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4화. 보여줘? (2)
“보여주지. 9계위인지 아닌지.”
아이작 말에 후보들의 얼굴이 볼만했다.
“뭐라고?”
“9계위?”
그들은 기가 찬 듯 아이작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아이작은 이제 막 2품 사제가 되었다고 들었다.
그것도 몇 개월 전, 정식 시험도 아닌 미해결 사건을 해결해서 승단했다고.
물론 어떤 의미론 역대 선조들이 실패한 걸 해결했단 거니, 대단하긴 하지만.
‘그래도 9계위는 차원이 다르지.’
아니나 다를까, 먼저 이의를 제기한 사이먼이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5대 광성인 5대 가문이라도, 그리 단기간에 9계위에 오를 수가 없을 텐데? 베리트야 교황 자리가 내정된 가문이니 그렇다 쳐도, 넌 그게 아니잖아.”
그 적의에 아이작은 눈썹을 치켜떴다.
뭔데, 저 새끼? 뭔데 저리 적대적이야?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키나가 대신 나섰다.
“에슈아, 저딴 놈은 네가 상대해줄 가치도 없다. 원래 12신장들은 5대 가문을 싫어해. 꼭 물을 흐리는 놈들이 있어.”
“!”
5대 광성(光星) 12신장(神將) 108군.
통칭 신성제국을 이루는 빛의 귀족들이다.
주신을 섬기는 5대 공작가, 그러니까 5대 광성이 요람으로써 성직자를 배출하고, 12신장이라고 불리는 12개의 가문은 군신이 되어 5대 광성과 신성제국을 지킨다.
그리고 나머지 108개의 가문이 그들의 손발, 눈과 귀가 되어 서포터로서 신성제국을 지켰다.
뭐, 108가문들이야 대부분 가신 가문이거나 하급귀족들이니 그렇다 쳐도.
‘문제는 12신장들이지.’
신성제국은 고대에 수많은 신성부족들을 통합해서 생겨났다.
국가가 된 지금이야 가장 세력이 강했던 5대 신앙을 주축으로 체계가 잡혔지만 말이다.
하지만 12신장?
“상급신을 모시기에 본인들도 감히 5대 신앙의 자리가 될 수 있다고 보는 놈들이지. 건방지게, 주제도 모르는 놈들.”
“뭐가 어째? 건방져? 주제?”
사이먼은 키나의 말에 눈을 부릅떴다.
“5대 주신이 아닐 뿐, 우리 신들께서도 뒤지지 않는 분들이시다. 그리고 신들께선 위대해도, 그 종자까지 뛰어나란 법은 없지.”
“뭐라고?”
“평화롭게 제국 내에 눌러앉아 하하 호호 즐겁게 후학 양성이나 하는 놈들이.”
실제로 다른 교황 후보들도 비슷한 생각인 걸까. 비슷한 눈빛으로 아이작과 키나를 보고 있었다.
사이먼의 말에 전부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한참 어린 애송이들이 교황을 논하는 게 같잖은 듯했다.
애초에 12신장들은 국경 인근의 가문들이라, 자치권과 군사권이 주어져 세가 약한 이들도 아니었다.
결국 그 반응에 먼저 반응한 건 위스퍼였다.
[허이고, 성직자들 주제에 눈빛들 보소. 콱 여기서 죽일까요?]
‘아서라. 교황 후보들 앞에서 마족이 여깄네, 할 거 있냐.’
곧 사이먼이 웃었다.
“그나마 5대 신앙 중에서 제정신인 건, 북부의 야만족들을 막고 있는 흑 정도지.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꼬맹이 놈이 교황? 외교문서는 읽을 줄은 아냐? 마도제국 마법사들의 파이어볼에 쫄아서 얼레벌레 도장을 찍겠네, 찍겠어.”
그러자 키나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본인들 비위에 안 맞는다고 천박한 말 마라. 수준 떨어지니까.”
“뭐가 어째?”
“애초에 교황 후보라고 선출된 놈이 신의 뜻을 의심해서야. 자격 실격이란 걸 모르나?”
