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46화 (246/272)

제246화. 눈에 띄는 후보 (1)

“뭐라고?! 흑의 추기경이 아이작을 만나러 갔다고?”

슈리의 보고에 일라이는 드물게 기겁했다.

“흑가 놈이라면, 설마 그 이안 발라그 말이냐?”

“예.”

“그 새끼는 왜 또 아이작을 보러가!”

일라이의 반응에 슈리는 도대체 왜 그러시냐는 얼굴이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아이작이 사이먼을 격퇴해서…….”

“뭐가 어째?! 누굴?”

“아…. 들으실 예정이겠지만, 아이작이 사이먼을 격퇴해서요.”

“뭐라고? 교황 후보를 개 패듯이 패서 초죽음으로 만들었다고???”

“…아니, 저는 격퇴라는 말밖에…….”

슈리는 삐질 땀을 흘렸지만, 일라이는 뒷목을 잡으며 의자에 기댔다.

“…이 아픈 손가락을 어쩌면 좋나.”

아무래도 일라이는 아이작이 사이먼을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놓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니, 숯으로 만들었으니 거기서 거긴가?’

슈리는 큼큼 헛기침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아이작이 9계위급이라는 걸 증명한 듯해서요. 아무래도 어둠의 각성신으로 얻은 초월 단계를 쓴 듯합니다.”

일라이는 흠칫 놀랐다.

“아이작이 정말 초월 단계를 썼다고?”

“예. 사실 완벽한 9계위라고 할 순 없겠지만, 신장 중 하나를 격퇴했으니 일단 자격은 충족한 걸로 보겠다고 합니다.”

아이작의 활약에 슈리도 놀라 물었지만, 아이작은 이리 말했지.

‘초월 단계에 들어섰지만, 어떤 의미에선 아직 초월 단계의 1계위나 다름없다고.’

그래서 갈 길이 한참 멀다고 했지만, 글쎄.

초월 단계 자체가 이미 8, 9계위와 흡사한데, 거기서 1계위라면… 한참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럼 오히려 대단한 거 아냐?

그래서 내심 아이작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는 듯, 슈리가 말했다.

“그리고 사이먼은 흑의 추기경의 사람이잖습니까. 그래서 아이작에게 관심을 가지고…….”

“못 만나게 해라.”

“예?”

“아니, 내가 간다고 전해!”

일라이가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하자, 멜리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흑가의 애송이는 왜?”

슈리도 의아해했다.

“…흑의 추기경이 관심을 가진다는 건, 좋은 일 아닌가요?”

흑의 추기경은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외골수였다. 그런 그가 관심을 가졌다니, 모두가 놀랄 만한 일인데?

“이건 흔한 일이 아닌데요. 흑의 추기경이 아이작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건, 어떤 의미론 교황으로서 지지를 받게 될 수도…….”

“아니!”

일라이는 황급히 말했다.

“애초에 만나게 하면 안 된다!”

“……???”

“??”

멜리사와 슈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일라이는 대답 대신 끙끙거릴 뿐이었다.

‘왜 하필…….’

흑(黑).

마를 없애기 위해 마의 시체까지 이용하는 소멸의 신앙.

청이 외부의 마를 퇴치하고, 적의 신앙이 내부의 마, 즉 이단자를 가려내 처벌하면, 흑은 그 시체를 처리하는 놈들이다. 한마디로 5대 신앙 중 가장 인정사정없는 냉혈한들인 셈이다.

그 어떤 놈들도 흑 앞에서는 절대 도망가지 못했다. 심지어는 죽어서조차 말이다. 말 그대로 시체까지 깨끗하게 발라져, 흑의 거름이 되었다.

그런 의미로 타국에서 들어온 첩자들, 탈주자들은 이미 흑에게 갈려, 머리털부터 뼈까지 실험 도구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사람을 위한, 그리고 신을 위한 도구로써 말이다.

