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4화. 진짜 불멸왕의 힘 (2)
해골왕.
신들도 그의 존재를 멸하지 못한 죽음의 왕.
하루는 신계에서 가장 촉망받던 신이 정예군을 끌고서 해골왕을 멸하러 온 적이 있다.
가장 빛나는, 미래 길이 열려 있던 최고 인재였다. 그는 전대 마왕을 처분해 공을 세운 만큼,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작 누더기를 걸친 해골 하나에게-
근엄했던 역대 마왕들과 비교하면, 그 모습부터 우스꽝스럽고 볼품없던 스켈레톤 하나에게-
신계의 군대는 전멸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해골왕은 신의 군대가 짓밟은 텃밭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지.
-내 농장을 망가트린 답례다.
그 뒤에 치솟아오른 해골왕의 마법은 말 그대로 신계를 날려버렸다.
그 이후로 신들이 직접 해골왕을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해골왕은 섭리를 거스르는 존재라 신들의 지배 규칙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심지어 그 힘까지 지나치게 강했으니까. 자칫 본인들까지 위험해지리라 생각한 것이다.
신성력이라는 약점만 아니었으면, 해골왕은 진작 신계를 뒤엎어도 이상치 않았다.
그리고-
그 유일한 약점마저도 사라진 마왕의 힘이, 지금 이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쿠웅!
아이작의 등 뒤에서 어둠의 공간이 나타났다. 창공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그 안에서 심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아이작의 마력의 세계를 그대로 현실 세계로 끌고 온 듯한, 소름 끼치는 세계.
해골왕은 저게 무엇인지 모를 리 없었다.
‘저건 경지 높은 마법사들이 쓰는 고유 마법.’
본인의 마력핵을 현실에 전개하는 것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시전자에게 유리한 마법이 된다. 공격이나 방어 마법이 되기도 했고, 시전자에게 유리한 공간으로 만들기도 했다.
마력핵은 마법사들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능력과 위력도 천차만별이었다.
능력에 따라 고유 이름이 자동으로 붙게 되는데, 그 때문에 명칭만으로도 상대의 힘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작의 경우에는…….
“<천무이일(天無二日)>.”
[……!]
“하늘 아래, 두 개의 해는 존재할 수 없다.”
뭐라고?
아이작이 그렇게 읊조린 순간, 태양이 먹히기 시작했다. 점점 까맣게 가려지는 태양은, 이내 그 존재를 완전히 잃었다.
완전한 일식.
해골왕은 숨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쿵!
아이작의 눈이 마안으로 변하면서, 해골왕은 머리를 짓누르는 힘을 느꼈다. 찍어 누를 듯한 위압감에, 공포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뭐냐, 이 힘은……!’
분명 어떤 감각도 느끼지 못할 텐데도 불구하고, 파르르 몸이 떨렸다.
만약 해골이 아닌 생명체였다면, 이미 독기에 쓰러지고도 남았을 위력이다. 인간들은 잠들지 않았다면 모두 혼을 빼앗겨 죽었겠지.
그랬기에 해골왕은 소름이 돋았다.
‘저만한 걸 성직자들 사회에서 숨기고 있다고?’
그게 가능한가?
평소에 얼마나 힘을 억누르고 있다는 거지?
그 와중에 성력까지 다룬다고?
‘서로 완벽하게 제어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텐데.’
저 힘이 제대로 발동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성력과 마력을 함께 쓸 수 있다면, 초월계위에 도달하는…….’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쿵! 쿵! 쿵!
[!]
저택 곳곳에서 검은빛이 하늘로 치솟았다.
해골왕은 그걸 보고서 반사적으로 눈치챘다.
‘결계!’
저놈은 자신을 이 에슈아 저택에 가둘 생각인 것이 틀림없었다.
‘휘말리면 끝이다.’
다행히 저만한 마법이면 신경이 전부 저쪽에 쏠릴 수밖에 없다.
‘공격 찬스!’
해골왕은 바로 공격 마법을 발동했다.
물론 정직하게 날리진 않았다.
[아군을 잠재운 건, 명백한 네 실수다.]
그는 불길을 일으켜, 잠들어 있는 에슈아 사람들을 공격했다. 제 가족들을 지키려면 마법을 중단할 수밖에 없겠지.
아니나 다를까, 아이작이 다른 주문을 읊었다.
쿠궁!
검은 배리어가 에슈아 사람들을 감쌌다. 해골왕의 불길은 배리어를 뚫지 못했지만, 해골왕의 진짜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에슈아 사람들을 공격하는 척, 진짜 마법을 숨겼다. 그림자 마법을 슬쩍 불길에 숨겨, 땅속으로 흘려보낸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마법은 아이작의 그림자에서 나와 그의 목을 꿰뚫겠지.
그래, 바로 지금 이 타이밍에…….
콰직!
“지금 뭐 하냐?”
[!]
아이작의 목을 노리던 그림자는 같은 그림자 마법에 막혔다. 당황한 해골왕은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저놈의 결계 마법은 아직 발동 중이다. 심지어 에슈아 사람들을 지키는 배리어도 발동 중이었다.
