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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50화 (250/272)

제250화. 에슈아의 저주 (1)

정확히 87년 전.

청의 총본산, 에슈아 본가 저택에 해골왕이 나타났다.

새벽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해골왕이다!

성녀 가문에 나타난 해골왕은 순식간에 저택을 초토화하고, 에슈아 사람들을 학살했다.

-으악! 살려주세요!

-일단 여기서 피해라! 나가서… 으악!

놈은 상대를 가리지도 않았다.

어린 생도들과 그들을 피신시키던 스승들이 저항 한번 못 해보고 떼죽음을 당했다.

해골왕은 마지막까지 잔인했다.

힘없는 자들을 가두고 공포에 빠뜨려 고통스럽게 죽게 했다. 눈 감지 못한 채, 불 속에서 산 채로 타죽은 시체들이 즐비했다.

급히 정비한 청이 달려들었지만, 해골왕의 압도적인 힘에 젊은 목숨들이 무기력하게 유린당했다.

안 그래도 해골왕이 사라진 후, 의문의 사고로 비전과 인력을 잃은 그들이었기에 타격은 엄청났다. 인계의 공포 그 자체인 해골왕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가주님! 이대로는 성이 함락됩니다! 외부로 나간 인력을 불러와야…….

-아니, 빈 성은 버려라!

-예? 버리라니요! 청의 상징이 함락되게 둘 순 없습니다!

-지금은 영지민의 목숨이 우선이다!

그 와중에도 청은 몹시 강했다.

그들은 청의 상징을 포기한 대가로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 해골왕도 몰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해골왕의 악랄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큭, 바퀴벌레 놈들이 발버둥 치는 꼴 하고는.

놈은 청이 재기하지 못하도록, 본인의 손가락을 뜯어 마족을 유인해버렸다.

-자, 먹어 치워라.

그 미끼에 수많은 마족들이 미친 듯이 날아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탐스러운 마력에, 수백만의 마족들이 에슈아 저택으로 몰려왔다.

구름인지 마족인지 구분이 안 가는 마족들이 하늘을 뒤덮었고, 에슈아는 말도 안 되는 공격을 당했다.

말 그대로 청이 망하고, 에슈아 영지까지 지도에서 사라질 사건이었다.

제국민, 아니 대륙의 모든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마를 퇴마하는 신앙의 본거지가 마족에게 뚫려버리다니!

그나마 당시 가주였던 일라이의 증조부가 목숨을 바친 덕에 피해는 에슈아 성 함락에 그쳤다. 젖먹이 아이작이 마력핵을 갈취했던 폐허 별채가 그 처절한 싸움의 흔적.

아무튼, 에슈아와 신앙의 뿌리를 지켜낸 청 모두가 안도했다. 뭐, 차라리 거기서 에슈아가 멸족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끝까지 버텨낸 너희에겐 좋은 선물을 주마. 두 번 다시 청의 벌레놈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뭐라고?

-바퀴벌레들을 박멸하려면, 그 종자를 없애야지.

해골왕은 흙발로 그들을 짓밟았고, 심지어는 그 영혼까지 농락했다.

재능을 가진 이들은 걸음마조차 못 떼본 채 비명횡사하고.

에슈아의 근본인 성녀는 태어나지도 못하고.

겨우 살아남은 아이들은 평생의 장애를 가진 채, 삶보다 좌절과 죽음을 먼저 배우게 되었다.

단 한 번의 해골왕의 침입으로, 돌이킬 수 없는 굴욕과 절망을 맛본 것이다.

그런데.

87년의 세월이 지나, 그때의 일이 또다시!

[아악! 해골왕이!]

슈리의 비명에 일라이의 눈이 돌아갔다.

지금 뭐? 해골왕이라고?

보통 일이 아니란 걸 깨달은 릴라이가 급히 말했다.

“서둘러 저택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슈리가 있는 곳은 수도의 에슈아 저택. 지금 그들이 있는 교황청에서는 한 시간쯤 떨어진 거리다. 그들은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 새끼가 감히 내 집에…….”

그런데 그때였다.

“이 새끼야!!! 아직 집 팔지도 않았어! 하자 생기면 가격 떨어진다고!”

뭐… 인마??!

“이 시벌 놈이 뒤질려고, 남의 집값 떨어트리네!”

“아이작!!!”

아이작은 그들을 두고서 먼저 쌩하고 사라졌다.

가주와 릴라이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사라진 아이작의 뒷모습만 보았다.

지금 자신들이 뭘 들은…….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슈리! 우선 결계를 펼쳐라! 해골왕이 절대 민가로 가게 해선 안 돼!”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슈리! 대답해보거라, 슈리!”

묵묵부답.

그 무거운 침묵 속에서 그들은 소름 끼치는 싸함을 느꼈다. 그들은 그 침묵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건 사람이 죽었을 때의 침묵이다.

그들은 급히 아이작을 쫓았다.

반면, 먼저 달려 나간 아이작은 눈을 번득이며 저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짝퉁 놈이 감히!”

위스퍼는 당혹스러운 듯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짝퉁 놈은, 마족 땅 근처에 있던 거 아니었습니까? 왜 에슈아에?]

“빤하지. 샤브나크가 소환된 듯한 놈이랬잖아.”

그 말이 무얼 의미하겠는가.

“소환자 놈이 내 집에 떨군 거야, 시벌!”

[오, 그럼 어차피 잡으려던 놈이 제 발로 와준 거네요?]

“그건 좋은데!!! 내 집!!!! 팔리겠냐고! 마족이 침입했단 소문이 퍼지면 집값 떨어져얽!!!!”

