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3화. 진짜 불멸왕의 힘 (1)
아이작의 수면 마법이 저택에 퍼져 나갔다.
스르륵.
마치 바람과 같은 힘이었다.
에슈아 저택에 퍼진 졸음의 기운이 동물에게, 사람에게 스며들었다.
여기에 스친 사람들은 모두 휘청거렸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수 없는 졸음이었다.
시종들은 이미 쓰러졌고, 훈련된 기사들마저도 픽픽 쓰러져 나갔다. 부상으로 괴로워하던 슈리도 이미 정신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버틴 건 릴라이와 가주 정도였지만…….
“크윽……!”
“이 힘은……!”
최고 사제와 최고위 성기사인 그들조차도 쏟아지는 졸음에 더는 버티고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단번에 눈치챘다.
‘이 힘은… 성법이 아니다.’
‘마법……?’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놀라운 것이었다.
‘빌어먹을, 얼마나 강력한 거냐.’
청은 마족과 가장 가까이서 싸우는 만큼, 마법에 대한 내성이 막강한 이들이었다.
특히 ‘상태이상’ 마법엔 어느 정도 버틸 만큼 훈련이 되어 있음에도, 이건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다.
심지어 추기경 급인데도 이렇게? 쓰러지는 에슈아 사람들이 놀란 듯 아이작을 볼 수밖에 없었다.
‘저 힘을 버티다니,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아이냐…….’
솔직히 일라이도 당황스러웠다.
숱한 마족을 상대해오며, 모든 마족을 깔보던 그였다. 그가 이토록 속수무책으로 찍어 눌린 경험이 있었던가.
‘이건 인간이 쓸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그래, 그래서 아이작을 마(魔)의 아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건 단순한 마의 아이 수준도 아닌 것이었다. 그랬기에 일라이의 시선은 한 곳을 향할 수밖에 없다.
‘아이작… 너 설마…….’
그러나 그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곤 픽 쓰러졌다.
쿵!
“아버지……!”
마침내 가주가 쓰러졌고, 이제 남은 건 릴라이였다.
그는 쉽게 잠들지 않았다.
‘이대로 쓰러지면 안 된다.’
당장이라도 잠들고 싶지만, 이건 해골왕의 마법이 틀림없었다.
자신마저 쓰러지면 아이작을 지킬 수 없었다.
‘해골왕 이 새끼…. 에슈아 전원을 쓰러트리고, 아이작을 해칠 생각인가……!’
그는 해골왕을 노려보았다.
곧 해골왕이 아이작에게로 다가갔다.
이에 릴라이는 검을 뽑았다. 여기서 제 자식 같은 조카마저 잃을 순 없었다.
“아이작, 너만이라도 도망쳐라……!”
그러나 릴라이조차도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휘청, 쿵!
이제 이 일대에서 잠들지 않은 것은 단 한
아이작은 휘청거리며 쓰러지는 멜리사를 붙잡았다.
턱!
아이작의 어깨에 쓰러진 멜리사는 아이작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가 이 힘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게 찾아 헤맸고, 무척이나 그리워했던 힘이었다.
그게 여기에 있다는 건…….
“아이작, 너…….”
그러나 멜리사는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아이작의 얼굴을 눈에 담지 못한 채, 결국 눈을 감았다.
아이작은 힘없이 축 늘어진 멜리사를 가볍게 안아 들었다. 그녀의 등에 닿은 아이작의 손에서 마력의 힘이 치솟았다.
스슥, 스스슥.
마법이었다.
해골왕의 마법은 순식간에 등의 상처를 지혈했다.
“자, 그럼 이 일대는 다 재웠겠고.”
멜리사를 주변에 눕히며 말하는 아이작에, 위스퍼가 눈치 빠르게 나섰다.
[옙. 인근 마을까지, 살아 있는 놈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바퀴벌레 새끼의 알까지! 전부 죽였습니다!]