거기에 본인을 노리는 마법까지 막…….
잠깐, 뭐라고?
‘그럼 지금, 3중으로 마법을 쓰는 중이라고?’
당황한 해골왕은 바로 마법을 추가하여 아이작을 습격했다.
하나같이 낮은 계위의 마법이 아니다. 해골왕의 마법은, 본래 가벼운 공격 마법조차 재해 급이었다.
보통이라면 하나를 막는 것도 힘들 수준이지만…….
펑! 펑! 펑!
아이작은 모든 마법들을 막아냈다.
“뭐 하냐니까?”
[……!]
무려 5개의 마법을 동시에 발동하고 있다. 이쯤 되면 집중력은 칭찬해줄 만하다.
욕을 읊조린 해골왕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그러자 공간이 갈라지면서, 인간 기사 둘이 나타났다.
그것도 평범한 기사가 아니었다. 적색을 몸에 두른 걸 봐서는 적가의 기사였다.
옛날에 붙잡아둔 기사인 듯했다. 그 증거로, 옷 스타일이 상당히 과거의 것이었다. 그리고 어깨에 영대를 걸친 걸 봐서는 상급 기사다.
마침내 세뇌된 기사들이 번개와 같은 속도로 아이작을 노렸다.
캉!
이 정도로 많은 마법을 사용하며 정신 집중을 하고 있으면, 물리 공격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하물며 상급 기사의 공격을 막으려면 5중 마법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지.
‘반드시 마법 하나 정도는 풀어야…….’
그러나 그 순간, 해골왕은 제 눈을 의심했다.
슈슛!
[!]
아이작이 사라지자, 해골왕은 신음을 흘렸다.
[…텔레포트?!]
그 상황에서 마법을 푸는 게 아니라, 텔레포트를 추가한다고?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해골왕은 놀랐다.
“짜가 놈아, 단순히 마력만으로 날 흉내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
“마법 신도 나한테는 한 수 접고 갔어!”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흑광이 터져 나왔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저택의 절반이 날아갔다.
쾅!
해골왕이 재빨리 비슷한 마법을 날려 피해를 줄이긴 했지만, 손해가 컸다.
해골왕의 반쪽 몸이 바스러졌다.
그 와중에 아이작의 마법이 하나도 풀리지 않음을 깨달은 해골왕은 혼란스러웠다.
‘설마 지금 마법을 7개를 쓰고 있다는 건가?’
단순히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평범한 상대도 아니고, 해골왕을 상대로 하려면 비슷한 급의 마법을 써야 한다. 그걸 동시에 7개나 구현하는 상황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해골왕도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설마, 정말로 진짜라는 건가?’
저놈이 진짜 해골왕이라고?
하지만 해골왕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진짜는 신계에 있는 것이 아니었나?’
그도 그럴 게, 자신을 만들어낸 장본인 실베스테르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해골왕은 지금 구더기에 갇혀 있다. 그러니 마음껏 설쳐라.
그런데 왜 여기에 진짜가?!
그리고 그 생각을 읽은 듯, 아이작은 입꼬리를 히죽 올렸다.
‘역시 이 몸, 최고야.’
누가 신이 공들여서 선물해준 몸이 아니랄까 봐, 해골 때보다 훨씬 마법을 다루기 쉬운 것 봐라.
뭐라고 해야 하나.
옛날에는 못했던 걸, 회춘해서 지금은 마음껏 할 수 있는 느낌?
물론 원래라면, 이만한 마법을 쓰면 피를 토하고 난리가 났겠지만, 어둠의 각성신 덕분에 그 부담도 사라졌다.
뭐, 아직 남아있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지금 이놈을 상대로는 전혀 문제없다.
“끝장을 내주마.”
[!]
아이작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곧 그의 손아귀에서 검은 구가 생겨났다.
그 마법의 정체를 아는 해골왕은 바로 경계했다.
‘소멸 마법!’
해골왕은 경계하듯 맞받아칠 준비를 했지만, 곧 허탈한 듯 웃었다.
아이작이 만들어낸 마력구의 상태 때문이었다.
뾰옹.
손톱만 한 크기. 소멸구라고 하기엔 터무니 없이 작다. 마력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약했다.
아이작답지 않은 위력에, 위스퍼도 당황한 기색이다.
[주, 주인님!]
해골왕으로서는 상황을 인지하고 웃을 수밖에 없다.
[마력이 다 떨어졌구나.]
해골왕은 똑같은 마법을 펼쳤다.
[마법을 그리 남발할 때부터 알아봤지.]
쿠궁!
곧 아이작과는 차원이 다른 검은 구가 만들어졌다. 저택을 모조리 날릴 수 있을 만한 크기였다.
[파워라면 내가 더 우위다. 고작 그걸로…….]
그러나 아이작은 픽 웃었다.
“그 해골 몸의 문제는, 마력의 양이 너무 적다는 거였지.”
뭐?
곧 아이작이 손톱만 한 마력구를 톡, 해골왕에게 튕겼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손톱만 한 마력구가 대지를 가르며, 해골왕의 마법을 집어삼킨 것이다.
[……!]
힘으로 찍어 누르던 아이작이 웃어젖혔다.