그리고 그런 흑가의 정점에 선 음지 처리반 수장, 이안 발라그.

나이는 대충 벤야민 또래로, 아직 젊었다.

하지만 여러모로 만만찮은 놈이다. 그 특유의 배타적이고 유아독존인 성격도 성격이지만.

‘문제는 그놈이 아이작의 천적이란 거지.’

왜 천적이냐고?

‘분명 내가 처리한 금의 신에 대한 조사를 그놈이 했을 텐데.’

레아의 각성 당시, 일라이가 성법으로 지져버렸던 그 뱀장어 각성신 말이다.

‘아이작이 흑마법에 손을 대서, 그 용신을 언데드로 만든 건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증거를 없애려고 자신이 죽인 것이 아닌가.

그 뒤에 용신의 사체를 태워 증거를 인멸하긴 했지만, 베리트 추기경이 흑의 추기경에게 분석 의뢰를 했다. 흑의 추기경 정도면, 없는 증거라도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무서운 놈이니까.

아마 괜찮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어쩌면 아이작과 흑마법의 단서를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뭐, 지금껏 잠자코 있는 걸 보면 기우일 수도 있지만… 하필 그 일도 있었는데, 이번에 아이작을 보러 간다고? 일라이가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어둠의 각성신을 다시 봉인한 게 그놈인데.’

문제는 그때 그놈도 눈치챘을 거란 거지.

‘평범한 인간은 절대 흡수 못 한다.’

즉… 아이작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란 것…….

그러니까… 마의 아이란 걸 눈치챌 거란 의미다!

할아버지의 소리 없는 고통에, 슈리는 땀을 삐질 흘렸다.

지금 콘클라베는 유례없는 역대급 기회!

“가주님, 저는 오히려 잘됐다고 봅니다. 이왕 이리된 거, 청에서 교황이 나오면 최고 아닙니까? 교황이 되려면 어차피 신앙심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 망할 놈이… 쉽게 증명할 수 있을 린 없으니, 차라리 이안 추기경에게 증명을 시키면 되지 않나요?”

일라이의 눈썹이 험악하게 올라갔다.

“뭐? 증명?”

“예. 이안 추기경의 분석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잖아요. 비록 아이작 녀석이 인성은 더럽지만, 영혼은 깨끗하다는 걸 분석하게끔 시키면 어떨까요? 솔직히 그만한 성법을 다루고, 어둠의 각성신의 심마에도 안 빠지는 녀석한테 어둠 따위가 있을 리가…….”

“아니! 안 돼!”

“일라이?”

멜리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일라이는 진지했다.

분명 어둠의 각성신에게 지배당하지 않고서 초월 단계에 들어선 건 분명 칭찬할 만한 일이고, 놀라운 일이지만…….

하필 각성신을 조사했던 놈이라니!

‘이안 발라그라면 분명 눈치챈다! 아이작이 마의 아이란 걸!’

애초에 신을 언데드로 만드는 술법을, 일개 인간이 쓸 수 있을 것 같은가?

솔직히 요즘에 와서는 아이작의 영혼이 어떤 마족 나부랭이가 아닐까, 의심까지 하는 일라이였다.

뭐, 마족이라기엔 너무 인간 같아서, 그냥 냅두고는 있지만.

‘그만한 신성력을 쓰는 녀석이 청에게 위협이 될 리 없으니.’

그리고 지금까지 봐온 손주를 믿기에, 교육으로 얼마든지 교화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애초에 진마급의 고위 마족이었다면 신성드래곤이 결혼하자며 인사 왔을 리도 없을 테고 말이다.

‘정 안 되면… 그래, 신성드래곤에게 장가를 보내자.’

그리고 솔직히 말은 안 해도 청의 사람이라면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오히려 이게 기회…….”

“아니, 발라그는 안 된다!”

일라이가 재빨리 아이작에게로 향했다.

그 광경에 멜리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왜 아이작한테 그러는지 모르겠구나. 얼마나 귀엽고 예쁜 아이인데.”

