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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43화 (243/272)

제243화. 보여줘? (1)

아담 에슈아.

아이작의 아버지이자 원래는 청의 추기경이 되어야 했던 사람.

청에서, 아니 모든 신앙에서 그런 인재가 또 나올까 싶을 정도로 뛰어났던 사람.

그만큼 사람 같지도 않던 천재였지만, 그런 놈도 부모는 부모라는 걸까. 갓 태어난 아이작을 이용했더니 쉽게 처리했다.

보통 부모는 자식이 위험에 빠졌을 때 본인의 목숨은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마족과 손을 잡고 아담도, 성녀도 없앴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고, 오직 공범자인 노엘만이 알고 있을 일.

그랬는데.

“왜, 내가 모를 줄 알았나? 내 부모를 죽인 게 네놈이라는 걸?”

쿵.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죽이지 못한 놈의 자식이 자신에게 다가왔다. 죽이는 데 실패해 추격해서까지 죽이려 했지만, 기어코 청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고야 만 저 아이가-

“이야, 대단해. 그런데 다른 신앙의 상급 사제를 죽이는 건 중죄 아닌가?”

막강한 칼자루를 손에 쥐고서-

“난 각하께서 날 왜 그리 싫어하는지 몰랐지. 그런데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워버려야 할 치부였던 거지. 본인의 죄를 드러나게 할 증거니까.”

이 숨통을 끊으러-

가진 명예와 부, 모든 걸 빼앗으러-

목에 칼을 꽂으러 다가온다.

그런 아이작의 칼 같은 눈에, 추기경의 손이 떨렸다. 늘 보이던 침착함은 사라진 지 오래.

그 모습에 아이작은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하물며 죽이려면 수라도 잘 써보지. 본새 빠지게 마족이 뭐야?”

“……!”

금의 추기경이 아이작을 훑었다.

이 자식이, 그걸 어찌…….

“어찌 아냐고?”

“!”

“말했잖아. 노엘 숙부님이 말이 많았다고.”

“!”

“설마 그 고고한 금의 추기경께서 청의 소가주 하나 죽인다고 마족과 손을 잡으셨을 줄은 몰랐네. 아무리 금가라도 마족이라면 님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텐데?”

듣던 금의 추기경은 웃음을 터트렸다.

“웃기지 마라. 그딴 말을 누가 믿어준다고?”

그는 그제야 이성이 조금 돌아온 듯했다.

히레이 베리트가 괜히 권력의 상징으로 앉아있는 게 아니었다. 누구와 달리 도발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뜻밖의 말에 당황은 했지만, 글쎄.

도발도 머리를 굴려가면서 해야지.

“네놈은 교황 후보에 올랐다. 라이벌을 제거하기 위해 수를 쓰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라고밖에 생각 안 할걸?”

아이작은 풋 웃었다.

“그래, 청인 내가 하면 안 믿겠지.”

“?”

“하지만 금가 사람이었던 노엘이라면?”

“……!!”

“노엘이 네 죄에 대한 증거를 교황청으로 보냈는데?”

…뭐라고?

금의 추기경의 얼빠진 표정에 아이작은 소악마처럼 웃었다.

“귀 먹었어? 내 부모님을 죽인 게 너라고. 그것도 마족과 손을 잡아서 살해했다는 걸 폭로한 폭로장을 교황청에 보냈다고.”

…노엘 에슈아, 그 미친 새끼가?!

금의 추기경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 표정이 보기 좋았는지, 아이작이 큭큭 웃었다.

“이야, 노엘이 금의 사제들한테 신뢰를 받고 있는 게 이리 도움이 될 줄은 또 몰랐지 뭐야? 자필로 된 편지니 위조할 수도 없고, 증거도 있어. 신빙성이 커지겠지?”

금의 추기경은 이빨을 우득 갈았다.

‘그 쓰레기 새끼가 끝까지 남의 발목을 잡아!’

출신도 애매모호한 버러지 놈이, 뒤질려면 곱게 뒤질 것이지!

