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1화. 에슈아의 저주 (2)
아이작의 말에 위스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예? 청의 여신이요? 빛의 신 말입니까?]
‘그래.’
[그 양반의 힘이 저기서 느껴진다고요?]
‘그려.’
[그 양반이 왜 저 새끼 몸에 있답니까??]
‘그건 오히려 이쪽이 묻고 싶은데.’
아이작은 약간 혼란스러웠다.
청의 빛의 신.
분명 청의 대장신으로, 에슈아의 수호신이었다. 5대 가문의 주축이 된다고 볼 수 있는 신으로, 각 가문에겐 몹시 중요한 신이란 의미였다.
하지만 자신이 봉인될 때, 같이 봉인된 듯했다.
뭐, 청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이작에겐 행운 그 자체긴 했다. 녀석이 없는 덕분에, 자신이 신성제국에서 이리 활개를 칠 수 있던 거니까.
‘뭐… 그 대신 이 몸이 청을 부흥시켜주고 있으니, 녀석도 기뻐하며 고마워하고 있겠지만…….’
[진심이십니까?]
‘커흠. 커흐음. 고마워할 거야.’
솔직히 수완은 자신이 훨씬 더 좋다.
‘괜히 성녀 가문 놈들이 힘만 무식하게 센 황소들인 줄 알아?’
그게 다 누굴 닮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이작은 큭큭 사악하게 웃었다.
‘물론 나한테 전권을 주면 이딴 가문, 가치를 팍팍 불려서 진작 팔아먹고 떼부자로…….’
[어휴. 그나저나 빛의 신은 분명 주인님 대신 벌레에 들어가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 말에 아이작은 미간을 좁혔다.
재액진멸, 통칭 봉인 벌레 새끼.
신들은 물론, 자신조차도 감당하지 못한 태고의 술법.
그래. 원래 자신은 이 ‘아이작 에슈아’의 몸이 아니라, 그 벌레 새끼 안에 갇혀있어야 했지.
‘뭐, 내가 이 몸으로 들어오고, 정작 그 벌레에는 청의 여신이 갇혀버렸지만.’
실제로 슈리를 통해 빛의 신을 불러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답하지 않았던가.
-너 어디에 있냐? 진짜 그 벌레에 있어?
-모른다…. 굉장히 깜깜해서.
그녀는 분명 힘을 쓰지 못한다며, 어딘가에 갇혀있다고 했다. 이 세상에 그만한 곳이, 그 벌레밖에 더 있나 싶었거늘.
‘그게 아니었어?’
물론 벌레에 갇혀있다고 하기엔 기이한 점들이 있었다. 바로 아이작이 빛의 여신에게 했던 질문들 때문이었다.
-너, 신들이 내가 갇혀 있는 줄 알고 벌레한테 고문했다는데, 너 설마 고문당했냐?
-뭐? 고문? 아니? 당한 적 없는데?
그땐 고문을 당한 기억이 없다길래, 뭔 벌레 껍질이 그리 두꺼운가 싶었는데.\
심지어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방이 뭔가 마력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물론 신계에서 왜 그딴 게 느껴지나 싶긴 했지. 하지만 그땐 신들이 뭔 개짓거리를 하나 싶었는데.
‘저 짝퉁 몸에서 여신의 힘이 느껴진다고……?’
그럼 설마 저기에 있는 거야?
진짜로? 그게 말이 되는… 아니지. 생각해보면 청의 여신을 소환했을 때 기도실의 성화@(성화) 모양이 좀 이상하긴 했었다.
성화의 모양은 신이 이곳에 오셨다는 표식으로, 보통은 신의 상징물이나 신이 있는 장소로 바뀐다. 그런데 청의 여신 땐 뼈 모양이긴 했다.
물론 그때야 누가 해골왕에 미친 가문 아니랄까 봐, 표식도 뼈 지랄인가 싶었는데…….
‘그때 그 뼈가 설마… 저거였나?’
설마 가짜 해골왕의 몸에 봉인되어 있던 거였어? 아이작은 살짝 혼란스러웠지만, 고개를 저었다.
‘일단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 생각한 아이작이 활법으로 저택의 지붕을 뛰어넘었다.
텅!
해골왕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마력이 피부를 짓눌렀다. 아마 5계위 이하의 성직자들은 이미 마력의 위압만으로 기절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마침내 해골왕에게 가까이 접근했을 때-
콰직!
