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9화. 콘클라베 (2)
“뭐? 노엘이 행방불명?”
교황청.
금의 추기경은 뜻밖의 소식에 놀란 듯했다. 그는 의심하는 눈초리로 부하를 노려보았다.
“정말 행방불명인가?”
“그러하다고, 아이작 에슈아가 말했다는군요.”
“죽었겠군.”
“…역시 그런 것입니까?”
단번에 아이작의 계략을 파악한 금의 추기경은 미간을 좁혔다.
“지독한 새끼. 지가 죽인 걸 행방불명으로 처리해 버리다니.”
영악하기 짝이 없는 놈이 아닌가.
하지만 아이작이 왜 그런 수를 썼는지 알 것 같았다.
대장이 죽었다면 부하들도 빠르게 손절하고 다른 작전을 모색할 수 있겠지만, 대장이 행방불명 되었다면 그리할 수도 없다. 부하들 멋대로 행동하다가 대장이 돌아오기라도 한다면? 죽도 밥도 안 될 테니까.
하물며 아이작이 죽이기라도 했다면 그걸 명분으로 부하들이 뭉칠 수 있지만, 행방불명이다? 이건 뭐, 어떻게 할 수도 없지.
“대장을 찾느라 인력이 분산되고, 결집력 또한 크게 떨어질 것이다.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시킬 생각인 거야. 전략이지.”
“노린 거였군요……!”
부하는 놀란 기미였지만, 금의 추기경은 불쾌한 듯했다. 아이작의 수는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두 번 사람들을 다뤄본 솜씨가 아니다.
그래서 이상했다.
‘뭐지? 그놈? 뭔데 이리 뒤처리가 노련하지?’
그럴 때, 부하가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대단하군요. 노엘 사제도 만만한 분은 아닌데요.”
노엘이 욕심이 드글해서 그렇지, 성법만 놓고 보면 당할 인재는 아니다.
“고작 6계위인 아이작 에슈아에게 당할 리 없지 않습니까.”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아이작에게 9계위를 웃도는 힘이 있는 걸까, 경계하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무튼 이 일로 다들 아이작을 경계하고 있는 참입니다. 저희로서는 패를 잃은 셈이구요. 괜찮으십니까?”
“아니 어차피 잘 됐다. 어차피 슬슬 손절하려고 했으니.”
“!”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위험 요소는 곁에 안 두는 게 나았다.
그리고 노엘? 그놈은 능력은 있었지만, 욱하는 성격 때문에 위험 부담이 컸다.
‘멍청한 새끼. 솔직히 능력과 성품으로만 보면 릴라이 에슈아가 청의 가주 자리에 알맞지.’
릴라이는 상당한 천재였다. 그런 릴라이를 무시하고서, 6계위인 아이작을 후계로 삼다니. 대체 일라이의 속셈이 뭘까.
이런 걸 보면, 아이작에게 릴라이 이상의 무언가가 있긴 한 모양이었다. 일라이가 사람 보는 눈은 확실하니까.
그래서 필연적으로 아이작을 경계할 수밖에 없게 되지만…….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죽은 머저리 놈이 아니다. 콘클라베지.”
“키나 님은 괜찮으실 것 같습니까?”
“그래, 아이작 에슈아의 꽁무니만 안 쫓아다니면 괜찮지.”
“…예, 예??”
부하의 당혹스러운 시선에 금의 추기경은 피곤한 듯 탄식했다.
“아니다. 그것도 에슈아가 베리트를 습격한 건 덕분에 괜찮아졌다. 키나도 정신 차렸고.”
“다, 다행이시군요.”
“어차피 그게 아니어도 아이작 에슈아를 교황으로 추대할 미친놈들은 없어.”
“!”
일단 아이작은 계위 조건부터 충족되지 않았다. 물론 노엘을 없앤 걸 보면, 힘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아서 좀 걸리긴 하지만…….
“추기경들과 모든 사제들이 머리에 돌을 맞지 않는 이상, 아이작을 추대할 리 없어.”
부하는 바로 납득했다. 그 자식이 교황이 되면, 확실히 이 나라는 하루아침에 망할 것이다.
