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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37화 (237/272)

제237화. 인과응보 (2)

하루 전, 레아는 아이작의 연락에 깜짝 놀랐었다.

“뭐? 카야를 노엘 숙부에게 데려가라고?”

그 말에 레아는 걱정부터 들었다.

‘카야를 풀어주라니?’

도대체 왜 그런 결정을 내리는지 알 수 없다.

안 그래도 레아는 일찌감치 카야를 노엘에게서 떨어트려 놓고 있던 참이었다. 그 노엘이라면 카야에게 명령을 내려 아이작을 죽이려 할 게 빤했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카야는 노엘의 뛰어난 보디가드였다.

아니나 다를까, 노엘에게 위험이 닥친 걸 눈치챈 카야는 바로 노엘에게 향하려고 했다. 레아를 공격하면서까지 말이다.

그걸 겨우 힘을 써서 잡아누르고 있었건만, 이게 무슨?

“아이작, 카야는 노엘 숙부의 패야. 카야가 붙으면 노엘 숙부가 승기를 잡을 텐데.”

[그 새끼의 패니까, 데려다주라는 거야.]

“……?”

레아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이작의 뜻을 존중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그도 그럴 게, 그녀는 카야와 성녀 수업을 받으며 자라왔기에 잘 알았다. 카야가 얼마나 노엘에게 잘해왔는지.

성녀들의 교육 담당자인 노엘이 좋은 선생님이냐고 물으면 그건 절대 아니지만, 괜히 성녀 가문 한복판에서 교황 세력을 꾸려놓은 게 아니었다.

노엘은 악인이지만, 선인의 가면을 쓰는 재주와 사람을 현혹하는 혀 놀림 기술이 뛰어났다.

그 어떤 까다로운 사람도 차 한 잔만 마시면 십년지기로 만들어버렸고, 노엘의 악행에 대해 말하면 누구든지 그럴 리 없다며 두둔을 받을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성녀 핏줄들이 역으로 공격당했지.

카야한테도 그랬다. 속마음은 어땠을지 몰라도, 잘해줄 땐 사이좋은 부녀로 보일 정도로 따스했다. 뭐, 악인이라도 지가 키우는 패인데 잘해줬겠지.

카야도 거기에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

그래, 그랬는데.

“…카야……!”

현재, 카야를 본 노엘은 굉장히 당혹스러워했다. 카야도 충격을 받은 듯 노엘을 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최악의 상황이란 걸 눈치챈 노엘이 이를 뿌득 갈았다.

뭐지?

‘내가 카야의 기운을 눈치 못 챌 리 없는데!’

지금껏 카야를 교육시킨 게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런데 어째서 어둠의 각성신의 기운이?’

확실했다! 자신에게 다가오던 그 기운은, 카야가 아니라 어둠의 각성신 기운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이딴 실수를 할 리가 없지 않은…….

동시에 노엘은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설마 아이작…저 새끼!!’

카야까지 각성시킬 셈인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아이작이 씨익 웃었다.

“뭘 그런 눈으로 보시나? 에슈아 차기 주인으로서 당연한 선택 아닌가?”

기껏 각성신이 나타났는데, 다 뽑아 먹어야지.

‘원래 식량 하나로 두 명분의 일을 짜내게 하는 게 경제학의 기본 원리여.’

[…언제부터 경제학이 그랬죠?]

곧 아이작의 계획을 눈치챈 노엘이 다시금 이를 뿌득 갈았다. 어쩐지 각성신의 모습이 거지 같은 해골… 아니, 지나치게 힘이 쪽쪽 빨려 있다 싶었다.

‘카야까지 같이 각성시키려는 거구나!’

저 개놈이 어떻게 어둠을 삼키고도 폭주를 안 할 수 있는지 의아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일단 이 거지 같은 상황부터 수습해야 한다.

“카야. 아니다.”

노엘이 재빨리 팔을 붙잡았지만, 카야가 바로 뿌리쳤다.

