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2화. 에슈아의 저주 (3)
아이작은 눈앞에 있는 해골왕의 존재에 실소를 흘렸다.
자신도 아닌 놈이 해골왕이랍시고 제집에 나타난 것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뭐? 공격이 안 먹혀?
퇴마 성법으로는 해골왕을 처리할 수 없어?
그게 무슨 상관인데? 그럼 청의 기술을 안 쓰면 그만이잖아?
그런 아이작의 웃음에 위스퍼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 그럼 최고신이나 적의 신의 힘을 쓰시려는 겁니까?]
뭐, 그래도 되긴 하는데. 최고신은 아직 친해지지 못했고.
‘형법이는 아쉽게도 전투 전문이 아니거든.’
그놈은 굳이 따지면 구속계였다. 마왕 정도 되는 급을 골로 보낼 파괴력은 안 나왔다.
뭐, 형법이의 동생인 ‘형벌’의 신이었으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겠지만…….
‘걘 내 손아귀에 없잖아.’
그리고 애초에 내 가짜 새끼를 두고, 왜 멀리 돌아가?
‘더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그러자 위스퍼는 뭔가를 눈치챈 듯했다.
[그럼 설마 주인님이 직접 나서시려고요? 마법을?!]
개코 멜리사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그래도 되느냐는 의미였다.
‘뭐, 마법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이고.’
[예?]
‘왜, 있잖아. 마왕의 숙적.’
[예??]
‘왜 해골왕을 토벌하라고 에슈아의 성녀를 보냈겠어.’
[……!]
아이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떠올리는 건 은발의 신이었다.
바로 5대 주신 중 하나이자, 무력으로는 가장 이름이 높은 군신(軍神).
신계의 토벌자.
전쟁에 나가는 이들을 수호하며, 군인들의 무운을 지켜주는 아름다운 신.
청의 <빛의 여신>.
아이작은 그 강력한 무신의 힘을 잘 알고 있다.
‘걜 풀어내면 가짜 따위, 아무것도 아니야.’
[오!]
뭐, 자신한테는 너무 착해서 문제지만, 어쨌든.
‘그리고 청의 여신을 해방하면, 청의 공격도 먹히겠지.’
물론 가짜라고 해도 무려 이 몸의 육신으로 만든 놈이니, 조올라 강하겠지. 하지만 그거야 자신이 이곳에 없다는 전제고.
‘내가 놈의 마력을 먹어 치우면 돼. 냠냠.’
[푸핳.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네요.]
어디 그뿐인가?
청의 여신을 해방시키면, 해골왕을 퇴치함과 동시에 자신들에겐 막대한 힘이 생기는 셈이었다.
그럼 자신은 교황도 되고, 청은 청대로 힘을 되찾는, ‘꿩 먹고 알 먹고’ 아닌가?
곧 아이작의 눈이 살의로 번득였다.
‘만약 정말로 빛의 여신이 저기에 갇혀 있다면, 꺼낼 수 있는 건 나뿐이다.’
뭐, 봉인을 풀려면 일단 빛의 여신이 갇힌 장소를 찾아내야겠지.
그랬기에 해골왕을 바라보는 아이작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적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라. 해골 새끼 몸에 빛의 여신을 봉인한다면 어디가 가장 좋을지.’
아니, 생각할 것도 없나?
‘마력핵밖에 없잖아.’
마침내 목적지를 정한 아이작이 바로 해골왕에게 달려갔다.
아이작이 움직이자, 해골왕의 거대 분신이 바로 따라붙었다.
쾅! 콰광!
놈도 마법사인 만큼 근접전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미 같았지만, 아이작은 거슬린다는 듯 눈썹을 치켜떴다.
‘저딴 저급한 수를.’
최상급 텔레포트를 구사하는 해골왕으로서는 인형놀음으로 보여 허접할 뿐이다.
그랬기에 아이작은 바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손에서 붉은 보석이 박힌 액세서리가 흔들렸다.
“형법아!!! 나와라!”
그건 계약한 형법의 신을 부르는 성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신이 응답을 해줘야 사용할 수 있는 물건. 청가의 사람에게 잡힌 붉은 보석은 당연하게도 미동도 없었지만-
“안 나오면 적가 새끼들부터 조져버린다!!!”
그제야 붉은 보석이 빛을 냈다.
번쩍!
