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40화 (240/272)

제240화. 콘클라베 (3)

뭐, 인마? 장가?

그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에 아이작은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ㅂ… 아니, 뭐라는, 아니아니,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가주님!”

아이작이 제정신이냐는 시선을 보내자, 일라이가 눈을 부릅떴다.

“뭐라는 거긴! 이놈이 감히 인장을 훔쳐 가서 야금야금 에슈아의 재산을 처분하고 있어?”

그 말에 슈리는 입을 떠억 하고 벌렸다.

뭐? 재산 처분?!

‘이 새끼…. 최근 왜 그렇게 좋아 죽으면서 히죽거리나 했더니. 전부 그 때문이었냐!’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냐는 시선을 보냈지만, 아이작은 발뺌을 했다.

“비자금이라니, 전 그런 적이 없습니다! 내… 아니, 제가 왜 에슈아 재산을 처분합니까? 아무리 가주님이시지만, 증거도 없이 이러시면…….”

“장로들이 보고해왔다!”

우이씨!

이 노예 새끼들! 몰래 하랬더니 그걸 또 보고하고 앉았냐!

아이작은 전부 조져버릴 거라는 듯, 구시렁거리다가 일라이를 보았다.

‘뭐, 가주가 알게 되었다 한들, 벌써 일은 진행 중이다.’

그리고 원래 허락보다 용서가 쉬운 법. 지금은 할아버지를 달래야 한다.

게다가 일라이는 뭔가 잘못 전달받은 것 같았다. 억울하니까, 자신의 무죄도 어필해야지.

“아니, 할부지. 억울해요. 그거 비자금 아니고… 그냥 교황이 되기 전에 운용할 돈이 필요했던 거라고요! 이왕이면 나라에서도 모르는 돈으로 처분해서! 그리고 제 명의도 아니고요. 나름 기부 명목으로 바지사장을 세워서…….”

“그걸 비자금이라고 하는 거다! 이 자식아!”

우이씨!

일라이의 호통에 아이작은 귀를 틀어막았다. 곧 일라이가 아이작을 붙들고 엉덩이를 후려갈기려고 하자, 공포에 질린 아이작은 다급해졌다.

청의 가주의 힘으로 맞으면 진짜 이 몸이 남아나지 않을 거다.

엉덩이?

시바, 하체 불구가 될걸?

“알았어요! 알았어! 할부지!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그래, 반성했느냐!”

“걸릴 게 문제 같으면, 샤블리스 전하한테 뇌물을 바치면 돼요! 시바, 황실부터 뇌물을 처먹이면 뭐라 못 하겠지…. 으아아악!!”

아이작은 할아버지에게 관자놀이를 공격당했다. 주먹으로 두개골을 터트릴 듯 압박을 가하자, 아이작은 비명을 질렀다.

“아오, 터져! 내 비싼 머리 터져! 아악! 할부지, 저 같은 사람은 두뇌가 재산이거든요! 악! 이 힘만 무식하게 센 성녀 가문아, 이 머리가 얼마짜린 줄 알고! 악!”

슈리는 식겁해서 아이작을 보았다.

‘…이 새끼가 교황이 되면 어떻게 될지 훤히 보인다.’

곧 아이작에게 철퇴를 내린 일라이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손자를 보았다.

“그런 의미로 아이작, 너는 장가갈 준비나 해라.”

“엥?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처자식이 생기면 철이 좀 들겠지!”

그 말에 슈리는 천장을 보았다.

철? 저놈이 고작 그딴 걸로 철이 들까? 지금도 가족들 앞에선 저 모양인데?

그래서 그게 의미가 있는 짓일까 싶으면서도, 궁금하긴 해서 물었다.

“아이작의 장가라면, 상대는 설마 그 드래곤 수장이요?”

그러자 아이작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할부지, 그 녀석이랑 서로 멱살잡이한 거 기억 안 나세요? 이미 파국인데?”

제 실수였다는 듯, 침묵하던 일라이는 이마에 핏대를 세웠다.

“맞선 명단은 얼마든지 구해다 주마. 내일부터 맞선이나 봐라! 결혼식은 내년 봄, 성년이 되는 즉시 치른다!”

아이작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우이씨, 나 결혼 안 한다고오! 이제 17살인데, 장난하냐!’

[17살이면 이미 어른 아닙니까? 내년이면 성인식이시면서.]

‘닥쳐!’

애초에 18살이 결혼? 장난하나? 고작 만 18세인데. 한국이었으면…! 아, 거기서도 결혼할 수 있는 나이구나, 시바!

아이작은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고는 이건 아니라는 듯, 이를 뿌득 갈았다.