그는 분노가 치밀어올랐지만 다시 이성을 찾았다.

‘아니다. 아직 괜찮다. 당장, 우편국 담당자에게 지시하면…….’

“소용없어. 어차피 교황청에 보내봤자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금가가 빼돌릴 수 있는데. 내가 평범한 방법으로 보냈을 리 없잖아?”

“……!!”

아이작은 마치 꽃나무가 피길 기대하는 능구렁이 노인처럼 웃었다.

“가장 아름답고 적절한 순간에, 만인의 앞에서 개봉될 테니 기대해도 좋아.”

“……!!!”

이성을 찾으려던 금의 추기경의 이성이 뒤흔들렸다.

그 웃음이 얄미운 걸 떠나, 머리 꼭대기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신의 모습 같아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언제인지는 안 알려줘. 뭐, 내일일 수도 있고, 당장 한 시간 뒷일 수도 있지.”

“이 새끼……!”

금의 추기경은 놀리듯이 웃는 아이작의 멱살을 잡으려고 했지만, 곧 참아냈다.

‘아니다. 노엘이 보냈다는 증거는 분명 계약증표일 터.’

그걸로 마족을 불러낼 수 있겠지만, 괜찮다. 거기까진 어떻게든 커버해볼 수 있었다.

‘계약 상대인 마족을 죽이면 그만.’

물론 딱 하나. 금의 추기경이 막을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마족과 손을 잡은 걸 눈으로 직접 본 아담 에슈아. 본인뿐.

증언이 더해지면 정말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놈은 죽었…….’

“시체는 발견 안 됐지.”

“……!”

이 새끼가 생각을 읽나 싶어 놀라서 바라보았지만, 아이작은 가증스러운 듯 미소를 지을 뿐이다.

“보통 살인자들이 범인으로 지목당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생각이 뭔지 아나?”

“!”

“증거가 남아 있나, 증거를 잘 처리했나 생각하는 거다. 그렇게 눈알 굴리지 않아도 뭔 생각하는지 빤히 보인다고.”

이 자식……!

“그리고 그거 알아?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을 발견한 거?”

“뭐라고?!”

그 아담 에슈아가 살아있다고?

금의 추기경은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지만, 곧 실소를 흘렸다. 그러더니 미친 듯이 웃어댔다.

“하하하, 무슨 생각을 하나 했더니.”

그래. 이건 인정해야겠다.

이놈은 간교한 혀로 사람을 농락하고, 함정에 빠트리는 사탄. 신의 동산에 나타난 뱀과 같은 놈이다.

하지만 추기경이 그깟 뱀 따위의 농락에 넘어갈 것 같은가?

“거짓말인 거 다 안다. 그게 사실이라면 나한테 말할 리 없지 않은가. 혼란을 주고 내 실수를 유도해 증거를 잡아낼 생각인가 본데. 알량한……”

“뭐, 그리 생각하시던가?”

“……!”

오히려 태연한 아이작의 태도에 금의 추기경은 굳었다.

속셈을 간파당해 당황할 줄 알았는데, 아이작은 오히려 비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오히려 이놈은 자신을 안쓰러워하고 있었다.

마치 선심을 써줬는데, 복을 제 발로 차느냐는 듯한,

“야, 착각하지 마. 내가 댁한테 이걸 말한다는 건 모든 게 끝났단 의미야. 그러니 잘 생각해. 난 그래도 키나를 생각해서 말한 거거든.”

키나라고?

곧 아이작이 사악하게 웃어 보였다.

“부모의 죄가 자식한테까지 가면 안 되잖아. 창창한 자식의 앞길을 막으면 쓰나.”

“……!”

“마족과 손잡은 죄면, 키나도 낙인이 찍힐 텐데?”

금의 추기경은 말문을 잇지 못했다.

검으로 목을 겨누는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극독이 입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 증거로 아이작의 눈이 번득였다.

“왜. 남의 눈에서 눈물 뽑아놓고, 네 자식은 평온하길 바랐어?”

“!”