사이먼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누가 그 베리트 아니랄까 봐, 어린놈조차도 오만해. 뭐, 좋다. 재수 없어도 네 실력은 인정한다. 솔직히 교황가가 스캔에 휘말려서 그런 거지, 가만히 있었으면 네가 교황이 되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편을 들어줄 대상은 잘 골라야지.”
“!”
“아이작 에슈아? 다들 청가라서 쉬쉬할 뿐이지, 전부 욕하고 있어. 신성드래곤을 꾀어내서 교황 후보가 되었다고! 드래곤이라면 신의 대리인으로서 이름을 넣을 수 있으니까!”
키나는 도저히 수준이 떨어져서 못 들어주겠다는 듯, 손을 우득거렸다.
저놈이 같은 교황 후보로 뽑혔다고, 눈에 뵈는 것이 없는 건가.
“에슈아 기다려라, 저놈은 내가 목을 따주마.”
그러자 아이작이 막아섰다.
“괜찮아, 난 다 이해해. 원래 인간은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생물이니까.”
“!”
“게다가 저런 놈이 있어야 사회가 굴러가거든. 무지성으로 따르는 놈들만 있으면 그 사회는 썩어.”
그 말에 키나는 놀란 듯했다.
어떻게 그딴 모욕을 듣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자신이라면 가문에 대한 모독이라며 정식 항의를 했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압박이며, 가문 간 전쟁 명분이었다.
하지만.
“사이먼이랬나? 걱정 마, 난 오히려 너 같은 애들 좋아해.”
심지어 좋아한다고?
키나는 당황한 듯 아이작을 보았다.
역시 저 정도 넓은 시야와 인품이 되어야 교황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건가?
사이먼도 당황한 듯했다. 사실 아이작을 도발해서 후보직에서 사퇴시킬 생각이었던 그였다. 아이작의 성미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으니까.
아이작이 난동을 부리면, 역시 자격에 맞지 않는다며 정식 탄원서를 올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왜 그래? 나 진심이야. 난 너 같은 사람들 좋아해. 교황이라면 국민 하나하나를 아껴야지.”
[그냥 성직자를 쥐어팰 수 있어서 좋은 거 아님?]
위스퍼의 말에 아이작은 흐흐흐 초승달 눈으로 웃었다.
‘항의는 무슨. 서신으로 말싸움해 봐야 뭐가 남아. 이런 건 장본인을 직접 패야 의미가 있지.’
“그러니까 9계위인 걸 증명하면 되는 거지?”
“뭐, 뭐라고?”
“증명 방법은 뭐, 간단하네. 네놈이 9계위니까, 널 이기면 그만이겠고?”
사이먼은 기가 찬 듯했다.
이제 막 2품이 된 사제 놈이, 뭐? 12신장을 이기겠다고?
“함부로 입 놀리지 마라. 추기경들도 우리한테 함부로 못 한다.”
사이먼은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듯 검을 뽑아냈다.
동시에 검집에서 빛이 치솟았다.
<숨결의 신장>이라고 불리는 사이먼이 검을 뽑는 순간, 뜻밖의 장소에서 공격이 날아왔다.
<신의 호흡>.
쾅!
“아이작!”
마치 어디에나 존재하는 신의 숨결을 보듯, 사방에서 보이지 않는 바람이 날아왔다.
그 광경에 다른 후보들이 탄식했다. 이제 막 2품 사제가 된 햇병아리에게 뭘 쓰냐는 것이다.
“작정을 했군.”
“상급 마족에게나 쓸 공격을.”
“그래도 피는 안 보려고 노력은 하네.”
그도 그럴 게, 보이지 않는 <숨결>은 보통 신에 대적하는 적들의 몸을 무자비하게 찢어내지만, 또 다른 효과로 쓸 수 있었다.
질식.
신의 위압에 질식하는 것이다.
이는 호흡을 하는 생물이라면 절대로 막아낼 수 없었다. 숨을 참더라도 언젠가는 공기를 마셔야 했기에.
아니, 굳이 숨을 쉬는 걸 기다릴 것도 없다.
“피부에 닿기만 해도 질식해서 쓰러질 테지.”
그런데 그때였다.
“피부, 뭐?”
“!”