‘죽였다니, 새끼야…. 잠재운 거지.’
아이작은 말을 말자는 듯, 해골왕을 노려보았다.
“이제 남은 건 너랑 나뿐이군.”
해골왕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네놈, 마법사였나?]
이건 틀림없는 수면 마법. 심지어 보통 마법도 아니었다.
9계위 이상의 고위 마법이었다.
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만한 일이었지만.
[사제가 흑마법에 손대다니, 청도 맛탱이가 갔군.]
해골왕은 비웃듯 아이작을 보았다.
[사제의 몸으로 쓸 수 있는 마법이 얼마나 대단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노력만큼은 칭찬해주지. 하지만 그래봐야 내겐 상대가 되지 않는다. 네놈들이 그리 타락하니 신에게 버려지고, 이렇게 내게 멸망당하는 거다.]
아이작은 같잖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시바 놈이, 감히 누구 집에서 지껄여?”
[!]
그는 기절한 청의 사람들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에슈아의 피를 가진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게 느껴졌다. 이는 저주를 건 장본인이 나타나면서 확실해졌다.
‘이건 피와 육신에 거는 저주 마법이다.’
가까이에 있기에 더욱 쉽게 판별할 수 있었다.
놈의 저주 방식은 지극히 심플했다.
‘마(魔)에 저항하는 면역 체계를 망가트리는 거다.’
면역 체계가 적을 공격하면서, 자기 자신까지 공격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물며 면역 체계가 강하면 강할수록, 이는 더 맹렬하게 반응했다.
‘그 때문에 마에 대한 강한 면역자, 즉 재능있는 녀석일수록 더 빨리 몸이 망가져 죽는 거지.’
역병이 돌 때, 강한 면역 반응을 가진 젊은이들이 더 빨리 죽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떤 의미론 유전병을 뿌린 셈이군요?]
그래. 뭐, 운 좋게 피해 간 놈들도 있지만, 해골왕과 마주한 지금이었다. 그 저주가 강력하게 발동하는 만큼, 모두가 지독히도 괴롭겠지.
그런데도 그 괴로움의 원인을…….
-내가 해골왕을 잡지 못해서, 손주한테까지 이런 아픔을 겪게 하는구나.
“본인들의 신앙심 부족이라고 가스라이팅했구나.”
그 말에, 해골왕은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틀린 말은 아니지. 멍청하게 적을 믿고서, 날 풀어준 우동사리 머리들이니. 해골왕을 못 잡은 본인들의 부족이 맞지 않는가.]
“아, 그래?”
아이작이 가볍게 웃었다.
마치 본인의 이야기처럼 말하고 있지만, 저 말, 저 논리, 꼭 누군가와 닮지 않았는가.
바로 신들이다.
그리고 참으로 우습지 않은가. 도대체 누구 앞이라고 저딴 말을 지껄이는지.
그랬기에 아이작은 거추장스러운 소매를 걷기 시작했다.
“네놈이 실수한 건 세 가지다.”
[뭐?]
“첫번째는 내 집을 박살 낸 거고-”
소매를 걷은 아이작은 몸에 찬 성물까지 모두 하나씩 빼기 시작했다. 로자리오, 장신구, 작은 단추 하나까지도 전부 뽑았다.
[……?]
“두 번째는 해골왕을 사칭한 것이며-”
그다음으로는 성력으로 몸을 보호해주는 로브를 벗어냈고-
“세 번째는 그 사칭범이 제 발로 직접 내 앞에, 신성제국 안에 들어와 준 거다.”
심지어 유일한 공격 수단인 형법의 신의 성물까지 툭 벗어 던졌다.
덕분에 해골왕은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사제가 본인의 무기인 성물을 전부 빼내다니? 적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뭐, 상관없나. 스스로 신의 축복을 버리겠다는 거니…….
“그리고 네 번째.”
[뭐? 아니, 세 가지라며!]
