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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47화 (247/272)

제247화. 눈에 띄는 후보 (2)

어둠.

즉, 마(魔) 앞에서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다.

괜히 어둠 그 자체인 해골왕이 인간에게 공포라 불렸던 게 아니다. 그 기운에 조금이라도 닿으면, 그게 누구든 독에 중독되듯 죽어나갔다.

애초에 흑의 신앙이 왜 마족의 산물을 ‘처리 과정’에 이용한다고 보는가.

단 20g의 마족 시신만 있으면, 인간 따위 한순간에 백골로 만들 수 있었다.

뭐, 해골왕의 뼛조각이라면 나라조차 멸망시킬 정도니 위험성에 대해선 말 다 했지.

아무튼 그래. 결론적으론 그 마를 머금은 <어둠의 각성신> 따위, 인간이 다룰 수 없는 물건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아이작 에슈아가 그걸 해냈다고 한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물론 해골왕의 뼈를 먹은 일이 있지만, 글쎄? 그거야 봉인된 상태로 처먹어서 그나마 살아남았다고 할 수라도 있지.

하지만 어둠의 각성신?

심지어 마를 성력으로 치환해?

이건 뼈를 삼킨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 어쩌면 희망을 찾은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확인을 하러 왔는데……!

‘교황이 되면,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이라고?’

이건 뭔 개소리인지.

‘심지어 성직자가 신을 협박하고 있어……??’

흑의 추기경으로서는 도끼로 찍을 듯이 바라볼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신앙심 검사를 해봐도 되나?”

그 험악한 목소리에 아이작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웃었다.

하, 이 까마귀 같은 새끼.

하필 타이밍 거지같이 들어와 가지고는.

하지만 고작 이딴 걸로 벌벌 떨 아이작도 아니다.

“굳이요? 성력을 쓸 수 있는 게 그 증거 아닌가요? 신앙심 없는 놈이 성법을 어찌 쓰는데요?”

“아니, 네 경우엔 반드시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아이작은 같잖다는 듯 보았다.

“왜요? 신앙심이 없는데, 심마를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니까 각하도 깜짝 놀라서 선물 들고 찾아온 거 아닌가?”

그러자 흑의 추기경은 할 말이 없는 듯, 눈썹만 점점 치켜올렸다.

“그래. 확실히 어둠의 각성신을 이겨내고 엄청난 성력을 가지게 된 것에 다들 감탄하더군. 나도 그랬고.”

“그쵸오? 역시 교황이 될 사람이죠? 그러면…….”

“만약 정신력으로 이겨낸 게 아니라, 처음부터 네놈이 어둠에 이길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

“그래, 이를테면 본래부터 어둠이라, 어둠의 힘이 숨 쉬듯 익숙하다든지.”

“……!”

정곡이 찔리자, 아이작의 눈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뭐, 교황이 된다고 마음먹은 시점에서, 추기경들은 원래부터 가장 큰 복병들이긴 했지. 가장 가까이에 있을 존재들이고, 이 나라에서 가장 위험하다면 위험한 존재들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검은 장갑을 낀 흑의 추기경이 성법을 발동했다.

쿠궁!

그 성법은 상대의 육신을 분석하는 흑의 분석 성법이다.

육신의 구성 물질은 무엇인지, 피부나 머리카락 등을 분석해 출신지와 직업, 환경을 판단하고, 심지어 성향까지도 판별했다.

곧 짙은 보랏빛을 머금은 빛과 함께 추기경이 다가왔다.

“설마 마족이었던 거냐.”

“!”

“그런 거라면 일련의 모든 사건들이 이해가 가는군. 해골왕의 뼈부터 펜타곤에, 그 키나 베리트를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마족에게 강했던 점도 그래.”

“……!”

“뭐, 추기경의 눈을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지만.”

마침내 흑의 추기경의 성법이 아이작에게 닥쳐왔다.

번쩍!

보라색 빛에 덮쳐진 아이작이 눈부신 듯 한쪽 눈을 찌푸렸다.

곧 아이작의 몸에서 흑의 추기경에게서만 보이는 빛의 문자들이 떠올랐다.