“방법은 하나야. 추기경 자리를 반납하고, 금의 신앙은 교황 자리를 포기한 후에 청의 가신 가문이 되든가.”

아이작은 후후후 웃었다.

“아니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자식의 앞길을 꺾든가.”

…젠장!!!

* * *

아이작은 여유롭게 창고에서 나왔다.

물론 금의 추기경은 그곳에 못 가게 막는 게 목적이었을 것이다. 부름에 응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사퇴 처리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어딜?

도리어 금의 추기경을 궁지에 몰아넣은 아이작은 룰루랄라 교황 후보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그때, 위스퍼가 감동했다는 듯 말했다.

[히야! 감탄했잖아요, 주인님!]

‘뭐가?’

[그래 보여도 친구라고 생각하셨군요.]

‘뭔 개솔?’

[키나 베리트를 생각하셨다면서요.]

‘허어? 뭘 생각해에?’

위스퍼는 아이작의 반응에 질린다는 듯 보았다.

[…아. 역시. 그것마저도 함정이셨습니까.]

‘당연하지.’

아이작은 큭 웃었다.

뭐가 키나를 생각해서 기회를 주는 척이야?

기회는 애초에 주지도 않았다.

‘금의 추기경한테 그리 협박해두면, 놈은 아담 에슈아를 찾아내려고 필연적으로 콘클라베에서 시선을 뗄 수밖에 없어.’

가진 게 많은 놈일수록 절대 그냥 넘기지 못한다.

‘추기경이란 자리가 생각 이상으로 거물인 자리거든.’

그리고 놈은 아담 에슈아만 찾아내겠지.

왜냐고?

‘인간이 계약한 마족을 찾아낼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그 증표만으로는 거기까지 찾아낼 수 없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어떻게든 의혹으로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어쩌지?

마족은 내 나와바리인데?! 푸헤하핳!

‘그리고 마침 콘클라베 과제가 해골왕 연관자를 잡는 거라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그놈이 아담 에슈아에 빠져 콘클라베에 집중 못 해도 이득이고, 사퇴해도 이득이다.

‘나는 어떻게든 교황이 될 거거든.’

아무리 그래도 미쳤냐? 수도승으로 끌려가게? 최고 권력자로서 이 나라를 잘근잘근 밟을 수 있는 기회를?

‘방해는 절대 용납 못 해. 크크큭.’

[어유, 누가 빌런인지.]

그럴 때 아이작이 후보들이 모인 곳에 도착했다.

쾅!

문이 열리고 아이작이 들어서자, 후보들이 흠칫 놀란 게 보였다. 나이 대는 아이작이나 키나 보다 훨씬 위다.

그들은 긴장하듯 아이작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았다.

아이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여, 다들 처음 보는 놈들이네.”

“……!”

“나는 빼고 말이지.”

“!”

키나였다.

그는 그 이중에서 유일하게 아이작을 반기고 있었다.

“역시 난 네가 자격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2품 사제가 뭐라는 거야.”

후보 중 하나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눈썹을 치켜떴다.

“교황 후보는 무슨. 진짜로 뻔뻔하게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키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신의 뜻을 무시하는 거냐?”

“글쎄요. 저희 신장들로서는 의혹 덩어리죠. 애초에 추기경들도 그래요. 추기경들도 5대 가문이란 이유로 되는 거지, 실력으로만 보면 12신장들이 더 나을 수도 있는 것을.”

5대 광성, 12신장.

신성제국의 가문들을 일컫는 말이다.

12신장들은 5대 가문을 수호하는 가문들.

내부에서 성직자들을 배출하고 기르는 5대 가문들과 다르게, 신성제국 밖에서 활약하는 현역 간부들이다.

“5대 가문의 특혜를 받고 곱게 자란 도련님이.”

그러자 아이작이 고개를 까닥 거렸다.

“너 나와.”

“…뭐?”

“9계위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다며? 요는 자격이 있냐, 없냐지?”

“…뭐??”

아이작은 미소를 지었다.

“보여주지. 9계위인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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