔다.’
각성신에게서 도망쳐 은신처에 도착한 노엘이 중요한 물건들과 금품을 챙겼다.
‘일단 수도로 가야지.’
혹시 몰라서 사뒀던 저택으로 가자. 그런 다음 수도에서 카야를 만나, 아이작을 죽이게끔 하자. 그러면 해결된다.
카야? 그 아이는 아버지의 말이라면 뭐든 듣는 충실한 아이였다. 진짜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니까.
일단 일부터 시킨 다음, 늘 그랬듯 칭찬해주면 된다.
그런데 그때였다. 노엘이 은신처에서 빠져나오는 그 찰나.
“왜 아직도 안 잡아먹혔대?”
“!”
누군가가 은신처 근처 숲속에서 걸어나왔다.
그건 다름 아닌…….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새끼.”
아이작을 노려보는 노엘의 얼굴이 흉악하게 변했다.
그러나 아이작은 노엘의 분노를 이해한다는 듯 푸흡 얄밉게 웃었다.
“산 제물이 되기가 그렇게 싫으셨어요, 숙부님? 그렇게 필사적으로 도망치게? 와, 0계위인 벤야민도 안 도망쳤는데, 9계위가 돼서 쪽팔리지도 않냐?”
노엘은 어이가 없었다.
이건 쪽팔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개새끼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널 각성시킨 대가로, 뭐? 내가 산 제물? 내가 그걸 따를 것 같냐?”
그러나 아이작은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에? 각성신께서 혈육의 혈육도 가능하다고 하셨어. 카야의 아버지니까!”
노엘은 욕이 터져 나왔다. 보자 보자 하니까, 이 개 같은!
“개소리 마라! 아버지는 누가 아버지야! 듣자 듣자 하니까 어이가 없네. 뭐? 혈육의 혈육? 그것도 진짜 혈육이어야지 산 제물 술법이 통하지! 그딴 말장난으로 어디까지 될 거라 생각해? 천벌을 받는 건 너야!”
“허, 그래? 말장난? 천벌?”
“그래! 어떻게 각성신을 꼬셨는지 모르겠지만, 널 각성시킨 대가로 내가 산 제물이 될 이유는 없어! 먹히더라도 카야가 먹혀야지!”
“하지만 카야를 산 제물로 먹게 할 순 없잖아. 에슈아의 귀한 성녀인걸.”
“피도 안 섞인 그딴 계집을 위해 내가 왜!”
산 제물로 죽긴 억울한 건지, 노엘의 외침에 아이작은 한숨을 쉬었다.
“하, 그럼 어쩔 수 없지. 카야 아버지가 아니라는데, 뭐.”
곧 낯익은 어둠의 힘이 다가오자 노엘이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각성신이 여기까지 쫓아온 듯했다. 그래서 그가 말했다.
“들으셨습니까, 각성신이시여. 산 제물로 먹으려면 카야나 처먹… 헉.”
순간 노엘의 얼굴이 굳었다. 숲속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나타난 것이다.
레아, 그리고 카야였다. 아이작이 부른 레아가 카야를 데리고서 노엘에게 온 것이었다.
카야는 충격을 받은 듯 노엘을 쳐다보고 있었고, 아이작은 기다렸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손발은 확실히 잘라놔야지.”
노엘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런,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