“니 새끼 얼굴이 제일 마음에 안 들어!!!”
뭐?
그 순간, 해골왕의 얼굴에 맹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쾅!!!
그러곤 다짜고짜 해골왕의 대가리부터 날려버린 아이작이 눈을 부릅떴다.
“사실 이게 제일 커! 도대체 누구 얼굴이 그 따위로 생겼단 거야?! 뒤지고 싶냐!”
해골왕은 신음을 흘렸다.
뼈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가루가 되었을 만한 강력한 일격. 심지어 이건 마법이었다.
그와 동시에 해골왕은 아이작이 성물을 빼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설마, 마법전으로 갈 생각인가?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성력이 담긴 물건은 마력을 억제한다. 즉, 성물은 마력 억제 도구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래서 방해가 될 물건을 전부 치운 것이다. 마력을 온전히 쓰기 위해서.
그리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봐야 얼마나 대단한 마력을 가졌다고? 모든 마법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해골왕 앞에서 건방을 떨어?
[성직자 놈이, 마의 주인 앞에서 겁도 없이…….]
그러나 순간 해골왕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쿵!
[……!]
해골왕은 공포라는 것을 느꼈다.
아이작에게서 시야를 뒤덮는 검은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해골왕은 제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아이작의 몸에서, 소름끼치는 마력이 흘러넘쳤다. 지난 17년간 아이작이 쌓아두기만 했을 뿐, 한 번도 풀어낸 적 없던 마력이.
“아직도 모르겠나? 왜 네놈의 저주가 나한테 안 통하는지?”
[!]
소름 끼치는 미소와 함께, 아이작이 마력을 완전 개방했다.
터엉!
신성제국을 잠식할 만한 마력이 터져 나왔다.
해골왕조차 놀랄 정도의 힘이었다.
이는 솔직히 저 작은 인간의 몸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인간이 살아서 버틸 수 있는 마력이 아니다.
하지만 그 힘 속에서 아이작은 즐겁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까지 내가 왜 마법을 못 썼다고 생각하는 거냐?”
[!]
“굳이 고생해서 성력을 다뤄가며, 왜 마법을 아껴썼는 줄 아냐고.”
마력을 개방한 아이작이 점점 다가왔다.
그 발걸음이 묘하게 경쾌하다.
“신성제국 안에서 내 힘을 쓰면, 분명 교황이랑 추기경 새끼들이 눈치를 챌 것 아냐. 해골왕이 내부에 있다는 걸.”
그런데 ‘해골왕’이라 불리는 존재가, 신성제국 안에 나타나?
심지어 마력의 기운까지 같아?
“이야, 그럼 내가 힘을 펑펑 쓰고 지랄 발광해도 전부 네놈이 한 짓이라고 생각하겠네?”
[……!]
“고맙다. 가짜 놈아. 힘을 확인할 샌드백을 만들어줘서.”
그 미묘한 눈웃음과 함께, 검은 섬광이 터져 나왔다.
번쩍!
검은 섬광은 아이작을 중심으로 주변의 모든 걸 집어삼켰다.
가장 먼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를-
그다음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빛을-
공간을 느낄 수 있는 냄새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마지막으로, 모든 생명의 에너지를 빼앗아갔다.
마치 생명을 앗아가고, 절망만을 남기듯.
아이작을 중심으로 압축된 그 힘은 순식간에 폭발력을 얻어…….
[큭!]
번쩍!
단숨에 터져 나오며 해골왕을 공격헀다.
“크윽!”
해골왕은 황급히 마법을 발동해 그 어둠의 힘을 막아냈다. 멀리서 막는 것만으로 몸이 박살 날 만한 위력이었다.
그러고는 가까스로 그걸 다른 공간으로 날려버렸지만-
“해골왕 흉내를 내려면 제대로 내야지.”
[!]
“이렇게 말이다.”
아이작의 등 뒤에서 거대한 무엇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정한 불멸왕의 기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