[‘신앙심’ 마이너스]

[‘신에 대한 공경심’ 마이너스]

[‘성력 적합도’ 0]

[‘마력 적합도’ 100%]

[‘사제 적합도’ 0]

[‘인성’ 쓰레기]

그래, 대충 올라오는 수치들 무얼 봐도 마족이다. 여태껏 봐온 마족들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수치였다.

특히 인간에게서 마력 적합도가 100이 뜰 수 있을 리 없지.

그래…. 이것이야말로 마족이라는 확실한 증거…….

[대상의 성분 분석 완료]

[‘인간’ 100%]

[‘마족’ 0%]

“……?”

흑의 추기경은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 뭔가 좀 많이 이상한데.

“다시.”

그는 다시 분석 성법을 발동했다.

아이작은 약간 불안한 듯 한쪽 눈을 찡그렸다. 곧 빛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대상의 성분 분석 완료]

[‘인간’ 100%]

[‘마족’ 0%]

“……??”

뭐지? 이럴 리가 없는데?

흑의 추기경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다시 분석 성법을 발동했다.

[대상의 성분 분석 완료]

[‘인간’ 100%]

[‘마족’ 0%]

“……????”

흑의 추기경은 이게 뭐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도무지 결과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저딴 게 인간이지?”

아이작은 그 반응을 보며 에휴, 한숨을 쉬었다. 표정을 보니, 딱히 묻지 않아도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 것 같다.

[마족이라고는 안 나왔나 보죠?]

위스퍼의 말에 아이작은 쯧 혀를 찼다.

‘에휴, 너 혼자 뭘 건져낼 수 있겠니.’

자신이 괜히 교황의 자리를 노리는 줄 아나?

이 몸으로 들어온 지 벌써 17년이었다. 위장 마법은 완벽했다.

‘다섯 추기경이 작정하고 보름은 밤을 꼬박 새워가며 구마성법을 쓰지 않는 이상, 쪼가리도 안 나올 거다.’

그러나 흑의 추기경은 이럴 리 없단 표정이었다.

뭐지?

한 번도 이런 결과에서 마족이 아닌 경우가 없었는데?

아니, 애초에 수치 자체가 인간일 수가 없는데?

“이건 납득할 수 없어.”

곧 흑의 추기경이 다른 방법으로 조사해 보겠다는 듯, 아이작에게 사납게 다가오는 그 순간이었다.

쾅!!

“!!!”

감히 어딜 접근하냐며, 낯익은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이놈! 손자만 불러다가 뭔 흉계를 꾸미고 있느냐!”

“!”

나타난 건 멜리사와 일라이였다.

멜리사는 아이작을 안아 들었고, 일라이가 눈을 부릅뜨며 나섰다.

“교황 후보를 제거해 경쟁자를 줄일 셈이냐?”

그러자 흑의 추기경이 불쾌한 듯 혀를 찼다.

“흉계? 전혀? 댁 손자가 ‘교황이 되면 나라를 멸망시킨다’고 해서, 정말 문제가 없는지 조사해보려 했던 것뿐.”

일라이는 사레에 걸린 듯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이 자식! 나라 멸망이라니!

‘저 녀석이 기어코!’

흑의 추기경이 진실을 말해버리자, 아이작은 바로 입을 열었다.

괜히 할아버지까지 의심하면 골치 아파진다.

“할아버지! 저 인간 귀가 이상한 겁니다! 저는 ‘이 나라를 노리는 망나니들을 처분하겠다’라고 한 거…….”

“그래, 암. 이 할아비는 다 이해한다. 교황이 되면 좀 나라도 멸망시켜보고 싶고, 그런 거지. 암.”

아니, 인정하지 말라고! 이 인간아!

내 말 듣지도 않았지?!

동시에 손주가 멀쩡해 안도한 일라이와 멜리사가 흑의 추기경을 보았다. 그가 아이작을 굳이 찾아온 이유를 모를 리 없는 그들이었다.

‘역시 그 일 때문에 아이작한테 관심을 가졌던 건가.’

‘끈을 안 놓고 있구나.’