동시에 형법의 신의 목소리가 아이작의 귀에 울려 퍼졌다.
[너, 협박 좀 작작 해라!]
“아, 됐고! 니들 직계들한테 주는 버프 팍팍 뿌려봐!”
[아니! 청한테 그걸 왜!]
“적가부터 씨 말려 조진다?!! 대대손손 저주 내린다??? 내가 직접 내린다? 해골왕의 저주마법 모르냐?!”
우이씨!
그런 욕지거리와 함께 아이작의 몸에서 빛이 났다.
어차피 청의 술법은 먹히지 않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다른 신앙의 힘을 쓰는 게 제격이었다.
그리고 적의 신에게 버프를 빵빵하게 뜯어낸 주인의 모습에 위스퍼가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주인님, 그런 저주를 쓰려면 특수한 재료들이 필요하잖아요. 어차피 못 쓰지 않습니까?]
‘그치. 하지만 신들은 모르잖아.’
사실 마도제국쯤은 가야 저주 재료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뭐, 사기 치는 데 그딴 게 중요한가?
“형법이! 구속!!!”
[그러니까 내가 왜!]
“적가 씨앗 말린다!!! 쪼글쪼글 말려 죽인다!!”
[아씨!!!]
동시에 아이작의 주변에서 붉은 사슬이 뻗어 나왔다.
보통의 사슬이 아니었다.
거대 해골에 걸맞은 거대한 사슬이 해골 분신을 묶어내고-
콰직!
마치 오체분시로 사지를 찢어내듯 분신의 머리, 팔, 다리를 잡아당겼다.
으드득!
그 사슬의 힘에 마력의 힘도 사라지면서 분신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쾅!
그 광경에 잔해를 피하는 일라이는 혀를 찼다. 아이작 저 녀석의 공격은 통하니 다행이긴 한데…….
“왜 하필 적의 추기경의 술법이냐!”
저러니까 적의 추기경이 맨날 손주 놈을 자기 가문에 넘기네, 마네, 개소리를 하지!!
하지만 지금은 뭐든 상관없었다.
‘저놈만 처리할 수 있다면……!’
해골왕을 이만한 거리에서 본 것은 처음이지만, 놈을 보니 확실해졌다.
‘역시 저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성녀들이 왜 그런 마음을 품었는지 이해조차 되지 않는다.
‘저런 상종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 놈을.’
한때 해골왕을 동정해 청이 나락에 떨어진 게 원망스럽다. 동시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멜리사.”
“그래, 우리 힘 자체가 저놈한테 안 통한다.”
멜리사는 당혹스러운 듯 제 손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도대체 왜?’
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탓인가?
아니면 자신이 해골왕을 못 잡은 것 때문에 신께서 벌을 내리고 계신 건가?
네가 동정해 놓아준 해골왕에게 배신을 당하고, 신이 내려준 사명을 버린 대가를 뼈저리게 느껴보라는 것인가.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멜리사는 알았다.
저 해골이 해골왕이라면-
저놈이 가장 먼저 노릴 놈이 누구인지.
“더 이상, 내 자손들을 노리게 할 순 없…….”
“됐으니까 둘 다 비켜어!!”
“!!”
쾅!
아이작은 돌풍을 일으켜 일부러 멜리사와 가주를 떨쳐놓았다. 방해꾼을 멀리 보낸 것이다.
‘마법은 멀리서 써야지.’
할아버지야 뭐, 자신이 흑마법에 손을 댄 걸 짐작한 듯 하니 괜찮긴 했다.
하지만 멜리사는 개코라 안 된다.
그런데 위스퍼가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런데 깜빡하고 안 여쭤봤는데요.]
‘뭔데.’
[청의 여신을 구해내면, 주인님은 골치 아파지시는 거 아닙니까? 멱살 잡혀서 청에서 쫓겨나는 거 아닌가요?]
‘내가 쫓겨날 위인이냐?’
[…여신이 쫓겨나겠군요.]
암. 그렇지. 방해하면 전부 똑같은 거야.
‘그리고 교황이 되고 나면, 어차피 내 발로 나갈 거야.’
[예?]
‘난 청에 볼일 없어.’
마왕과 성녀?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동거였다.
청은 원래부터 교황이 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진짜 한 가족이라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로서는 그저 힘을 얻고 교황이 되어, 신들을 멸망시키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청 따위 멸망시키고, 신들도 멸망시킨…….’
