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42화 (242/272)

제242화. 콘클라베 (5)

콘클라베.

최고 사제, 교황의 자리를 두고 이 나라 최고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위대한 대결의 장.

후보로 선발된 자들은 정해진 과제를 통해 교황으로 최종 선발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콘클라베의 과제가 나왔습니다!”

예언 사제들이 다급하게 회의실로 들이닥쳤다.

회의실 안에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추기경들이 있었다. 사실상 콘클라베를 주관하는 다섯 기둥들인 만큼 이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안에 청의 추기경은 없었다.

“저… 에슈아 각하는 어디에?”

적의 추기경은 푸흡, 웃음을 참지 못하며 옆방을 가리켰다.

“옆방에 계신다.”

“아, 예. 그러면 과제를 말씀드려야 하니 모시고 오겠습니다.”

“안 들어가는 게 좋을걸.”

“예?”

그 순간-

쿵!

갑작스러운 지진에, 사제들이 비명을 질렀다.

“꺄악!”

“이, 이게 뭐지?”

적의 추기경은 미친 듯이 웃어댔다.

“지금 청가는 긴밀히 대화 중이라서.”

“예?”

이게 대화라고?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 * *

지진의 근원지인 옆방.

할아버지와 손자가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이작.”

“예.”

“너, 뭔 짓 했냐?”

“아무 짓도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교황 후보가 돼?!”

열받은 일라이가 아이작의 목을 조를 기세를 보이자, 유모 아실리가 재빨리 말렸다.

“가주님, 진정하세요!”

일라이는 심각한 얼굴로 아이작을 보았다.

“솔직히 말해라. 대체 어떤 개떡 같은 악신이냐? 누굴 협박했어?”

그는 아무래도 아이작이 교황이 되겠다며 무턱대고 금기에 손을 댄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리되면 추후에 아이작에게 좋을 것이 없다. 그래서 다리를 부러트릴 기세인 거다.

아이작으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자기가 성직자가 되고 나서 얼마나 선량하게 살…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아씨, 진짜 신이 골랐다니까요?”

“말이 되느냐? 어떤 신이 너 따위를!”

“형법이가요.”

“형법이가 누군데!!!”

“형법의 신이요!”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일라이도, 듣고 있던 아실리도 입을 떡 벌렸다.

지금 뭐라고?

뜻밖의 이름에 그들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반응했다.

“장난해? 형법의 신이 어떤 존재인데!”

형법의 신은 일개 신이 아니다. 주신 중에서도 굉장히 이름 높은 신이었다.

“청의 신은 아니지만, 그 위대하고 청렴한 신이 왜 널 뽑아!”

특히 ‘법’이란 이름이 붙은 신은 누구보다도 엄격했다. 조금의 예외도 없었다.

“그분은 절대 나라에 해를 끼칠 분이 아니거늘. 어찌…….”

아이작은 풉,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쯤 형법의 신과 청의 신은 괴로워 죽으려고 하겠구나.

반면 아이작이 교황 후보로 뽑히게 된 경위를 알게 된 일라이는 한시름 놓으면서도 탄식했다. 악신이나 금기를 저지른 게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다만… 형법의 신이라니?

‘사실 형법의 신이라면, 든든한 신이지.’

아니, 든든하다는 말로 끝날 신인가?

솔직히 놀랐다. 아직 청의 신이 공백인 상황에선 더없이 크다.

‘과제에서도 오히려 괜찮을 수도.’

오해가 풀린 할아버지의 분노가 가라앉은 게 보이자, 아이작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과제는 뭐래요?”

“수백 년 전에 열렸던 콘클라베에서는 이단 사냥이었지. 그리고 이번엔…….”

“이번엔?”

“<해골왕> 사냥이다.”

“해골왕??”

“정확히는 해골왕이나 그 관련자들을 잡는 일이다. 어쨌거나 급수가 높은 마족을 잡아 올수록 유리하지. 청에게 유리한 항목이긴 해.”

유리하다 못해 나와바리인데요……?

그런 아이작의 표정을 뭐라 여긴 건지, 일라이는 걱정하듯 아이작을 보았다.

“해골왕은 급이 다르다. 알지 않느냐. 수백 년에 걸쳐서 잡으려 했지만,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걱정 마세요. 어차피 숙부들의 저주를 풀었어야 했어요.”

그 말에 일라이는 침묵했다.

만일 꼼수가 아니라, 정말로 교황 후보로 선발된 것이라면, 아이작은 이미 9계위의 자격을 갖췄단 의미다.

‘그럼 아이작이 정말 초월의 단계에 들어섰단 의미인가?’

그렇다면 정말 청에서 교황이 나올 수 있을지도.

그때였다.

“아이작.”

“!”

회의실 밖에서 슈리가 손짓했다. 그 표정이 예사롭지 않아서, 아이작은 먼저 실례하겠다며 회의실에서 나왔다.

“뭐야. 뭔데.”

“그, 아, 이거 말해야 하나?”

“왜, 뭔데.”

“하….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콘클라베랑 연관이 있을지 모르니 말해두긴 해야지.”

“뭔데 뜸을 들여.”

슈리는 주변을 살피다가, 아이작에게 속삭였다.

“실은 흙냄새를 맡았어.”

“흙냄새?”

순간 아이작의 눈빛이 한순간에 변했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를 리 없는 그였다.

“어디서?”

“근데 착각일 수도 있어.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인물이거든.”

“말이 안 된다고?”

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드래곤이 말했잖아? 죽었어야 할 교황이 신성제국에 간섭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럼 언데드나 괴물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했는데?”

“사람이었어.”

“됐고, 누군데.”

“카인.”

“카인?”

“카인 베리트. 키나의 동생이야. 금의 추기경이 될 녀석이지.”