‘하, 안 되겠어. 교황이 돼야 결혼하라고 지랄을 안 하겠지.’

위스퍼는 풉, 살짝 비웃었다.

[글쎄요, 가주는 애초에 교황, 아니 후보조차 못 될 거라 생각하는 거 같은데요. 그러지 않고서야 청의 가주가 맞선 이야기를 할 리 없죠.]

아니, 솔직히 모두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작? 드글드글한 욕심과 인성으로 볼 때, 교황 후보에서 자동 탈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헛짓 말고, 신랑 될 준비나 해라.”

일라이의 말에, 슈리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가주까진 어떻게 가능해도, 교황은… 글쎄?’

“아이작. 교황은 이 나라의 얼굴이며 존엄이야. 네가 되면 이 나라 망해.”

괜히 할아버지께서도 아이작이 교황이 되면 혀 깨물고 죽겠다고 한 게 아니다.

‘교황은 5대 신앙을 총괄하는 최고 존엄이며, 추기경들도 모시는 모든 성직자들의 수장.’

즉 아무리 할아버지라도 손자에게 무릎을 꿇게 된단 이야기였다.

그때, 아이작을 발견한 사제들이 풉 웃으면서 지나갔다. 아무래도 교황이 될 거란 이야기를 들은 듯했다.

“될 리가 없지. 아이작 에슈아가 무슨.”

“그렇지 않습니까? 각하?”

“!”

그들 무리엔 흑과 백의 추기경도 있었다. 콘클라베 후보를 선출하는 것 때문에 추기경들도 교황청에 눌어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대가리에 돌을 맞지 않는 이상 아이작을 추대할 리 없다고 철석같이 믿는 듯, 흑의 추기경은 벌레 보듯 아이작을 보았다.

이에 아이작은 그들에게 인사했다.

물론 목표는 백의 추기경이었다.

“백의 추기경 각하께서는 당연히 절 추대해 주시겠죠?”

그간 아이작에게 도움을 많이 줬고, 지금도 아이작의 편인 그녀였다. 하지만 아이작의 뻔뻔한 말에 백의 추기경은 웃는 얼굴 채로 얼음이 되어버렸다.

“…공자? 혹시나 싶어서 여쭙습니다만, 설마 진짜로 설마 교황이 목표이신?”

“그런데요.”

그렇다고?

백의 추기경은 몇 초간 침묵했다. 마치 버퍼링이 걸린 듯했다.

“음…. 저는 아이작 공자를 좋아하고, 언제나 공자를 지지하지만…….”

“절 지지해 주신다고요?”

“세상엔…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아니, 야! 이게 지금 그 정도의 일이라고?

아이작은 기가 찼지만, 슈리는 존경스러운 듯 그녀를 보았다.

그녀가 평정을 유지하는 게 대단하다. 착한 그녀조차도 아이작의 교황 후보 출마 선언은 충격적인 듯했다. 미쳤냐는 말을 하지 않은 게 용했다.

“당연한 것이 아닌가.”

까마귀 같은 흑의 추기경이 비웃으며 재수 없게 쌩 지나가자, 슈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뭘 새삼.”

“집에 갈 준비나 해라.”

아이작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두고 보자, 이 성직자 새끼들!

내 앞에 무릎을 꿇려주지!

* * *

“지금부터 교황을 선출한다.”

콘클라베가 열렸다.

그리고 교황 선출 등, 제국에서도 1급 사안이 있을 때만 열리는 <다섯 열쇠의 방>이 마침내 개방되었다.

“방을 개방한다.”

그렇게 다섯 추기경들이 가진 열쇠로 위대한 금지구역이 열리고-

쿠구구구!

폭포수를 뿜어내듯, 높은 곳에서부터 물을 쏟아내는 성배와 석상이 사제들을 맞이했다.

“와, 저거 신탁의 성배지?”

넓은 방 안에 다양한 사제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대부분이 1품 사제들이었지만, 아이작에게도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나이저도 있네.”

이제 대부분이 상급사제가 된 견습사제 시절 동기들이었다. 그중엔 이미 추기경 자격을 얻은 나이저도 있었다. 다들 성년을 넘긴 만큼, 어릴 때와 달리 위압감이 느껴졌다.

어디 그뿐인가.

‘1품들은 물론, 1품들의 최고봉인 <신장>들까지 다 와 버렸군.’

하나같이 쟁쟁한 이들이었다.

막말로 출신, 그러니까 5대 신앙 가문에서 추기경을 배출한다는 규칙 때문에 추기경이 못 되었을 뿐, 사실상 성직자들의 간부층이라고 보면 되었다.

이외에도 능력과 신앙심까지, 모든 게 완벽한 저들이 있는데, 뭐? 아이작이 교황?