[아…. 집값은 중요하죠.]

뭐, 해골왕을 처리한 장소로 알려지면, 오히려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지 않을까?

한편, 그런 아이작을 쫓는 일라이와 릴라이는 탄식했다.

특히 일라이는 몹시 골치가 아픈 듯했다. 하다 하다 가주로서 해골왕이 나타났다는 것보다, 더 골이 아픈 놈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가문의 위기 앞에서 집값 타령하는 손주 놈이라니!’

“그보다 누구 맘대로 팔아!!! 진짜 저거 장가보내야 하나?”

“아버지!! 그게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정말 저택에 해골왕이 나타났다면……!”

87년 전과 똑같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라이는 해골왕보다 아이작을 더 골치 아파하는 이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

“증조부 땐 에슈아에 성녀가 없었다.”

해골왕이 사라진 후, 멜리사가 가문을 떠난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멜리사가 있다. 그리고 멜리사는 아이작과 거의 동시에 뛰쳐나갔다.

“하물며 이번엔 습격 장소가 에슈아 총본산이 아니라, 수도의 저택이다.”

“하지만, 총본산인 본가와 비교하면 방어가 약할 텐데요.”

“아니. 본가보다 규모는 작지만, 오히려 그래서 유리하다. 수비할 영역이 작아지니까.”

“!”

“그리고 무엇보다 내 대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할 생각은 없다!”

마침내 그들은 에슈아 저택에 도착했다.

저택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쾅! 콰르릉!

저택의 일부가 완전히 무너져내렸고, 곳곳에서 불이 타오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저택에서 보이는 낯익은 얼굴이…….

‘해골왕!!’

필시 서품식 때 보았던 그놈이었다.

보통 마족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위압감. 해골왕 특유의 마력과 마법이 에슈아 저택에 작렬 중이었다.

그런 놈을 멜리사가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그들은 기가 찬 기색이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로……!”

“저 새끼가.”

일라이는 곧장 뛰쳐나가듯 놈에게 향했다.

펑!

그리고 릴라이는 슈리가 있을 장소로 달려갔다.

푸른빛이 저택 곳곳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게 청의 방어 결계이며, 침입자를 결코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최후의 벽이라는 걸 모를 리 없는 릴라이가 급히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그 벽 때문에 피해가 민가로 번지진 않았지만,

‘누가…….’

그때, 릴라이가 쓰러져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슈리!”

무너진 건물 사이에 파묻혀 있는 슈리가 보였다. 피투성이로 발견된 그는, 쓰러지기 전 가까스로 방어 결계를 발동한 듯했다.

“괜찮으냐, 슈리!”

슈리는 숨이 넘어갈 듯한 상태에서 이를 갈았다.

“갑자기… 해골왕이 결계 안쪽에 나타나서!”

“뭐라고?”

릴라이는 당혹스러웠다. 설마 했는데, 정말 해골왕이 작정하고 저택에 침입했다고?

이건 이상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게, 수도의 저택은 본래 에슈아 일족을 위한 곳. 이곳에 있는 건 콘클라베 때문에 온 자신들과 아이작과 슈리 정도뿐이었다.

그래서 의문인 것이다.

‘노리려면 예전처럼 에슈아의 상징인 총본산이어야지. 왜 하필 수도의 저택이지?’

성녀들이 본가에 있기 때문에 방해되니까?

아니다.

레아와 카야는 본가에서 떠났다. 아이작의 과제를 돕기 위해 오는 중인 것이다. 오히려 빈집이니, 더더욱 그쪽을 노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지금 거기에 있는 건 후처인 헨나 님과, 고엘 형님 정도…….’

그런데 순간, 릴라이는 아이작의 말을 떠올렸다.

-할부지, 숙부님. 에슈아를 저주한 건 아마 교황가일 겁니다.

아니면, 이건 정말 심증이지만…….

‘설마 본가에 교황의 핏줄인 헨나가 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 생각에 미친 릴라이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그럴 리 없지 않은가.

해골왕이 교황가의 누군가에 의해 소환되었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그때, 슈리가 힘겹게 말했다.

“해골왕이… 아이작을 노리고 있어요!”

“뭐? 아이작을?”

릴라이의 시선이 급하게 아이작을 향했다.

한편, 해골왕과 조우한 아이작은 같잖다는 듯 웃었다.

“드디어 만났구나, 가짜 새끼.”

멜리사가 놈을 보자마자 썰러 갔기에 아이작은 일부러 거리를 두고서 놈을 분석 중이었다.

놈의 힘을 끌어낼수록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놈을 보면 볼수록 더 확실해졌다.

“저거, 내 몸으로 만들어낸 거다.”

[주인님의 육신으로요?]

“그래. 아주 잘 만들어냈네.”

해골왕을 살피는 아이작의 눈이 마안처럼 빛나고 있었다.

진짜 해골왕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제작자의 힘이.

‘저 힘은… 분명…….’

실베스테르다.

틀림없었다. 저놈의 주인은 실베스테르였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일개 교황이 저만 한 걸 만들어낸다고?’

아니, 물론 실베스테르는 교황 중에서 굉장히 강했던 놈이지.

그래도 인간의 범주일 텐데, 어떻게…….

[어쨌거나 87년 전, 청이 저놈한테 당했단 거죠?]

그래. 그런데…….

동시에 그는 기이함을 느꼈다.

아까부터 해골왕을 보는데, 이상함이 느껴졌다.

뭐지?

해골왕의 육신 안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청의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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