아이작이 뭘 하냐는 듯, 여유롭게 다가오고 있었다.
사이먼은 제 눈을 의심했다.
‘뭐? 안 쓰러져?’
걸어오던 아이작은 큭큭 웃으면서 땅을 박차고 올랐다.
순식간에 사라졌던 그가 사이먼의 옆에 나타났다. 그러곤 사이먼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 광경에 사이먼은 같잖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다음 재빨리 팔을 들어 주먹을 막아냈다.
‘2품 사제의 솜방망이 주먹으로 무슨……!’
하지만.
우득!
“커헉!”
뼈에 금이 간 듯 사이먼이 몹시 괴로워했다.
“사이먼!”
팔을 움켜쥔 그는 제 눈을 의심하듯 제 팔을 보았다.
‘내 방어 성법을 뚫었어?’
아이작의 공격은 필시 성력을 신체에 실어 공격을 가하는 성법, 주로 신체를 강화하는 청의 성법이었다.
굉장히 단순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실전에서 강한 성법. 멜리사나 일라이도 자주 쓰는 기술이지만, 상대는 고작 2품 사제. 아무리 잘나봐야 6계위 사제의 일격이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수준일 텐데……!
아니, 그 전에 어떻게 <숨결> 앞에서 멀쩡한 건데?
그 혼란스러워하는 얼굴에 아이작은 푸헤헤헿 웃었다.
‘그래, 무지하게 궁금할 거다!’
어둠의 각성신을 흡수한 아이작의 몸에는 변화가 생겼다. 어둠 속에서 빛이 더 강하게 느껴지듯, 성력이 증강되었다.
하지만 진짜 힘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마력과 마법이 성법으로 발휘된다, 이거다!’
마침내 아이작이 황금봉을 꺼내 들었다.
<강화>.
빠각!!
“크악!!”
최대 출력으로 <강화> 마법을 담은 주먹이 사이먼을 갈겼다. 동시에 사이먼이 벽을 부수며 날아갔다.
쿵! 쿠쿠궁!
멀리 날아간 사이먼은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커, 커헉……!”
키나와 신장들은 놀란 듯 그들을 보았다. 반면 아이작은 황금봉을 휘휘 휘두르면서 푸흐흐흐 웃었다.
‘눈치 안 보고 마법을 쓸 수 있다니. 개꿀.’
마법이라면 이미 해골왕을 따라잡을 자가 없다. 그리고 성법으로 전환된다면 성자의 몸에 부담이 생길 일도 없다.
그럼 게임 끝 아닌가?
곧 아이작이 웃어댔다.
“내가, 솔직히 치료 못 하고 기도 못 하고 신의 계시를 개무시해서 시험에서 탈락한 거지. 죽이는 건 또 잘하거든? 푸하하하하하!!”
그 웃음에 다른 후보자들은 그게 자랑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보다 교황이라는 놈이 제일 중요한 걸 못 하면 어떡하는데?’
그러나 그들은 제 눈을 의심하듯 날아간 사이먼을 보았다.
‘사이먼을 날린 시점에서 이미 2품 사제가 아닌데.’
그런데 그때였다.
후두둑!
날아간 사이먼이 이를 갈면서 몸을 일으켰다. 괜히 추기경들을 무시했던 게 아닌 듯, 보통의 맷집이 아니었다.
“오냐, 보아하니 6계위는 넘었나보구나.”
아무래도 아이작을 6계위 2품 사제라고 생각해서 봐줬던 것일까.
“이번엔 안 봐주마. 어디 교황이라면 이것도 처리해보시지!”
곧 피어오르는 살의에 키나가 흠칫 놀랐다.
‘저 새끼가!’
저건 인간에게 쓸 만한 공격이 아닌데!
“기다려! 내가 곧 없애줄 테니……!”
그런데 그 순간, 아이작이 미소를 지었다.
“봐준다는 말은 약자가 쓸 수 있는 말이 아닌데.”
뭐라고?
곧 아이작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역시 본 실력을 드러낸 게 아닌 듯, 초월의 힘을 사용했다.
[심연이여, 더 깊어져라.]
돌연 아이작의 흰자위가, 검은색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