“심지어 그 일라이 에슈아조차도 지 손주가 교황이 되면 혀 깨물고 죽을 거라고 했다.”
“……!!”
부하는 쿨럭쿨럭 기침을 할 뻔했다.
“하, 하긴, 어딜 봐도 교황감은 아니죠.”
“그런 의미로 질서와 규칙의 신이 교황 후보를 내려주시기로 했다.”
부하는 놀랐다.
‘규칙의 신……!’
5대 신앙과 관련 없이 언제나 공정한 신.
엄격하기로 이름 높은 신이 결격사유가 많은 아이작을 절대 후보로 올릴 리가 없었다.
“아이작 에슈아가 후보에 올라올 일은 결단코 없겠군요.”
불행 중 다행으로, 나라가 망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는 둘이었다.
* * *
“흐흐흐.”
그 무렵. 의도치 않게 온갖 악명을 수집하는 데 성공한 아이작은 몹시 기분이 좋았다. 일라이의 호출에 수도로 온 그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무우슨일로 할부지가 날 급히 부르셨을까아.”
그는 기대감으로 잔뜩 부푼 마음으로 마차 밖의 풍경을 구경했다.
“역시 콘클라베 때문이겠지? 그렇겠지? 교황은 역시 너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반겨주려는 거겠지? 푸하하하하하!”
함께 마차를 탄 슈리는 기가 차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그럴 리가 있냐.’
일단 노엘로 인해 시끄러웠던 에슈아 저택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카야는 좀 충격인 듯, 아직도 멍한 상태이긴 하지만, 뭐.
‘레아 누님이 보살펴 주겠다고 했고.’
노엘 쪽 일도 자신이 정리하고 있을 테니, 걱정 말고 아이작과 함께 수도에 가라 했다. 일단 성흔이 있는 성자 후보들은 전부 콘클라베에 불려갈 테니, 미리 가 있으라고 말이다.
그래, 그런 만큼 문제가 될 건 없지.
‘문제는 어떤 연유인지, 지가 교황이 될 거라 확신하는 이 새끼지.’
슈리는 기가 찬 얼굴로, 신이 나 있는 아이작을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넌 성흔도 없고, 9계위도 아닌 놈이 뭔 자신감이냐? 다음 교황은 9계위 사제 중에서 될 확률이 크다니까?.”
그러자 아이작이 풉 웃었다.
“내가 어둠의 각성신을 먹었단 걸 잊었냐?”
“…그렇긴 하지만, 그게 정말 9계위 급이 될까?”
아니, 그 이전의 문제다.
”애초에 규칙의 신이 나온단 말이 있는데. 그 신이 나오면 넌 절대 안 돼.”
그러자 아이작은 초승달 눈으로 웃었다.
“그건 걱정 마. 이미 수를 써 놨거든.”
…수? 도대체 무슨 수?
그때였다.
푸르릉!
“!”
마차가 교황청 앞에서 멈추었다. 곧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련님.”
마중 나온 것은 아이작의 유모인 아실리와…….
“오, 샤브!”
가짜 해골왕 추적을 보내놨는데, 벌써 돌아온 건가. 하지만 아이작의 목소리에, 옆에 있던 슈리가 바로 화들짝 놀랐다.
“허억? 샤브? 샤브도 있어?!”
“…아?”
아이작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하는 슈리를 벌레 보듯 보았다.
뭐야? 뭔데?
결국 마차에서 내리는 둘.
슈리는 샤브나크를 보며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한참을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황급히 매무새를 정리하고는 샤브나크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 오랜만이다, 샤브! 그, 잘 지냈어?”
100미터 밖에서 물구나무를 서면서 봐도 영락없는 구애 짓이라, 아이작은 어이가 없었다.
“뭐야, 뭔데?”
그러자 유모 아실리가 웃으며 속삭였다.
“모르셨어요? 슈리 도련님, 계속 샤브한테 관심 있으셨어요.”
뭐라고?
“21살, 혼인 적령기이시니 그간 여러 곳에서 혼담이 들어왔으나, 계속 거절하셨죠. 말씀으로는 아직 생각 없다고 하셨지만, 글쎄요? 후후후.”
아… 그런 거였냐?