아무튼, 아이작한테서 관심을 돌려야 한다. 마의 아이란 걸 들키면 안 돼!

일라이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

“네놈도 교황 후보라면서? 교황이 되면 딸도 살릴 수 있지 않나? 그럼 아이작에게 신경 쓰고 있을 여유는 없을 텐데.”

아이작은 눈썹을 치켜떴다.

앙? 딸?

저 인간한테 그런 안 어울리는 게 있었어?

그러나 흑의 추기경에겐 굉장히 듣기 싫은 화제였던 걸까. 그는 굉장히 혐오스럽다는 듯 웃었다.

“청이 그 말을 하는 건 긁어 부스럼 같은데. 싸우자는 건가.”

그러더니 그는 얼굴을 보기도 싫다는 듯 돌아섰다.

그렇게 그를 내보내는 데 성공한 일라이가 탄식했다.

뭐, 솔직히 이 화제를 꺼내긴 싫었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쫓아낼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아이작이 뭐냐는 듯 보았다.

“긁어 부스럼이라니, 뭔데요?”

일라이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애초에 흑은 청에 대해 좋은 마음이 있을 리가 없었다.

“흑의 추기경의 아내와 딸이 청의 호위를 받으며 다른 나라에 간 적이 있다.”

“!”

“제국민들의 이주와 연관된 일이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했지.”

마족이 나오는 위험 지대를 건너는 일이었지만, 청이 마족에게 가장 강한 신앙이니 믿고 호위를 맡긴 거다.

그러나 그때, 흑의 추기경의 아내와 딸이 마족의 공격에 당했다.

아주 불운한 사고였다.

다른 사람들은 살았지만, 그 둘은 미처 구하지 못했다. 마력에 의한 중독이 너무 심한 탓이었다.

흑의 추기경은 관짝이 되어 돌아온 가족들을 보며 허망해했다. 그러곤 머리 숙여 사죄하는 청의 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가족을 타인에게 맡긴 게 잘못이었지.

-각하.

-됐다. 두 번 다시 너희하고 연을 맺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흑의 추기경은 청을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흑의 추기경 역시 청의 잘못이 아니란 건 알았다. 그들은 사고 현장에서 직위 막론 사람들을 공평하게 구했다.

그저 우연히, 그중 구조를 받지 못한 게 제 가족이었을 뿐.

노블리스 오블리주.

권리를 누리는 자들로서, 어떤 의미론 그게 옳다고 여겼다. 인명 구조에 신분에 따른 우선순위가 있어서는 안 되니 말이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마음은 다른 문제다. 아무리 이해가 되어도, 청을 좋아할 순 없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에 아이작이 흥미로운 듯 물었다.

“그 둘, 결국 죽었나요?”

“아니, 흑의 술법으로 동결해놨다. 뭐, 어둠에 완전히 먹혀버려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지만.”

제거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스스로 어둠을 다룰 수 있는 힘이 있지 않은 이상 말이다.

“그래서 네 힘에 희망을 가졌었나 보구나.”

그러자 아이작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흐음. 저거, 내가 교황이 되는 데 이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이 나라의 진짜 복병은 베리트의 차남인 척하는 개새끼. 실베스테르였다.

그놈이 아무런 준비도, 목적도 없이 이 나라에 숨어 있을 리 없었다. 놈의 목적은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분명 이제부터 아이작을 방해할 가장 큰 적이 되겠지.

‘그놈을 누르려면, 추기경들부터 아군으로 만드는 게 좋지.’

교황의 최측근이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아이작,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멜리사의 말에 아이작은 착한 아이인 척 웃었다.

“예, 덕분… 엉?”

턱!

“!”

돌연 멜리사가 아이작의 양 볼을 잡고 이리저리 살폈다.

“가, 가모님?”

이곳저곳을 해부할 듯 꼼꼼히 살펴보는 게 심상치 않다. 아이작은 내심 당황스러웠다.

“저, 저기요?”

이 자식이 왜 이러지?

그런데 그렇게 한참을 살펴보던 멜리사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너.”

“예?”

“너, 이사악이냐?”

…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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