“네놈은 내 힘을 다 쓸 필요도 없어.”
곧 마법에 짓눌리는 해골왕과 함께 대지가 크게 뒤흔들렸다.
[…크악!!]
주인의 의도를 파악한 위스퍼가 물었다.
[대용품으로 둬도 될 것 같은데, 여기서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러자 아이작이 같잖다는 듯 웃었다.
“내 대타로 두는 것도 좋은데, 남이 만든 물건을 쓰는 취미는 없거든.”
[!]
아이작이 마무리하려는 그때였다.
해골왕이 마지막 발악을 하듯, 낯선 마법을 끌어냈다.
그 기운에, 위스퍼가 흠칫 놀랐다.
[주인님, 이 기운은……!]
아이작은 미간을 좁혔다.
놈의 마력에서 지옥의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 마법의 정체를, 아이작은 잘 안다.
아니나 다를까, 해골왕이 외쳤다.
[지옥을 소환하는 명계의 마법이다.]
지옥을 소환하는 마법은 평범한 마법이 아니었다.
[그 마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지옥왕들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쓸 수 있는 마법이 아닌가. 언데드에게 잘 맞는 속성이지.]
맞는 말이었다.
엄연히 소환 마법이기에, 지옥왕과 계약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작은 어떤가. 아무리 전 계약자라고 해도, 인간의 몸을 하고 있다면 계약 상황은 달라졌을 터.
[인간이 된 건 놀랍지만, 인간의 몸이라면, 오히려 죽음의 세계와 천적이지. 해골 때와 다르게 지옥의 힘에 거스를 수 없을 터. 그래서 지옥계 마법은 최대한 삼갔던 것이 아닌가? 너도 감당이 안 되니까!]
지옥에나 떨어지라는 듯, 해골왕의 외침과 함께 바닥에서 지옥문이 열렸다.
<팔열지옥(八熱地獄)>.
아이작이 평소에 열었던 한 개짜리의 지옥과 달리, 8개의 지옥문이었다.
[마침 네놈은 지옥에 떨어지기 딱 좋은 놈이 아닌가. 지옥에나 떨어져라!]
8개의 지옥문에서 쇠사슬이 뻗어 나왔다. 쇠사슬은 산 자를 데려가려는 듯, 아이작에게 거침없이 다가왔다.
실제로 불사의 몸이 아닌 이상, 지옥의 힘은 아이작과 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때였다.
우뚝.
돌연 아이작에게 향하던 사슬이 멈췄다.
그것도 그냥 멈춘게 아니다. 묘하게 굉장히 곤란해하는 듯한 움직임. 해골왕은 그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랐다.
‘어째서?’
[인간인데?]
듣고 있던 아이작은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내 짝퉁이라는 놈이 나에 대해 그리 모르면 쓰나.”
[뭐?]
“해골왕이 왜 ‘모든 죽음의 왕’이라고 불리는지 모르나 본데.”
아이작은 우습다는 듯이 쇠사슬들을 손가락으로 툭툭 쳐냈다.
마치 비키라는 듯한 손짓에, 8대 지옥의 쇠사슬들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물러났다.
아이작은 혼란스러워하는 해골왕을 내려다보았다.
“네놈은 내가 언데드였기에, 지옥의 왕과 ‘계약’을 했다고 보는 건가?”
[뭐?]
“계약? 웃기지 마. 그 지옥 마법은 내가 지옥에 떨어졌을 때, 지옥의 왕들을 전부 꿀리고서 얻어낸 전리품이라고.”
[……!]
“계약이 아닌, 충성의 증거란 의미다. 내 따까리들의 힘이 내게 통할 것 같냐?”
[……!!!]
지옥이라.
이유가 있어 지금은 굳이 잘 안쓰려는 마법이지만-
“그리 원한다면, 진짜 지옥이 뭔지 보여주지.”
아이작의 눈이 번득였다.
“어차피 네놈은 재로 돌려야 하니까.”
그 말에 지옥에서 나왔던 쇠사슬들이 해골왕을 붙잡았다. 이에 해골왕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건 네놈의 육신이다. 지옥불에 죽을 것 같나?]
아이작은 안쓰럽다는 미소를 지었다.
“뭘 모르는구나? 죽고 싶어도 못 죽는 건, ‘저주’받은 나한테나 해당하는 거고.”
[!]
“그런데 정작 그 저주는 너한테 없잖아. 내 영혼의 저주니까.”
[……!]
“잘 가렴.”
당황하는 그를 향해, 곧 아이작이 낮게 읊조렸다.
<무간지옥-열(熱)>.
마침내 해골왕의 뒤로 용암과 같은 세계가 드러났다. 해골의 뼈를 녹일 듯한 고열이 치솟아 올랐다.
그 비명 속에서 아이작은, 아 참,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제 머리를 쳤다.
“참참, 제일 중요한 걸 잊을 뻔했네.”
검지를 세운 그는 성력구를 뿅 만들어냈다.
탱탱볼만 한 귀여운 성력탄이었다.
“막타는 반드시 이걸로 해야지.”
최후의 성력탄이 해골왕을 향해 날아들었다.