그때였다.
“!”
아이작이 움찔해서 멈췄다. 적의 성법에 붙들린 해골왕이 갑자기 기민하게 반응했다.
그런데 놈의 시선이 돌연 아이작을 향했다. 마치 이 중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위험한 자라고 판단한 것일까.
그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고오오오!
‘…이건!’
해골왕의 마력이 아닌, 기이한 힘이 닥쳤다.
그 힘에서는 묘한 흙냄새가 났다. 동시에 청의 힘을 쓰던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받으며 쓰러졌다.
그 여파는 아이작에게도 왔다.
울컥!
“아이작!”
아이작이 돌연 피를 울컥 토했다.
[주인님!]
위스퍼가 놀라 외쳤지만, 아이작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를 닦았다.
‘괜찮아. 그냥 저주야.’
[저주요?]
아이작은 서늘한 눈으로 해골왕을 보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가까이 오는 걸 느끼고, 저주를 건 듯했다.
그래, 87년 전.
에슈아에게 내린 그 죽음의 저주 말이다.
‘그래봐야 나한테는 안 먹히는데.’
가짜 놈의 저주가 해골 왕한테 먹힐 것 같은가?
뭐, 오랫동안 성직자의 몸에 있던 탓일까. 저주 해독하다가 피는 토했지만. 뭐,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좋다.
‘저주 마법은 마력의 양이 꽤 되거든.’
저주를 흡수하는 아이작은 점점 힘이 차오르는 걸 느끼며 해골왕에게 향했다.
물론 놈에게 다가갈 때마다 놈이 계속 저주를 거는 듯 아이작은 울컥울컥 피를 토했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옳지. 더 써! 그래야 마력핵 위치를 파악하지!’
그런데 그게 에슈아 사람들에게는 경악 그 자체인 모양이었다.
“아이작! 그만두거라!”
“저 아이가…! 해골왕을 처리하기 위해서… 희생을……!”
그들은 아이작이 육신을 버려서라도 사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반면 해골왕은, 아이작이 점점 가까워지자 당황한 기색이었다.
[이놈이.]
왜 죽지 않느냐는 기색이었다.
마침내 놈이 쓰려는 저주의 힘이 더욱 강해지자, 아이작은 한숨을 쉬었다.
아, 저주를 계속 써주는 건 좋지만 슬슬 과다 출혈은 고려해야 할 것 같은데.
‘뭐… 어차피 놈도 저주를 쓸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있을 테니.’
마력핵의 위치도 대충 알아냈으니, 저주는 한두 번만 더 받으면 된다. 마력핵을 파괴할 힘도 슬슬 차오르고 있고.
‘슬슬 아프지만, 조금만 더 하면…….’
그런데 그때였다.
푸욱!
아까보다 더한 저주가 아이작에게 날아왔다.
하지만 아이작은 이번에 피를 토하지 않았다.
“!”
멜리사가 아이작을 안으며 저주를 막아낸 것이다.
“가모님!”
그녀의 등에서 심한 피가 흘러내렸다. 저주를 대신 맞아준 탓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의미로 괴로운 듯 읊조렸다.
“…미안하다. 에슈아의 숙명 때문에 어린 네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다니.”
아니, 됐으니까.
좀 떨어져 주겠어?
네가 저주를 막아줘서, 저주 위력은 날아가고 마력만 와장창 들어와서 무지 좋긴 한데.
네가 있으면 마법을 못 쓴다니까? 어?
그러니까…….
“내가 해골왕을 잡지 못해서. 손주한테까지 이런 아픔을 겪게 하는구나.”
“…….”
그 죄책감 섞인 듯한 말에 아이작은 말문을 잃었다. 그러더니 그는 곧 한숨을 쉬었다.
하, 그깟 사명이 뭐라고.
왠지 모르게 과거의 누군가가 떠올랐다.
곧 아이작의 눈빛이 변했다.
‘일단 자라.’
아이작이 수면 마법을 발동했다. 그 마력의 기운에 위스퍼가 흠칫 놀란 듯했다.
[어? 어어? 가모 앞에서는 마법을 안 쓴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짝퉁 새끼가.’
“너 오늘 날 잡았다.”
그때, 멜리사는 쏟아지는 졸음 속에서 굉장히 낯익은 힘을 느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