“!”

카야는 여러모로 충격을 받은 듯했다. 혈육이 아니란 말은 물론, 카야를 산 제물로 먹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본인이 살기 위해서, 너무도 당연하게.

충격을 안 받는 게 이상하다.

그 눈빛을 읽은 노엘이 급히 외쳤다.

“아니야. 아니라고! 저 새끼의 함정이야!”

“!”

노엘은 카야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다.

“카야. 내 이야기를 들었잖니? 아이작은 가주 후계권 때문에 날 모함해서 쫓아내려는 거란다. 날 괴롭히는 적이라고 했잖아? 지금도 그 때문에 거짓말을 한 거란다!”

그러나 카야는 노엘을 노려보았다. 그 얼굴에서 순간 형님 부부의 모습을 본 노엘이 욕설을 읊조렸다.

그 광경에 아이작은 푸흐흐 웃었다. 사실 그는 이를 위해서 레아한테 카야를 데려오라 한 것이었다.

이런 건 백번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확인시켜주는 게 빠르니까.

그랬기에 슈리는 그런 아이작을 질린다는 듯 볼 수밖에 없었다. 왜 노엘을 산 제물로 삼겠다고 한지 깨달아버린 것이다.

이 미친놈이 단순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엿을 먹이려는 건지 알았는데.

‘실은 카야를 잘라내려고 한 거구나.’

아무리 가면을 잘 쓰는 놈이라고 해도 목숨이 걸린 문제 앞에서는 가면도 벗겨지기 마련이다.

하물며 핏줄도 아닌 놈을 위해서, 대신 산 제물이 되어 죽으라고?

돌았나?

미치지 않고서야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지. 하물며 노엘 같은 성격이라면 더더욱.

심지어 본인이 그렇게 싫어하던 형님 부부의 아이를 위해서? 절대 그럴 리가 없다.

그럼 본질을 지적할 수밖에 없겠지.

아니나 다를까.

“자, 손발도 잘렸는데, 어쩔래? 이제 믿는 구석도 없을 텐데?”

아이작의 날카로운 비웃음에 노엘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동시에 그의 손 위로 강압적인 성력이 치솟아 올랐다.

“이 새끼가!”

선명한 푸른빛이 뱀의 형태가 되어 아이작을 덮쳤다. 이판사판이라는 듯, 아이작을 죽이려는 것이다.

무서운 속도로 날아든 뱀의 형상이, 아가리를 벌려 아이작을 물어뜯어 죽이려는 그 순간,

캉!

“!”

검 한 자루가 노엘의 성법을 막아냈다. 이어서 정체 모를 강한 성력이 노엘의 뱀을 휘감았다.

덕분에 움직이려던 슈리와 레아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노엘의 성법을 막아낸 건, 다름 아닌 카야였기 때문이다.

노엘은 크게 분노했다.

“카야,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네 아버지다! 지금 네가 누굴 적으로 돌린 건지 아는……!”

카야는 닥치라는 듯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성법이 파훼되면서 생겨난 강력한 폭풍이 노엘을 짓눌렀다.

“커헉!”

노엘이 피를 토하자, 아이작이 웃었다.

‘혹시 레아가 이야기했나? 친부가 누군지?’

물론 아직 쉽게 믿는 눈치는 아니지만, 저 행동이 나왔으면 이미 충분했다. 사실 이게 자신이 바라던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노엘을 날린 카야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사실 이곳에 오기 전, 이미 레아한테서 친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믿진 않았지만, 한편으론 모든 의문이 풀리는 듯했다.

왜 자신은 노엘과 닮지 않았는지.

어째서 노엘의 말에서는 온기를 느낄 수 없었는지.

왜 노엘은 자신에게 공격적이었는지.

이것들 전부 본인이 은발로 태어나서라고만 생각했는데.

하필 노엘이 증오하는 성녀 핏줄과 닮아서, 때문에 미운 오리 새끼로 태어난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여겼는데.