아니, 귀엽고 예쁘지는 않은데요. 그딴 행동을 보고도 아이작을 예뻐하는 건 오직 성녀들뿐이겠지.

슈리는 미간을 짚으며 멜리사를 보았다.

사실 콘클라베 때문에 수도에 불려온 그녀였다. 교황 선출 과제가 하필 해골왕 연관자를 잡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멜리사는 몹시 착잡해 보였다.

백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그렇게 찾아다녔지만, 결국 해골왕을 찾지 못했다.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음 좋겠는데.’

답답했다. 겨우 흔적을 찾아냈건만, 해골왕은 어째서인지 마치 딴사람처럼 변해 있었고 말이다.

혹시라도 연관자를 찾아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

그런데 문득 멜리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슈리가 계속 눈치를 보며 서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러느냐,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아뇨. 실은 그게… 찾고 있는 성녀님이 있는데, 생전 들어본 적도 없고, 고서까지 뒤져봐도 도무지 안 나와서…….”

멜리사는 귀엽다는 듯, 아름답게 웃어 보였다.

“누구지? 말해보거라, 성녀들이라면 내 쫙 꿰고 있다.”

“그, 이런 분인데요.”

슈리가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ines.

그 이름을 본 멜리사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 이분은…….”

“이네스 님이라는데, 도무지 나오질 않아서요.”

“이네스?”

멜리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슈리는 자신도 안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아, 물론 저도 압니다. 아무리 봐도 ‘아녜스’…라고 읽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자꾸 아녜스가 아니라 이네스라고. 이네스로 찾으라고 해서요.”

그 말에 멜리사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네스.

아마 이 이름을 아는 자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오래전, 역사 속에서 이름이 지워져서, 진짜 이름을 아는 사람이 남지 않았으니까.

‘진짜 이름을 아는 건, 그나마 이사악 정도였는데.’

동공이 흔들리는 멜리사가 황급히 물었다.

“누가 찾으라고 했지?”

“어… 그… 아이작이요.”

멜리사의 눈이 놀란 듯 동그랗게 변했다.

뭐? 아이작이?

* * *

그리고 그 무렵.

아이작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하, 시바. X 됐다.’

그도 그럴 게, 눈앞에 마주한 놈 때문이다.

음, 그러니까 선물을 사 온 흑의 추기경이… 도끼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게 너무나 살벌해서, 마치 눈빛만으로 아이작을 내리찍어버릴 듯하다.

“그러니까, 지금 뭐라고?”

“아뇨. 그게요. 잘못 들으신 겁니다.”

“뭐라고? 교황이 되어, 나라를 멸망시켜?”

“…즐믓 들으신 거라니깐여. 제가 신 앞에서 그런 말을 할 리 없지 않습니까.”

그 광경에 아이작 옆에서 찌그러져 있던 어둠의 각성신은 신이 난 듯 덩실거렸다.

안 그래도 아이작에게 협박당하고 있던 어둠의 각성신이었다. 이 개놈이 온갖 횡포를 부리는 바람에 서러워 죽는 줄 알았는데.

각성신은 ‘역시 선과 정의는 살아 있다’는 듯, 흑흑 울면서 감동했다.

아니나 다를까, 흑의 추기경의 눈빛이 한층 살벌해졌다.

“그럼 내가 들은 건 뭔데?”

“…그르니까 교황이 되어, 이 나라를 위협하는 망나니들을 멸망시킬 거라고 했쯥니다.”

“…….”

참으로 오묘한 눈빛이다. 마치 지나가는 애새끼도 안 믿을 그런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랄까.

“신앙심 검사 좀 해봐도 되겠나……?”

그러자 아이작은 빡친다는 듯 핏대를 세웠다.

이 시바 새끼가!!

하필이면 신을 협박하고 있을 때 들어오냐!

성직자 새끼가 치사하게, 상도덕이란 게 없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