“!”
거대한 뼈다귀 팔이 날아왔다. 건물만 한 해골왕의 손이었다.
손을 피해낸 아이작은 그 기민한 동작에 흥미로워했다.
‘마족은 마족이라고. 강한 마력을 알아보는 건가?’
뭐, 그래봐야 이건 ‘꼭두각시’ 마법으로, 거대 분신을 만들어 낸 것뿐, 본체는 저 안에 있겠지만.
아이작은 손을 까딱거렸다.
그때 아이작의 마력핵을 노리듯, 놈의 손이 또다시 아이작의 심장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터엉!
“!”
멜리사가 맨손으로 해골왕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단숨에 팔을 꺾어, 바닥에 내리꽂았다.
쾅!!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괜찮으냐!”
“가모님!”
공격을 막아준 걸 봐선, 다행히 저놈이 해골왕이라고 인지한 모양이다. 역시 해골왕과 같은 장소에 있으니, 의심이 풀렸…….
“이사악! 이건 네 부하냐!”
아니, 씨! 아니라고!!!
아이작은 데굴데굴 구를 기세였다.
쟤는 눈앞에 해골왕이 있는데 왜 알아보질 못하냐고! 노안이냐! 어? 그런 거냐?!
아무튼!
“저놈이 진짜 해골왕입니다!”
“뭐? 하지만 이사악은 너…….”
“아니라고오여얽!!!”
아이작은 마음속으로 데굴데굴 구르며 말했다.
“보면 알잖아요! 봐! 해골왕 마력에, 해골왕의 마법을 쓰고 있잖아요! 저게 해골왕이잔하아!”
“해골왕의 마법을 네가 어찌 알지?”
“!”
순간 아이작은 움찔 얼어붙었다. 그는 빠르게 눈알을 굴리며 답했다.
“…어. 어어어어, 서품식이랑 책에서 봤으니까요! 아무튼 저놈이 해골왕입니다! 가모님!”
“아니. 냄새가 다르다.”
“#&$^&!”
아아악! 이 망할 성녀들!
눈으로 욕하는 아이작은 머리를 움켜쥐었지만, 정작 멜리사는 혼란스러운 듯 해골왕을 보고만 있었다.
그녀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한테는 냄새가 다르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건 이사악의 힘이었다. 그랬기에 해골왕을 보는 그녀는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말 아이작의 말대로, 저놈이 진짜 이사악인 걸까.’
하지만 왜지.
그렇게 찾아 헤맸던 녀석을 겨우 만났는데, 전혀 마음이 가지 않는다. 마치 다른 녀석을 보는 것 같은…….
곧 아이작이 정신 차리라는 듯 외쳤다.
“아무튼 저놈입니다! 에슈아에 저주를 퍼부은 놈이요! 그러니 저 새끼를 없애면 저주도 풀 수 있을 겁니다!”
“……!”
그때였다.
일라이가 몹시 반기듯이 뛰어내렸다.
“그래? 저걸 없애면 네 개차반 성격도 고쳐지는 것이냐?”
“…눼?”
“그래, 저것만 없애면 네 쓰레기 인성도 돌아오겠구나.”
아니, 그건 저주 탓이 아닌데…….
아이작은 할 말을 잃었지만, 일라이는 바로 강력한 성법을 발동했다. 그러자 푸른빛이 그의 주먹으로 몰려들었다.
해골왕을 바라보는 일라이의 눈에 살의가 맺혔다.
‘에슈아에 저주를 건 장본인.’
그나마 자신은 운이 좋았을 뿐이고, 그 자식들은 용인인 멜리사의 피가 섞여서 저주가 희석된 것일까.
자신의 세대들은 선조들처럼 어린 나이에 죽거나, 신체 불구자들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통을 앓고 있는 건 맞다.
“내 손주 놈 인성이나 되돌려놔라!”
“아니, 그건 그 탓 아니라고!”
일라이를 서포트하는 아이작의 얼굴에 핏대가 섰다.
적의 힘을 분석하기 위해 일단 둘의 힘을 이용하려 하고 있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두고 보자. 저놈만 처리하고 나면!’
교황이 되면, 할아버지부터 부려 먹어주마!