“!”

“베리트가의 차남이 늘 그러하듯, 저택에서만 지내다가 진짜 최근에 드러냈어. 키나가 교황이 되니까 슬슬 가주로서 교육을 받는 거겠지.”

순간 아이작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 그래? 베리트가의 차남이라고?”

아이작의 가슴이 요동쳤다. 그는 반가움을 숨길 수 없었다.

사피엔으로부터 과거 원수, 실베스테르 교황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얼마나 고대했는가. 만약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찾기는 쉽지 않겠다고, 그리 생각했는데!

‘이 자식. 거기 있었구나?’

아이작의 그런 반가움을 읽은 듯, 위스퍼가 의아해했다.

[잠시만요, 주인님. 베리트의 차남이라면 인간 아닙니까? 어찌 수백 년 전 망령이…….]

‘간단해. 그쪽도 환생을 한 거야.’

[예?!]

‘뭐, 그놈은 나처럼 환생이라기보단 몸을 빼앗은 거겠지만.’

[헉??]

‘들어가 있는 몸이 수명을 다하면 몸을 바꾸는 식인 거야. 그러니까 망자의 냄새가 나는 거지.’

대충 그놈의 계획도 짐작은 갔다.

‘키나 베리트를 바지사장으로 세워, 비선실세라도 될 생각이었겠지. 금의 추기경쯤 되면 뒤에서 신성제국을 편하게 조종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럴 거면 그냥 키나 베리트의 몸으로 들어가는 게 낫지 않나요? 번거롭잖아요.]

‘글쎄. 드래곤을 괜히 쫓아낸 게 아냐. 눈에 띄는 게 싫었겠지. 퇴마당하면 곤란하니까.’

[잠깐, 주인님은 그 망령이 가짜 교황인 동생을 조종해서, 형인 율리오 베리트를 죽였을 거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사실상 일라이의 단짝을 앗아간 범인이 아니냐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아이작은 가증스럽다는 듯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는 놈의 목적을 알 것 같았다.

‘금가에 있으면서, 청을 박살 내려고 수를 쓰는 거구나.’

예전엔 이네스의 목숨을 가져가고서, 지금은 감히 자신의 가문을.

그랬기에 아이작은 웃음이 삐져나왔다.

‘뭐, 그 새끼가 예상 못 한 난제는…….’

첫 번째로 바지사장으로 세우려던 키나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고-

[뜻대로 되지 않다 못해, 주인님에게 퍼주고 있죠?]

두 번째로는 교황 후보에 그 얄미운 청이 올라온 것이며-

[에휴, 누가 신을 협박해서 올라올 줄 알았겠습니까.]

세 번째로는 하필 해골왕이 성자로 태어난 것이다.

‘딱 걸렸어, 개새끼.’

* * *

슈리에게 이야기를 들은 아이작이 부름을 받았다. 과제 설명이 있을 테니 모든 교황 후보들은 한데 모이라는 말이었다.

아이작이 교황 후보들이 모인 방으로 들어가려는 그때.

덥썩!

누군가가 아이작을 붙들고는 다짜고짜 끌고 갔다.

“!”

그러고는 바로 창고 방에 아이작을 넣고서 가둬버렸다.

쾅!

창고 방의 문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아이작은 예상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아이고, 대낮부터 사람을 납치하십니까? 베리트 공작님?”

아이작을 방에 가둔 건 다름 아닌 금의 추기경이었다. 금의 추기경은 혐오스러운 듯 아이작을 보았다.

“넌 교황 후보들이 모인 곳에 갈 수 없다. 여기서 탈락이야.”

아이작의 교황 후보 목록에 들어가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애초에 네놈이 교황?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는 험악한 얼굴로 아이작을 보았다.

“교황의 자리는 포기해라.”

그러자 아이작은 실소를 흘렸다.

“뭐? 말이 되냐고? 포기?”

그는 언제 착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금의 추기경을 보았다. 그는 오히려 이렇게 둘만 있는 자리를 만들어줘서 대단히 고맙다는 듯, 금의 추기경에게 다가갔다.

“각하는 저한테 이러면 안 될 텐데요?”

“뭐?”

아이작은 같잖다는 듯, 금의 추기경을 보았다.

“각하께서는 저한테 굉장히 찔리시는 게 있잖아요.”

“……!”

그 확신에 찬 눈빛과 말에, 금의 추기경은 움찔했다.

찔리는 거라니?

곧 그 눈빛에 답하듯, 아이작이 웃었다.

“노엘 숙부가 말이 좀 많으셨죠. 특히 흥분하면 이것저것 나불거리더라고요. 이를테면 부모님에 대한 거라든가.”

그 말에 금의 추기경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었다.

노엘은 죽었다.

그리고 노엘의 마지막 상대는 아이작이 틀림없을 것이었다.

‘설마 노엘에게서 뭔가 들은 건가?’

그 표정에 아이작은 속으로 큭큭 웃었다.

‘뭐, 노엘은 암말도 안 했지.’

단지 노엘이 교황청에 보낸 편지를 섀도우 리치가 가로채서 먼저 뜯어봤을 뿐.

그리고 편지를 나르던 노엘의 신수를 재웠다. 이놈이 쫓지 못하도록, 동시에 편지가 천천히 도착해 피가 말리도록 수를 써놨다.

‘원래 일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게 더 무서운 법이지.’

특히 가진 게 많은 놈일수록.

그랬기에 아이작은 입꼬리를 올리며 협박하듯 말했다.

“괜찮을까 모르겠네. 그거 알아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다가, 누구처럼 모든 걸 뺏기고 감옥이란 무덤에서 썩을지?”

이 자식이……!

금의 추기경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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