그래서 레아의 말에 의문이 풀리면서도, 한편으론 절대 아닐 거라며 노엘을 믿었었다. 설마 산 제물로 바쳐버리라고 할 줄은 몰랐지만.

곧 아이작이 자신이 상대하겠다며 노엘에게 다가갔다.

“너, 내가 상대인 걸 감사히 여겨. 할아버지였음 너 갈가리 찢겨 죽었어.”

동시에 아이작이 손을 내밀었다.

“참, 너 꿍쳐둔 땅문서 많더라? 할아버지 인장도 숨겼지? 수도 가서 할아버지 대행인 척 팔아치우려고.”

“빌어먹을!”

노엘은 바로 고속활보로 멀찍이 후퇴했다.

물론 도망은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아이작과 전면전을 할 수도 있었다. 아니,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성법 자체는 9계위인 노엘이 우위였다. 살법을 쓰면, 아이작은 백 프로 패할 테니까.

아니, 살법까지 갈 것도 없다.

‘잠깐. 형님 부부를 습격한 마족들과의 계약, 아직 유효하지?’

그래, 지 부모랑 똑같은 방식으로 죽여주마. 에슈아의 장남과 성녀를 없앤 마족들이라면, 아이작도 깔끔하게 처리해주겠지.

하지만 성녀들이 있는 곳에서는 죽이면 안 된다.

슈리?

슈리 따위의 발언은 영향력이 없다. 얼마든지 자신이 수를 쓰면 되었다.

하지만 성녀들은 발언은 다르다. 그들은 신의 대행자로, 진실만 말해야 하니까.

만약 성녀들의 입에서 노엘이 아이작을 죽였다는 말이 나오기라도 하면, 에슈아 원로들이나 장로들이 절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이걸 가지고 있는 이상, 아이작은 어차피 날 따라올 거다.’

그러니 형님 부부 때처럼 사고사로 위장해 처리하자.

‘괜찮다. 아버지와 에슈아 사람들은 아직 모르니, 수습할 수 있…….’

그러나 그때, 노엘의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그건 다름 아닌…….

‘타란블룸?!’

청의 가주의 고래 신수였다.

‘설마 아버지?’

당황한 노엘이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아이작이 씨익 웃었다.

“나만 처리하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어쩌냐? 할아버지도 이미 알아버리셨는데?”

“……!”

역시 아버지가 끼어드신 건가!

이러면 일단 마족을 불러낼 수 없다. 아니, 에슈아 영토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

노엘은 분했는지 이를 갈았다.

“이런 식으로 부모의 복수를 하는 거냐!”

그러자 아이작이 뭔 개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복수? 아닌데.”

“!”

“가족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뭐?”

그 순간, 아이작의 몸에서 검은 힘이 뿜어져 나왔다. 그 힘이 노엘을 포박했다.

“!”

검은 힘에 붙잡힌 노엘은 당황스러운 듯 몸부림을 쳤지만, 풀리지가 않았다.

‘뭐야. 이건 성법이 아냐!’

“너, 무슨 짓을!”

그러자 노엘의 앞에 멈춰선 아이작이 입꼬리를 올렸다.

“노엘아. 넌 잘못한 게 없어. 사실 모든 수가 쓸 만했거든. 내가 인간이라면 어둠의 각성신에게, 아니 갓난아기 때 이미 당했겠지.”

“……?!”

아이작은 노엘의 머리를 콱 부여잡으며 말했다.

“네가 실수한 건, 하필 상대가 나였다는 것뿐.”

“너……!”

그게 무슨 말이냐는 말을 하려 할 때, 아이작의 눈이 초승달을 그렸다.

“아 됐고. 빨리 먹어 치워.”

[알았다.]

아이작의 뒤에서 어둠의 각성신이 나타났다.

끔찍한 비명 소리와 함께, 노엘은 각성신에게 잡아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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