곧 일라이와 멜리사가 해골왕에게 향하자, 아이작이 땅을 짚었다. 그러자 위스퍼가 아이작의 팔을 타고 지면으로 내려가 해골왕에게 향했다.
슈슉!
위스퍼는 주변에 퍼지고 있는 해골왕의 마력에 엉겨 붙었다.
같은 마력이니, 방해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리고 놈이 마력을 쓰지 못하도록 해주는 것만으로도 청의 성법은 완벽하게 먹혀들어 간다.
어디 그뿐인가?
<어둠 먹기>.
<마력흡수>.
아이작의 눈이 검게 물들었다. 청의 초월계위 성법을 이용해 마력 흡수를 발동한 것이다.
그러자 아이작의 손을 타고 어둠처럼 보이는 힘이 가짜 놈의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아이작은 웃었다.
일단 놈의 마력은 이쪽이 챙겨놓고, 2차 공격은 저 둘에게 맡긴다. 그 후에 자신은 막타만 날리면 됐다.
저 둘의 힘을 정확히 알기에, 아이작은 승리를 장담했다.
그리고, 마침내 멜리사와 일라이의 연계 일격이 해골왕에게 작렬했다.
<십계구마>.
쾅!
저택이 뒤흔들릴 만한 강렬한 섬광이었다.
쿠구구!
섬광과 함께 몸이 날아갈 것 같은 풍압이 밀려왔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릴라이도 느낌이 좋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항의 기운이 없었다. 항마의 성법이 제대로 먹힌 듯했다.
“먹혔…….”
그러나 연기가 걷혔을 때, 그들은 흠칫 놀랐다.
[이게 다냐?]
“……!”
해골왕은 멀쩡했다.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상처가 없어?”
아니, 단순히 상처가 없는 수준이 아니다. 아예 공격 자체가 통하지 않았다. 적이 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바람이 건물을 통과하듯 통하지 않은 것이다.
당혹감이 상당했다.
‘마족한테, 항마의 힘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고?’
이건 말도 안 된다.
심지어 위스퍼마저도 당혹스러운 눈치였다.
[주인님……?]
물론 위스퍼가 당혹스러워하는 이유는 성직자들과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뭔가 눈치챈 아이작이 가증스럽단 듯 웃었다.
‘이것 봐라?’
긴가민가했는데, 아무래도 정말로 청의 신이 저 안에 갇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이해는 간다.’
청의 신이 그간 힘을 전혀 내지 못한 이유를.
봉인 술법의 영향도 있겠지만, 저건 자신의 육신으로 만든 가짜였다.
그리고 빛의 신은 자신과 상성이 최악이었다. 봉인을 당했는데, 심지어 그 장소가 해골왕의 몸이라면?
이건 뭐, 힘이 돌아올 여지조차 없지. 기를 써서 회복하려고 해도 해골왕의 마력이 지속적으로 그 힘을 삼킬 테니까.
‘87년 전, 청이 가짜 놈 상대로 맥도 못 췄을 만 해.’
[설마…….]
‘뭐, 이상하다곤 생각했어. 아무리 그래도 성녀 가문 짬바가 있는데, 나도 아닌 가짜 놈한테 그리 발렸다는 게.’
[그럼 역시……!]
‘그래. 자기 신을 상대로 상대가 되겠냐?’
‘……!’
정말 이게 실베스테르의 짓인지는 몰라도 치졸하기 짝이 없다.
‘혹시라도 청이 가짜 놈을 처리할 수도 있으니, 보험을 들어둔 거다.‘
종자가 주인을 공격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주인을 향하는 힘은 그대로 무효가 되어 흩어졌겠지. 설령 힘이 있더라도 절대로 이기지 못하게끔.
‘이 정도면… 멜리사? 아니, 멜리사 천 명이 와도 안 된다.’
애초에 규칙 자체가 글러 먹었다.
하지만 이쯤 되니 드는 의문이 있었다.
‘이거, 일개 교황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혹시 실베스테르가 신과 손을 잡은 건가?
‘뭐, 인간이 후손의 몸으로 갈아타는 짓을 하고 있을 정도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아무래도 이건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다.
[그럼 잠깐만요. 그 벌레에는 지금 누가 들어가 있는 겁니까?]
그러게. 누가 있는 걸까?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 저놈을 쓰러트리는 게 우선이지.
[어떻게요?]
아이작은 악랄하게 웃었다.
‘해결 방법은 간단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