‘말도 안 되지. 뭐, 특별한 변수는 없을 테니…….’

“슈리!”

…시바, 저 새끼는 왜 또 여기에 온대.

슈리는 자신을 보곤 무서운 얼굴로 두두두 달려오는 키나를 보며,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키나는 슈리를 보자마자 따지고 들었다.

“너, 아이작한테 내 편지를 전하긴 한 거냐!”

“네가 편지에 뭔 짓거리를 했을 줄 알고 전하냐?”

“뭐라고?!”

“아이작은 일단 우리 가문의 주인이야. 베리트가 독을 탔을 수도 있는데, 미쳤어? 난 가문의 주인을 지킬 의무가 있어.”

그 말에 키나가 뭐라고 따지려는 때, 금발의 남자가 키나를 말렸다.

“형님, 그만! 그만! 아, 죄송해요, 슈리 형. 그리고 오랜만에 뵙습니다, 각하.”

“!”

슈리는 어느새 제 옆으로 온 일라이를 보았다.

키나를 보고 다가온 듯, 일라이가 남자를 향해 알은체했다.

“카인이구나.”

카인 베리트. 그는 키나의 동생이자, 베리트 가의 차남으로, 베리트의 규칙에 따라 금의 추기경이 될 자였다.

나이도 찼고 키나가 교황이 될 것 같으니, 슬슬 가문의 일을 시작하는 것인가.

그러나 카인은 절망하듯 형을 붙잡았다.

“실은 아버님께서 형을 감시하라고 하셔서요.”

감시?

그러자 카인이 골치 아프다는 듯 주변을 살피다가, 속닥였다.

“어제 돌연 자기보다 아이작 님이 더 교황에 걸맞는다는 개소리를 해서…….”

슈리와 일라이는 침묵했다.

…에휴. 아이작이 여럿 망쳐놨군.

“아이작 님은 개인적으로 팬이지만, 그래도 교황은 힘드실 걸 알아서요. 형님도 그것 때문에 자기 대신 아이작을 넣으라고 난리를 쳐서 아버님이 화가 나셨거든요. 혹시라도 그 말 때문에 규칙의 신께서 이름을 안 넣어주셨을지도 몰라서요.”

“걱정 마라. 이름은 있을 거다.”

대충 규칙의 신이 누구를 후보로 뽑을지 감은 왔다.

신의 결정은 절대적이라, 고작 인간의 말이나 행동 따위론 절대 바뀌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아이작은 절대 가능성이 없지.’

아니나 다를까. 금의 추기경이 성배를 향해 의식을 올리자, 바로 성배를 든 석상에서 빛이 났다.

동시에 키나의 몸에서도 빛이 뿜어져 나왔다.

“오!”

지금 몸에서 빛이 나오는 사람들이 바로 규칙의 신이 정해준 교황 후보들이었다.

“키나 베리트! 역시!”

사람들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순간, 석상에서 또 다른 빛이 솟아나면서, 다른 곳에서도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 키나만 있을 줄 알았는데, 꽤 여러 명이군요!”

총 다섯의 후보들이었다.

“예상대로 전부 9계위! 그중에서도 유명인들뿐이군요!”

“인망도 높고, 다들 인정할 만한 자들이죠.”

“청의 신앙만 빼고, 모든 신앙이 다 있네요.”

이변은 없었다.

호명과 함께 후보들이 앞으로 나갔다. 키나를 포함해, 전부 <신장>들이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축하한다는 듯 환호했다.

그때, 금의 추기경이 말했다.

“규칙의 신께서 특별히 점지해주신 교황 후보들이다. 교황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힘과 신앙심과 성품을 가진 자들이지. 이제부터 이들은…….”

그런데 그때였다.

번쩍!

“어?”

갑자기 석상의 눈이 번쩍이면서 사제들 사이에서 다시금 빛이 터져 나왔다.

석상을 본 추기경들은 당황스러운 듯했다.

“교황 후보가 더 있다고?”

사람들도 당황했다.

“뭐지?”

“뭐야, 누군데!”

“이제 나올 사람이 없지 않아?”

마침내 사제들 사이에서 빛이 터져 나오고, 사람들은 다급하게 빛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그 끝을 확인한 사제들의 경악하며 입을 벌렸다.

“자, 잠깐!”

동기들은 물론 추기경들, 심지어 청의 가주조차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빛이 터져 나온 사람은…….

“아이작?”

“아이작 에슈아?!”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였다.

“자, 잠깐. 이게 무슨!”

빛을 내뿜는 아이작은 기다렸다는 듯 푸흐흐흐 웃었다.

봐, 새끼들아. 내가 교황 될 거라고 했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