아실리가 후후 웃었다.
“샤브가 여기저기서 인기가 많답니다. 미인이잖아요.”
뭐, 한 번도 그쪽으론 생각한 적은 없어서 몰랐다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렇긴 하지.
‘마족이라 인간은 버러지 취급하고, 나만 섬기는 게 문제지만.’
지금도 자신 때문에 이곳에 머무는 것뿐.
“슈리 도련님도 몇 년 되셨을 거예요.”
그 말에 위스퍼가 깊게 탄식했다.
[하이고오야아, 딱해라, 어린 성직자 놈이 어쩌다…….]
‘그러게나 말이다. 하필이면. 성직자가 마족을… 쯧쯧.’
결국 샤브나크와 아실리가 짐 수속을 위해 자리를 비우자, 아이작이 슈리의 어깨에 척 양손을 얹었다.
“슈리야.”
“뭐!!”
“샤브는 포기해.”
“뭐라고?!!!”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다.”
“뭐, 인마?!!”
“내 몇 안 되는 진심이야.”
그러자 슈리는 억울한 듯, 아이작을 붙잡았다.
“서, 설마 너도 신분 차이니 뭐니, 그딴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
아이작은 더욱 혐오감이 생겼다는 듯, 슈리를 위아래로 훑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새끼, 이따위로 보여도 나름 귀한 집 도련님이었지?
“너도 귀족과 평민은 안 된다고 하려는 거냐고!”
“…아니이, 솔직히 그 이전의 문제거든?”
저거, 마족 중에서도 최고위 마족인 진마다, 이 새끼야.
“아무튼 포기해. 샤브는 나밖에 안 봐. 너흰 이루어질 수 없어.”
“뭐? 그게 무슨…….”
슈리는 어처구니없어했지만, 곧 뭔가 눈치챈 듯 절망했다.
“이 자식, 서, 서, 설마 너… 샤브를 데려가려고……?!”
“아……?”
아이작이 또 뭔 개소리냐는 시선을 보내자, 슈리는 억울해했다.
“우이씨, 너는 집안에 인사하러 온 정혼자도 있으면서!”
“아니, 나 결혼 안 한다니까?”
누구 좋아하라고 결혼을 하나? 그리고 애초에 결혼? 할아버지가 용납 안 한다. 사피엔도 결국 일라이랑 서로 멱살 잡고 끝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새끼는 그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이 파렴치한 놈! 그래, 솔직히 네가 나보다 얼굴도 잘나고 소가주라 가진 것도 많긴 하지만… 씨! 샤브를 첩으로 데려갈 생각이면, 처음부터 데려갈 생각을 마라! 내가 용서 안 해! 싸우자, 새끼야!”
하…….
말을 말자. 내가 뭔 말을 하겠냐.
아이작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교황청 안으로 들어갔다.
‘불쌍한 녀석, 하필 마족한테 코가 꿰이냐.’
그렇게 씩씩거리던 슈리가 훌쩍이며 교황청 안으로 따라 들어갈 때였다.
‘…어?’
교황청에 들어온 슈리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왜 그래?”
“아니.”
슈리는 이상하다는 듯 잠시 주변을 살피다가, 아이작을 따라갔다.
‘흙냄새? 착각인가?’
잠시 후, 슈리가 1품 사제 등록을 위해 교황청의 행정실을 찾아갔을 때였다.
“아이자악!”
“!”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할아버지!”
“가주님!”
일라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두두두두 달려… 아니, 무서운 기세로 진격해오고 있었다. 자신을 몹시 반기는 듯한 그 모습에, 아이작은 히죽 웃었다.
푸흐흐흐, 세상에 이렇게 달려올 정도로 손주가 반가웠나?
[아무래도 노엘 놈의 소식을 들은 모양이죠?]
아이작은 다 이해한다는 듯, 끄덕이며 히죽거렸다.
‘그래그래, 암. 내가 예뻐 보이겠지. 역시 교황은 나밖에 없지? 그ㅊ…….’
“이눔의 새끼! 감히 몰래 비자금을 만들 생각을 해?!”
엑?
“네 이놈! 버릇 좀 고치게 장가부터 보내야겠다!”
에에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